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우린 두려울 것 없다 한방 더 강하게 나가라”(한학자 통일교 총재)

‘정윤회 문건’ 통일교·세계일보 막전막후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5-01-16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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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일보가 이 정부 교육하는 신문 돼야”(한 총재)
    • “미공개 핵폭탄급 특급정보 8개 있다”(신도대책위)
    • 세계일보 사장 교체 오락가락 해프닝 내막
    • “정윤회 보도는 세계일보 내부 감사와 관련”(세계일보 간부)
    “우린 두려울 것 없다 한방 더 강하게 나가라”(한학자 통일교 총재)

    2013년 8월 23일 경기 가평군에서 열린 ‘문선명 타계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한학자 통일교 총재.

    2014년 세밑 한국을 뒤흔든 ‘세계일보’ 보도의 제목은 간결했다.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청와대 작성 감찰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면서 “공식 직함이 없는 정윤회 씨가 자신과 가까운 청와대·정치권 내부 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세간의 ‘그림자 실세’ ‘숨은 실세’ 의혹이 사실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청와대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10인을 후한 말 환관 ‘십상시’에 빗댄 청와대 내부 문건이 인구에 회자됐다.

    십상시로 지목된 청와대 인사 8명이 보도 당일인 11월 28일 세계일보를 즉각 고소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한 달간 수사한 검찰은 정국을 휘감은 ‘정윤회 문건’ 내용 중 ‘십상시’ 비밀회동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정윤회 씨와 박지만(박근혜 대통령 동생) EG 회장의 권력 암투 논란을 수면으로 끌어올린 ‘미행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나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권은 “정윤회 의혹이 되레 커졌다”면서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정윤회 씨는 실세는커녕 국정 근처에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특검에 대해서도 “문건도 조작·허위로 밝혀졌고 샅샅이 뒤져도 이권이 성사됐다든지 돈을 주고받았다는 게 전혀 없는데 의혹만 가지고 특검을 하면 앞으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특검을 하는 선례가 남을 것”이라면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터무니없는 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는 것은, 국민께 송구스럽지만, 확인 안 된 일이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전하지 못한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밖에 배워줄 사람 없다”

    세계일보는 2012년 작고한 문선명 전 통일교 총재가 1989년 창간했다. 통일그룹 계열사다. 통일재단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선교회가 최대 주주다.



    청와대와 세계일보가 정면 대결하는 양상이 빚어지면서 일부 통일교 신도는 통일그룹 계열사 세무조사가 강화되거나 통일교회 내부 문제 등이 불거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이런 가운데 한학자(문선명 전 총재 부인) 통일교 총재가 목회자들을 모아놓고 현 정부와의 정면 대결을 암시한 듯한 발언을 해 세계일보에 힘을 실어줬다.

    한 총재는 지난해 12월 초순 열린 훈독회에서 “우리밖에는 배워줄 사람이 없다”면서 “한방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지시했다. 이 훈독회에는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도 참석했고, 500명가량의 목회자가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재는 “이번에 여러분이 세계일보로 인해서 많이 좀 어떻게 될까 동요하고 우려하고 그런 식구들이 있을 거라고. 그런데 먼저 오늘 아침에 우리가 훈독했듯이 이 사건이 전환기가 된 거는 공적이냐 사적이냐를 생각해줘야 돼”라고 운을 뗐다.

    한 총재는 “(세계일보가) 이 정부를 교육하는 신문이 되는 것이 맞아”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나 외적인 기관들은 공적(公的)이 아니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 총재는 “우리는 두려울 것 없어” “세계일보도 마찬가지야, 두려울 게 없어” “우리의 진실을 밝히면 돼”라고 독려했다.

    이날 한 총재는 목회자들 앞에서 신임 세계일보 회장을 지명했다.

    “지금 현 체제보다는 세계일보의 회장을 내가 임명할 거야. 지금 여기 왔나? 조한규 왔나?”(한 총재)

    “예.”(조 사장).

    “너는 말이야, 내가 새로 임명하는 회장하고 하나 돼야 해. 네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건 안 돼 이제. 그런 점에서 내가 해결해주고 떠나려고 그래. 회장이 누가 되면 좋겠나? 내가 할까?

    손대오 박사 왔나? 박수해요. 이 사람이 세계일보 회장이에요. 세계일보의 머리요, 중심이야. 실행은,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조한규 사장이 모든 실무를 다 담당하겠지만.

    세계일보는 한국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요리해야 해. 지구의 미래를 밝혀줘야 해. 그러려면 중심에 참부모님을 교육해야 돼. 참부모님을 드러내야 돼. 참부모님밖에는 답이 없어. 알겠나. 조 사장? 이제는 먹혀들어갈 때가 됐어.

    통일교회의 신문? 괜찮아. 무지에는 완성이 없다고 했어. 알아야 현명한 판단을 하는 거야. 이 백성이, 이 정치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려면 배워야 해. 우리밖에는 배워줄 사람이 없어.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한방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알겠습니까?”

    통일교 관계자는 한 총재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권력을 비판하고 진실을 알리는 동시에 국민과 정치인을 계몽하는 언론의 본령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말씀 수위가 다소 높아 앞으로 정권이 교회에 불이익을 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린 두려울 것 없다 한방 더 강하게 나가라”(한학자 통일교 총재)

    세계일보가 보도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정윤회 동향’ 문건.

    ‘핵폭탄급 미공개 문건’

    손대오 세계일보 신임 회장은 세계일보 편집인 겸 주필, 부사장을 지냈고 미국 워싱턴타임스 부사장과 UPI통신사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선문대 부총장을 맡아왔다. 경북 경산 출신이다.

