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부산시장

“국가경쟁력 높이려면 수도권을 불편케 하라!”

  • 황호택 동아일보 수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7-02-06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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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 이후 대통령 4명 중 2명이 부산 출신…덕본 건 맞다
    • 부산과 울산이 ‘대승적 통합’해야 지역 발전
    • 2020 하계 올림픽 부산 유치 주력
    • 국세 일부 지방세 전환하고 교육행정권, 자치경찰권 줘야
    • 삼성자동차, 르노에 안 팔았으면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
    • 부산 북항은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 시발점…재개발 시급
    • 부산 신항과 전남 광양항의 경쟁은 국가적 손실
    • 시장후보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 도움 받은 건 사실이지만…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부산시장
    부산시장 접견실에 들어서면 시민 여론조사에서 ‘부산 상징 1호’로 뽑힌 광안대교의 대형 전경 사진이 눈길을 끈다. 사진틀 밑에 바퀴를 단 이동식으로, 시장이 내방객과 사진을 찍을 때 배경으로 쓰고 있다. 광안대교는 광안리 해수욕장 앞바다를 통과해 해운대와 남천동을 잇는 복층 현수교다. 해가 진 뒤 조명이 천변만화하는 야경이 일품이다. 2003년 개통된 이 다리에서 불꽃축제가 벌어질 때마다 100만명을 웃도는 인파가 구경을 나온다.

    시장 집무실과 접견실에는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치른 도시답게 허남식(許南植·58) 시장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허 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 찍은 사진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한나라당 소속 시장이라지만 노 대통령이 시장실에 와봤더라면 조금 서운했을 법하다.

    서울역에서 아침 9시45분 KTX를 타고 12시41분 부산역에 도착했다. 소요 시간 2시간 56분. 고속철도 동대구~부산 구간이 개통되는 2010년 말에는 2시간 15분 정도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다. 현재 국철은 동대구에서 부산까지 직선으로 이어지지만 KTX는 경주로 우회하기 때문에 단축되는 시간은 40분 정도이다.

    경부고속철은 원래 2008년 완전 개통될 예정이었으나 지율 스님의 ‘식사 문제’로 2년 늦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시스템을 무시하는 즉흥적 행정때문에 늦어졌다고 봐야 한다. 천성산의 꼬리치레 도롱뇽을 보호하겠다며 지율 스님이 단식을 시작하자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직보했고 노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 지연으로 건설비용도 늘어났지만, 부산과 경주 시민이 감수하는 불편과 기회비용 손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허 시장의 코멘트를 들어보자.

    “그런 일로 국책사업이 중단되는 사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천성산 터널 공사는 처음부터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충분히 검토한 사항입니다. 나라 전체에 교훈을 준 사건입니다.”



    부산의 새 랜드마크

    ▼ 민주화 이후 4명 대통령 중에서 2명을 부산에서 배출했습니다. 부산은 솔직히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덕 좀 본 것 아닙니까(웃음).

    “두 분이 부산지역에 편파적 지원은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아무래도 많은 도움이 있었다고 봐야지요.”

    ▼ 김영삼 대통령 때 삼성자동차가 부산에 설립됐죠. 지금은 르노삼성이지만. 그것도 YS가 부산에 준 선물 아니겠습니까. 르노삼성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일본 닛산을 인수한 르노그룹이 닛산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에 보낼 엔진을 생산하는 공장을 부산에 건설하고 있습니다. 참 잘된 일이죠. 그렇지만 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를 르노에 팔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삼성은 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어 자동차 산업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부산시장

    2005년 APEC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단독회담을 하는 허남식 부산시장.

    ▼ 부산이 노무현 대통령 덕을 본 것은 없습니까.

    “노 대통령께서 북항 재개발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보통 대형시설을 준공할 때 참석하지만, 기본계획을 종합보고하는 자리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죠.”

    ▼ APEC 정상회담 개최지도 제주와 경합하다 부산으로 결정됐지요.

    “부산이 APEC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결정되는 데도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안상영 시장 후임을 선출하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었죠.”

    필자가 “노 대통령이 마음먹고 부산에 큰 선물을 했는데, 열린우리당 오거돈 후보가 떨어지고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가 당선됐으니 대통령에 대한 답례가 제대로 안 됐군요”라고 말하자 허 시장은 웃기만 했다.

