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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리포트

인간 닮아가다 인간 밀어낼까

한·미·일 인공지능의 미래

  • 이한음 | 과학 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인간 닮아가다 인간 밀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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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vs 엑소브레인

인간 닮아가다 인간 밀어낼까

2011년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퀴즈왕들을 물리친 IBM 컴퓨터 왓슨.

다만 딥젠고엔 기존에 널리 이용되던 바둑 프로그램에 딥러닝 기술을 얹었다. 따라서 알파고보다 경험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쯤 둘이 붙어보면 흥미진진한 대국이 되지 않을까.

알파고가 국내에 부추긴 AI 열기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뭔가 성과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하다. 일본의 AI 연구자들이 달려들어 9개월 만에 딥젠고의 실력을 아마추어 수준에서 최고의 프로 기사 수준으로 향상시켰으니,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최근 뉴스에 나온 내용은 좀 뜬금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엑소브레인이라는 AI가 EBS ‘장학퀴즈’에 출연해 쟁쟁한 퀴즈왕들과 경쟁해 이겼다는 기사다. 기사들은 엑소브레인을 IBM이 개발한 왓슨과 비교했다. 왓슨은 2011년 미국의 유명한 TV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 출연해 퀴즈왕들을 물리친 바 있다. 300억 원 남짓 들여 개발한 엑소브레인이 1조 원 넘게 투자한 왓슨과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까.

하지만 왓슨과 엑소브레인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둘이 출연한 퀴즈쇼의 성격 자체가 달라서다. ‘장학퀴즈’는 “한글을 발명한 왕은?” 같은 단순한 지식을 묻는 퀴즈쇼다. 반면 ‘제퍼디!’엔 복잡한 질문이 많다. 지식과 직관, 단어 유희(遊戱) 등을 온갖 방식으로 비비 꼬아 질문한다. “힘든 시기였어요(Hard times), 정말로요! 1812년 2월 7일 미주리 주 뉴마드리드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거든요. 이 작가가 영국에서 태어난 날이죠. 누구일까요?”

즉 ‘장학퀴즈’의 질문은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하면 곧바로 답이 나오는 것들이다. ‘제퍼디!’의 질문도 검색하면 답이 나오겠지만, 어떤 단어에 중요한 단서가 있는지 간파하고, 여러 가지로 조합을 해보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차이를 일부러 외면한 채 엑소브레인이 왓슨보다 정답률이 더 높다는 식으로 발표하는 행위는 기만에 가깝다. 연구진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그런 성과라도 발표해야만 하는 이 나라 연구 환경이 딱해서 하는 말이다.



인간은 AI에 밀려날까

인간 닮아가다 인간 밀어낼까

‘장학퀴즈’를 평정한 국내 개발 인공지능 엑소브레인(가운데). [사진제공·한국전자통신연구원]

더욱이 왓슨은 바로 그런 지식과 직관을 종합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여러 단서를 모아 비교, 분석해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필요한 일에 쓰기 위해서다. 현재 왓슨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지만,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의학 진단이다. 왓슨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에선 가천대 길병원이 최초로 도입해 이제 막 쓰기 시작했다. 국내 환자들의 질병 통계 지식을 습득할수록 점점 더 정확도는 높아질 것이고, 당연히 널리 쓰이게 될 것이다.

왓슨, 알파고, 딥젠고는 각각만 생각하면 놀랍게 여겨지지만, 이젠 AI의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한 상황이 됐다. 구글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알아서 모아 파노라마 사진을 보여주고 기념 동영상도 만들어준다. 페이스북은 검색만 하면 언제 누가 어디에서 찍은 사진이든 찾아준다. ‘제이슨 본’ 같은 시리즈 영화에 나오는 고도의 컴퓨터 실력을 갖춘 전문가와 강력한 첨단 장비 없이도 얼마든지 전 세계의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아마존은 ‘이 신발을 산 당신은 이런 상품들도 좋아할 겁니다’라는 추천 방식을 써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 아예 계산대 없이 AI가 알아서 구매 물품을 계산하는 매장도 시범적으로 열었다. 애플은 음성을 인식하는 AI 비서인 ‘시리(Siri)’를 통해 손가락으로 입력하는 수고를 크게 덜었다. 네이버와 구글을 비롯한 기업들은 AI 통번역 기술에도 힘을 쏟는다.

우리가 무심코 시간을 보내는 사이 AI는 이미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기계에 밀려나지 않을까. 스티븐 호킹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인사들이 우려하듯, 기계가 인간을 몰아내거나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장기적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기술 전도사들은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찾아냈다. 체스 대국이 대표적이다. 알파고보다 20년 앞서 IBM의 딥블루라는 컴퓨터는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그 뒤로 기계가 체스 선수들을 계속 이기자, 기계 대 인간의 대국은 시들해졌다. 모름지기 대국이란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둬야 재미있으니까.

낙심했던 카스파로프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기계가 기존의 수많은 기보(棋譜)를 참조하면서 두는데, 사람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프리스타일 체스 경기가 탄생했다. 기계든 사람이든 다 참가할 수 있는 경기다. 기계와 사람이 팀을 짤 수도 있고, 기계만으로 팀을 꾸릴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이 홀로 둘 수도 있다.

그 결과 흥미진진한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아예 컴퓨터처럼 두는 사람도 나타났다. 아마 머지않아 바둑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식으로 기계와 인간이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기계에 밀려나지 않을 방법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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