2006년 10월호

간은 우리 몸의 ‘에너지 관리 센터’

  • 변관수 교수 고려대 구로병원 소화기내과, 간질환센터

    입력2006-10-16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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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은  우리 몸의 ‘에너지 관리 센터’

    간은 질환이 생겨도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만큼 정기검사가 필수다.

    ‘간도 크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 ‘애간장을 태운다’ ‘간 떨어진다’ ‘간이 배 밖에 나왔다’…. 예부터 우리말에는 이처럼 간에 빗댄 표현이 많다. 우리네 조상들이 여러 신체 장기 중에 유독 간 얘기를 많이 한 이유는 뭘까. 이는 그들이 이미 온갖 경험을 통해 간이 신체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기, 간의 신비

    간은 독일어로 ‘Leber(레버)’라고 한다. ‘산다’는 뜻의 live와 leben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간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간은 체내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장기로 체내 물질을 처리하고 저장하는 중요한 기능을 맡는다. 간은 3000억개 이상의 간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로 무게가 1.2~1.5kg에 달하며 인체 내 혈액의 3분의 1 정도가 간에 저장되어 있다. 오른쪽 횡격막 아래에 위치하며 갈비뼈가 간을 보호하고 있어 정상인에게서는 대부분 만져지지 않지만 간이 붓거나 커지면 우측 갈비뼈 아래에서 만져질 수 있다.

    간은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단백질 등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만들어 저장하고 약물이나 몸에 해로운 물질을 해독한다. 쓸개즙을 만들고 면역세포가 있어 우리 몸에 들어오는 세균,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도 한다.

    간은 아주 독특한 혈액 공급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동맥을 통해 신선한 혈액을 공급받고 더러워진 혈액을 정맥으로 내보내는 것이 정상이지만, 간은 오히려 문맥(門脈)이라는 일종의 정맥을 통해서 약 4분의 3의 혈액을 공급받고 나머지 4분의 1을 간 동맥을 통해서 공급받는다.



    즉 간으로 유입되는 문맥이라는 혈관에 들어 있는 피는 비록 정맥을 통해 들어오지만 단순히 노폐물이 쌓인 혈액이 아니라 위와 장에서 흡수한 영양분이 가득 들어 있는, 즉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의 창고이다. 이렇게 들어온 영양분은 간에서 가공되어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이 되기도 하고 인체에 해로운 성분은 해독되기도 한다.

    팔방미인, 간의 기능

    간은 인체에서 매우 많은 일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팔방미인 장기’라고도 한다. 가장 일반적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호르몬, 비타민 및 무기질 대사에서 적혈구 분해과정에서 생성되는 빌리루빈 대사, 체내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약물 대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대사 작용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화작용을 돕는 담즙의 분비도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동물 실험에서 증명됐듯, 정상적인 간은 3분의 2를 잘라내어도 시간이 지나면 거의 원래 크기대로 회복이 가능하다. 그만큼 간은 어느 장기보다도 재생력이 뛰어난 장기이다. 그렇기에 생체 간 이식 수술이 가능하고 간염으로 간세포가 파괴되어도 몇 주일이면 치료되는 것이다. 불을 인간에게 건네준 까닭으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가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다시 재생되는 벌을 받은 것도 모두 이런 의학적 근거에서 나온 이야기다.

    간이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간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 관리 센터 구실을 한다.

    간은 장에서 흡수한 영양소를 저장하거나, 다른 필요한 물질로 가공한다. 다시 말해 우리 몸에 들어오는 모든 영양소는 간에서 에너지 원료로 바뀐 다음 온몸의 세포로 분배된다는 뜻이다. 간은 흡수된 포도당을 글리코겐(glycogen) 형태로 저장하고 있다가 필요하면 다시 분해해서 내보내는 영양 창고의 구실을 한다. 이때 간에 저장된 영양소의 일부는 급한 사용처가 있으면 ‘신속 배달’되기도 한다. 때로는 아미노산으로부터 포도당을 합성하기도 한다.

    간은  우리 몸의 ‘에너지 관리 센터’
    ▼ 간은 몸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한다.

    몸에서 필요한 알부민이나 혈액응고 인자 같은 물질(단백질)을 합성한다. 간경변 환자의 잇몸이나 코에서 출혈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간에서 합성되어야 할 혈액 응고인자가 잘 합성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간경변증 환자의 혈액에서 알부민치가 감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 살균작용도 한다

    ▼ 간은 독소를 분해한다.

