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한국적 여백의 미를 현대적으로 구현

  • 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사진 · 홍중식 기자 free7402@donga.com · 현대카드

    입력2017-04-07 17: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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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46
    ■ 개관    2015년 5월 22일
    ■ 수상    2015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2016년 한국 건축문화대상 우수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
    ■ 설계    최문규 · 가아건축
    ■ 문의    02-331-6300



    “아득한 옛날부터 누군가는 사냥을 했고, 누군가는 은신할 곳을 확보하는 일을 담당했다. 건축가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로빈슨 크루소이다. 건축가는 집을 지을 부지를 마련해야 하고 그곳의 기후, 분위기 그리고 지기(地氣·genius loci)를 파악해야 한다. 어떤 장소에서 아름답고 유용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그 장소의 정신을 파악해야 한다.”

    1998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말이다. 합리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서양의 건축가가 동양 풍수이론에나 등장할 법한 지기라는 단어를 썼다. 그만큼 좋은 건축은 지형지세와 공명할 줄 알아야 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에서 이태원 제일기획 건물까지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길 양편에는 2~5층짜리 예쁜 건물이 옹기종기 줄지어 있다. 남산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한 고도제한으로 높은 건물이 없어서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 직사각형 외곽 안에 건물의 4분의 3가량을 텅 비운 건물을 만나게 된다.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극대화한 건축물인가. 호기심에 끌려 들어가 보면 뻥 뚫린 직사각형 안으로 한남동의 풍광이 한눈에 보인다. 오른편에서 왼쪽으로 남산으로부터 저 멀리 한강까지 굽이쳐 내려가는 서울의 지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 철거를 앞둔 한남동 외국인아파트가 살짝 눈에 거슬리지만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교회당 건물이 그려내는 풍경에 마음을 뺏기는 이가 어디 한둘이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베란다에 해당하는 곳에는 돌로 만든 벤치 여럿이 운치 있게 조성돼 있다. 저녁놀 질 무렵 그곳에 앉아 있다 보면 한국적 절경에 자리 잡은 웬만한 정자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상층의 대부분을 내어주는 대신 한남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품어 안은 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개를 들어 직사각형의 프레임 내부 표면에 붙어 있는 거대한 사진을 본다.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벌거벗은 여인이 남정네들 어깨 위를 올라타고 있다. 1969년 영국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공연 현장을 찍은 빌 오웬스의 사진을 프랑스 아티스트 JR이 그래피티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무리 이국적 문물이 흘러넘치는 이태원이라 해도 심상치 않은 건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제야 전체 부지의 4분의 1만 차지하는 오른편 철골유리구조물에 시선을 돌린다. 1층은 널찍한 소파가 자리 잡은 바처럼 보인다. 그보다 크고 넓은 2층에 비밀이 담겼다. 록음악이 탄생한 1950년대 이후 서양 대중음악사에 남을 1만여 장의 음반과 4000여 권의 도서를 구비한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다.



    1967년 창간된 미국의 대중음악잡지 ‘롤링스톤’을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모두 구비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소장된 옛날 LP로 전설의 명곡을 듣거나 관련 자료를 마음껏 찾아볼 수 있다.

    이 건물의 특징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데 있다. 지상 2층 지하 5층으로 이뤄진 전체 건물에서 뮤직라이브러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상 공간의 대부분을 풍경에 내줬기 때문이다. 지상 공간보다 더 깊고 넓은 지하 공간은 뮤지션을 위한 공간이다.

    2개의 녹음실과 1개의 연습실을 갖춘 렌털 스튜디오(지하1층)와 스탠딩 공연일 경우 500명, 의자를 놓을 경우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언더스테이지’(지하2층)다.

    두 공간은 중앙 천장이 뚫려 있어 공간을 공유한다. 두 공간은 포르투갈 출신 길거리 화가 빌스(Vhils)의 벽화로 이어진다. 빌스의 벽화는 지상 2층 라이브러리의 가장 높은 벽면에도 설치돼 있다.

    이를 설계한 최문규 연세대 교수는 말한다. “이태원 거리를 걸으며 느낀 것은 외부 공간을 상실한 폐쇄적 건물만 즐비하다는 거였습니다. 한국 건축은 외부 공간을 너무 빨리 잃어버렸어요.

    한국 전통 건물의 대청마루나 정자를 떠올려보세요. 주변 환경을 건물 안으로 품어 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뮤직라이브러리는 양식적으론 서양 건물이지만 정신적으론 한국 건축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3월 1일 발표된 2017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피레네 산골 고향마을에서 각자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RCR이란 건축사무소를 29년째 운영해온 라파엘 아란다, 카르메 피겜, 라몬 빌랄타 3인이었다. 스페인 건축가로서는 두 번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들에 대한 시상 이유는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시적인 건축물을 설계해온 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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