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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격전장을 가다

“기억이 평화를 지킨다”

‘굴곡의 중국사 압축판’ 난징(南京)

  • 전계완 | 시사평론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저자 jke68@daum.net

“기억이 평화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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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용서하지만, 잊지 않는다(可以寬恕, 但不可以忘却)”
  • ● 대학살, 동양 최대 위안소…유네스코 등재
  • ● ‘평화 수호자’ 강변하는 일본과 ‘역사전쟁’
  • ● ‘불가역적 합의’ 한국, 돌고래의 지혜 필요
“기억이 평화를 지킨다”

난징 위안부 기록관 외벽에는 증언과 자료를 남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4월 22일, 김해공항에서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으로 가려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전 조종석 램프 고장으로 출국장으로 되돌아갔다. 출발이 2시간 지연됐지만 불만을 드러내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비행편이 적어 혹시 못 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행기는 1시간50분을 날아 난징 루커우(祿口) 공항에 착륙했다.

난징은 인구 800여만 명의 대도시이지만, 인구로만 위상을 따진다면 중국 내 30위 도시다. 난징은 광활한 구릉지 덕분에 천혜의 요새에 안긴 도시다. 황해와 양쯔강은 난징을 물산과 교역 중심지로 키웠다. 삼국시대의 오나라 손권이 도읍을 정하고, 10개의 왕조와 정부가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19, 20세기를 거치면서 난징은 굴곡으로 얼룩진 중국 근대사의 압축판이 됐다.  

역사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굵직굵직한 사건 대부분이 난징에서 일어났다. 아편전쟁으로 인한 난징조약(1842), 태평천국의 난(1850~1864), 신해혁명(1911), 중화민국 임시정부 수립(1912), 국민당 정부 수립(1927), 난징 대학살(1937) 등이 그것이다. 중요성을 따져 순차적으로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사건들이다.

사회주의 중국 건설(1949) 이후 난징은 베이징(北京)보다 주목받지 못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1978) 이후 다시 산업과 교역 중심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오늘의 난징은 중국 굴기(崛起)의 주요 현장이면서 아시아를 휘감았던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일본이 중일전쟁(1937~1945) 때 운영한 동양 최대의 위안소를 그대로 보존하며 역사전쟁을 수행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비가 제법 내리는데도 관람객이 끝없이 늘어섰다. 서양인이 간혹 보이긴 했지만 대다수가 중국인이었다. 기념관을 둘러보던 관람객 중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중국판 홀로코스트

“기억이 평화를 지킨다”

1034년 세운 공자 사당 푸쯔먀오(夫子廟)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 당시 중화민국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6주 동안 중국인 30만 명을 살해한 희대의 사건이다.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에 뒤지지 않는다. 1985년 중국 정부는 학살 당시의 상황과 자료, 생존자 증언 등을 모아 집단학살 매장지 위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일본군은 중국군 포로와 남성을 색출해 양쯔강 하구와 도심 외곽에 모아놓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한 곳에서 1만 명이 죽은 경우도 있고, 일본군의 총검술과 목 베기 훈련의 희생물이 된 피해자도 많았다. 일본군은 총알을 아끼려고 사람을 생매장하거나 칼로 난도질해 죽였다.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석유를 뿌리고 기관총을 난사해 불태웠다. 학살에 가담한 일본군 병사는 ‘산 채로 묻거나 장작불로 태워 죽이며 무료함을 달랬다’는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일본군의 성폭행 기록은 치를 떨게 한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70대 노파까지 닥치는 대로 강간하고 살해했다. 임신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태아를 끄집어냈다는 기록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피해 여성은 5만 명으로 추정된다. 1946년 난징 전범재판에서 당시 민간인에 대한 잔혹 행위를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후 성직자, 역사학자, 외교관 등에 의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중국은 학살이 시작된 (1937년) 12월 13일을 추모일로 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관련 자료를 축적하고 기념관을 확대 증축하면서 지난해 16건의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방대한 자료에 비하면 등재 건수가 크게 부족하지만 일본의 거센 반대 속에 이뤄낸 성과였다. 대학살 기념관에는 기억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어록이 곳곳에 붙어 있다.



난징과 야스쿠니

“기억이 평화를 지킨다”

▲동판 위에 새긴 피해자 이름으로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대규모 학살지역에 기념관을 세워 관람객이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용서하지만, 결코 잊지는 않는다(可以寬恕, 但不可以忘却).” 문제는 일본이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은 난징 대학살을 단순히 ‘난징사건’으로 표현한다. 전쟁 중 불가피하게 민간인 피해가 생겼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명령에 따라 자행된 일이 아니고 피해자 수도 크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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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완 | 시사평론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저자 jke6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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