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조기유학 붐, 실패 없는 ‘맞춤유학’이 뜬다

  •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1-30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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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의 성공조건은 뚜렷한 목표의식, 올바른 유학시기, 어학 등 기초학력 구비, 학비조달 능력, 충분한 준비기간이다.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게 정설이지만, 그 나라 언어에 쉽게 적응하는 만큼 잃는 것도 많다. 자신의 성격과 목표에 맞는 학교와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성공 조건이다. 》
    IMF 위기가 아니었다면 90년대 초반 ‘떠나자’ 열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을 것이다. 한때 “유학이 과외비보다 적게 든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으면서 조기유학은 중산층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불황이 깊어지던 97년부터 조기유학생(초·중·고교 유학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96년 1만2473명이던 조기유학생이 98년에는 1만738명으로 줄었다. 여기에는 해마다 늘고 있는 유학적자를 이유로 정부가 미성년 무자격 자비유학생에 대한 외화 송금 제한과 병역제재, 학부모에 대한 세무조사 등 강력한 봉쇄조치를 취한 것도 원인이 됐다.

    유형별 감소경향을 살펴보면 조기유학 거품이 걷히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정식으로 유학을 인정받았거나 부모와 해외파견근무로 조기유학을 하게 된(파견동행) 경우, 이민 입양 등 해외이주로 인한 조기유학생 등은 경기변동에 관계 없이 오히려 늘거나 소폭으로 주는 데 그쳤다.

    반면 유학인정을 받지 못한 불법유학자는 96년 3517명에서 98년 1129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에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학생수도 크게 늘었다. 96년 7588명이던 귀국학생이 97년 1만215명으로 늘자 언론은 일제히 ‘편법 조기유학생 귀국 급증’ ‘조기 유학생 컴백 홈 열풍’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기유학생들의 ‘U턴현상’을 취재하던 중 만난 한 유학원 관계자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그는 “조기유학은 대세다. 정부의 규제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그 숫자가 줄어들지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조기유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시기를 늦추고 있을 뿐”이라며 정부의 유학 제한조치에 의문을 표했다. 실제로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자 그의 말대로 조기유학은 다시 꿈틀거렸다.



    98년 귀국한 조기유학생은 9511명으로 96년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소추세가 완화했고 99년 8월19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로 조기유학 장벽은 사실상 사라졌다. 미국 고교에서 조기유학중인 김모군 등 2명이 병무청을 상대로 낸 이 소송에서 법원은 “교육부장관이 발부하는 ‘국외유학인정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외여행연장 가신청을 거부한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 당황한 것은 교육부. 결국 국민의 교육선택권 제한에 따른 불만 및 민원을 해소하고, 지식기반사회에 부응하는 창조적인 국제 인력 양성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현행 조기 자비유학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자비유학을 규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피지 등 극소수 개발국가뿐이라는 것도 변명처럼 밝혔다.

    조기유학이 전면 허용되는 시기를 놓고 일부 언론에서 3월초라고 못박기도 했으나 교육부는 아직 당정회의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포시기는 확실치 않으며 범위도 전면허용일지 단계적 허용일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무용지물이 된 규정에 얽매여 계획을 변경할 사람은 없는 듯하다. 2월초 방문한 강남 한 유학원에서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미국 유학수속을 진행중이었다. 이 여학생의 부모는 3년 전부터 유학을 준비했고 그동안 규제 때문에 시기를 늦췄지만 이제는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학생의 성적증명서나 보호자의 재직증명서 등 비자발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뿐만 아니라 유학 지역과 학교까지 결정한 것을 보아 상당기간 준비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조기유학에 대한 반대여론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자비유학 규제완화 방안’ 공청회에서는 무분별한 조기유학으로 학교가 공동화하고 국제수지적자가 가중되며, 국내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해외로 도피해 현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탈선하는 등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으로서 주체성 형성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최근 ‘한국애들 정말 불쌍해’라는 깜찍한 제목의 책이 나왔다. 96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떠난 이수경 학생이 지난 3년 동안의 캐나다 학교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수경이가 무엇을 배우고 숙제는 어떻게 해갔는지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외국생활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 수 있는 재미있는 기록이다. 수경이는 캐나다 생활이 너무 신난다고 하면서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할 때 공부하고, 원할 때 놀고, 원할 때 운동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다 즐거워질 텐데”라고 적고 있다. 바로 이런 교육환경에 대한 동경 때문에 너도나도 조기유학을 떠났다.

