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정권 목표는 고립으로부터의 탈피
- 남북관계 개선 못하면 외자유치도 못해
- 국정원 대북정보 ‘죽이는 칼’ 아닌 ‘요리하는 칼’ 돼야
- 朴정부 대북정책 방향 옳지만, 행동으로 신뢰 쌓아야
박창일 신부가 2013년 11월 12일 평양 경성유치원에서 북한 어린이 어깨를 감싸 안고 있다.
“돼지를 잡았습니다. 단고기도 잘 먹었고요. 북쪽 신자들과 술잔도 나눴어요.”
박 신부는 1996년 북한을 돕는 일에 투신했다. 2000년 1월 평양을 처음 방문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한을 찾은 한국인은 그가 유일하다.
“수십 번 방북했는데, 횟수를 세어보진 않았어요. 14년 전과 비교하면 북한도 크게 변했습니다. 가톨릭 신부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고요.”
박 신부는 2003년 설립한 NGO(비정부기구) ‘평화3000’에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평화3000은 2006년, 2007년에 각각 평양에 두유공장, 두부공장을 짓고 두부, 두유의 원료인 콩을 지원해왔다. 식량난 해소를 돕기 위한 농업 지원 사업,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리모델링 사업, 북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경기복 지원 사업 등도 벌였다.
“평화3000에서 숫자 ‘3000’은 첫째로 뉴밀레니엄, 예수님 후 3000년기를 가리켜요. 2000년 동안 싸우며 살았으니 새 천년에는 ‘평화’롭게 지내자는 뜻입니다. 둘째로는 삼천리금수강산을 말해요. 남북이 ‘화해’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상징적으로 하루에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을 기부해 지구촌 이웃들과의 ‘나눔’을 실천하자는 의미고요. 즉 평화, 화해, 나눔이 3000의 의미입니다.”
“잡아넣어, 이 새끼들아!”
박 신부는 1996년 3월 21일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200자 원고지 2매 분량의 ‘北行 쌀화물선 태풍 침몰’ 제하 기사를 읽었다.
“가톨릭 구호단체 카리타스가 북한에 보낸 쌀을 실은 화물선이 타이완 근처에서 침몰해 선원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 식량난이 어렴풋하게만 전해질 때였습니다. 사정을 알고자 홍콩에 건너가 북한을 돕는 스위스인 여성을 만났습니다. 북한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줬는데, 충격적이더군요. 한국에 돌아와 그녀에게 받은 자료를 신문사, 방송국에 넘겨줬어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어린이 모습을 TV에서 본 게 기억날 겁니다. 정부 허가를 받은 후 북측과 팩스로 소통하면서 지원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방북 초청도 여러 번 받았는데, 김영삼 정부가 승인해주지 않더군요.”
2000년 1월 평양은 을씨년스러웠다. 수은주가 영하 15도를 가리켰다. 고려호텔은 난방을 하지 못했다. 전기난로와 이불 2장으로 밤을 넘겨야 했다. 낮엔 전기를 공급하지 않았다. 밤에도 수시로 정전이 됐다. 아침에 세수하려고 물을 틀었더니 따뜻한 물이 나왔다. 옷을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비누질하려 물을 잠갔다 다시 트니 온수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
“평양의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신뢰는커녕 서로를 이해하기도 어려웠고요. 원로신부님이 탄 승용차에서 다툼이 벌어졌어요. 우리 쪽이 먼저인지, 보위부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여자 끼고 술 마시다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답니다. 원로신부님께서 권력자는 다 똑같다고 말씀했는데, 보위부 인사가 발끈해 ‘이 영감탱이가…’라면서 막나온 겁니다. 만찬 때 낮에 승용차에서 벌어진 일이 화제에 다시 올랐습니다. 언쟁이 또 벌어졌죠.”
한 북측 인사가 언쟁 도중 흥분해 “그딴 식으로 얘기하면 상을 엎어버리겠다”고 겁박했다. 박 신부도 북측의 태도에 화가 나 있었다. “엎어? 내가 엎어버릴게”라고 대꾸하면서 상을 들어다 놨다 하고는 말했다.
“잡아넣어, 이 새끼들아! 우리는 서울 가도 마누라도 없어. 자식새끼도 없고.”
결국 만찬은 깨졌다. 이튿날 오전 일정에 맞춰 호텔 로비에 내려갔더니 안내하던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방으로 올라가 기다렸다.
“로비로 내려오라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북측 사람들의 흰자위가 빨갛게 변해 있더군요. 다음번 방북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우리 일행 탓에 밤새 대책회의를 했답니다. 다음 날 나가는 화물비행기에 실어 추방하려 했다고 해요.”