    ▼ 부산은 APEC 정상회담으로 무엇을 얻었습니까.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 제일 큰 성과지요. 외국에 가보면 APEC을 개최한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최근 부산시와 자매결연을 희망하는 외국 도시가 늘고 있습니다. APEC 영향이라고 볼 수 있지요. 부산 기업들의 해외 시장개척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회의를 열 수 있는 좋은 여건도 갖추게 됐습니다. 컨벤션센터 BEXCO가 해운대 인근에 있습니다. 경관이 뛰어난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에는 특급호텔이 밀집해 있죠. APEC을 개최한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 부산을 국제회의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려 합니다. APEC 정상회의를 치른 컨벤션 시설과 21명 정상이 묵었던 숙박시설만 해도 국제회의 도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1차 정상회담을 BEXCO 컨벤션센터에서 하고, 2차는 동백섬 ‘APEC 누리마루 하우스’에서 했습니다. APEC 끝난 지 1년이 좀 지났는데 누리마루 하우스에 다녀간 사람이 3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요즘도 일요일이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산의 관광명소가 됐죠. 회담장으로 쓴 3층이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랜드마크로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부산의 명물이 됐습니다.”

    부시 대통령 묵은 726만원짜리 스위트룸

    부시 대통령 부부는 부산 웨스틴 조선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서 사흘을 묵었다. 부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3일간 한 도시에 머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동백섬 입구에 있는 웨스틴 조선호텔은 APEC을 앞두고 리모델링을 했다. 방안에서 해운대 백사장과 동해의 일출 장면이 통유리를 통해 들어온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이런 위치에 호텔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밀어붙여 1978년 개관한 호텔이다.

    “로라 부시 여사가 호텔 방 침대에 누우면 바로 바다가 보이니 바다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웨스틴 조선호텔은 그 방을 부시 대통령이 묵던 당시 그대로 유지하면서 프리미엄을 붙여 팔고 있습니다. 숙박비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손님들은 ‘부시 대통령이 잤던 방에서 내가 잔다’며 흥미로워하는 거죠.”

    물론 아무나 미국 대통령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의 숙박비는 하룻밤에 726만원이다.

    ▼ APEC 정상회담 공식 건배주 ‘천년의 약속’은 그 후 서울에 진출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지요.

    “부산 동의대 생명응용과학과 정영기 교수가 상황버섯 균사체를 이용해 개발한 술이죠.”

    배석한 차용범 부산시보 편집실장이 “APEC은 국가 행사라서 외교통상부에서 주관하는데, 부산시가 ‘장소만 빌려줄 수는 없다’고 나서 부산시장이 주요 국가원수도 직접 영접하고, 공식 건배주로 부산 술을 채택하게 했다”고 거들었다.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부산시장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2007년 부산해맞이축제에 참가한 허남식 시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후진타오 주석이 부산에서 이틀 밤을 자면서 만찬을 두 번 했는데, 하루는 정상들의 공식 만찬이었으니 개인 일정은 하루뿐이었습니다. 그 만찬을 부산시장하고 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 내외분과 저희 부부가 마주앉고 중국 각료들과 부산 지역인사 몇 분이 배석했죠.”

    허 시장은 APEC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2020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올림픽은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2016년은 대륙을 순회하는 관례에 따라 미주대륙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순서로 돌아가면 2020년 올림픽은 아시아에서 치르게 된다. 허 시장은 “평창 동계 올림픽 문제가 걸려 있어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항 문제는 북항 재개발로 해결

    노무현 정부에는 ‘부산 갈매기’로 불리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다수 포진해 인재 등용과 지역개발에서 부산을 알게 모르게 배려했다. 그러나 각종 선거에서 기대와 달리 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동아일보 김동철 부산·경남본부장은 “노 대통령이 부산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산에는 노 대통령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 수출입 화물의 제1 관문인 부산항은 3년 전만 해도 세계 3위의 컨테이너 항만이었으나 중국 무역이 날로 증가하면서 최근 상하이와 선전(深?)에 밀렸다. 현재 컨테이너 항만의 규모는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선전, 부산 순이다.

    ▼ 가덕도 부산 신항은 2011년까지 30개 선석(船席)을 목표로 한다지요. 그런데 배후 도로망을 비롯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현재 개통한 6개 선석도 이용률이 20%에 그친다면서요.

    “여전히 21개 선석이 있는 북항을 이용하는 컨테이너선이 많아요. 물동량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지만 선사를 유치해 차츰 늘어나는 추세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추세가 둔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에 새로운 항만들이 건설되면서 부산항을 이용하던 물동량이 그곳에서 직접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북항 재개발을 통해 항만처리 기능 일부를 신항으로 옮기면 한층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 항만은 허브 항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항만마다 컨테이너 부두를 건설하고 거기서 조금씩 물동량을 처리하면 결과적으로 허브 항만의 위상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적절하게 기능을 분담해주어야 합니다.”

    ▼ 전남 광양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말 같습니다. 1980년대부터 부산과 광양의 ‘투 포트 시스템’으로 간다고 해서 광양항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요.

    “광양과 부산이 먼 거리가 아닌데 투 포트로 나뉘어 경쟁하는 체제로 가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12개 선석이 있는 광양항에 물동량이 안 들어가니까 엄청난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오는 물동량을 놓고 부산과 광양이 사용료 인하 경쟁을 하다보면 국가적으로 손실이 생깁니다.