    캐나다로 간 학생들이 모두 수경이처럼 학교생활이 신난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같은 책에서 수경이는 ‘H.O.T와 똑같은 헤어어스타일을 하고 물 좋은 노래방을 찾아 몰려다니면서 하급생에게 인사를 강요하거나 욕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썼다. 수경양의 아버지 이광수씨가 지난 4년 동안 지켜본 한국 학생들은 영어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탈선의 길로 빠져들곤 했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 조기유학생은 물론이고, 이민자 자녀들조차 쉽게 영어가 늘지 않아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 아이들은 주로 한국인과 어울려 영어가 서툴다. 만약 영어를 빨리 배울 목적으로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생활하면 향수병이나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부딪히는 낯선 환경은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학업 성적이 떨어지고 외로움까지 겹치면 아이들은 쉽게 좌절하고 탈선의 길에 빠진다.”

    이씨는 캐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부모가 반대해서 돌아갈 수도 없다고 처량하게 말하는 아이를 만난 적도 있다. 그 학생은 이제 한국에 돌아가봤자 대학에도 못 들어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우울한 얼굴을 했다.

    수경이네가 사는 아파트에는 한국에서 조기유학 온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 꽤 된다. 늦은 밤 어린 남녀 학생들이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잡담을 하다 이씨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피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자 부모가 서둘러 캐나다로 유학을 보낸 한 남학생도 적응에 실패했다. 한국에서 유학온 여대생과 동거하다 들통이 나서 부모 손에 끌려 강제로 귀국했다. 그때 여학생은 임신상태였다고 한다.

    이광수씨는 “자식을 나무라기에 앞서 한국에서도 공부를 제대로 못하던 아이가, 그것도 늦은 나이인 11학년(고등학교 2학년)에 유학 와서 영어를 잘 배워 대학에 들어가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 거라는 부모들의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그 부모는 아들이 영어라도 잘 하기를 바라고 보냈을지 모르지만 아들은 영어 배우려다 인생을 망쳤다.

    이처럼 도피성 유학생이 몰리는 학교는 캐나다 내에서도 대부분 2,3류로 꼽힌다. 그래서 캐나다 학교 중에 한국 유학생을 아예 받지 않거나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선별해서 받으려는 학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유학과 실패하는 유학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흔히 유학의 성공조건으로 뚜렷한 목표의식, 올바른 유학시기, 어학 등 기초학력 구비, 학비조달 능력, 충분한 준비기간 등을 꼽는다.

    그러나 유학생의 상당수가 첫 번째 뚜렷한 목표의식에서부터 문제점을 드러낸다. 유학을 보내는 부모나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영어. 조기유학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 영어권 국가로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학이 외국어 우수자에게 특별전형을 실시하자 토플 공부하러 유학 간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모두 영어 한 가지만 잘 하면 된다는 왜곡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작 중요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라든가 ‘장래 희망이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목표는 빠져 있다. 어릴 때 영어를 배워 잘 하게 되는 만큼 모국어와 모국의 문화를 잊는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

    장덕기씨(내과의원 원장·40)는 부산에서도 자식 잘 기르는 아버지로 유명하다. 아들 현지(초등학교 6학년)와 딸 현빈(4학년)이는 1년 조금 넘게 호주 시드니 페넌트힐 공립학교를 다녔다. 물론 유학지에는 어머니 염정애씨(40)가 동행했다.

