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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족쇄,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라”

‘양심적 지식인의 살아 있는 표상’노엄 촘스키 인터뷰

  • 장영준 중앙대 교수·언어학

“가난한 자의 족쇄,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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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최근에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해부한 교수님의 저서 ‘Profit Over People’(‘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로 번역·출간됐다 -대담자 주)이 번역돼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만, 지식인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일찍, 그리고 강력하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온 교수께서 보시기에, 새 시대에도 신자유주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 아니면 대안 모색이 가능한지 말씀해 주십시오.

“많은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장교수 말씀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지식인들은 대개 기존 체제를 압도적으로 지탱합니다. 소수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소외되지요. 지난 20~25년 동안의 사회정책은 경제법칙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소수에 집중시키려는 국가정책에 의해 디자인돼왔습니다. 그 결과 극소수만이 동화 속의 번영을 노래하고, 나머지 대다수 국민은 가난한 잉여인간으로 살아가게 됐습니다. 극도의 빈부격차가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의해 고안된 것입니다.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지요. 물론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막을 수 있습니까?

“먼저 신자유주의 담론에는 엄청난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부문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굴복했고, 어떤 부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초국적 기업은 신자유주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데, 이 점은 마치 전통적인 자유주의와 같지요.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시장원리가 적용되지만, 부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은 그러니까 당신이 만일 제3세계에 살고 있다면 시장원리에, 경제법칙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부유한 특권층이라면 당신은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그 비용과 위험부담은 모두 사회로 이전됩니다. 이럴 수 있는 장치로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금융기관이 있습니다.



IMF는 외환위기에 처한 나라들을 ‘구제’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 국제금융기관들은 결국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들에 투자한) 투자가들을 구제한 것이고, 해당 국가 국민들에게 극심한 비용을 전가함으로써 은행가와 투자가들이 이익을 보게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험의 사회화입니다.

부유한 투자자는 위험한 투자를 하면서, 공적 부문이 그 위험을 보전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IMF와 같은 기관이 나서는 것이지요. 미국은 생산과 연구개발에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따라서 비용도 사회적 전이가 용이하지만, 이득은 사기업이 차지합니다. 사기업들은 시장원리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사기업은 본질적으로 전체주의적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기업은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오직 경영자나 소유자만이 명령과 결정을 내리고, 아랫사람은 그저 그것을 집행할 뿐입니다.

초국적 기업들은 정부와 달리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웬만한 국가들보다 덩치가 더 크고 강력합니다. 소위 무역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40~50%가 이들 초국적 기업의 내부거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 말은 이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통제무역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기업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서 가령 IBM과 도시바가 합작을 하기도 합니다. 시장원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조직적 프로그램이 이러한 합작을 통해 강화됩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합작 기업들은 강력한 국가의 공공지원을 받고, 위험비용은 사회로 이전시키며, 시장원리를 회피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고안해냅니다. 이렇게 해서 신자유주의는 현실이 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러면 대안은 없는가? 시장원리가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부유층과 특권층에는 무용지물인 신자유주의에 대안은 없는 것일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누구든지 시장원리에 복종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자들은 절대로 시장원리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따라서 올바른 대안은 모든 사람이 시장원리를 받아들이도록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안이 강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행가나 투자가에게만 이익이 돌아가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분배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IMF 이후, 누가 한국을 소유하는가”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모두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아주 상이한 대응방식을 취했습니다. 즉 한국은 IMF의 가혹한 요구조건들을 수용한 반면, 말레이시아는 IMF의 요구사항을 거부했지요. 현재 두 나라는 모두 외환위기를 탈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교수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제금융을 받은 사람은 한국민이 아니라 국제 투자가들입니다. 한국민들은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은행가와 투자가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적 비용을 국민이 떠안은 셈이지요.

말레이시아는 다른 방식을 취했습니다. 장교수도 아시겠지만, 그들은 자본의 국외 유출을 통제한 결과 모든 경제학자들의 비난을 초래했지요. 경제학자들은 말레이시아가 재난을 자초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딴판이 되었어요.

한국 경제는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누가 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 말은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외국인 소유주에게 팔려나갔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위기에 빠져들자 저평가된 한국의 자산이 싼 값에 팔려나갔어요. 마치 떨이시장 같았습니다. 생각해봅시다. 30년 넘게 한국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기업과 재산이 서구 세계에 헐값에 팔려나갔던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기본적으로 상이한 경제기반을 가지고 있기에 단순 비교는 무리일 것입니다. 3년 전 동아시아가 겪은 위기는 결국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원인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아시아의 위기는 멕시코 위기 몇 년 후에 발생했고, 멕시코 위기는 러시아 위기, 브라질 위기에 뒤이어 터졌습니다. 사실 자본 흐름이 자유로워진 이후 외환위기는 주기적으로 발생해왔고, 아시아 위기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 세계무역기구(WTO)나 IMF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강요하는 금융기관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자간 투자협정(MAI)은 한국 언론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자간 투자협정이 조인되면 가령 마이크로소프트나 제너럴 모터스(GM) 같은 회사에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지요.

