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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09년 2월호 별책부록 Brand New|Hangang/Essay

한강의 기억과 비전

강은 누구를 위해 흐르는가

  • 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jidoh@khu.ac.kr

한강의 기억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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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억과 비전
잃어버린 강

우리가 강을 잊지 못하는 것은 접촉과 교섭, 사랑과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장면들을 강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강은 무심하지 않다. 강은 저 혼자 흐르지 않고 저 혼자 질주하지 않는다. 강은 언제나 땅과 교섭하고 대화한다. 자갈밭 위에서 물살은 봄날 나물 캐러 나온 소녀들처럼 재잘대며 흐르고 덩치 큰 바위를 만나면 바위얼굴을 은근슬쩍 쓰다듬다가 (“오, 너 여기 있었구나”) 손목 잡힐세라 얼른 비켜난다. 높은 곳에서 강물은 흰 속살을 드러내며 깡충깡충 뛰어내리거나 좔좔 미끄럼질 타고, 깊은 곳에서는 안단테의 느린 리듬에 몸을 싣는다. 고운 모래밭을 만났을 때 강물은 그 자신도 맑은 얼굴이 되어 마치 오래 기다린 바람이 치마폭을 출렁이듯 얕은 모래밭 위로 넘실댄다. 이 넘실거림은 강이 땅과 관계 맺는 비밀스러운 만짐과 비빔, 스밈과 적심의 절정을 연출한다. 그렇게 해서 강과 땅 사이의 그 모든 접촉의 신성한 제의들과 그 모든 즐거운 교섭의 에로스로부터 강바닥 수초들이 태어나고 강가의 나무와 수풀이 자라고 물의 안팎에서 생명들이 자라 ‘강의 가족’을 일군다.

강의 에로스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강과 인간의 접촉관계다. 생존 목적의 활동이 인간 활동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문명의 초기 단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강과의 자유로운 교섭이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즐거운 유년의 추억이며 성장의 비밀이라는 사실이다. 여름날 강에서의 물장구, 멱 감기, 겨울의 얼음지치기, 발목을 간질이는 물살의 찰랑거림, 빛나는 모래와 자갈들, 돌 틈의 가재와 웅덩이의 쉬리 떼, 새와 나무와 구름과 꽃, 물속에 잠긴 달, 쏟아지는 강변의 별빛 - 이 모든 것과의 교섭이 우리를 키운 비밀스러운 힘의 기원이다. 성년이 되어서도 우리는 강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 그 그리움은 우리를 자라게 한 힘의 기원을 향한 향수 때문이며, 강과의 교섭에서 얻어진 그 경이로운 힘에 대한 겸손한 존경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한강은 이런 에로스의 강, 접촉과 교섭의 강이 아니다. 오늘의 한강은 회색의 거대한 시멘트 옹벽들 사이에 포로처럼 갇혀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볼품없는 물길에 불과하다. 그 강은 땅과의 교섭을 잃은 지 오래다. 시멘트 옹벽 사이에 갇힌 한강은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를 향해 질주하던 포로 수송용 열차행렬을 생각나게 한다. 그 수송열차행렬에 벗어남, 자유, 대화, 소통이 허용되지 않았듯이 지금의 한강에도 자유와 소통, 접촉과 대화는 없다. 땅과의 접속을 차단당한 강은 인간과의 접촉도 상실한다. 사람들은 강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고 강물에 발목을 적실 수도 없다. 강폭은 넓어지고 수심은 깊어져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 강물로 뛰어들 수 없다. 이 한강은 어릴 적 우리가 뛰어들어 첨벙대던 강, 멱 감던 강, 무릎 위로 올라오는 물살과 장난치며 놀던 그런 정겨운 강이 아니다.

강 양쪽의 옹벽 너머에는 또 시멘트로 된 이중 삼중의 연안 고속도로들이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이 한강은 우리가 사랑할 만한 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괴물이 되어버린 강이다.

사랑할 수 없는 강은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는다. 기억에서 사라진 강은 잊힌 강이다. 한강은 오늘도 거기에 있고 어제처럼 오늘도 우리 눈앞을 흐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강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는다. 강과 인간을 이어주는 연결의 끈, 접촉의 끈, 대화의 끈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강은 있으면서 동시에 없다. 물리적 대상인 한강은 거기 있으나 사람들과 교섭하는 존재로서의 한강은 우리 마음과 기억에서 떠난 지 오래다. 한강은 우리가 잃어버린 강, 잊어버려야 하는 강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동차로, 전철로 재빨리 건너고 잊어버려야 할 어떤 것, 출퇴근길을 더디게 하는, 그러므로 속도와 효율을 위해서는 없는 편이 더 나았을 귀찮은 장애물, 그 존재의 귀함이나 친밀성을 경험할 길이 없는 천덕꾸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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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jidoh@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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