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아시아 패권과 세계 패권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대만해협에서 1996년에 이어 또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미 하원이 대만안보강화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팽팽해진 미·중·대만의 트라이앵글은 어떻게 조율될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옛 친구를 잊지는 않겠습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극비리에 베이징으로 보내면서, 또 한 사람의 밀사를 대만에 파견한 것이다. 닉슨이 ‘죽의 장막’을 걷어내면서 마음에 걸렸던 것 중 하나는 부통령 시절부터 쌓아온 장개석 총통과의 친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언질을 전한 이듬해 닉슨은 직접 베이징을 방문했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정식 수교하면서 대만을 저버렸다. 그러나 미 의회는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수 있는 ‘대만관계법’을 제정하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중국, 미국, 대만의 비정한 삼각관계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2월1일 미 하원에서 가결된 ‘대만안보강화법’은 대만관계법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안보강화법의 하원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대만은 즉각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중국 주권에 대한 침략이자 내정간섭”이라며 대만안보강화법안이 ‘법’이 된다면 미·중관계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엄포성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의 ‘양국론’ 발언으로 긴장되기 시작한 대만해협은,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 날아든 대만안보강화법안 파문으로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리덩후이 총통의 양국론 발언 이후 중국에서는 대만 ‘통합(해방)’의 가장 큰 걸림돌로 미국을 지목하고 있다. 미·중 수교 논의단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상당 부분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에서 비롯된다.
1979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중국과의 막후 교섭에서 미·대만 간에 이미 체결된 무기거래는 이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로 중국 수뇌부를 설득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16자 방침’(신뢰를 증진하고 귀찮은 것을 감소하며, 합작을 증진하고 대립을 피한다)에 의거해 미국과 대만 간의 무기거래와 안보공조는 ‘세상이 다 아는 비밀’로 덮어둔 채 미국의 손을 잡았다. 승산 없는 대결보다는 실용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대만관계법은 중국의 묵시적인 합의 아래 탄생하게 됐다. 대만관계법은 대만의 합법적인 방위욕구 충족과 대만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적으로 제정됐으며,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조달하고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1999년 미 의회는 대만관계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대만관계법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했다. 99년 3월부터 무르익은 ‘대만 담론’은 5월18일 텍사스주 하원의원인 톰 드레이가 대만안보강화법안을 제출하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하원을 통과한 대만안보강화법안은 총 6조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제2조 ‘사실 인정’에서는 대만이 처한 현실과 법률 제정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내용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대만안보강화법안의 향방
첫째, 대만은 1949년 이후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민주주의 국가, 시장경제 국가로서 중국과는 차별된다.
둘째, 중국의 군 현대화작업과 1996년 대만해협 사태 등 무력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만이 미국의 협조로 자체 방위를 도모하는 것은 아태지역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 미국이 대만의 자유와 안전을 돕고, 국익을 위해 대만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당위를 명확히 하고, 중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제3조에서 6조까지는 구체적인 실행내용이 담겨 있다. ▲ 대만 군사장교들의 미국군사학교 파견 훈련 ▲ 대만의 요청에 따른 무기판매 ▲ 미국정부와 대만군의 직접적인 통신체계 수립 ▲ 미 국방부의 대만 안보사항 연차보고서 작성 등이다. 미·대만 간 원활한 인적 교류와 통신체계, 대만안보보고서까지 작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적어도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미국과 대만은 한 식구나 다름없게 된다.
당초 법안 초안에는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디젤잠수함, 정밀 위성기술 등을 포함한 첨단무기 공급에 대한 군사유대 강화 항목이 있었으나 심의과정에 민감한 사안들이 삭제됐다.
현재 대만안보강화법안은 하원 내에서 모든 입법절차를 마친 상태다. 1999년 9월9일 아시아·태평양 분과위원회를 거쳐 9월15일에 청문회를 열었고, 10월26일 외교위원회에 상정돼 32 대 6으로 통과됐으며, 2000년 2월1일 하원 본회의에서 341 대 70이라는 압도적 차로 통과됐다.
클린턴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수의 민주당의원들이 법안을 지지한 것은 대만 정부의 막강한 로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미 법무부에 등록된 대만의 공식 로비단체는 28개로 우리 나라의 두 배에 가깝다.
대만은 대외관계가 극도로 위축됐던 1980년대 중반부터 국가 로비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미 의회 상·하원의원들은 물론 실무 보좌진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로비를 시도했다. 1995년 리덩후이 총통의 미국 방문이 미 행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원 표결 결과 390 대 0으로, 상원에서도 97 대 1로 통과한 것은 대만 로비의 저력을 과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노력 덕분에 미 의회 내에서 대만 정서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대만안보강화법안은 앞으로 상원 본회의 표결과 대통령 비준을 거쳐야 한다. 법안에 대한 파문이 확산되자 상원은 본회의 표결을 대만 총통선거 이후로 미루면서 시간을 지연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클린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입법을 거부할 경우 무효처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기를 앞두고 법안의 후속절차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만안보강화법안은 언뜻 대만과 미국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과 중국 간의 문제다. 과거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지금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대만을 감싸 안고 있다. 그렇다면 대만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미국의 본심은 무엇인가.