    현재 두 아이의 영어실력은 CNN을 시청하고 브리핑을 할 정도. 현재 학원을 다니거나 학습지를 하지 않고, 대신 영어를 잊지 않도록 전화 영어학습만 하고 있다. 아버지가 직접 지도한 컴퓨터 실력은 웬만한 전문가 수준. 현재 아이들 방에는 컴퓨터가 5대 있는데, 한 대는 기업체용 운영체계인 윈도NT를 설치해 나머지 PC를 근거리통신망(LAN)으로 연결해 사용한다. 무선 햄(HAM)으로 친구들과 자유자재로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컴퓨터 게임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이다. 여기에 어릴 때부터 훈련된 바른 예절로 보는 이마다 자식 교육 잘 시켰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이런 장덕기씨에게 자녀교육 문제를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한번은 어느 어머니가 “나도 아이들을 유학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장원장은 “왜 유학을 보내려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 어머니 대답은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러”. 장원장은 “영어와 컴퓨터 배우려고 조기유학 가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클 수도

    “우리 아이들이 CNN을 볼 줄 안다고 부러워하고 자기 아이들도 유학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말을 잘 하는 것과 학업능력은 또다른 것인데 무조건 영어만 잘 하면 좋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영어 못해서 죽는 사람은 없어요. 물론 우리 아이들도 호주에 있는 동안 영어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게 시간을 되돌릴 기회를 준다면 조기유학은 보내지 않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영어라도 확실히 배우라고 아이들을 보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학을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았어요. 아이들이 1년 반 정도 있다 귀국했는데 한국어를 제 또래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족관계를 상실하는 것이죠. 아내가 아이들과 호주에 있는 동안 저는 한국에 머물면서 전화 팩스 이메일로 수시로 체크했어요. 나중에는 화상전화까지 연결했는데도 아이들이 차츰 아버지를 잊어가고 나중에는 찾지도 않게 되더군요. 겁이 났죠. 영어는 뉴스를 보는 수준이면 충분하니까 빨리 귀국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원래 4~5년 예정이던 유학을 2년도 못 채우고 돌아오게 한 겁니다.”

    장원장은 결론적으로 조기유학에 반대한다. 더욱이 아이들만 달랑 보내는 유학은 절대 반대다. 아이들은 부모 품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게 그의 교육적 소신이기 때문이다.

    장원장네 남매의 지난 겨울방학 목표는 ‘스키를 제대로 배우자’였다. 장원장은 남매에게 용돈을 준 뒤 아이들끼리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삼촌댁에 머물다가 용평으로 가서 스키를 배우고 부산 집으로 돌아오도록 했다. 그가 말하는 산교육은 바로 이런 것. 자녀교육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교육은 유행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조기유학 시기가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다시 초등학교로 당겨지고 있는 것은 한 살이라도 빨리 보내야 쉽게 언어를 익힌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염려하는 부모는 드물다. 미국에서 28년째 살고 있는 윤주환씨는 “조기유학은 엄청난 모험이며 자녀를 걸고 큰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조기유학을 하면 미국 문화를 골고루 접하고 입으로만 하는 영어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영어가 되죠. 그만큼 미국화했다는 표시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영어를 잘 해야지 미국화한 한국인으로서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그것은 재산이 될 수 없습니다.”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가

