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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공범이 되고 ‘묵은 김치’가 되어라

승진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공범이 되고 ‘묵은 김치’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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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하는 직장에 어렵사리 입사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다. 모 대기업에서 유능하기로 소문난 한 고참 부장은 임원 승진이 안 되는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다. 어떠한 윗사람도 일만 잘하는 부하직원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진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능력’만으론 잘나가기 어렵다. ‘능력 플러스 정치’가 필요한 게 우리 현실이다.
공범이 되고 ‘묵은 김치’가 되어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출근길 직장인들.

취업 전쟁의 시대,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는 것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더 짜릿하다.

물론, 더 짭짤하다. 당장 다음 달부터 통장에 입금될 월급을 생각할 때마다 밀려오는 도도한 행복감. 돈 위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나날. 주변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은 또 어떤가. 월드 스타, 거의 싸이 급이 된 기분일 것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0명 중 입사에 성공하는 사람은 4명이 채 안 된다. 이런 가운데 입사에 성공했다면 우선 이 기분, 만끽하기 바란다. 왜?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찬물을 끼얹어 대단히 미안한데, 이게 현실이다.

가족 같은 직장은 없다!

신입사원은 진정한 무한경쟁 지대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사느냐 죽느냐, 매일 기로에 설 것이다. 화기애애한 가족 같은 분위기의 직장? 개가 먹어치운지 오래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의 신화는 깨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숫자를 상회한 지도 꽤 지났다. 지금 비정규직인가, 아니면 정규직인가.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면 그나마 기회는 열려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기회는 잔혹하리만치 제한적이다.

신입사원 대부분은 ‘별’을 다는 것을 꿈꾼다. 기업의 별, 임원이 되겠노라 일단 다짐해본다. 그러나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아는 신입사원은 별로 없다. 입사 직후부터 임원 승진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세월이 지나 부장 정도까지 올라가면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볼 뿐이다. 그 즈음에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까? 아니다.

몇 해 전 한 글로벌 대기업에서 사내 정치(office politics)와 관련해 강의를 했다. 강의 후 수강생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분이 다가왔다. 그는 명문대 출신으로 입사 초기부터 일을 열심히 했고 인정도 받았지만 부장에 멈춰 이사 승진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원인을 분석해보니 ‘사내 인적 네트워크 부족’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모임에 참가해왔다고 한다.

“그걸 이제 알았냐?”

그런데 얼마 전 임원이 된 입사동기를 만나 “요즘 인적 네트워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동기가 한 대답에 충격을 받았단다.

“나는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는데, 넌 이제 알았냐?”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이것,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다는 점이다. 미리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갖추려고 노력해온 사람은 임원 승진을 한 반면, 그렇게 못한 사람은 만년 부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유념할 일이다.

정치에서도 국회의원이 3선 정도에 도달하면 프로야구의 1군, 2군처럼 운명이 갈린다. 1군은 대통령후보군이다. 2군은 국회 상임위원장 후보군이다. 초선 시절 그들 간엔 큰 격차가 없었다. 스펙 면이나 역량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언젠가 대통령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면에서도 차이가 없다.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을까. 운? 노력? 역시 노력이다.

10년 정도 집중해서 한 가지 일만 하면 자연스럽게 달인이 된다. 그러나 집중하지 않고 이일 저일 하면 달인이 되지 못한다. 국회의원은 유능한 보좌진을 둬야 하고, 의원들 사이에서 자기 영역을 넓혀가야 하며, 언론과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어필해야 한다. 결국 정치란 사람 장사이고 정치인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입사동기들 간에 스펙 차이나 역량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공채를 거친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임원을 꿈꾼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임원에 오르는 사람은 100명 중 1명도 안 되는 0.8%에 불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1년 11월 발표한 ‘2011년 승진·승급 관리 실태조사’ 결과가 그렇다. 대기업은 0.6%다.

여성이라면 확률은 더 떨어진다. 삼성전자가 2012년 6월 발표한 ‘201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이 회사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전체 직원 22만 명의 40%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이 임원 될 확률은 1만 명 중 2명, 0.02%의 참혹한 수준이다.

입사 직후 신입사원은 선택해야 한다. ‘1%로 살 것인지 아니면 99%로 살 것인지’를. 상위 1%에 속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해야 별을 달 수 있다. 우리 기업문화에서 조기 출근에 조기 퇴근 포기는 필수다. 인간적으로 살아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99%에 속하기로 마음먹는 게 속 편할 것이다. 현실은 99%인데 이상은 1%라면, 속만 쓰릴 뿐이다.

얼마 동안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20년 이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21.2년이 걸린다. 대기업 임원이 되려면 23.6년이 소요된다. 28세에 대기업에 입사하는 경우 0.6%의 확률을 뚫는다고 하더라도, 52세는 돼야 임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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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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