    일본의 경우 각 지역이 별도로 항만을 운영하다보니 중심 항만이 없습니다. 부산항이 처리하는 물동량 중에서 일본 화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일본에 중심 항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조그마한 항만에서는 수출화물을 미국에 보낼 때 직접 미국 가는 배가 없으니까 부산으로 와서 미국행 큰 배에 옮겨 싣습니다. 일본에서 미국, 유럽으로 가는 수출·수입 화물이 다 그렇습니다. 부산에서 환적되는 화물이 40%쯤 됩니다.”

    노 대통령은 민주평통 자문회의 발언으로 파문을 빚은 직후인 지난해 12월27일 부산 북항 재개발종합계획보고회에서 또 한바탕 대중연설을 했다. 상업시설을 줄이고 친수(親水)공간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부산 시민이 슬리퍼를 신고 와서 배 타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부산시장

    허남식 시장이 2005년 APEC정상회담 당시 세계정상들을 영접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허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허 시장은 최근 부산경영자총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부산이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의 시발점으로 발전하려면 재개발지역의 미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성장 기능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항 재개발은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추진하되, 무엇보다 시민의견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북항 일대가 바로 부산역과 인접해 있습니다.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그곳이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산의 미래 성장동력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살려야 합니다. 물론 현재 계획에도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해양공원 조성안이 들어 있어요. 그러나 부산은 다른 도시와 달리 시민이 바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안리, 해운대, 송정, 송도 같은 해변이 많습니다.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의 시발점인 부산 북항에 국제여객 터미널과 각종 업무시설 상업무역시설이 필요합니다. 올해 계획대로 설계를 마치고 내년에는 공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안상영 전 시장과의 인연

    오늘의 허 시장이 있기까지는 안상영 전 시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안 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을 했다.

    ▼ 정무부시장 시절에 안 전 시장 구명운동을 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는데요. 안 전 시장의 자살동기에 대해 여러 추측성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돼 조사를 받다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자존심이 유난히 강하다보니 불행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으며 수치심을 못 견뎠다고 할까요. 정신적으로 그 상태를 감당하지 못한 거지요.”

    ▼ 안 전 시장은 호남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친이 전남 광양 출신입니다. 안 시장은 초중고를 다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선거 때도 한나라당 후보였으니까 출신지역은 크게 문제될 게 없었어요. 부산은 서울 다음으로 호남 출신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부산은 지역색이나 폐쇄성이 옅은 도시입니다. 부산시청에도 호남 출신 공무원이 많습니다. 부산은 대구보다 더 개방적입니다.”

    안 전 시장 밑에서 오거돈(전 해양수산부 장관)씨가 행정부시장을 했다. 2004년 6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오씨는 여당을 선택했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허 시장과 최재범 전 서울시 부시장이 맞붙었다. 경선 결과는 박근혜 대표 쪽 지지를 받은 허 시장의 압도적인 승리. 지난해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서는 3선 의원 권철현씨를 거의 더블 스코어 차이로 누르고 후보가 됐다.

    고스톱 화투에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지만 인생도 운삼기칠(運三技七) 정도는 된다. 안상영 시장에게 아무런 일이 없었더라면 허 시장은 평범한 공무원으로 정년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사주를 보는 것도 바로 인생의 불가측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技)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운이 찾아와도 붙잡을 수 없다.

    허 시장은 행정고시 19회에 합격한 뒤 28년 동안 중앙 부처에서 한 번도 근무하지 않고 부산에서만 공무원 생활을 했다. 부산에서 터를 닦아 부산시장까지 됐으니까 결과적으로는 한 우물을 파서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안 시장이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했고 재판을 안 받고 사건이 종결됐기 때문에 진상은 영원히 미궁 속에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요. 선출직 공직자 생활을 하다보면 돈 쓸 데가 끝이 없으니 돈의 유혹에 끌리기 쉽겠어요.

    “그게 공직 생활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일 겁니다. 선거법이 엄격해지면서 돈 걱정은 좀 덜하게 됐지요. 저는 홈페이지에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업무추진 예산이 편성되고 현금을 쓸 수 있는 곳,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이 다 정해져 있지요. 결국 업무추진비는 다 근거가 남게 돼 있습니다. 거의 다 카드로 써야 되니까요.”

    ‘소리 없는 불도저’ 허남식부산시장

    광안대교 사진을 배경으로 인터뷰에 응한 허남식 부산시장. 오른쪽은 필자.