    미국에서 중학교부터 다녔다면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부터 다녔다 해도 어느 정도 미국화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특히 부모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미국생활을 해본 유학생 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학생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미국에 정착하려 하죠. 유학 후 궁극적인 목표가 그 나라에 정착하는 거라면 분명 조기유학이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면 무조건 빨리 온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 유학 후 한국에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현지에 남을 것인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가에 따라 유학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다음은 윤주환씨가 설명하는 유학시기와 영어실력의 상관관계.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온 사람은 쉽게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에 도달한다. 이들은 미국에서 능력에 따라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다. 특히 방송기자 신문기자 변호사 등 말로 먹고 사는 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한국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귀국하더라도 적응에 실패하거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너무 미국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유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영어도 어려움 없이 구사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을 가능성도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내에서 변호사나 컨설턴트 등 말과 글로 설득하고 논박하는 직업을 갖기가 어렵다. 잘못하면 영원히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영어의 완성도만 생각한다면 초등학교 졸업 후 유학하는 게 좋다는 결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오면 영어로 어려움을 겪지만, 한국에서 영어기초실력을 단단히 다진 사람이 1년 정도 랭귀지 코스를 마치면 대학에 입학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유학생 중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왔지만 현지에서 다시 1~2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문제를 극복하고 훨씬 좋은 조건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학진학을 못하고 유학을 오는, 소위 ‘도피성 유학생’ 중에는 미국 하류 대학에서 헤매다가 겨우 졸업장만 받아간다. 몇 년씩 미국에 살았어도 그들의 영어는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에 머문다.

    원촌중학교 김지수 교장은 “진정 유용한 인재는 높은 수준의 모국어 능력과 모국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외국어능력과 외국문화의 이해를 겸비한 사람”이라며 “외국어능력과 외국문화 이해는 현지인을 능가하기 어렵고, 모국어와 모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모국에서 공부한 사람을 능가하기 힘든 것이 조기유학생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조기유학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도피성 유학과 그들의 탈선이다.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언론의 시각은 “공부도 못하는 놈들이 부모 잘 만나 외국 나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귀중한 외화만 낭비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우등생들에게는 한없이 호의적이다. 결론적으로 우등생이 유학 가는 것은 당연하고, 열등생이 유학을 가면 도피성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해외유학정보센터의 박창원 원장이 말하는 실패 없는 유학의 조건은 성적이 아니다.

    박원장은 학교의 성적증명서는 그 아이의 가능성을 10%밖에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머지 90%를 찾아내기 위해 반드시 객관적인 검사(Kedi-Wisc와 직업적성진단검사 등)와 면접을 거쳐 그 결과를 가지고 유학여부에서 대상 국가, 학교를 결정한다. 다음은 한국에서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자가 될 뻔한 아이들이 적절한 유학지와 학교 선정을 통해 성공적인 유학을 하고 있는 경우다.

    ▲ 중학교 3학년 때 유학을 떠난 재영이는 툭 하면 싸우고 인사도 잘 안하는 퉁명스러운 아이였다. 지능은 평균수준, 학업성적은 바닥권이었다. 직업적성검사결과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차근차근 분석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직업은 고도의 학업적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적합하지 않으며, 기계를 만지거나 신체를 움직이는 분야가 적성에 맞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영이의 유학지는 영국으로 결정됐다. 영국은 단 한 명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중심의 교육을 하며 생활예절을 중시하기 때문에 재영이처럼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데 적합하다.

    어느날 재영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유학원으로 연락이 왔다. “이 학생이 좀처럼 인사도 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구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유학원측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성격이 그렇다”고 귀띔했다. 그날부터 담당교사는 매일 재영이가 일어나기 전에 기숙사로 찾아가 먼저 ‘굿 모닝’ 하고 인사를 했고 그 일이 매일 반복됐다. 운동장에서 마주쳐도 교사가 먼저 학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까 재영이도 자연스럽게 교사를 만나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할 줄 아는 아이가 됐다.

    ▲ 고등학교 1학년 은철이의 검사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말이 없고 우울한 성격에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했던 은철이는 지능검사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규 학교교육에서 습득해야 할 것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규범이나 관습적인 행동기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미성숙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회생활이 어려운 지진아였다. 은철이는 교사와 학생이 1 대 1로 공부하는 영국 학교를 택했다. 차분한 데다 상상력이 풍부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직업훈련 중심의 학교다.

    ▲ 중학교 3학년 때 검사를 받은 종현이는 자신에 대한 기대수준은 높으나 오히려 이런 특성 때문에 자기 능력을 평가받는 상황에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됐다. 논리적 추리력도 평균 이하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종현이의 특기는 스포츠. 골프는 청소년대회 우승 수준이었다.