북한의 조선어사전은 오랫동안 가톨릭 신부를 ‘바티칸의 앞잡이로서…’라고 정의했다. 북측 인사들은 그를 ‘박 신부 선생’이라고 호칭했다. 그는 이 호칭이 마뜩지 않았다.
“우리도 너희를 존중할 테니 너희도 우리를 존중해달라. 남쪽에서는 나를 박 신부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님’자 붙이기 싫으면 그냥 박 신부라고 해라.”
북측 인사들은 이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첫 방문을 마치고 평양을 떠날 때 순안공항으로 배웅 나온 이는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박 신부 선생, 잘 가시라요.”
박 신부는 “북측 인사들이 이젠 신부님이라고 깍듯하게 호칭한다”면서 ‘바티칸의 앞잡이’라는 표현도 ‘가톨릭의 성직자’로 고쳤다고 말했다.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는 있습니다만, 북한 사람들이 종교를 잘 몰라요. 한번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 문규현 신부냐고 묻더라고요. 신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에서 결혼 안 했다고 말하면 아가씨들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웃어요. 통일될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농담을 해줬습니다.”
북한 헌법 제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다. 북한의 ‘신앙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 다르다. ‘종교의 자유’는 ‘무종교인 또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포교·개종할 자유를 포함하고 있으나 ‘신앙의 자유’는 믿고, 기도할 자유만을 의미한다.
現場의 북한 전문가
박창일 신부는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마음을 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화3000이 북측과 10년 넘게 별다른 충돌 없이 일한 것은 신뢰 덕분입니다. 신뢰는 행동으로부터 나옵니다. 행동이 없으면 신뢰도 없어요. 우리는 약속한 것은 지키고, 못할 일은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우리 정부가 행동으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상대방을 믿는 게 상대방이 나를 믿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천주교 부산교구 가톨릭노동상담소 소장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도시빈민위원장,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15년 넘게 남북을 오가면서 일한 현장의 북한 전문가다. 책, 자료로 북한을 공부한 학자나 협상 상대로 북한을 다루는 관료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 통찰을 제공하는 몇 안 되는 북한 전문가 중 하나다. 인맥도 두텁다. 강지영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등과 10년 넘게 친분을 쌓아왔다. 북측은 지난해 6월 남북 장관급회담 협상 때 강 국장을 회담 대표로 남측에 통보했으나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의 ‘급(級)’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그는 적어도 평양의 경제 사정은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평양 문수물놀이장을 방문했습니다. 평양만큼은 과거보다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사람들의 돈 씀씀이가 달라졌어요. 예전엔 옷차림이 잿빛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화려해졌습니다. 지난해 4월 완공된 희천발전소에서 평양으로 전기를 끌어온 덕분에 밤풍경도 환해졌습니다.”
핵무기와 관련한 북측 인사들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무시당하지 않을 수준의 핵무기를 갖춰 미국의 위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재래식 무기로는 남측과 경쟁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소련이 붕괴한 것은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늘리는 경쟁을 계속하다 경제가 파탄 났기 때문이라고 보더군요. 남측은 핵무기가 없고 우리는 있으니 재래식 무기 경쟁에 나설 필요가 없다면서 군으로 가던 것을 민간으로 돌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겁니다.”
북측 인사들은 지난해 불발한 장관급회담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장관급회담을 했더라면 남북관계가 확 바뀌었을 것이라면서 ‘남측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준비가 돼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산가족 상봉뿐 아니라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줄 생각이었나 봅니다.”
요리하는 칼, 사람 죽이는 칼
“‘고립으로부터의 탈피’가 2013년 초여름 북한의 정책 목표였다”고 박 신부는 설명했다.
“김정은이 2012년 4월 15일 육성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성과물을 보여줘야 합니다. 놀이시설, 스키장을 짓고, 특구·개발구를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북한이 지난해 초여름 다급했던 것 같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 등장 이후 중국이 북한을 쪼았지 않습니까. 북한과 중국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아요. 북한 사람들은 중국을 믿지 않습니다. 지난해 남북이 으르렁거릴 때 미국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이 서해에 들어왔어요.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죠. 앞바다로 여기는 서해에서 미군이 활개 치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3차 핵실험 후 다방면에서 압박을 받았습니다.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아요. 고립에서 벗어나는 게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박창일 신부가 2013년 11월 10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장관급회담에 내각책임참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직책은 우리 식으론 차관급 정도로 봐야 합니다. 장관과 대화하기에는 사실 급이 안 맞는 겁니다. 보수 쪽에서는 이 같은 잘못된 협상 관례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북한이 지난해 봄 연일 대남 비난 공세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핵실험도 했고요. 임기 첫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은 부담이 많았을 것으로 봅니다. 정부 역시 고립으로부터의 탈피를 원하는 북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국정원이 그 정도 정보는 당연히 갖고 있거든요. 이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책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 하나이고, 정보를 이용해 북한이 무너질 때까지 더 옥죄려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상황도 비슷해요. 지난해 11월만 해도 북측 인사들은 이산가족 상봉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묶인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것을 보면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분리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을 겁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자는 쪽과 한미군사훈련이 한창인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쪽으로요.