    ▼ 영남권에 인천공항 같은 국제공항을 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있더군요. 그러나 KTX 때문에 지방 공항들이 고사(枯死)하는 현실에서 동남권 신공항의 경제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예천, 양양의 공항이 정치적인 논리로 건설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군소 공항을 많이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인천공항 하나로 우리나라 전역을 커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제대로 된 허브 공항이 두 개는 있어야죠. 일본에는 나리타 공항과 간사이 공항이 있고, 나고야의 주부 공항도 허브 공항 기능을 합니다. 동남권은 인천공항이 생기고 나서 더 불편해졌습니다. 비행기 타고 김포로 가서 다시 인천으로 가야 하니까요. 여객과 함께 항공화물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산업기능을 위해서도 동남권 허브 공항이 있어야 합니다.”

    ▼ 국제공항인 김해공항을 확장하면 안 될까요.

    “김해공항을 확장해 허브 공항을 만들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겠지요. 김해가 입지적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입지를 검토해야 하고요.”

    김해공항은 영남권 남쪽에 치우쳐 있다.

    균형을 위한 억제

    ▼ 수도권은 서울, 경기, 인천 3개 시도가 광역단체협의회를 통해 환경, 용수, 도로 등의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데요. 부산, 경남, 울산도 협의가 잘 되는 편인가요.

    “그렇습니다. 시도 간에 때로는 주민 여망이 달라 갈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 동남권이 공동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30일 선거를 마치고 7월 취임한 이후 3개 시도에서 돌아가며 만났습니다. 3개 시도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 같으면 굳이 따로따로 만들지 말고 공동으로 만들어 함께 이용해야지요.”

    현재 부산 인구는 365만명. 옛날 서울 인구가 800만이었을 때 부산 인구는 그 절반인 400만이었다. 1960년대에는 ‘서울 절반이 부산, 부산 절반이 대구’라는 말도 있었으나 수도권이 비대해지면서 부산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느낌을 준다. 대구는 인구에서 인천에 추월당한지 오래다.

    “부산에 공장용지가 부족하고 땅값이 비싸 김해, 양산으로 공장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그쪽으로 많이 이동했지요.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인구도 있고요. 일자리가 모자라 주로 젊은 인구가 감소해 부산의 인구 자연증가율이 아주 낮습니다. 김해시는 인구가 거의 50만에 육박해 마산보다 큰 도시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산에서 나간 인구죠.”

    ▼ 수도권 억제에 대해 양론이 있습니다. 경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수도권이야말로 상하이권, 도쿄권과 경쟁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합니다. 인프라와 인력 여건이 잘 갖춰진 수도권에 첨단 공장 증설을 과감히 허용해야 한다는 거지요. 노 대통령이 이천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증설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청주로 가면 3년이 더 걸리고 5000억원이 더 소요될 판입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때 ‘대수도(大首都)’라는 말을 썼는데 지방의 반발 때문인지 쑥 들어갔어요. 김진선 강원지사는 공장총량제 같은 수도권 억제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던데요.

    “저도 수도권 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는 수도권 공장 설립 억제에 문제가 다소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고려하면 모든 기능이 수도권에 밀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역별로 재정을 투자해 국가공단을 만들어 인센티브를 주면 수도권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국토가 균형발전합니다. 경제 논리에만 맡겨놓으면 모든 기능이 서울로 집중될 것입니다. 인위적으로라도 규제해야 합니다. 국제공항도 수도권 집중과 관계가 있습니다. 수도권을 선호하는 것은 인천공항이 거기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업이 지방에 내려가면 조세를 비롯해 혜택을 많이 줘야 합니다. 부산은 사실상 산업입지가 없어서 기업을 유치하기 힘듭니다. 정부가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통해 부산 인근에 산업용지를 만든다면 입주할 기업이 많습니다.

    경기도에 신도시를 만들고 거기에 교통 인프라를 깔아 서울 다니기에 편리하게 해줌으로써 서울은 갈수록 더 좋아지는 거지요. 그러니까 계속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고 있죠. 극단적인 논리이긴 하지만 수도권을 불편하게 만들면 기업과 사람이 지방으로 내려오거든요. 경기도 그 넓은 땅에 좋은 인프라를 갖춰놓으면 기업들이 종업원의 자녀교육을 생각해서라도 수도권으로 가게 되지요. 정부 차원에서 좀 과감하게 수도권을 불편하게 만들고, 지방에 가면 더 편리하도록 균형발전 정책을 펴야 합니다.”

    허 시장은 말에 높낮이가 거의 없다. 여간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성격 같다. 양손으로 제스처를 쓰며 말하다가 손 처리가 어색할 때는 필자가 준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 수도권을 억제하면 공장들이 영호남으로 가지 않고 경기도에서 한 걸음 옮겨 강원, 충북, 충남으로 갑니다. 지금 천안에 가보면 삼성그룹 공장들이 옮겨가면서 차 막히는 정도가 날마다 달라진다고 해요. 원주 쪽도 발전하고 있고요. 수도권에서 넘치는 물이 부산, 경남까지 적시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요.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전 지역을 골고루 동시에 다 배려하다보면 국가 균형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중앙에 있는 공공기관을 수도권 제외하고 16개 시도에 골고루 다 나눠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거점 지역을 선정해 그곳에 몰아 이전해주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이 발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 정책적으로 부산권 대구권 광주권, 이렇게 거점별로 발전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 수도권 인구가 전 인구의 50%에 육박하는데요.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면 국회의원수도 늘어나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죠. 대통령이 이제 수도권을 억제하려고 해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걱정이 많습니다. 인구가 더 집중되면 표를 의식해서라도 수도권 주민에게 불편한 규제를 하기가 어려워지죠.”