    종현이에게 적합한 유학지는 운동능력도 학업과 똑같이 높이 평가해 주는 미국으로 결정됐다. 그것도 종현이의 성적으로는 입학이 불가능한 명문고를 택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큰 종현이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었다. 물론 학교측은 성적 등의 문제점을 들어 종현이의 입학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당신 학교의 방침은 옳지만, 한국 학교의 성적표가 이 아이의 전부는 아니다. 일단 학생의 활동을 지켜본 후 정식 학생으로 받아들일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조건부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종현이는 이후 학교 농구 대표선수로 활약하면서 정식학생이 됐다.

    물론 유학이 성공하려면 학비와 생활비 등 연간 4000만원까지 들어가는 유학경비를 지불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이 필수다. 지난해 7월 뉴질랜드에 조기유학을 간 14세 소녀가 1년 동안 한국인 위탁보호자에게 감금당한 채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소녀의 어머니는 1년 전 보호자에게 아이를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송금을 하지 않아 보호자는 소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게 한 뒤 성적 학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으로 무리한 유학이 부른 끔찍한 인권유린 사건이었다.

    엘리트 유학원 최정태 원장은 “소문만으로 학교를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학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커리큘럼 등을 보내달라고 해서 그 학교가 내 아이에게 잘 맞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밖에 보호자 선정, 이민자나 유학생을 위한 영어연수코스(ELS)가 개설돼 있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실제로 사립학교 중에는 랭귀지 코스가 있는 학교보다 없는 학교가 더 많다. 또 기숙사가 있는 학교 중에서도 주말에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맛보기 유학 교환학생

    자식을 조기유학 보내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가 현지 적응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을 때의 좌절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맛보기 유학 기회인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나 각종 연수, 서머스쿨, 홈스테이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게 좋다. 특히 1년 정도로 장기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미리 현지 적응력을 테스트하고, 정식 유학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계기가 된다. 미국 공보처와 일본 문부성이 후원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학생을 성적만으로 선발하지 않고 해당 언어의 준비도와 생활태도 등을 중시하고 다양한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들도 도전해볼 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 미국 공보처에 등록된 비영리단체 AYUSA(Academic Year in the USA)인터내셔널이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은 6개월~1년 동안 미국 가정에 숙식하며 인근 공립중·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청소년에게 미국 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체류 기간에 별도의 학비와 숙박비는 없고 참가비와 보험료 수속 및 관리비를 합쳐 (약 600만원 6개월 약 500만원)이 소요된다..

    자격은 만 15~18세 미만의 중고생으로 학업 성적은 상위 20% 이내. 사교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미국 문화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전달하는 민간외교사절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한다. 영어평가는 G-TELP(듣기, 어휘, 독해)로 하는데 내신성적이 상위 20% 이내인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응시했을 때 75% 정도가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연세대 재료공학부 1학년에 재학중인 임원배군은 97년 고등학교 1학년 재학중 이 프로그램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서스퀴아나시 공립학교의 교환학생이 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차에 미국에서 보낸 8개월이 삶에 활력을 주었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학교여서 영어실력이 비약한 것을 물론, 백인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공부하는 방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귀국 후 한국과 미국의 학기가 맞지 않아 고교 1학년을 다시 다니는 등 적응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외국 고등학교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이 오히려 대학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99년 처음 실시됐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초청가정에서 가족처럼 생활하고 근처 공립 혹은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며 일본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학교 공부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다. 1개월부터 12개월까지 여건에 따라 기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일본어 수준은 2년 정도 일본어를 공부하고 한문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 된다. 학생이 일본어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미술, 음악, 체육, 수학, 영어 중심으로 특별시간표를 만들어준다. 자격은 만15~18세 고등학교 재학생. 성적은 평균 C학점 이상이면 된다. 학비와 숙박비는 무료고 참가비·학생수속 및 관리비로 약 600만원(6개월 약 500만원)이 든다.

