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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는 행복, 그리고 인생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더없는 행복, 그리고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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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는 행복, 그리고 인생

‘가든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한은경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96쪽, 1만원

뉴질랜드 출신의 여성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는 백 년 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쓰는 모든 것, 나의 존재인 모든 것이 바다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일종의 놀이다.”

글쓰기를 일종의 놀이로 삼고 생을 바친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길지 않은 생을 살았고, 그동안 짧고 굵은 작품들을 남겼다. 한국의 이상(李箱·1920-37)이 그랬고, 영국의 에밀리 브론테(1818-48)가 그랬고, 뉴질랜드의 캐서린 맨스필드(1888-1923)가 그랬다. 그들은 서른 살 전후에 요절했다. 이상, 에밀리 브론테, 캐서린 맨스필드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공교롭게도 모두 폐결핵이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천재 문인의 상징은 창백한 안색에 요절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수전 손탁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날카로운 비평을 썼다. 수전 손탁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 폐결핵은 작품 속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낭만적인 은유로 작용했고, 이후에는 암과 에이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수전 손탁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내려진 결핵을 빠른 속도로 삶을 진행시키는 낭만적인 질병으로 간주한 것과는 달리 이상, 에밀리 브론테, 캐서린 맨스필드 같은 요절 작가에게 찾아온 질병은 변방의 병적인 외로움과 광기를 거느리고 있다.

영국령 뉴질랜드에서 런던으로 입성한 캐서린 맨스필드는 주류 사회로의 편입에 필사적이었고, 그것은 소설 쓰기로 표출되었다. 그런 그녀에 대해 끌리면서도 견제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거리를 배회하다 온 사향고양이 냄새를 풍긴다”고 했고, 처음 평범한 모습과 세련되지 않은 그녀의 싸구려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결국 ‘대단히 지성적이고 난해한 모습’의 친구로 인정하고 우정을 표했다. 울프가 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의 장편 소설 형식에 주력했다면, 맨스필드는 단편 소설의 형식을 집중적으로 실험했다.

새로운 형식의 단편

20세기 초 유럽에서 새로운 문학을 표방한 모더니즘 소설가들,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가 장편 소설 작가라는 점을 환기하면, 19세기 대표적 단편 작가인 체홉이나 도데, 모파상의 정교한 소설(콩트) 세계와는 차별화된 20세기 새로운 형식의 단편 장르를 창출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역할은 독보적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유일한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서 오로지 더블린과 더블린 사람들을 등장시킨다면, 캐서린 맨스필드는 ‘가든파티’에 수록된 열다섯 편의 단편 중 대부분 작품 속에 태생지 뉴질랜드의 항구와 만과 거리와 정원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고, 하얀 바다 안개에 크레센트 만이 완전히 사라지고, 뒤쪽의 나무숲으로 뒤덮인 큰 언덕들마저 숨 막힐 듯 가려졌다. 언덕이 어디에서 끝나고, 방목장과 방갈로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모랫길과 방목장과 방갈로도 사라졌다. 그 너머의 불그스레한 풀로 뒤덮인 하얀 모래언덕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이슬이 이미 무겁게 내려앉아 풀이 파랗게 변했다. 수풀에는 큼지막한 이슬방울들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은빛 솜털같이 토이토이의 긴 가지가 축 처지고, 방갈로 정원의 금잔화와 패랭이꽃은 이슬을 머금고 고개를 푹 숙였다. (중략) 마치 어둠 속에서 바다가 부드럽게 몰려오고 거대한 파도가 물결치고 또 물결치는 듯했다. 어디까지 온 것일까? -캐서린 맨스필드, ‘만(灣)에서’

‘만에서’라는 이 작품은 캐서린 맨스필드가 죽기 일 년 전인 1922년에 출간한 ‘가든파티와 그밖의 소설들’에 수록된 단편이다. 웰링턴 외곽의 작은 해변 마을 카로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작가가 네 살 때 살았던 공간이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소설의 무대로 뉴질랜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캐비지야자를 그곳의 원주민인 마오리인들이 폴리네시아어로 변형해 부르는 ‘토이토이 나무’나 식민지 정착자들의 용어인 ‘미개간지’, ‘방갈로’를 통해 영국의 식민지로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된 ‘가든파티’의 서문을 쓴 맨스필드 연구자 로나 세이지에 따르면, 작가는 말년에 ‘발견되지 않은 우리나라가 구세계의 눈으로 뛰어 들어가게 만들고’ 싶고, ‘그것은 틀림없이 신비로울 것이며,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어쨌거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었다. 가든파티를 위해 특별히 날씨를 주문했다 해도 그보다 완벽한 날은 없었을 것이다. (중략) 정원사가 새벽부터 잔디를 깎고 말끔히 치운 덕에 잔디는 물론이고 예전에 데이지가 둥글납작하게 자랐던 자리까지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장미에 대해 말하자면, 다들 가든파티에서 손님들을 감동시킬 꽃은 장미뿐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수백 송이, 문자 그대로 수백 송이가 하룻밤 사이에 만개했다.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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