“문제는 중국의 확장주의”
필자는 최근 미국에서 주한·주중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제임스 릴리를 만나 미·중 관계와 대만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릴리는 현재 공화당의 싱크탱크인 AEI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의회 청문회의 단골증인으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릴리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이렇게 정리했다.
“미국의 대중국정책을 아주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경제적으로는 협력, 군사적으로는 봉쇄’다. 경제문제에서 참여 전략을 쓰는 이유는 경제야말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이 대만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중국을 개방하고 미국과 함께 일하고 협조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중요하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중국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 대만, 베트남, 러시아, 인도, 필리핀 등과의 국경에 관한 문제다. 중국은 최첨단 무기 개발에 정열을 기울이고 있으며 중국의 주권을 일본, 대만, 남중국해 영역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중국이 목적 달성을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면 서방세력과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미국은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국경을 확장할 경우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문제와 군사문제는 결국은 하나로 연결된다.”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낸 릴리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워싱턴에서 ‘중국통’으로 통한다. 릴리의 지적에서 ‘중국과 대만의 WTO 동시 가입’과 ‘무력을 사용한 국경 확장 불허’ 대목을 대만안보강화법안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대만은 10여년 동안 WTO 가입을 추진해왔다. WTO 주요 회원국의 동의까지 받아 놓았지만 중국의 가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다려 왔다. 지난 연말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했다. 그동안 대만은 중국으로 인해 UN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불이익을 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만이 미국의 일곱번째로 큰 해외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WTO에서는 대만문제를 중국과 함께 매듭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중국원칙과는 상반되지만, 대만의 상징적 가치와 중요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하원이 법안 내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국가로서 대만의 평화를 유난히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군사적으로는 법안을 통해 중국이 무력을 이용하여 지역패권이나 세계패권 장악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조지 부시 2세 대선캠프의 외교팀장인 콘돌리사 라이스가 ‘포린 어페어즈’ 최근호에 기고한 내용은 법안을 입안한 공화계 의원들의 중국관과 군사적 대응의지를 짐작케 한다. 중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대만과 남중국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이 지닌 아태지역 영향력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현상유지보다는 스스로 아시아 힘의 균형을 잡기 원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쟁자다. 클린턴 행정부가 명명했던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중국은 이란과 파키스탄과 함께 탄도미사일 기술 확산에 협력한 전력이 있으며 안보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핵폭탄 기밀을 훔치거나 대만을 협박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조절하는 수위가 좌우된다. (…중략…) 우리는 미국의 이익과 중국의 이익이 충돌할 때 베이징과 대결하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즉, 미국은 ‘하나의 중국정책’과는 별개로 대만문제를 국제적 성격으로 다루고 있다. 대만·중국 문제의 본질은 대만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확장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미국은 대만·중국의 전쟁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대만 공격에 개입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대만이 중국대륙의 일부라는 주장을 한번도 굽혀본 적이 없다. 중국은 대만문제가 야기된 근인(近因)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중국침략과 혁명과정에서의 국공(국민당·공산당)내전이며, 1949년 이후에 대만이 중국대륙에 귀속되지 못한 것은 서방국가들의 내정간섭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에 있어서 양안(兩岸)의 통일은 민족 통합, 자주권 회복, 영토 보존이라는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홍콩 귀속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국양제(一國兩制)’도 원래는 대만문제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것이었다.
홍콩에 이어 지난 연말 제국주의 침략의 잔재였던 마카오 반환이 성사되면서 중국 정부의 관심은 대만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도 덩샤오핑(鄧小平)체제 출범 이후부터는 대만 통일을 평화적·점진적으로 추진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양안 통일에서 외세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여기서 외세란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이다. 또 ‘하나의 중국’ 정책이란 “세계에서 중국은 오직 하나이고 대만은 중국과 불가분의 일부분이며, 중국의 중앙정부는 베이징을 뜻한다”는 의미다. 대만의 실체는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이 자신의 영토인 대만에 무기를 공급하여 중국 본토에 총부리를 겨눌 법적 장치인 대만안보강화법안에 발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인권을 앞세워 대만문제에 개입하는 미국의 처사를 ‘주권 침해’로 치부하면서 ‘패권주의’를 정면 비난하고 있다. 대만해협의 위기를 미국이 촉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은 도이치 벨제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위협의 주범이 중국이라고 지목했다. 리덩후이 총통은 역사적 법률적 근거를 들어 조리있게 설명했다.