북한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북한 처지에선 남북관계가 안정되지 않으면 외자유치 등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지난해 개성공단 재가동 협상이 7차 회담에서 합의됐습니다. 6차 회담이 끝난 후 북측이 남측의 협상 태도에 열 받아 남측 기자들을 상대로 보도자료를 뿌리며 항의하지 않았습니까. 남측이 앞선 3차례 회담 때 수정안을 내놓지 않은 채 협상에 임했다고 하더군요.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엮은 제안을 해봐야 남측이 협상을 지루하게 끌면서 관광 재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무관하게 이산가족 상봉을 받은 것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겁니다. 한국 정부는 현 상황을 관계 개선의 디딤돌로도, 북한을 옥죄는 카드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2월 12일 남북 고위급 접촉(남측 수석대표 김규현, 북측 수석대표 원동연)에서 북측은 “군사훈련 기간 중에는 예정대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원칙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양보했으니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회담 일정을 정하자고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14일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북측은 “대통령이 신뢰를 중시한다니 그 말을 믿겠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한발 물러섰다. 북한은 박 신부가 2월 6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움직였다.
정부는 숙이고 들어오는 듯한 북한을 어떻게 다룰까? 정부에서 나오는 신호는 엇갈린다. 2월 6일 외교·통일·국방부의 통합 연두 대통령 업무보고의 초점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본격 가동에 맞춰졌다.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DMZ 세계평화공원 연내 사업 착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 본격화, 사회문화 교류 및 인도적 지원 확대가 강조됐다. 사회·문화 분야 교류 확대,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통일부는 그간 이산가족 상봉을 남북관계의 ‘첫 단추’라고 강조해온 바 있다. 통일부는 또 농림 분야 지원·협력 사업을 경험과 역량을 갖춘 국제기구 및 유럽 등 해외 NGO와의 긴밀한 협력하에 추진키로 했다.
북한전문가 vs 안보전문가
‘조선일보’에 따르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해 12월 21일 원장 공관에서 열린 간부 송년회에서 박근혜 정권 임기 내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며 국정원 직원들에게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국가 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며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라는 내용의 독립군 군가 ‘양양가(襄陽歌)’를 합창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결심에 따라 대북정책은 강·온으로 달라질 수 있다. 박 신부는 남북관계가 접촉면을 넓히는 쪽으로 나아가리라고 내다봤다.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등 난제를 빼면 북한이 단기적으로 원하는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 인도적 지원 확대, 5·24조치 해제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해결,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등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통일을 대박에 비유한 것은 썩 좋은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단어를 늘 절제해서 사용하는 분인데,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려고 그렇게 비유한 것 같습니다. 대박은 대박이지 않습니까. 경제적 이익이 큰 데다, 섬으로부터 탈피해 대륙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말과 행동이 달라선 안 돼”
그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대통령을 칭찬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닮은 측면이 많다”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메시지를 전할 때 굉장히 절제돼 있어요. 함부로 말하는 적이 없습니다. 아주 훈련이 잘된 분입니다. 안보를 튼튼히 한 후 교류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방향성은 옳다고 봅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군 출신의 안보 전문가가 아니라 협상에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북한 전문가가 앞장서는 게 좋다고 봅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당시 후보를 도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틀을 짜는 데 참여한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도 신동아 2013년 6월호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햇볕정책 아류라고요?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입니다. 이명박 정부 식으로 북한을 몰아세워 굴복하게끔 하는 정책은 지금 상황에서는 위험한 데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팀이 2년여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어서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조금 더 보수적인 분도 있고 반대인 분도 있지만 토론을 거치면서 비슷비슷해졌습니다. 햇볕정책 아류라고 한 것은 거북한 용어지만, 햇볕정책이라는 게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잖아요. 포용정책, 관여정책으로 번역되지만 두 표현이 적확하지는 않습니다. 포용이나 관여와 engagement는 뉘앙스가 달라요. engagement는 접촉의 면을 넓혀가는 겁니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엮어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engagement 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햇볕정책의 아류죠.”
