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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개척자' 이종수의 독일 편지

‘억울할 땐 엉덩이를 상대방 쪽으로’

라인 지방식 분쟁해결법

  • 이종수|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억울할 땐 엉덩이를 상대방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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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에 살다 보면 교통사고 등 자잘한 일들로 소송에 휩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동양인이라고 차별받는 일도 많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도 마땅찮다. 그럴 땐 바지를 내려 맨 엉덩이를 내민 남성 조각상을 만들어 못마땅한 상대를 조롱했던 본 시민들의 기지를 떠올린다.
‘억울할 땐 엉덩이를   상대방 쪽으로’

1889년에 건설된 본 대교의 소남(小男) 조각상. 2008년에 조각가 미샤헬 나운도르프가 새로 만들었다.[출처 : 위키미디어 ]

어느 곳에 살든 사람 사는 곳에는 분쟁이 발생한다. 분쟁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독일만큼 재판에 의존하는 나라도 보기 드물 것이다. 내가 유학 와서 의과대학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때는 학교생활이 단조로워 타인과의 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자동차 사고에 변호사까지 동원

그러나 의사면허를 받아 병원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헤아릴 수 없는 민사 및 형사재판을 체험했다. 민사소송은 대부분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은 환자를 상대로 하거나,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수리 및 공사 관계, 또는 교통사고 등 때문에 발생했다. 형사재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통규칙 위반이 원인이다.

나는 1963년 지방병원에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샀다. 운전면허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차를 몰고 가다가 길가의 어느 집 벽을 들이받았다. 차 사고를 많이 내면 다음 해 보험금이 급등하니 이를 피하려고 보험 처리를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 후 그 집 주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귀하가 별지 계산서의 청구액을  ○년 ○월 ○일까지 지불하지 않으면 내 변호사에게 이 사건을 넘기겠습니다.”

나를 놀라게 한 첫째 이유는 변호사란 단어다. 그것도 ‘내 변호사’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살 때 부모님은 내게 절대 변호사에게 민사사건을 맡기지 말고 상대방과 협상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가르쳤다. 한국에서 변호사에게 의뢰할 경우 변호사 경비가 많이 들어 부유층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고 때에 따라서는 집안이 파산할 수도 있다고 귀가 아프게 들었다. 그런데 남의 집을 빌려서 살고 있는 독일 사람이 내 변호사 운운하니 놀란 것이다.

그가 많지 않은 수리비를 받기 위해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병원 동료에게 상의했더니 벽 수리비 청구액이 과다하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벽 전체를 깨끗이 치장하려는 생각 같다는 것이었다.

“닥터 리, 너도 변호사에게 부탁해서 대항해.”

그런데 나는 독일 변호사 수임료가 높을 것으로 생각해 동료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청구액 전부를 송금해버렸다. 그 후 알고 보니 독일 변호사 개념은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독일에서는 법대를 졸업하고 시보 기간에 법원에서 연수하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업한 변호사 수도 아주 많고 변호사를 통하지 않으면 소송을 할 수가 없다. 변호사 수수료도 국가가 규정한 바에 따라 청구되기 때문에 그 요금이 아주 낮다. 변호사들은 개업의나 마찬가지로 많은 안건을 의뢰받아 수가가 낮더라도 받아서 돈을 번다.

인간 상호 간의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법이다. 독일은 국민생활을 많은 법으로 제약하고 있는 만큼 자기도 모르게 범법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변호사비를 부담해주는 각종 법적 보호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업 변호사 수가 날로 증가해 수임을 위한 경합도 심하다.

지나치게 딱딱한 잣대

그런데 독일이 통일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인종이 다른 독일 국적 소유자의 경우 비록 정당한 사유라도 각종 소송에서 승리할 확률이 낮아지는 것 같다. 한국 속담에 법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다 걸면 귀걸이’란 말이 있다. 독일은 판례를 중요시하면서도 법관 재량에 따라 판결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민사소송인 경우 소송 상대방 변호사와 비교해서 내 변호사의 명성과 변호 능력이 우월하면 승소할 공산이 크고 변호사의 성의 및 생활관 여하가 재판을 유리하게 이끄는 요인이 된다. 형사재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독일 통일 이후 고조된 독일 국민의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아 인종이 다른 독일 국적 소유자에 대한 소송에서 고의로 불리하게 만드는 변호사가 있을까 염려될 때가 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낮은 처우 같은 사회문제들과 비교하면 차별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느껴지는 이 차별의식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 생존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2006년 봄 어느 토요일 오후 시간 여유가 좀 있어 식료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갔다. 병원일 때문에 바빠서 내가 직접 슈퍼마켓에 가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집에서 파티를 할 때면 식단을 짜기 위해 몇 곳의 슈퍼마켓을 직접 돌아본다. 때마침 새로 구입한 차를 몰고 가 주차장에다 주차하고 먹을 것을 샀다. 토요일이어도 일이 있어서 병원으로 갔는데, 새 차를 못으로 긁어놓는 장난꾸러기가 적지 않아 차를 한 바퀴 돌며 점검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약 1시간 후에 집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인근 파출소의 경찰이 급히 다녀가라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 경찰에서 조사할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파출소로 갔더니 20대 후반의 한 경찰관이 나에게 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했다.

“약 1시간 전에 ○○슈퍼에서 나오셨지요. 그때 교수님이 차로 후진하다가 뒤에 있는 차와 부딪쳤는데도 그냥 갔다고 두 사람이 와서 고발했습니다. 차 좀 볼까요?”

“그럴 리가 있어요? 내가 새 차를 사서 아주 조심조심 달리는데요. 후진할 때 차가 뒤에 있는 물체에 가까워지면 경고음이 울려 내가 알게 됩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요? 그분들 이름을 좀 알려주세요. 그럼 그분들의 차에 파손된 곳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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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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