“OECD나 서방선진7개국(G7) 등의 강력한 경제집단은 언론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자간 투자협정이 언론에 알려지면 통과시키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다자간 투자협정이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기업 수뇌들은 협정을 비밀리에 통과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요.

그러나 다자간 투자협정을 통과시키려는 시도가 언론에 알려지자 그들은 일단 한발 물러섰습니다. 지난번 시애틀 WTO 회의에서 다시 한 번 협정을 통과시키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됐고, 그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요. 유럽연합(EU)은 현재 변형된 형태의 다자간 투자협정을 비밀리에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협정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믿지만, 협정이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자간 투자협정은 기업의 투자결정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개별 국가가 경제적 성장이나 결정에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비 수준이나 근로기준에 대해서, 또는 어떤 곳에 투자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개별 정부는 아무런 권한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다자간 투자협정이 발효되고 나면 어떤 산업을 발전시키고, 어떤 부문에 투자를 할 것인가 등등이 정부의 권한을 벗어나게 됩니다. 모든 결정권이 투자가들의 손아귀에 귀속되어, 그들 천하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미 사람과 똑같은 존재로서 모든 권한을 가진 사기업들이 다자간 투자협정하에서는 인격체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가령 제너럴 모터스가 멕시코에 지사를 설립하면, 멕시코 지사는 멕시코 회사와 똑같은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자연인은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장교수가 뉴욕에 와서 미국인과 똑같은 권리를 달라고 하면, 아마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아마 2초 만에 감옥에 갈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사기업이 그렇게 하면 같은 권리가 주어집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장 교수나 내가 이런 사기업들의 행태가 못마땅하여 고발하고자 해도 고발할 권한이 없는 반면, 사기업들은 개인을 고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사기업들은 인격체의 권한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자간 투자협정의 본질입니다.”

NGO의 역할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나라입니다. 경제회복과 빈부격차의 해소 등이 시급한 과제겠지요. 다시 말하면 사회체제의 모델로 미국식과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의 지식인들은 교수님의 정치분석에 동의하면서도 미국의 체제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데, 유럽 지식인들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의견에 동의하는 유럽의 지식인들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의 사회체제가 유럽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럽, 특히 독일이 미국보다 더 나은 사회안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는 유럽사회가 더 역동적이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유럽의 사회체제는 교회나 봉건제도 등과 같은 반동적 기관들의 작용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미국은 그렇지 않았지요. 미국은 극도로 비즈니스화한 사회이고, 유럽식 사회안전망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유럽사회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은 현재 권력과 재산을 (국민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는) 중앙은행에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기본적으로 은행에 기반을 둔 연합체이고 유럽 중앙은행은 어떠한 미국은행도 가지지 못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만 이러한 지적은 이미 대표적 주류 우익 언론인 ‘포린 어페어즈’도 지적한 것입니다. 유럽은 거대한 권력을 중앙은행에 넘김으로써 반민주적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문제들도 많습니다. 기존 사회안전망이 점차 후퇴하고 있는 것이 한 예입니다.”

―지난번 시애틀에서의 WTO 회의에서 다자간 투자협정이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컸습니다. NGO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나 할까요. 교수께서는 NGO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맞습니다. 비정부기구의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자간 투자협정은 지난 3년 동안 비밀리에 진행됐으므로 아무도 그 실체를 몰랐었지요. 자료 공개를 거부해오다가 기업계가 책자를 발간하게 됐고, 언론이 뒤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언론도 그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풀뿌리 시민단체들에 의해 비밀이 공개됐습니다. 다자간 투자협정이 비밀리에 진행돼왔기에 한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NGO의 역할은 앞으로뿐만 아니라 언제나 중요합니다. 한국의 노동권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것이 거저 주어진 선물일까요? 아니면 신의 선물로 주어졌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풀뿌리 조직과 민중의 투쟁에 의해 쟁취됐습니다. 과거에나 현재나 역사는 늘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봉건주의가 무너진 것은 왕과 여왕들이 권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자간 투자협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원도 없고 언론의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상호 연결된 풀뿌리 조직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권력이 집중된 집단으로 하여금 후퇴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시애틀 사건은 단지 한 예에 지나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이런 풀뿌리 조직들이 올 봄에 다시 한 번 전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 경제각료회의를 의미한다.-대담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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