북한 3대 세습 권력자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농업, 축산업을 지원한다면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도 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한 주민에 대한 이해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경험이 풍부한 유럽 NGO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임기 첫해 북한을 강하게 다뤘습니다. 북한도 강하게 맞섰고요. 시쳇말로 남북이 간을 본 겁니다.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는 인도주의 문제로 회담이 열리게 됩니다. 북측은 비료가 부족합니다. 못자리용 비닐박막 확보도 시급하고요. 3월 말까지는 비닐박막이 공급돼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농업 관련 지원을 하는 유럽 NGO는 달랑 두 곳밖에 없는데, 단체의 규모도 매우 작아요. 박 대통령에게 유럽 NGO와 관련해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겁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최근까지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북측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가 말로만 인도적 지원을 얘기하고 있다면서 불만을 나타냅니다. 이명박 정부는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도 NGO들이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줬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반대예요. 된다, 된다 하면서도 승인해주지 않아요. 지원물품을 보낸 단체들의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도 제한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렵다는 겁니다.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는 겁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신뢰는 행동에서 나오는 겁니다.”
박 신부는 역대 정부의 인도적 지원 정책을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인도적 지원에 나섰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양을 확대했고요. 다만 노무현 정부 때는 중구난방(衆口難防)인 면이 있었습니다. 같은 품목의 중복 지원도 많았고요. NGO들이 앞다퉈 뛰어들다보니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더 받으려는 경쟁, 선점한 아이템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경쟁이 있었습니다.
평화3000은 북한 외에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 제3세계 국가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말로만 된다, 된다 했고요.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 대북 인도적 지원 액수가 총 118억 원인데, 박근혜 정부 첫해는 68억 원이에요. 영유아 지원사업도 의약품 중심으로 극히 일부만 진행됐습니다. 옥수수, 밀가루 같은 기초 식량은 승인을 안 해줘요. 영유아에게 약을 주려면 먼저 밥을 먹여야 할 것 아닙니까.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밀가루는 승인해줬어요. 박 대통령이 인도적 지원 문제를 수시로 얘기하다보니 앞선 정부와 달리 활발하게 지원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도 관료들의 보고만 듣고 인도적 지원이 잘 이뤄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쉽지 않아도 마음 열어야”
평화3000이 북한에 지어준 두유공장, 두부공장은 2010년 5·24 조치 이후 가동하지 않는다.
“두유, 두부의 원료인 콩 반출을 승인하지 않아 공장이 서 있습니다. 박 대통령 말대로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해야 하는데, 통일부는 인도적 지원 물자 승인을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고 관계기관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오래전 한 협동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아주 어려울 때예요. 유리창이 다 깨져 있는데, 한국에서 지원한 비료 포대로 바람을 막아놓았더군요. 포대에 인쇄된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선명했습니다. 비료포대, 밀가루포대 하나도 북한 인민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과 물자가 왔다갔다 해야 변화가 생깁니다.”
그는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들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북한 쇼트트랙 선수들은 평화3000 덕분에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 참석했다.
“북한에서는 쇼트트랙을 ‘짧은 주로’라고 합니다. 토리노 올림픽을 앞두고 북측에서 짧은 주로 선수복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운동복 하나를 못 구하나 싶었는데, 서울에 돌아와 알아보니 스케이트 날에 베이는 것을 방지하는 특수 소재로 만든 옷을 입지 않으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스케이트 날이 칼과 같답니다. 한국에서도 쇼트트랙 선수복을 만들지 못하더라고요. 수소문 끝에 일본 미즈노에 주문을 했습니다. 북측은 선수복을 받고 굉장히 고마워했습니다.”
2007년에는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리모델링사업을 진행했다. 인조잔디와 우레탄, 페인트 등을 지원했다.
“북측에서 축구장 개보수 작업을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라서 ‘보소, 시민단체가 무슨 돈이 있어 개보수를 해줍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남북이 협력해서 축구장 리모델링을 했어요. 북한은 토목공사 등을 책임지고, 우리는 인조잔디와 우레탄 등을 지원했죠. 북한이 201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후 북측 인사 여럿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다시 들었습니다. 인조잔디 덕분에 우기와 겨울철에도 훈련을 할 수 있어 경기력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북한의 장웅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지금 소치에 가 있는 한국 인사를 만났을 때도 축구장 얘기를 또 하며 감사를 표했답니다.”
박 신부는 남북관계를 부부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부가 살면 다툴 수밖에 없어요. 티격태격하는 게 부부죠. 그렇다고 남편이 부인에게 ‘내가 시키는 것만 해’라고 하면 결혼생활이 정상적이지 못한 겁니다. 북한은 특이한 곳이에요. 3대 세습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장성택 사건도 끔찍했고요. 좋은 감정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기가 쉽지는 않죠. 그럼에도 마음을 열어야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신뢰는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북한도 우리와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하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의 신뢰를 받아야 하고 우리도 북한의 신뢰를 얻어야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