    전임 세계일보 회장은 문국진(문선명 전 총재 4남) 전 통일재단 이사장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손 회장 선임을 두고 “오너 가문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게 하면서 비판 보도를 밀고나가겠다는 것” 등의 관측이 나왔으나 문 전 이사장은 2013년 3월 23일 문책 인사로 재단 이사장직에서 해임된 후 통일교와 세계일보 경영에 관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는 12월 17일 상임대표 명의로 수뇌부 등에 ‘청와대 사태에 대한 특별보고’라는 문건을 제출했다. 국민 여론과 관련해 문건은 이렇게 지적한다.

    “청와대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게 현실이지만, 국민의 67.4%가 청와대의 잘못을 지적한다. 세계일보의 보도 내용이 정당하다는 국민의 심판이 현실이다. 청와대가 사실을 묻고 수사를 종결해도 이른바 청와대 실세 3인방과 십상시들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에는 특검으로 이어져 지금보다 더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청와대가 통일그룹을 상대로 보복할 여유가 없다. 설령 보복하더라도 국민 여론과 야당이 용서하지 않는다.”

    문건은 ‘세계일보의 핵폭탄급 미공개 서류’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렇게 밝힌다.

    “세계일보가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8개의 청와대 특급 정보가 알려지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가 잘 안다. 청와대와의 전면적인 전투는 피하면서 견제구 피칭으로 앙칼지게 대들면서 대처하는 방어전략을 펴는 것은 사실상 필요한 조치로 여겨지지만 무장해제 하면 신뢰성의 타격을 받는다. (통일그룹) 계열사 한 곳이라도 특별 세무조사를 받는다면 보복성 조사라고 여겨져 청와대가 곤경에 처할 것이다. 청와대 보복으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나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문건의 결론은 이렇다.

    “청와대의 압력에 굽힐수록 더욱 그 발 아래 밟힐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교훈을 생각한다. 세계일보에 8개나 되는 핵폭탄이 있고 국민이 잘했다고 지지하는 한 하늘의 섭리는 기필코 보호되리라고 확신한다.”

    이 문건을 작성한 신도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손대오 신임 회장을 비판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학자 총재는 “두려울 것 없다. 우리의 진실을 밝히라”고 말했으나 통일교와 세계일보는 어수선해 보인다.

    “통보 후 인사 보류”

    올해 1월 1일 “조민호 세계일보 심의·인권위원이 1월 1일자로 제15대 세계일보 사장 겸 편집·인쇄인에 취임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가 통신사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 전달됐다. 보도자료에는 조민호 위원의 상세한 이력도 담겼다. 일각에서는 “통일재단이 외압을 받아 사장을 경질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사장 교체는 없던 일이 됐다.

    다음은 세계일보 한 간부의 설명이다.

    “손대오 회장이 12월 말 미국에 체류 중인 한학자 총재를 찾아 사장 교체를 건의해 허락을 받았다. 12월 31일 조한규 사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조민호 신임 사장 내정자에게도 통보됐다. 이 과정은 세계일보 내부에서도 조한규 사장을 비롯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세계일보가 11월 11일부터 재단 감사를 받았다.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청와대 문건을 보도한 11월 28일 감사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 와중에 문건 보도가 나갔다.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우린 두려울 것 없다 한방 더 강하게 나가라”(한학자 통일교 총재)

    검찰이 ‘정윤회 씨 국정 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사옥을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진 지난해 12월 5일 세계일보 앞에 긴장감이 흘렀다. 압수수색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온 손대오 회장은 조민호 위원을 사장 적임자로 봤다. 그런데 인사가 보류됐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통일교 핵심 인사들이 조한규 사장을 구명했다. 손대오 회장과 조민호 신임 사장이 모두 영남 출신이라 안 된다는 점도 지적된 것으로 안다. 지금 통일교 유력자 거의 모두가 호남 출신이다. 인사를 되돌리는 데 역할을 한 김만호(한학자 총재 비서실장) 씨는 2002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서울 용산구에 민주당 후보 공천을 신청했다.”

    한학자 총재가 ‘모든 제도 위에 있는 이’로 지명한 김효율 천재원 원장(전남), 조정순 통일재단 이사장(전남), 김만호 총재 비서실장(전남), 조광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선교회 사무총장(광주), 황선조 선문대 총장(전남),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전남), 박상권 전 평화자동차 사장(전남), 양창식 세계의장(전남), 송용철 일본 총회장(전북) 등이 호남 출신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것은 통일교 실세들의 정치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문선명 총재 탄생 100주년인 2020년, 통일교 국교화(國敎化) 목표와 관련한 ‘비전 2020프로젝트’ 실현과 맞물려 정계 진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사장 “사실 아니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사태에 대한 특별보고’ 문건에는 손대오 회장을 강하게 비난하는 내용이 A4용지 1장 가까운 분량으로 담겨 있다. 신도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손대오 회장이 그만둬야 한다. 손 회장을 공격하는 공개 질의서를 보낼 것이다. 목회자 500명에게도 알릴 것이다”라고 밝혔다.

    세계일보의 한 간부는 “편집국 기자들은 물론이고 세계일보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청와대 문건 보도는 감사 등 세계일보 내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은 이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 재단에서 전 계열사를 상대로 매년 하는 감사다. 나를 감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나에 대한 지적 사항도 없었다. 나를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 그 사람들이 신임 회장에게 큰일 날 것처럼 잘못된 정보를 입력해 그렇게 된 것이다. 결국 사장 교체 오케이가 안 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금은 회장도 후회하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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