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특집 | 여의도 여성파워

“19대에 못한 숙제 20대에서 풀겠다”

女의원들이 아쉬워하는 미완의 법안들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입력2016-05-24 1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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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에 처음 국회에 들어와서 정말 원 없이 일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일한다고 법안이 통과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토론을 거듭해도 정작 법안을 의결하는 건 어렵더군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서 여성 이슈를 담당하는 임순영 보좌관은 저물어간 19대 국회를 아쉬워했다. ‘신동아’의 ‘19대 여성 의원 입법활동 결산’(이하 입법활동 결산)에서 1위(21건 의결)를 했는데도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다. 임 보좌관은 휴가 중에 의원실에 나와 기자를 만났다. 그러고는 “이 법안만큼은 처리하고 싶다”면서 미결 법안 사본을 뭉치로 건넸다. 못다 한 숙제(법안) 때문에 속이 타는 건 그만이 아닐 것이다.  

    신동아는 19대 여성 의원들의 미완 법안을 찾기 위해 ‘입법활동 결산’에서 1, 2위에 오른 남 의원과 김상희 의원(더민주당, 14건 의결) 보좌진(임순영 보좌관, 강성의 전 비서관)을 만났다. 3, 4위를 한 김희정 의원(새누리당, 13건), 류지영 의원(새누리당, 12건)과도 전화 인터뷰를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이하 여가위) 차인순 입법심의관과 전정희 의원실(더민주당)의 황훈영 보좌관도 만났다. 이들이 못내 아쉬워하는 대표적인 ‘미완의 법안’ 5가지를 소개한다.



    #1 성차별금지법

    “2005년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폐지 후 성차별에 따른 권리 구제를 할 수 있는 실체법이 없는 상황이다. 법률 폐지 이후 국가인권위에서 다양한 차별 등에 대한 구제 절차를 거칠 수 있게 됐지만 성차별 부분은 등한시되고 있다.”



    상반기에 ‘성차별금지법안(성차별·성희롱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를 추진한 강성의 전 비서관(김상희 의원)의 말이다. 차인순 입법심의관 또한 19대 국회가 놓친 ‘가장 아쉬운 법안’으로 ‘성차별금지법안’을 꼽았다. 두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은 모두 성차별과 성희롱의 인정 범위를 구체화·확대하고 처벌 수위를 높임으로써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 ‘전반기 위원장’인 김상희 의원과 ‘후반기 위원장’인 유승희 의원이 각각 위원장 자격으로 대표발의했을 정도로 19대 국회 여가위의 핵심 과제로 여겨졌다.

    5월 17일 열린 여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두 의원의 법안에 대한 제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난색을 표해서다. 관계자들은 “고용노동부가 성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 고용부의 기존 권한을 침해받을 것으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솔직한’ 입장은 지난 11월 16일 여가위 법사위 속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차관 권용현 : 저희들이 안을 마련할 때는 관계부처들하고 협의를 해 가지고 넣어야지 공식적인 저희 의견이 되는데, 부처들하고 그 협의가 안 됐기 때문에 비공식 의견을 우리 존경하는 유승희 위원장님께도 비공식적으로 설명을 조금 드렸습니다.’



    #2 경력단절법안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관법률 가운데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는 법안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이슈와 논점’(1월 12일·국회입법조사처 발행)에 수록한 ‘제19대 국회 여성 분야 입법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정부가 올해부터 ‘재직 여성 등의 경력단절 예방’을 주요 과제로 수립했는데도 관련 법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을 발의한 류지영 의원은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그간 여성의 고용 단절을 예방하는 일에 미흡했다”면서 “이 법안은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국가 및 사업주 등의 책임을 강화하고 정책대상을 재직 중인 여성근로자로까지 확대하도록 해 양성평등사회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차인순 입법심의관은 “여성의 경력단절 관련 법안이 ‘의결되지 않은 점’만 보고 여가위가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은 일·가정 양립 정책이 확대돼야 실효성이 있는데, 법안에서 제안한 것처럼 단지 몇몇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식의 지원이 변화를 불러올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법안 처리를 미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의안정보시스템 검색 결과, 5월 15일 현재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안’은 5건이 제출됐지만 1건은 폐기됐고 4건은 계류 중이다.

