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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

“광주 가서 돌 맞더라도 분 풀린다면…”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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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YS, DJ, 미국의 인식

또한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계엄사령관을 잡아가면서 일약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고 해도 5·18 당시 계엄사령부―2군사령부―광주 지역계엄군으로 이어지는 명령체계를 뛰어넘어 ‘조종’할 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12·12부터 5·18까지 일련의 과정 속에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등 떠밀려 간 거지 의도한 건 아니다”(허화평) “중대한 시기에 ‘결단력이 약한’ 최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진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노태우)라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나서 자신들을 반란군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한다(한국대통령 통치구술사료집 2 전두환 대통령 17쪽, 연세대 국가관리기록원 편, 선인출판사, 2013/ 노태우 회고록 上 248쪽, 조선뉴스프레스, 2011).

그러나 신군부에 맞선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미국의 인식은 5공 인사들과는 정반대다.

“1980년 4월 30일 중앙정보부장 서리 전두환의 의견이, 다음 날에는 계엄사에서 열린 전군 지휘관회의 결의가 신문 1면 톱에 등장하는 등 신군부가 전면에 나서려는 듯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김영삼 회고록 2, 192쪽, 백산서당, 2000)

“신군부는 처음부터 나와 광주를 겨냥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10·26 이후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계속 경계해왔는데 이런 점이 신군부를 자극했을 것이다. (…) 신군부는 학원 소요를 조장하고 북한 위협을 과장해 이를 정치 전면에 나서는 구실로 삼으려 했다. 정권 장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5·17 쿠데타를 일으켰다.”(김대중 자서전 1, 408쪽, 삼인출판사, 2010)



“미국은 전두환 소장이 이끄는 한국군 장교들이 군부를 장악한 12·12사건에 대해 어떠한 사전 통고도 받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군 장군들이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권에 속하는 부대를 적절한 통보 없이 사용한 것에 대해 분노했으며, 권력을 강탈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깊이 우려했다. (…) 12·12사건 이후 한국 군부 지도자들이 정권 장악을 포기하거나, 민주화 일정을 세울 의도가 없다는 증거가 누적됨에 따라 미국은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했다.”(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미국 정부 성명서 일부)

기자 “5·18 당시 앞서 두 차례 진압은 차치하고, 전남도청과 YMCA 건물 장악을 위한 광주 재진입작전을 할 때는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다’고 재판부가 판결했습니다.”(상자기사 참조)



“보안사령관이 그렇게는 못해요”

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

◀장남 전재국 씨 돌잔치.▲ 1사단장 시절 주한 미8군 베시 대장(오른쪽)과 제3땅굴을 둘러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가운데). 이 땅굴은 1978년 10월 27일 일반에 공개됐다. [사진제공·전남대 5·18연구소], ▶1980년 9월 1일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 선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동아일보]

전두환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광주사태 때 내가 보안사령관이었을걸? 보안사령관은 정보 수사 책임자요. 어떤 정치인, 어떤 대통령이 되려다 못 된 사람이 그런 모략을 그쪽(5·18 책임 전가)으로 풀었는지 몰라도, 내가 광주사태를 일으킨 걸로, 주동한 걸로 나쁜 소리를 하는데 내가 이후 대통령이 됐으니 그러는 거지.”

정호용 “광주사태 (책임)하고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순자 “당시 최고책임자는 최규하 대통령이고, 1980년 8월 16일 광주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셨잖아요.”

최 대통령은 “학생들의 소요와 광주사태에 대해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정치도의상 책임을 통감해 왔다”며 사임 성명을 발표했다.

김충립 “물론 최 대통령이 사회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지만,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실력자로서 ‘파워’가 셌으니까 그렇게 보는 거죠.”

이순자 “최 대통령이 대통령 되려다가 국내가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 양반한테 자리를 내주고 갔는지도 모르죠. 그건 스토리가 좀 맞겠지만, 자꾸 ‘실력자’라는 건 좀 그렇습니다. 사형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20년 살다가도 진범이 나타나 무죄로 나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 사람은 교도소에서도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요. 우리도 우리가 아는 진실이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는 거고요. 진실이 영원히 안 풀린다고 해도…. 우리가 정치적 사면이 급하다고 해서 거짓말한다면 그건 역사 앞에 죄를 또 짓는 거예요.”

전두환 “다 지나간 얘기인데…너무 무식해서 그런 거예요. 군대는 아무리 천하에 없는 놈이라 해도 사단장이 군단장을 능가해서 절대 못해요. 어느 나라든 보안사령관이라는 권한과 임무가 있는데.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꺾고, 청와대를 꺾고, 이렇게는 절대 못합니다.”

고명승 “제가 정리의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전두환 “어, 그래요.”



