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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리포트

“모두 내가 죽기만 바라는 듯”

전자발찌 찬 사람들

  • 박홍빈|고려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 wjddhrwoghd@naver.com

“모두 내가 죽기만 바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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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감출 수 없는 양말 속 불룩한 것” “아내도 딸도 외면”
  • ● “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
  • ● 잦은 오작동, 생체 칩 대안 거론
  • ● 시민 안정감 느끼는 순기능 의견 많아
“모두 내가 죽기만 바라는 듯”

전자발찌를 착용한 한 취재원의 발목(왼쪽),휴대용 추적장치.(오른쪽)[박홍빈]

한동안 악몽을 꿨다.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긴장감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20대 여자인 나로선, 자주 보는 사람이 전자발찌 착용자라는 것이 불안하고 찝찝해서다. 

친척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 할머니는 남자 교도소 출소자들만 모아 교회를 운영한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오는 남자들은 도둑 전과자부터 살인 전과자까지 다양하다. 나와 할머니를 빼고 일반인은 없다. 

잠을 편하게 자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몇 개월 동안 나는 정신분열을 앓는 살인 전과자와 밥그릇을 함께 나르고 수저를 놓았다. 도벽이 있는 할아버지가 주는 목 캔디와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다. 전자발찌를 찬 어떤 아저씨는 내 방의 가구 배치를 바꿔줬고 고장 난 옷장을 고쳐줬다. 그러고 나서야 이들의 죄명 뒤의 인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주말에 나와 매주 밥을 먹고 인사하던 한 중년 남성이 교회 옥상에서 자살했다. 출소 후 가족에게 버림받고 교회에서 지내는 처지를 비관해서다. 출소자 한 명이 지나가듯 말했다. “다음 차례는 누굽니까?”

여기 있는 거의 모든 출소자는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이혼 소송 중이다. 같이 지내는 출소자들 외에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살한 중년 남성의 경우도 자식이 없고 형제들과 교류가 없었다. 물론 특별한 직업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고 말했었다.

나는 ‘살인’ ‘강도’ ‘강도강간’ ‘강간’ 죄목으로 각각 복역한 뒤 출소해 ‘전자발찌’를 찬 채 지내는 4명의 남성을 교회 밖에서 만났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취재했다.



“아니오, 범서방파요”

“모두 내가 죽기만 바라는 듯”

서울 동대문구 한천로 서울보호관찰소 관할 전자감독제도 위치추적 관제센터.[동아일보 신원건 기자]

서울 영등포의 한 카페에서 박모(51) 씨를 만났다. 무스로 쫙 넘긴 머리, 다부진 체격, 구릿빛 피부, 또렷한 눈동자가 위압적이었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간 나는 순간 후회했다. ‘세게 보이게 하고 올 걸.’

박씨가 먼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어눌하게 인사했다. 박씨는 아래 앞니가 빠져 발음이 샜다. 그는 모든 질문에 경어를 써가며 성실히 답했다. 그는 조직폭력배 일을 했다고 말했는데, 내가 “서방파셨다고요?”라고 재차 묻자 “아니오, 범서방파요”라고 고쳐줬다.

전과 4범인 박씨는 범서방파 조직원이었다. 그의 조직 생활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비열한 거리’와 다르지 않다. 폭력으로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질 때마다 조직 내 그의 직급은 높아졌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전과 3범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사무실이 주어졌고 ‘동생’ 여럿을 거느린 부두목이 됐다. 유명한 술집의 마담과 결혼도 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나이트클럽 양도 문제로 다른 파와 마찰을 빚었다. 형님의 명령으로 상대 파 두목을 ‘손만 봐주려고’ 했던 박 씨는 그만 그를 죽이고 말았고 징역 20년을 받았다.

2010년부터 살인범에게도 전자발찌를 부착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박씨는 19년 복역 후 감호 9개월을 남긴 상태에서 전자발찌 부착 3년 명령을 받고 지난해 퇴소했다.

“이제 제 눈에 살기가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 믿기지 않게 그는 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출소 후 ‘조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평범하게 사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교도소 들어가기 전엔 검은 세단을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700만 원이 전 재산이다.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에 원룸을 얻고 당장 닥치는 대로 일을 구했다고 한다. 원룸 근처 고깃집에 주방보조 및 설거지 담당으로 들어갔다.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하루 15시간 동안 불판과 접시가 수북이 담긴 큰 대야 앞에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했다. 그러나 급여는 최저시급에도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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