    몸에 들어온 각종 약물이나 술, 기타 독성 물질을 분해, 대사하여 배설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소변이나 담즙을 통해서 배출하는 작용, 이른바 해독작용을 한다. 이러한 해독작용이 없다면 각종 약물이나 독성 물질이 체내에 계속 남아 있게 되어 극심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간의 해독작용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필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 간은 각종 호르몬의 공급을 감시한다.

    각종 호르몬을 분해 및 대사하는 작용도 있다. 간경변증 환자의 경우 인슐린 분해가 잘 되지 않고 간의 글리코겐 저장량도 부족해 공복시 저혈당이 초래되기도 한다. 만성 간질환 환자한테서는 성호르몬의 대사가 저하되어 겨드랑이나 치부의 털이 빠지거나 여성에게서는 생리 이상, 남성에게서는 고환 위축이 초래되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 분해되지 않은 남성 호르몬이 여성 호르몬으로 변해 여성처럼 유방이 커질 수도 있다.

    ▼ 간은 담즙을 만들어 지방의 소화를 돕는다.

    지방을 소화하는 데 중요한 담즙을 생성해 담도를 따라 소장으로 배출한다. 이 과정을 통해 다른 물질을 장내로 배설하기도 한다. 수명을 다한 적혈구가 비장과 간에서 파괴될 때 나오는 노폐물질인 빌리루빈을 가공해 배설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간 손상이 심한 경우 황달이 나타나는데 이는 바로 간에서 빌리루빈을 가공하고 배설하는 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간은 중요한 면역기관임과 동시에 살균작용을 한다.

    대장에는 많은 균이 득실대며, 이것들은 대장 점막을 통해서 혈액에 흡수되어 몸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일단 이런 혈액은 간을 거치면서 ‘쿠퍼 세포(Kupffer cell, 균을 잡아먹는 세포)’에 의해 다 죽기 때문에 약 1% 미만의 세균만이 무사히 간을 통과해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간경변증 환자에게서는 이 기능이 저하돼 각종 세균에 감염되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여름철에 익히지 않은 어패류를 먹고 발생하는 비브리오 패혈증인데 특히 간경변증 환자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간경변증 환자에게서는 세균성 복막염도 흔히 발생한다.

    침묵의 장기

    문제는 이처럼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간이 웬만큼 나빠지기 전에는 아무런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는 간이 손상될 것을 대비해 충분한 예비기능을 비축하고 있고 간세포가 서서히 파괴되어 반 이상 저하되어도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간 전반에 걸쳐 이미 손상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간은 만성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손상되면 여간해서 회복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몸속에서는 간 질환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자신은 건강하다고 착각하며 과로와 과음을 일삼다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된 이후에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간 질환에서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피로감, 전신 쇠약감, 식욕감퇴, 메스꺼움, 구역, 소화불량, 복부 불편감 등이 있는데, 사실 이러한 증상은 간 질환에서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간 질환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오른쪽 윗배에 둔탁한 통증, 눈동자와 피부가 노래지는 현상, 소변색이 갈색으로 짙어지는 황달 등이 있다. 따라서 침묵의 장기인 간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간의 상태를 꾸준히 관리하고 간 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약, 건강식품 모르고 쓰면 독

    그렇다면 평소 간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생활수칙과 식습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불필요한 약은 오히려 간에 해로울 수 있으니 복용을 삼간다. 양약뿐 아니라 각종 건강 보조식품과 생약도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복용에 유의해야 한다. 간에 좋다고 하는 민간요법과 생약제제는 대부분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간에 손상을 줄 수 있고, 특히 간염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 지나친 음주는 심각한 간 질환의 원인이 된다. 간에 유익한 술은 없으므로 절제하는 음주 습관이 필요하다. 과다한 음주 후 해장술이나 불필요한 약제의 추가 복용은 간 손상을 더욱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음식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영양분이 어느 한 가지로 치우치지 않게 골고루 균형 잡힌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 대부분은 간에서 대사되므로 평소 절제된 식습관이 중요하다. 섬유소가 많은 음식, 채소, 과일, 곡물을 많이 먹고,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을 줄이며 싱겁게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달고 지방성분이 많은 후식이나 간식은 피하고, 비만하지 않도록 체중을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무리한 체중조절로 몸에 필요한 비타민이나 미네랄 성분, 영양분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일주일에 1kg 이상 급격한 체중감소는 오히려 심각한 지방간염을 유발하고 간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신체기관에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이지만 적당한 운동은 건강한 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변관수 교수

    간은  우리 몸의 ‘에너지 관리 센터’
    고려대 의대와 대학원(의학박사)을 졸업하고 고려대 구로병원 간질환센터와 소화기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간염부 객원 연구원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대한간학회 학술위원장, 재무위원장과 대한소화기학회 학술위원장, 보험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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