    ▼ 부산 가덕도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세계적인 관광휴양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부산은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관광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것이 안타깝지요. 가덕도는 영도보다 더 큰 섬입니다. 현재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부산의 용원 지역에서 가덕도를 연결하는 가덕대교가 건설 중입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고 있는 가덕도에 교통도 편리하게 만들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 관광 휴양시설을 조성해 나가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습니다.”

    허 시장은 최근 ‘민관 협력형 도시경영 모델’을 제안했다. 부산은 세계적 도시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췄는데 이를 활용하려면 국제적 수준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산시 재정만으로는 다양한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으니 민간기업을 참여시켜 도시발전에 기여하게 하자는 것이다. 부산시는 이에 따라 원스톱 행정지원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허 시장은 “민간에서 제안하는 개발 방향이 부산시 정책과 부합할 경우 적극 수용해 부산 발전을 앞당길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

    허 시장은 경남 의령군 용덕면에서 태어났다. 농가 5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산골 마을이다. 허 시장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산골 마을에는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도 고구마로 때우는 집이 많았다.

    허 시장의 할아버지는 8남매를 뒀다. 아버지는 거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다. 처음 분가했을 때는 집도 없었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스웨터 공장을 운영했다. 어쩌다 한번씩 한국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평생 혼자 살다시피 했다. 아래 동생(허훈 CJ 홈쇼핑 경리부장)과의 차이가 열네 살이나 나는 것도 고향을 찾는 아버지의 발길이 얼마나 뜸했는지를 보여준다.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의령초등학교를 다닌 여성으로 당시 농촌 여성 중에서는 그래도 ‘신교육’을 받은 편이었다. 오늘의 허남식이 있기까지는 어머니의 엄한 교육이 밑거름이 됐다고 친척들은 전한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으나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아버지가 가끔 보태줘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 일가가 의령을 떠날 때는 논이 스무 마지기가량으로 불어 있었다. 시골에서는 중농(中農) 정도의 농지다. 허 시장은 의령중, 마산고를 거쳐 고려대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덕암초등학교 동기생 53명 중 대학을 나온 사람은 허 시장을 포함해 두 명. 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울에 조그만 집을 마련해 어머니와 두 아들이 함께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큰아들을 올바로 키우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당시 허 시장 집에 들렀던 친척은 마루를 걷다가 삐걱삐걱 소리가 나자 허 시장 어머니로부터 “남식이가 방에서 고시공부를 하니 발뒤꿈치를 들고 걸으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며 19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고시 연수가 끝난 뒤 일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허 시장은 일본에 건너가 평소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유해가 담긴 함을 목에 걸고 귀국했다. 공항에 들어올 때 감정을 절제하느라 입술을 깨무는 통에 유해를 싼 보자기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는 게 친척의 전언이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일본에 정착해 어머니의 원망을 많이 듣던 아버지였다.

    의령은 서부경남의 오지이지만 큰 인물이 많이 났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가 의령 출신이다. 의령군과 진양군 사이로는 남강이 흐른다. 이병철씨의 고향 의령군 정곡면과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출생지 진양군 지수면은 남강을 사이에 두고 20km쯤 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한국 4대 그룹 가운데 2개가 남강을 사이에 두고 나온 셈이다. 남강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서쪽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풍수지리상 그러한 강을 남쪽에 둔 고장에서 인물이 많이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경찰, 교육행정 권한을 지자체로

    허 시장의 성장기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된 적이 없다. 그가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인터뷰가 최초의 공식 기록이 될 것 같다. 허 시장은 필자가 동아일보 부산본부 조용휘 기자의 취재 메모를 확인차 보여주자 “어디서 이래 조사를 했습니까”라며 놀랐다. 조 기자가 허 시장의 친척, 친구, 지인들을 취재해 필자에게 제공했다.

