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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와 함께한 신동아 700호

‘조선민족 대경륜’ 제시한 86년

‘전람회, 토의장, 온양소’ 된 최장기 종합잡지

  •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언론사

‘조선민족 대경륜’ 제시한 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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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년 11월에 창간된 ‘신동아’가 지령 700호를 맞았다. 2009년 9월에 600호 발행 이후 100호를 더한 새로운 기록이다. 86년의 연륜을 쌓으면서 국내 종합잡지 사상 최초로 이룩한 기록이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 여파로 1936년 8월 통권 59호 발간 후 폐간됐다가 1964년 9월에 복간돼 오늘에 이르는 동안 28년의 공백이 있었다. 중단 없이 발행됐다면 3년 전 1000호라는 초유의 대기록을 달성했을 터. 하지만 잡지 발행이 중단된 침묵의 기간에도 현대사의 아픈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현대사와 함께한 신동아 86년의 언론사적 의미를 되돌아봤다.
‘조선민족 대경륜’ 제시한 86년
신동아 700호 발행의 도정(道程)은 우리 잡지사를 포함하여 전체 한국 언론의 핵심적인 발자취를 함축한다. 동아일보 자매지로 창간된 신동아는 잡지계에 일대 선풍을 불러일으켰고, 잡지 저널리즘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 안정된 경영기반에서 발행되었기 때문에 편집 면에서도 충실을 기할 수 있었고, 개인의 주장보다는 민족의 공기(公器)로서 역할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다른 신문사의 잡지 발행을 자극해 이른바 ‘신문잡지’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잡지문화를 선도하였다. (김근수, ‘한국잡지사’, 청록출판사, 1980)


잡지 발행의 세 가지 어려움

1931년 11월 창간호, 동아일보 사장이자 신동아 발행인이던 송진우의 신동아 창간사. [1931](왼쪽부터)

1931년 11월 창간호, 동아일보 사장이자 신동아 발행인이던 송진우의 신동아 창간사. [1931](왼쪽부터)

신동아 창간 무렵에 발간되던 대표적 잡지는 ‘혜성’(개벽사, 1931.3~1932.4) ‘동광’(흥사단; 수양동우회, 1926.1~1933.1, 통권 40호) ‘삼천리’(김동환, 1929.6~1942.1) ‘비판’(송봉우, 1930.1~1940) 등이 있었다. 이 밖에 여기에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잡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형편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잡지를 발행하려면 세 가지 난관[三難]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원고난, 경영난, 검열난이다. 다양한 주제의 수준 높은 원고를 쓸 수 있는 전문가가 많아야 좋은 잡지를 편집할 수 있는데, 필자가 극히 한정된 사회였다. 필자 한 사람이 같은 잡지에 필명을 달리하여 두 편 이상을 쓰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필자난을 극복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경영의 어려움도 컸다. 독자는 제한돼 있었고, 광고를 낼 만한 업체도 드물었다. 구독료와 광고료가 미미하였으니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총독부의 빈틈없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발행이 불가능했다. 정기간행물의 생명인 발행 날짜를 지키지 못하거나 원고를 몰수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잡지의 수명이 짧았다. 창간호가 종간호로 끝나는 잡지가 흔히 있었는데 이는 이 같은 3중의 장애물을 뛰어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동아는 잡지 발행의 세 가지 어려움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는 한창 사세가 신장되는 중이었고, 신동아는 독립 경영의 군소 잡지와는 달리 신문사에서 발행했으므로 재정적인 애로도 없었다. 따라서 편집에도 충실을 기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의 우수한 필진을 비롯하여 신문사의 영향력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동원할 수 있었으니 원고난 해소도 개인잡지보다는 훨씬 유리했다. 선전과 홍보의 조건도 유리했다. 동아일보 지면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잡지의 지명도를 높였고 전국에 보급망이 깔려 있어 판매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다만 최대 난관인 검열만은 피해 갈 수 없는 장벽이었다. 

신동아는 개인의 주장이 논조를 좌우하는 소규모 잡지와 달리 동아일보의 사시를 반영하는 제작 방침을 견지했다. 사장 송진우는 창간사에서 “조선 민족은 바야흐로 대각성, 대단결, 대활동의 효두(曉頭·먼동이 트기 전의 이른 새벽)에 섰다”고 말했다. 조선 민족이 크게 각성하고 단결하여 활동할 새로운 새벽을 맞았는데, “사상적 대온양(大醞釀·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은근히 품고 있음)은 민족이 포함한 특색 있는 모든 사상가, 경륜의 의견을 민족 대중 앞에 제시하여 활발하게 비판하고 흡수케 함에 있다”고 잡지 발행의 의미를 규정했다. 

“이러한 속에서 민족 다중이 공인하는 가장 유력한 민족적 경륜이 발생되는 것이니 월간 신동아의 사명은 정(正)히 이곳에 있는 것이다. 신동아는 조선 민족 전도의 대경륜을 제시하는 전람회요, 토의장이요, 온양소이다. 그러므로 신동아는 어느 일당 일파의 선전기관이 아니다. 하물며 어느 일개인 또는 수개인의 전유(專有) 기관이 아니다. 명실이 다 같은 조선 민족의 공기(公器)다.” 

이 같은 선언이 그 후 편집에 그대로 지켜졌는지 여부는 논란이 있겠지만 조선민족의 공기가 되겠다는 잡지의 방향을 제시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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