    지난해 11월 24일 여가위 법사위 속기록을 보면 법안이 계류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진선미 위원 :  그런데 저는 이게 기본적인 핵심이 이 법안 자체에 경력단절 예방이라는 것을 넣어야 되는 실익이 있느냐 여부가 먼저 전제돼야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게 지금 상태로는 특별히 법을 이렇게 변경해도 실익은 별로 없어 보이고요. 오히려 기존에 있는 법의 운용 자체를 잘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고 약간 혼선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3 건강가정지원법 개정안

    “가족 형태가 급변함에 따라 가족정책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건강가정지원법 일부개정안은 법명에서 전해지는 ‘건강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에 대한 이분법을 벗어나려고 한다. 현재 법의 가족 정의대로라면 1인 가구, 동반자가족은 가족 개념에 포함되지 못한다.”(임 보좌관)

    남인순 의원이 2014년 4월 11일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법률 이름을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족지원기본법’으로 변경하고, ‘건강 가정’이란 용어를 ‘가족지원’으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가족의 정의를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에서 탈피해 사실혼으로 이뤄진 가족, 독신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동성애 커플’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자 남 의원은 가족에 대한 개념은 종전대로 유지하되, 법명 등을 바꾸는 것으로 ‘일보 후퇴’한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끝내 의결되지 못했다. 차인순 입법심의관은 “‘건강가정지원법 의결 무산’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가정학회, 가정을건강하게하는시민의모임, 건강가정사협회 등이 반대하는 이면에는 ‘건강가정관리사’에 대한 존폐 위기감이 자리한다.

    지난해 2월 23일 여가위 법사위 속기록에는 ‘건강 가정’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함진규 위원(새누리당) : 우리가 국가인권위에서 권고했다고 해서 그것을 다 따라야 할 의무가 있어요? 건강한 가정이 있으면 건강하지 않은 가정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지, 거기에 대한 지원책을 주는 것인데 내가 볼 때는 ‘건강한 가정’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훌륭한 용어인데 그것을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 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니까 좀 그런 것 같아요. 이게 더 좋은 용어 같은데요.’

    ‘진선미 위원 : 위원님이 늦게 오신 티가 나네요. 이것 가지고 3년 내내 격렬한 논쟁을 얼마나 했는데 회의록을 보시면…’.

    ‘황인자 위원(새누리당) : 이것은 국제사회에서도 논쟁을 많이 한 거예요.’



    #4 스토킹범죄처벌법안

    “스토킹범죄처벌 법안은 스토킹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하는 사회적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초동 단계에서부터 피해자 보호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마련됐다.”

    임 보좌관(남인순 의원)은 ‘스토킹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19대 국회 미완의 과제로 꼽았다. 이때 스토킹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미행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남 의원은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감안해 올 2월 법안을 발의(대표발의)했고, 현재 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스토킹범죄처벌 관련 법안은 15대 국회인 1999년부터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8건이 발의됐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거나 제대로 심의받지 못했다. 남 의원은 4월 27일 기자회견을 열며 법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법안은 기존 법안에 비해 스토킹을 ‘중한 범죄’로 규정하고 스토킹 행위자에 대해 보호처분이나 다른 예외를 적용하지 않고 ‘반드시 형사처벌’을 하도록 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또한 일반 형사범죄와 같이 누구든 신고할 수 있고, 신고된 사건은 제한 없이 수사하도록 했다. 아울러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간 경찰은 ‘응급조치’ 단계에서부터 스토킹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했다.

    남인순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가해자가 ‘연인관계’인 폭력사건은 한 해 평균 7000건이 넘는다. 경찰에 신고된 자료를 집계하면 이 사건들 가운데 상해와 폭행은 하루에 각각 8건씩 발생하며, 살해는 3일에 1건씩 일어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남궁석 수석전문위원)는 이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를 통해 ‘1990년대 이후 미국, 일본, 영국 등은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별도의 법률을 제정, 시행하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은 경범죄로 처리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등에 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법안에서 피해자의 범위를 구체화하라’고 조언했다.

    한편 김영주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정책연구실장은 ‘정책동향’(2016년 1월호)의 ‘제19대 국회와 여성 관련 입법 성과와 한계’ 보고서를 통해 인신매매방지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에 대한 국회 비준은 이뤄졌으나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위한 법률은 아직 없는 상태다. 18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됐으나 회기 종료로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도 ‘인신매매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김춘진 의원), ‘인신매매 등에 의한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안’(남인순 의원)이 발의됐으나 계류 중이다.’



    #5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청소년이 성폭력범죄, 성매매 등에 접근하는 경로를 줄여야 한다. 정부의 청소년 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황훈영 보좌관(전정희 의원)은 19대 국회 미완의 과제로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성보호 법안’을 지목했다. 이 법안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 성매매 알선정보를 발견하는 즉시 삭제 또는 전송을 방지·중단하도록 하고,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 중 알선영업행위 등의 죄를 범한 자를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관계당국인 경찰은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성매매를 조장하는 앱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4년 발표한 ‘2013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 성매매를 조장하는 앱 182개 중 94.4%가 ‘조건 만남 서비스’를 유도했다. ‘성인 인증’을 요구하는 앱은 182개 중 64개(35.2%)에 불과했다.  

    황 보좌관은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계류도 안타까워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청소년유해매체물에 해당하는 옥외광고물을 공공장소에 설치·부착하는 것이 발견되는 즉시 옥외광고물에 게재된 전화번호 회선을 사용중지할 수 있고, 청소년의 불법·음란 서비스 이용을 자연스레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 지원시설을 다각화하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의결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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