    ▼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길거리의 도로 교통표지판 하나 도지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고 하더군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생치안과 교통을 담당하는 자치경찰은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주기로 했는데, 노무현 정부에 와서도 자치 경찰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직이 쪼개지는 것을 싫어하는 경찰 내부의 저항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커지는 데 대한 걱정도 있겠지요. 사실상 민선자치 이전이나 이후나 권한에 차이가 없어요. 전부 개별 법령으로 묶어놓아 어떤 일을 하려면 중앙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과감하게 권한을 지방에 이양해야 합니다. 자치단체장이 주민 대표인 의회의 견제 때문에 주민의 여망과 배치되는 일을 할 수 없어요. 획기적으로 권한을 내려 보내더라도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이나 수준으로 봐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 이명박씨가 서울시장을 할 때 강북 뉴타운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세우려 했으나 유인종 교육감이 반대해 못했지요. 교육청 예산의 절반을 서울시에서 지원하는데 권한은 아무것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행정 권한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효율적입니다. 교육이 정치적으로 흐를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독립시켜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교육구청을 별도로 둘 이유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감과 시도지사를 러닝메이트로 한다든지, 아니면 시도지사가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일원화하는 게 맞습니다.”

    ▼ 올 1월부터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개정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고 교육위원회가 도의회 상임위원회가 됩니다. 첫 케이스로 부산에서 올 2월 선거가 치러지는데….

    “일반 시민은 아직 교육감을 주민 투표로 선출하는 새 제도를 잘 모르고 있어요. 2월14일이 투표일인데 투표율이 낮을까봐 걱정됩니다. 정당 공천이 없어 관심이 더 떨어질 수 있어요.”

    설동근 현 교육감은 주민 직선 교육감 출마를 위해 지난해 12월 교육혁신위원장을 사퇴했다. 부산 교육계에서는 설 교육감의 당선이 무난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폭등에 분노

    ▼ 전교조 후보는 어떻습니까.

    “전교조 세가 많이 약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예닐곱 분이 거명되는데, 그중에 전교조 활동을 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전교조의 활동이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지방분권을 하자면 지방세만 가지고는 재원이 부족하니까 일부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던데요.

    “현 지방세 구조로는 자치행정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일부 국세의 지방세 전환 요구에 부응해 의원입법이 발의돼 있습니다. 내국세에서 지방세와 국세 비율이 20대 80 정도거든요. 미국은 40대 60 정도이고 독일은 50대 50입니다.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해 지방재정을 확충해줘야 합니다.

    재정자립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입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면 자립도는 높아지니까요. 재정 수요를 봐야 합니다. 재정수요는 많은데 재원이 없다보니까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지금 농촌에 가면 20~30명 사는 산간 오지마을에도 2차선 포장도로가 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산은 5만~6만명이 사는 산동네에 소방도로가 없는 지역이 많습니다. 그 지역의 주민은 자기 집 앞에 차를 가져갈 수 없지요. 골목길 집을 허물고 도로를 내야 하는데 엄청난 보상비가 들어갑니다. 지방재정 분권이 시급히 이뤄져야 합니다.”

    ▼ 부동산 관련 세금 중에서 재산세, 취득세가 지방세이고 양도소득세는 국세인데요. 수도권의 경우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뛰면서 재산세 수입이 늘어난 자치구가 많아요. 부산에는 종부세 부과대상 주택이 많지 않습니까?

    “종부세 부과대상 주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동산 정책에 의해 취득세 등록세를 인하해 지방재정의 손실이 큽니다. 부산시에서 지방세의 대종은 취득세, 등록세입니다. 구청의 경우 재산세가 대종을 이루죠. 부동산 경기와 직결되는 세목(稅目)이라서 지방재정이 불안하고 취약한 구조입니다. 무엇보다도 부가가치세 일부를 지방소비세로 전환해줘야죠. 양도소득세도 지방세적인 성격이 더 크니 전환이 필요하죠.”

    ▼ 부산에서도 지난해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습니까.

    “서울과 격차가 커요. 제일 인기가 좋은 지역인 해운대 최고급 아파트도 평당 1000만원밖에 안 해요. 중산층이 사는 해운대 신시가지 아파트는 평당 500만원이면 살 수 있어요.”

    ▼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 20억, 30억원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방 사람들의 상실감이 크겠어요.

    “서울은 아파트를 보유하고 몇 년 살다보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는데, 부산은 그대로이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지요.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지방에 내려오는 분들 중에 어떤 사람은 서울 아파트를 전세 놓고 여기 와서 전세를 얻는 사람이 있고, 아예 내려오는 김에 서울 아파트를 팔고 부산에 집을 산 분들이 있죠. 몇 년 지나고 나니 서울에 집을 놔두고 온 사람과 팔고 온 사람 사이에 엄청난 재산 차이가 생겼지요. 그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서울 강남 아파트 30평형대가 10억원이라는데, 부산에서는 1억5000만원이면 살 수 있죠. 서울에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재산이 그렇게 불어난다니 지방민의 감정이 어떻겠어요.”

    ▼ 수도권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왜 실패했다고 봅니까.

    “무주택자를 위한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정책으로 대처해야 하지만 중산층 이상을 위한 아파트는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정책이 일관되지 못하고 자꾸 바뀌다보면 국민에게 신뢰감을 못 줘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국민이 따라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성공할 수가 없지요.”