    고등학교 3학년 진급을 앞두고 과감하게 일본교환학생 선발에 응시한 임인아양은 연수 도중 아예 한국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지금은 검정고시를 준비중이며 앞으로 일본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할 계획. 인아양이 다닌 학교는 도쿄에서 1시간 반 떨어진 아시카가시 여고(공립)로 시설만 보면 한국의 웬만한 사립고등학교보다 못한 수준이었다고. 그러나 그가 이 연수로 얻은 것은 자신감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반 석차가 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공부에는 자신이 없었다. 대신 글쓰기, 노래, 그림 그리기가 그의 특기였지만 석차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 학교에서는 작은 일에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외국인 대상 일본어 스피치 콘테스트에 출전해 우승한 것도 좋은 추억이 됐다.

    조기유학은 필요 없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는 98년부터 외국대학 진학 희망자를 선발해 해외유학 프로그램(Study Abroad Progrm)을 진행하고 있다. 주 4일 방과후 3시간씩 토플과 미국 대학진학을 위한 수능시험(SAT)을 집중적으로 준비해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과 같은 아이비 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최근 조기유학 추세와는 정반대로 고교3년 과정을 국내에서 마친 뒤 유학을 떠난다는 조건 아래 이 프로그램에 들어올 수 있다.

    유학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고 품성이 바르며 부모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는 학생 그리고 무엇보다 토플 600점 이상, SAT 1600이상, 내신등급 우 이상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3학년 9명, 2학년 13명, 1학년 26명이 선발됐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영어를 배우기 위한 조기유학은 필요 없다. 이미 영어가 그 수준은 넘어섰기 때문. 3학년생 중 첫 번째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입학이 결정된 오영근군은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전혀 없고 순전히 한국에서 쌓은 영어실력이지만 별도의 랭귀지 코스 없이 곧바로 학부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오군과 함께 유학을 준비해 온 다른 학생들도 4월이면 입학대학이 결정될 예정이다. 학교는 학업성적과 영어 외에 아이비 리그 대학 진학에 필수적인 봉사와 대외활동까지 주선해준다.

    이 학교의 국제교류부장인 김수균 교사는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세계적인 인물로 키우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기유학에 반대한다”면서 “고교과정은 최소한 국내에서 마쳐야 한국에 대한 역사의식을 갖고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프로그램이 조기유학을 부추긴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기유학 허용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있다 해도 이미 대세는 ‘자유화’ 쪽으로 기울었다. 국민들은 강제적인 규제보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와 선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역시 조기유학 수요자를 국내로 끌어들일 대체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까지 규제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육부 변대룡과장(재외동포교육담당관)은, 개정법이 공포되는 대로 유학안내 책자를 배포하고 시도교육청내에 유학상담센터를 설치하는 등 가급적 실패를 줄일 수 있는 적극적인 유학정책을 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제 ‘쉬쉬’하고 보내는 도피성 유학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로 당당하게 떠나는 조기유학시대가 시작됐다.

    황용길 박사가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아동이 부모의 품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직접 겪고 살아보게 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조기유학은 가치가 있습니다. 예쁜 자식은 험한 여행을 시켜야 한다는 교훈이 있지 않습니까? 또한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외국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적인 가치도 있지요.

    외국유학을 통해 얻어지고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사회와 경제발전에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시 해외유학을 거친 우수한 인력이 학계와 산업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조기유학 전면 허용은 이같은 바람직한 결과 대신 귀중한 국력의 낭비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기유학의 행선지가 문제입니다. 유학희망자 절대 다수가 미국과 영국 또는 호주를 비롯한 미주 문화권 국가를 택합니다. 이들 나라의 물리적인 교육환경은 분명 한국보다 우수합니다. 그러나 교육효율의 평가척도인 국가별 학업성취 기준에서 볼 때 한국교육은 이들 구미의 국가를 압도합니다. 한국의 초·중·고 교육의 양과 질은 아직까지는 세계적으로 우수하지요. 따라서 현재의 조기유학 개방정책은 공부 잘하는 나라의 아이들을 공부 못하는 나라로 보내는 형국입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고 이들을 도피시키는 셈입니다.

