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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특무대 ‘북파 공작’ 기억해달라”

아흔 살 老兵들의 외침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90특무대 ‘북파 공작’ 기억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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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건 자폭용 수류탄뿐”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육군본부 정보국이 창설됐으며 육·해·공군에 첩보부대가 꾸려졌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첩보부대는 육군의 HID(Head -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해군의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의 AISU(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형태로 체제를 갖췄다.

정영훈 간사는 6·25전쟁 때 북파 공작을 벌인 공군 정보국에서 활약했다. 1965년에는 어부로 위장해 북한에 침투해 사리원비행장 감시 및 북한 기관원 납치 공작을 벌였다. 말도에 근거지를 두고 이뤄진 이 활동은 공군의 마지막 북파 공작이다.

“6·25전쟁 개전 초기부터 해군력에서 유엔군이 북한을 압도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을 때까지 국군과 미군이 서해5도부터 북한 신의주 앞바다를 잇는 서해를 완전히 장악합니다. 북한 해군은 사실상 궤멸했고요. 90특무대는 서해 14곳, 동해 4곳에 파견대를 운용하면서 북한 침투 공작을 벌였습니다. 38선 이북의 섬에서 미군 6006부대와 협조해 북파 공작에 나섰습니다.”

그는 1930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세(勢)가 강하던 곳이다. 북한이 공산화한 후 월남해 서북청년단 활동을 했다.
“우파 월남 지식인의 대표 격인 장준하 씨가 고향 선배예요. 월남한 반공주의자와 기독교 신자, 피난민이 6·25전쟁 때 민간인 신분으로 북파 공작을 벌여 공을 세웠습니다.”

1·4후퇴 이후 90특무대는 유엔군이 장악한 서해, 동해의 섬에서 활동하면서 공작원 교육을 실시하고 대원을 내륙에 침투시켰다.
“북파공작원은 서북청년단 계열이 많았습니다. 유엔군이 후퇴할 때 반공 사상을 가진 이들이 섬으로 피난 왔는데, 그중 건장한 이들을 선발해 내륙으로 투입시켰습니다. 각자의 고향으로 가 정보 수집을 한 거죠. 북한에 침투할 때 공작원들이 손에 쥔 건 자폭용 수류탄뿐이었고요.”

북파공작원들은 북한군·중공군 집결지, 군사시설, 보급창고, 교량 등 포격 대상 정보를 수집했다. 이들이 획득한 정보는 미군 6006부대 통신 장비를 이용해 미군 5공군사령부와 강릉비행장 작전상황실에 통보돼 각 전선에서 목표물을 폭격하는 데 활용됐다.

“이북 출신 공작원들이 북한 내 연고지로 10~15회씩 침투했습니다. 귀환할 때마다 값어치 높은 군사 정보를 가져왔고요. 공작원들 덕분에 미군이 군사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했습니다. 중공군, 북한군이 폭격에 시달리면서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입니다.” 



“천인공노할 자료 소각”

그는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직후 공군에 특채돼 첩보 활동을 벌인 후 1954년 소위로 임관했다. 국군이 북파 공작 수행을 공식 중단한 것은 1971년 실미도 사건 이후 이듬해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다.

1971년 8월 23일 공군 첩보대 인천파견대 소속 실미도 부대원들이 섬을 빠져나와 청와대로 향하던 중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자폭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와 각 군 수뇌부는 북파 부대를 해체했다. 북파 공작원 일부가 보안 유지를 위해 살해당한 끔찍한 일도 벌어졌다.

“공무원 시켜준다, 집 몇 채 살 돈 준다, 군대 계급장 달아준다면서 북파공작원을 모집했죠. 공군 북파공작원은 대부분 민간인입니다. 그게 원칙이었거든요. 현역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해요(1·21 사태). 인천파견대가 비밀리에 3년 넘게 김일성궁 폭파 훈련을 합니다. 형무소 수감자와 막일하던 이들을 모아 복수에 나선 거죠. 영화 ‘실미도’에서 안성기 씨가 맡은 역할(최재현 준위)의 실제 인물은 김◯◯ 상사예요. 내가 공군 정보교육대 교관실장할 때 내 밑에 있던 친구죠. 실미도 부대원들이 버스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후 정보장교들이 군사재판에 회부되는데 그때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 벌어집니다. 자기네들 살겠다고 공작계획서 철(綴), 6·25전쟁 전사(戰史) 자료 일체를 소각해버려요. 90특무대원들은 자료가 인멸돼 국가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증빙 자료가 부족한 데다 동지들도 사망하거나 연락이 두절돼 입증이 어렵죠.”

1965년 9월 20일~10월 29일 정영훈 간사 등 공작원들이 NLL 이북에서 수행한 작전이 공군의 마지막 북파 공작이다. 그는 1965년 8월 31일 군복을 벗은 후 민간인 신분으로 북파 공작에 참여했다. ‘어부 112명 납북 사건’은 이때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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