    부산의 네 번째 S? ‘글쎄요’

    ▼ 대선까지 오래 남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만 지금 당장 선거를 한다면 한나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되겠지요.

    “한나라당은 경선을 잘 치르고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서 정권을 창출해야 합니다. 경선에서 패배한 사람도 결과에 승복하고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야지요. 경선 과정에서 후보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제가 알아본 바로는 허 시장의 정치적 연(緣)이 박근혜 후보 쪽에 가깝다던데…(웃음). 보궐선거 때 그쪽에서 밀어서 시장후보가 됐고요.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저는 광역단체장이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광역단체장은 일을 통해서 시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대선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봅니까.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분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국경이라는 장벽이 없어 모든 것이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국가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죠. 기업이 선택해주지 않는 국가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기업과 자본이 찾아오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선 마치고 대선에 한번 나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 옛날엔 ‘부산’ 하면 신발산업의 메카로 불렸는데요. 신발산업이 노동집약 산업이다보니 지금은 중국 베트남으로 다 떠났다면서요.

    “생산 공장들은 인건비 때문에 다 떠났습니다. 그러나 본사는 계속 부산에 남아 소재 부품은 부산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트랙스타’ 등산화는 부산에서 생산돼 수출도 상당히 하고 있습니다(필자가 집에 돌아와 2년 전에 산 등산화를 확인해보니 트랙스타였다). 부산에 신발연구소도 있고 신발진흥센터도 있습니다. 공장은 외국에 있지만 신발소재와 부품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공급하는 역할은 부산이 해야 합니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지는 최근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카리브해 국가들을 소개했다. 카리브해에는 풍광이 수려한 섬나라가 많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간 1500만명 관광객이 온다. 이들은 카리브해에 와서 ‘4S’를 즐긴다. Sun(태양), Sand(모래), Sea(바다)는 자연이 주는 선물. 여기에 네 번째 S, 섹스(Sex)가 보태진다. 네 번째 S의 추구는 관광객의 성별(性別) 구분이 없다고 한다.

    ▼ 어떤 도시에나 빛과 그늘이 있습니다. 부산은 외항선원들이 드나드는 국제도시지요. 여러 달 바다에 있다 부산에 내린 선원들이 찾는 완월동이 있었지요. 성매매금지법 이후 완월동 상황은 어떤가요.

    “성매매금지법 시행 후에 문을 다 닫았는데 요즘은 공개적으로 영업은 못하지만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현장 확인은 못 해봤습니다. 부산이 항구도시라서 외국 선원이 많이 옵니다. 획일적인 법이나 단속만으로는 그런 기능을 근절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수요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보이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획일적인 단속만으로는 근절이 어렵다는 뜻인지, 획일적인 단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지 애매하다. 비현실적인 법에 대한 반대의 뜻은 있지만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울산이 꼭 광역시여야 하나?

    ▼ 부산 자갈치시장은 장사가 잘 되나요.

    “건물이 퇴락해 자갈치시장을 재건축했습니다. 지난해 새로 개장했는데, 운치 있는 부산의 명소지요. 자갈치시장은 여느 재래시장과 달리 그 기능이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건물도 바닷가에 어울리게 잘 지어졌습니다. 자갈치시장이 있는 쪽을 남항이라고 하는데, 바로 바다에 다가갈 수 있죠. 남항을 시민이 다가가는 친수공간으로 바꾸어놓으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입니다.”

    ▼ 시장 관사를 시민을 위한 개방 공간으로 만들고 아파트에 거주한다면서요. 그런데 예산 절감도 좋지만 부산 같은 국제도시의 시장쯤 되면 가든파티를 열 수 있는 관사가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외국 손님도 호텔에서 밥 사 먹이는 것보다는 관사에서 식사를 대접하면 더욱 인상이 깊을 테고요.

    “원래 살던 아파트에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보고를 받으려니까 대단히 불편하지요. 특히 민원인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아파트 주민에게 피해도 주고요. 어떤 형태로든 독립된 공관이 필요합니다. 시장 공관에 대한 시민 여론을 들어보려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건립된 부산시장 공관은 부지가 5400평으로 넓은 편이다. 야산이어서 다른 용도로는 쓰기 어려운 땅이지만 부지가 넓다보니 ‘시민 정서법’에 걸리는 모양이다.

    ▼ 지금까지 부산 자랑을 많이 했는데, 부산이 안고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부산은 기본적으로 용지가 부족한 도시입니다. 1995년에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뀌었는데 대도시는 배후에 넓은 지역이 있어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른 광역시는 인근 군을 다 편입시켰지요. 대구는 달성군, 대전은 대덕군, 광주는 광산군, 울산은 울주군, 인천은 강화군, 옹진군을 합쳤어요. 부산은 양산군의 일부 지역만 떼어내 편입시켰습니다. 그 지역도 그린벨트였죠.