‘순발력’ VS ‘결단’

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내에서 시위대와 대치 중인 계엄군.[동아일보]

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

▲ 1989년 12월 31일 국회 광주 ‘5공 특위’ 연석회의에 출석해 증언하자 야당 의원들이 달려들어 항의하고 있다.
▶ 1996년 12월 16일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참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동아일보]

고명승 “각하께서 윤허해주셨기에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동안 5·18사건과 관련해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기자분들과 스님을 모신 자리에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고 전 사령관은 10여 분에 걸쳐 5·18 관련 36년사(史)를 정리하면서, 5·18 특별법 제정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순발력의 결과’로 분석했다.

“법원은 최초에 5·18과 관련해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내란방조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죄로 판결했습니다. YS는 1993년 5월 ‘12·12는 쿠데타였지만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YS 선거캠프 상임고문이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등 22명이 군 형법상 반란 및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995년 10월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자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노태우 비자금 20억 원을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합니다. 그러자 ‘DJ에게 노태우 비자금 20억 원이 갔다면 YS에게는 얼마나 갔겠느냐’는 국민적 의심이 제기됐고 YS는 혈압이 오른 겁니다.

이때 YS 특유의 순발력이 발휘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5공 인사들에 대한 사면복권이 단행됐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연금 문제 등은 해결된 게 없습니다.”

역사는 재구성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식된다고 했던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취사선택된 것엔 이미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가 있다. 자기 처지에서 기록을 남긴다. YS는 회고록 하 (141~142쪽, 조선일보사)에서 고명승 전 사령관이 ‘순발력’이라 칭한 것을 ‘일생일대의 결단’이라고 표현했다.

“노태우는 수사가 진행되자 재임 중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해 퇴임 때 1700억 원가량이 남았다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분노를 억누르며, 이 사건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고 정경유착 악폐를 영원히 추방할 기회로 삼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 김대중 씨가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는 ‘실토’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자당을 탈당해 나의 선거운동을 괴롭혔던 노태우 씨가 야당 김대중 후보에게 거액을 줬다는 것도 놀랍지만, DJ 스스로 ‘광주 학살 살인마’라고 비난해온 노태우 씨에게 돈을 받은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호재를 만났다고 적극 공세를 펼칠 DJ는 노태우로부터 부정 축재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노태우 사과문 발표 전) 먼저 발표한 것이다. (…) 노태우 씨의 부정축재 사건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엄청난 공분은 부정부패에 대한 처벌에서, 그 원인이 됐던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살자 단죄 요구로 이어졌다. 나로서는 일생일대의 무거운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

[조영철 기자]

또한 고 전 사령관은 5·18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는 별개로 광주지역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명령체계에서 보안사령관, 부대를 배속시킨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5·18 때 최규하 대통령이 육군참모총장과 관계 장관들을 대동하고 헬기를 타고 광주에 내려가서 직접 작전회의를 하고 지휘를 했습니다.”

이순자 “그래도 아직 5·18 단체들이 오해를 하니까요. 각하께서 광주에 가서 돌을 맞아서 모든 게, 5·18 가족들과 오해가 말끔히 풀리고 정말 분이 다 풀린다면 뭘 못하겠어요. 지금까지도 이렇게 우리가 고생을 했는데. 그런데 5·18 당시에 각하가 셌으니깐 모두가 ‘5·18 책임자’라고 하는데, 이걸 ‘오케이’하는 건 별개 문제인 거 같아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건데.”

전두환 “아니야. 목에 칼이 들어오고 그런 거 없어. 군대에서는 법이 딱 있으니까.”

기자 “비록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해도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역사적 책임감으로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에 헌화하고 무릎 꿇은 것처럼 사과할 의향은 없습니까.”

전두환 “광주에 가서 내가 뭘하라고요?”

기자 “빌리 브란트 총리도 자신이 하진 않았지만 나치의 잘못을 대신 사죄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심을 보여준 그의 사죄는 독일 통일과 유럽 평화를 향한 동방정책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평가받았습니다(당시 언론은 ‘총리 한 명이 무릎 꿇었지만 독일 전체가 일어났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순자 “2차대전 당시 독일은 구라파 사람들에게 너무 잘못했고, 그래서 독일말만 해도 구라파 사람들이 돌아설 정도로 감정이 아주 나빴어요. 그 분이 독일인의 후예로서 그렇게 한 건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광주사태는 양비론이 있다고 봐요. 민주화든 세계 평화를 위해서든 폭력사태로 번졌을 때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진압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각하는 계엄군의 행동 자체에 대한 상징성이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는 있어요. 물론 각하가 망월동 묘지에 참배를 못 할 이유는 없지만요.”

-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이 문제를 제기한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은 최근 세 번째로 고소당했다).”

전두환 “전혀.”

이순자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

지금 그 말(북한군 침투설)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

고명승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습니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오…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 전 대통령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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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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