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분석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산업은행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 윤석헌 | 前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syoon@ssu.ac.kr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1/2
  • ● 대우조선 부채 7308%…산업은행은 뭐했나
  • ● 꿀 훔친 권력과 기업, 꿀 못 지킨 産銀
  • ● ‘창조경제’ 동원은 전형적 관치금융
  • ● 고군분투 중소·벤처기업 지원 나서라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과거 한국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서 산업은행(산은), 수출입은행(수은) 등 국책은행의 기여를 부정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의 기업 구조조정으로 이들 국책은행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그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하고 있다. 조선과 해운업의 침체 징후가 일찌감치 감지됐는데도 국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에 수조 원대 자금을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낙하산이 불편한 마당에 이런 지원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오히려 차제에 이러한 지원을 중단하고 벤처 창업이나 중소기업 지원에 진력하는 게 나은 것은 아닌지 등 의문이 이어진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을 4대 정책 과제 중 하나로 선택하고 이를 전담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당시 TF 논의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산은 민영화를 백지화하고 산은을 정책금융공사와 다시 통합해 국책은행으로 재출범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밀어붙인 재통합의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문제시되고 있는 ‘선박해양 플랜트 금융지원 강화’였다. 다시 말해 선박해양 플랜트 금융지원은 정부의 정책과제였던 것이다.



국민은 그저 꿀벌이었다

양파 껍질을 좀 더 들춰보면, 오늘의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집행 부서인 산은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설립한 국책은행을,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명분 아래 조선·해운업의 대기업 지원에 동원했다는 데 있다. 정부가 ‘경기민감산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서 잘 드러나듯, 기간산업 구조조정에는 정부의 거시적 시각과 판단이 개입됐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2013년 8월 27일자 정부의 ‘선박금융 지원방안’, 2015년 12월 3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5대 경기민감업종의 구조조정 및 경쟁력 강화 방안’, 그리고 2016년 4월 26일 발표한 후속조치 등에서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작금의 사태는 산은보다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겠나. 물론 정부가 책임지는 방법이 마땅치 않고, 또 그렇다 하더라도 산은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잘잘못은 분명하게 따지는 게 사리에 맞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STX그룹 구조조정에 따라 떠안을 손실에 대해 손실 보전이나 면책 보장을 당국에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생각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홍 회장의 잘못은 손실 보전과 면책을 요구한 데 있다기보다는, 대출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음에도 이를 거절하지 않은 데 있었던 게 아닐까.

청와대와 정부, 대기업과 경영자, 그리고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산은이라는 큰 ‘꿀통’에 빨대를 꽂고 빨아먹는 이해자 그룹으로 보인다. 그 꿀통에 국민이라는 꿀벌이 열심히 꿀을 채워넣고 있는데, 산은이  ‘꿀통 지킴이’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면책 보장이 꿀통 지킴이의 안위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나, 꿀통 안에 든 꿀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못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구조조정은 좀 더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산은이라는 편리한 꿀통을 만들어놓고 빨대 꽂아 빨아먹기를 즐겨온 권력자들과 대기업 오너 및 경영자들까지, 사적 이득을 챙긴 모든 이를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차라리 꿀통을 없애자는 얘기, 즉 산은 폐지론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꿀통의 잘못은 아니다. 부당하게 빨대를 꽂은 이들, 그런 자들로부터 꿀통을 제대로 관리·통제하지 못한 이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꿀통을 보수하고 관리·감독 체계를 개선해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산은은 매력적인 정책수단

정부 처지에서 산은은 매력적인 정책수단이다. 정부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데 활용하기 좋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부실을 떠넘겨 처리할 수도 있다. 특히 산은은 은행과 증권 업무를 일부 겸영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유용함이 관치금융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산은의 중장기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국책은행의 역할 재정립 이슈를 제기했음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은은 정부 소유이므로 그 용도 역시 정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는 관치금융적 사고일 뿐이다. 관련해서 정책금융이 ‘개발 목적’ 대신 ‘정책 목적’으로 흐르면 오히려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해외 연구결과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국책은행 소유는 “성공은 정부 정책 덕분, 실패는 국책은행의 집행 잘못”이라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킨다. 정책 성공의 혜택은 부풀리고 그 비용은 축소함으로써 정부의 위험 추구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근한 예가 이명박 정부의 해외투자이고, 요즘 논의되는 ‘양적완화’ 역시 유사한 도덕적 해이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산은 조직의 중요한 특징은 ‘이중적 정체성’이다. 전통적으로 산은은 국책은행으로서의 공공성과 금융회사로 존립하는 데 필요한 상업성,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부담을 지녀왔다.

이러한 이중성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닌다. 장점은 시장에서 상업성을 추구하면서 일반 금융회사들과 경쟁하는 것이 정책금융 수행의 투명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단점은 산은 내부적으로 이중적 정체성이 의사결정에 혼선과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중적 정체성 이슈는 산은의 역할 논의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해왔으며, 최근 민영화 추진을 전후한 정체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은에 많은 부담을 안겨줬다.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논의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이 주춤해지고 대기업 대상의 설비금융 대출수요가 줄면서 산은은 역할 재정립과 중장기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런 논의는 대체로 국제화 및 투자은행 전략 등을 중심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지속되다가 외환위기 직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업 구조조정 업무가 산은의 새로운 전공 분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산은 체계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은 노무현 정부 들어 산은과 시중은행 간 시장 마찰이 고조되던 2006년 8월이다.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주도로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TF가 꾸려졌고, 산은과 수은 등 국책은행 발전방안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진행됐다. TF는 산은 발전방안으로 △통합국책은행안 △구분계리안 △모자회사혼합안 △정책금융지주회사안 △민영화안 등을 검토했다(윤석헌, ‘산은 민영화 추진 : 이슈와 과제’, 한국증권학회지, 2014년 43권 1호).

그리고 이명박 정부 초인 2008년 6월 금융위가 ‘산업은행 민영화 및 한국개발펀드 설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산은 민영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는 민간 금융기관들과의 시장 마찰 이슈가 계속 대두하는 가운데 산은 매각대금을 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선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라는 점에서 민영화 추진의 최적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당시 산은 민영화 추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첫째, 과거 대기업 지원에 치중했던 산은은 전환기의 한국 경제에 필요한 정책금융 수요, 즉 벤처 창업기업 및 중소기업 지원에 최적의 조직은 아니었고, 따라서 중소형 정책금융공사를 새롭게 출범시키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것으로 판단됐다. 둘째, 정책금융공사를 떼어낸 나머지 산은은 민영화되어 국내 자본시장 발전을 이끌어갈 선도형 투자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산은 개편론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민영화를 준비하던 산은을 돌려세워 정책금융기관으로 전환하고 정책금융공사와 통합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산은 민영화를 중단한 이유는 ‘창조경제’ 지원을 통해 산업구조 선진화를 도모하고 지속되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시장 안전판 기능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산은의 역사, 그간의 논의 및 산은법 개정 등을 모두 무시하고 창조경제 지원을 위해 산은의 진로를 되돌린 것이어서, 정권의 목표를 위해 산은이라는 공적 수단을 동원한 전형적인 관치금융이었고, 일관성을 상실한 정책이었다.

산은 조직 내부적으로도 소매금융 확대 등을 둘러싸고 혼란을 야기했으며, 중개 역할 수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임직원들이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중에 중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1/2
윤석헌 | 前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syoon@ssu.ac.kr
목록 닫기

‘꿀통’에 빨대 꽂은 자 모두 유죄!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