    수도권 집중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도시가 제2도시거든요. 어떤 나라건 제2도시권은 수도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활발한 경제권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도 도쿄권이 있지만 오사카권도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상하이권이 베이징권보다 경제적으로 더 크지요. 우리도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면 제2도시권이라도 제대로 된 경제권역이 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정책으로 받쳐줘야 합니다.”

    부산에서는 울산과 통합해 두 도시의 대승적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울산은 김영삼 대통령 때 울산 출신인 최형우씨가 힘을 써 광역시가 됐다. 지금 수도권에는 수원, 성남, 고양, 안양 등 울산시 규모의 도시가 여럿이다.

    “울산을 굳이 광역시로 만들어서 분리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울산 시민이 볼 때는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허 시장의 좌우명은 호시우행(虎視牛行). 예리하게 관찰하고 무겁게 행동하자는 뜻이다.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은 ‘고무 허리’. 끈기가 있고 유연성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말도 없이 일을 잘한다고 해서 붙은 ‘소리 없는 불도저’도 있다.

    ‘고무 허리’ ‘소리 없는 불도저’

    허 시장은 하늘색 와이셔츠에 짙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다. 넥타이는 빨간색. 와이셔츠는 늘 하늘색만 입고 넥타이는 부인이 골라준다. 머리숱이 풍성해 젊어 보였다. 흰 머리카락이 몇 올 있는 것으로 보아 염색을 안 하는 것 같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머리칼은 30대 같다. 전체적으로 옷을 잘 입는 멋쟁이라는 인상을 준다.

    신장 169cm에 체중은 66kg. 식사 약속이 많을 텐데 그 체중을 유지하자면 남다른 노력이 있을 것이다. 허리 사이즈는 35인치. 외식 살이 붙었는지 좀 굵은 편이다.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별일 없으면 동네 목욕탕에 들러 목욕과 운동을 하고,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귀가한다.

    바둑은 3급. 골프는 보기 플레이어다. 지난번 한나라당 경선 때 권철현 후보 쪽에서 부산시가 최대주주인 부산 아시아드 컨트리 클럽에서 허 시장이 수십 차례 골프를 쳤다고 비난했다. 그때 고통이 컸는지 선거 뒤로는 골프채를 잡지 않고 있다.

    “이번에 시장 되고 나서는 골프 못 했지요. 꼭 안 하려는 것은 아니고 필요할 때는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수재도 나고, 태풍도 오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바쁜 일정에 쫓기다보니 못한 거지요.”

    부산시 소속 공무원은 약 1만5000명. 구청장이 인사를 하는 자치구 5급 이하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시장이 인사를 한다.

    ▼ 조직의 안정을 중시하는 연공서열 인사를 한다는 말이 있던데요.

    “일을 잘할 경우 선임자를 우선해주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바람직하지요. 그렇다고 일을 못하는데도 선임자라고 해서 우선 배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인사권을 갖고 있다보면 인사청탁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합니까. 선출직 공무원이 청탁을 다 거절하기도 어려울 텐데요.

    “인사청탁은 참고자료지요. 청탁으로 인해 인사가 일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조직의 기준이 있습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대개 어떤 사람이 승진할 거라는 직원들의 정서가 있습니다. 그것이 상당히 정확합니다. 외부의 부탁에 의해 인사의 기준이 흐트러지면 조직의 안정이 깨집니다.”

    동아일보에 격려광고

    ▼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런 것은 어떻게 보면 좀 드러내기 위한 발언이 아니겠습니까. 인사권자가 원칙을 가지고 제대로 하는 인사인가, 아니면 원칙 없이 정실에 의해 이뤄지는 인사인가는 조직원들이 가장 잘 압니다.”

    ▼ 삶에 영향을 끼친 책이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요즘 읽은 책 중에는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까.

    “백범 김구 선생 전기를 보고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최근 읽은 책으로는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 공감할 대목이 많더군요.”

    아들 허욱(許旭·29)은 경성대 체육학과를 나와 영화 ‘태풍’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닌다.

    필자는 인터뷰가 끝나고 인터뷰이와 저녁을 함께하는 기회를 좋아한다. 공식 인터뷰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해운대에서 겨울이 제철이라는 생선회를 안주로 술 한잔을 걸쳤다. 허 시장은 다른 행사에 참석했다가 늦게 합류했다. 맥주 대신 ‘보성녹차’로 제조한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았는데도 허 시장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절제했다. 분위기를 잡는 말은 주로 백운현 부산시 기획관리실장이 했다. 허 시장은 술자리에서도 말을 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인터뷰를 살찌울 말은 건지지 못했다.

    허 시장은 동아일보가 유신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아 백지광고가 나오던 시절 격려광고를 내기 위해 광화문 사옥에 왔던 일화를 들려줬다. 복 받을 일이다. 거나한 취흥에 해운대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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