    유학간 지 얼마만에 영어를 조잘대니 신통해 보이기도 하고 똑똑해 보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기 좋고, 살기 좋다고 학교까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초중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습득해야 할 기초학습능력의 절대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조기유학은 어쩌면 아이들을 외국의 저질학교로 내몰아 종국에는 아예 바보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체류국 학교의 저질교육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모국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습하는 내용을 배우지 못한다는 점도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적게 배우는 동안 본국의 아이들은 많이 배우고, 그러는 동안 학업성취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집니다. 한국아이들은 외국 가도 잘 하지만, 외국 살던 아이들은 한국 오면 견디지 못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유학의 목적이 문제입니다. 대학과정 이상의 유학은 선진 과학기술과 지식의 습득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나 조기유학의 경우는 대부분 외국어능력, 특히 영어사용능력의 신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동들의 외국어 습득속도는 놀랍도록 빠르니까요. 그러나 습득속도가 빠른 만큼 상실속도 역시 빠릅니다. 귀국한 후 잠깐만에 까맣게 잊고 마는 것이 외국어입니다.

    또한 외국어를 배우는 만큼 모국어 습득기회가 줄어듭니다. 영어 배우려다 우리말 못 배우는 희한한 경우입니다. 이 아이들이 모국에 돌아와서는 어찌 될까요? 영어도 완벽하게 못 하고 모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국적불명의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모국의 풍속과 관습을 배우지 못한 관계로 사회생활에 불편을 겪을 수도 있지요. 아이가 다시 돌아와 살아야 하는 곳은 한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국에서 살 아이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하지요.

    셋째, 영어가 곧 국력이라는 혼돈된 논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어를 잘 하면 나라가 잘 되리라는 믿음은 몽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과 인도의 예를 보십시오. 이들 국가는 가난을 면치 못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보다 영어를 잘해서 세계의 자동차와 전자기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을까요? 국민 모두가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좋은 물건은 잘 팔리게 되있으니까요. 능통한 외국어를 구사하며 영업과 판매를 담당할 사람들은 소수로 족합니다.

    유학생 개개인의 상황이 다른지라 한 마디로 찬반을 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유학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이 결여돼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대학과정 이상에서 유학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제 믿음이며 이 과정 역시 일정한 선발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돈 있다고 무조건 내보내서도 안 되고 능력은 있으나 형편이 안 되는 학생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유학문을 열든, 학교를 열든 사회가 열리지 않고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또한 사회가 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취업 기회가 열려야 합니다. 한국교육의 문제는 풍족한 취업 기회를 창출하지 못하는 정치의 무능에서 시작됩니다. 일자리가 워낙 없으니 일류대학을 가야만 하고,. 경쟁에 처지는 이들은 외국에 나가 국내 재진입을 꾀하지요. 요즘의 조기유학은 오히려 모국의 일류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니 차라리 처량할 지경입니다.

    정치가 정신을 못 차리는 한, 어떤 방도라도 효과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기유학 허용이라는 미봉책도, 학력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현행 대학입시정책도 소용이 없을 겝니다. 어차피 전국민의 바보화 정책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모든 일에는 필연적으로 정원이 있습니다. 정해진 수의 기회를 놓고 다툴 수밖에 없음이 사람 사는 일입니다. 그런데 직장 정원은 늘리려 않고 학생수만 불리니 계속 아우성이지요.

    어쭙잖은 세계화 바람에 국내의 기초학문이 죽고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기초학문은 산업과 경제 그리고 문화발전에 원동력입니다. 외국유학에 소모되는 엄청난 재정은 오히려 국내기초학문의 보강과 부흥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장도 늘어나고 국민의 생활수준도 향상되지요. 그래야 사회가 열리고 학교가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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