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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자유의 언덕’이 있는 곳, 서울 북촌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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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섞인 과거’의 기억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한적한 북촌 골목(왼쪽)과 ‘북촌공원’의 고목.

일단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몸이 아파 요양을 갔다가 서울 북촌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여자(서영화)는 문에 꽂힌 편지를 발견한다. 오래전 자신에게 청혼했던 일본 남자 모리(가세 료)가 남긴 편지다. 편지는 일기 형식으로 그가 그녀를 애타게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자는 남자가 남긴 편지 아닌 일기를 보던 중, 그걸 계단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일기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여자는 이제 모리가 남긴 한국에서의 일상을,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 모른 채 좇아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모리가 자신의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닐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던 와중에 모리가 또 다른 여자 영선(문소리)을 만나 잠자리까지 같이 하게 되든 말든 그것도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그건 모리의 판타지인가, 현실인가?). 그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아들(김의성)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하는 건 또 아무러면 어떤가.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묘령의 여인(정은채)은 남자 때문에 집을 나온 모양인데, 결국 아빠(기주봉) 손에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모리에게는 한국, 특히 서울 북촌에서 겪는 별의별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영화 ‘자유의 언덕’에서 중요한 점은 시간이 뒤섞여버렸다는 것, 이야기의 순서가 선형이 아니라 비선형으로 이리저리 꼬였다는 것이다. 이 비현실의 현실감. 홍상수는 우리가 기억 속에 간직하는 일상의 순서는 그렇게 제멋대로라는 점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우선순위로 배열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시간에 따라 진행된 과거의 일상은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내가 기억하기를 원하는 순서에 입각해 정리되고 우리 기억에 남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흘러가는 일상의 기억이 자의적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홍상수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런 지점에 있다.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북촌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30년 된 철물점 옆에 모던한 커피숍이, 시골스러운 식당 골목에 유럽식 카페가 눙치듯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다.

30년 된 철물점 옆 모던 커피숍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안타깝게도 북촌의 옛 공중목욕탕은 곧 헐린다.

‘자유의 언덕’을 포함해 ‘북촌방향’ 등 홍상수 영화에 북촌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앞서 얘기한 촬영 장소 문제에 있다. 홍상수가 보기에 북촌이라는 좁은 동네를 잘 활용하면 여기서 영화 한 편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작지만 활용도가 높은 공간인 데다가 이 동네에 매력적이고 특이한 명소나 카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별다른 무대미술을 더하지 않고도 그냥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을 만한 곳이 많다는 얘기다.

‘북촌(北村)’ 하면 말 그대로 서울 북쪽에 있는 마을, 동네를 뜻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가회동에서 계동 사이를 일컫는다. 그래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헌법재판소와 현대그룹 본사 빌딩 사이의 구역을 생각하면 된다. 좀 더 넓게 보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로, 사간동과 삼청동 그리고 가회동, 소격동, 계동, 원서동 일대를 지칭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시작해 우회전한 후 정독도서관을 거쳐 계속 직진하면 오랜 음식점인 ‘북촌만두’와 ‘용수산’이 나오는데 그 정면에 창덕궁 돌담길이 보이면 거기가 북촌마을의 끝이라고 보면 된다. 그 길을 지름으로 잡고 머릿속에서 반경 1km의 원을 그리면 그 안에 북촌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온다.

북촌이 재미있는 것은 근대와 현대,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거나 갈등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존해서다. 예컨대 문 연 지 30년도 넘어 보이는 철물점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가장 모던해 보이는 커피 가게가 붙어 있는 식이다. 계동 골목길에는 여전히 ‘똘똘이네집’ 같은 노점식 맛탕 가게와 ‘중앙탕’이라는 이름의 공중목욕탕(안타깝게도 이 집은 요즘 재건축되는 모양인지 헐리고 있다)이 있는가 하면, 그 길 아래로는 현대식 의상점, 액세서리 가게가 즐비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선 옛것과 요즘 것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느긋함을 느끼는 것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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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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