“1949년에 중공이 수립된 이후, 중화민국이 관할하는 4개섬을 그들이 통치한 일은 없다. 대만정부는 1991년 헌법을 개정, 헌법의 효력이 미치는 지역을 대만으로 한정하고 대륙에 대한 중국정부의 통치권을 인정했다. 아울러 민의 대표기관 참여자를 대만주민 내에서 선출하고, 총통이나 부총통도 대만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기 때문에 국가권력 통치의 정당성은 중국 대륙과 무관하다. (…중략…) 1991년 개헌 이래, 양안관계는 국가 대 국가, 적어도 특수한 국가와 국가관계이지, 합법정부와 반란단체 혹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 같은 ‘하나의 중국’의 내부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대만을 부속물로 취급하는 베이징의 주장은 역사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대만을 기만하는 행위다.”
대만정부는 스스로 서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이며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점을 외교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밀접한 경제무역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방세력의 지지와 협조 속에서 자신의 정치체제와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대만문제 개입은 실보다는 득이 많다. 미국은 중국의 확대정책을 대만을 통해 저지하면서, 아시아지역의 주요 전략거점을 독점할 수 있다. 대만의 자유와 시장경제체제를 보호한다는 명분도 살리고, 대만과의 무기거래로 경제적 실익도 챙길 수 있는 다목적 국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중국 국방대학의 장사오쭝 교수는 양국론으로 촉발된 대만해협 문제를 ‘대만 제2 코소보 시나리오’로 분석해 화제를 모았다. 장교수는 최근의 대만해협의 긴장을 ‘대만의 의도’로 보고 있다. 인권 수호를 위해서 단행된 코소보사태 공식을 대만에 적용하여 대만을 제2의 코소보로 부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3단계로 구성돼 있다. 1단계에서는 리덩후이 총통의 발언처럼 ‘대만은 독립국가’라는 이론적 근거를 내세워 공민자결(公民自)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만 사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2단계에서는 양국론을 거부해온 중국에 의해 군사적 대치상황이 조정되고 무력행동의 전 단계에 진입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3단계에서는 대만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이 개입하고 대만은 ‘인권’과 ‘자주권’ 침해를 호소한다. 일단 대만이 코소보처럼 이슈로 부각되기만 하면 대만의 고독한 투쟁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만으로서는, 모든 시나리오가 무위로 돌아가더라도 대만의 수준을 독립국가 단위로 올려놓으면 중국과 통합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홍콩이나 마카오와는 달리 국가 대 국가로서 유리한 협상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만안보강화법 파문이 1996년처럼 대만해협위기로 이어질 것인가.
조지 테넷 미 CIA국장은 2월3일 상원 정보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오는 3월18일에 실시되는 대만의 총통선거를 계기로 대만해협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테넷은 총통당선자가 리덩후이 총통의 양국론 입장을 어떻게 계승하느냐에 따라 군사충돌 여부가 결정되리라고 전망했다.
대만해협 위기는 재발될 것인가
중국은 지난해 10월, 50만 명을 동원하고 3억 위안을 투입해 건국 5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이 행사에서 중국은 북미를 사정거리 안에 두는 이동식 ICBM인 DF-13을 공개하고, 90-II와 같은 전술미사일이 대만보다 우위임을 보여줌으로써 대만과 미국에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
전쟁을 해서라도 대만독립을 막겠다는 중국정부의 생각은 확고하다. 지난 여름부터 “중국정부가 대만해협 전역에 잠수함을 공격 위치로 배치했다” “중국정부가 대만의 군사행동에 대비, 예비군을 해안지역으로 이동시켰다”는 뉴스가 산발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법안이 논의과정에 있던 지난해 11월에도 홍콩 명보(明報)는 중국인민해방군의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중국군이 내년 대만 총통선거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하는 세력이 집권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내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인민해방을 위한 무력 사용을 예고했다.
대만해협의 군사충돌 가능성에 대해 릴리 전 대사는 이렇게 논평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중국이 현재 대만과 매우 강한 경제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고, 대만사람들이 중국 내에서 3만개 이상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의 중국투자 규모가 10억 달러를 육박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그런 이익을 버리고, 국제적인 비판을 감수하면서 전쟁을 초래할 이유가 없다.”
릴리는 이번에도 중국이 손익을 가려 실용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표면적으로 분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만안보강화법안 입법이 오래 전부터 예상된 일인데다가 실제로 법이 실행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있다는 것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대만과의 군사적 관계를 유지, 사실상 두 개의 중국정책을 펴왔고, 중국도 이에 노련하게 적응해 왔다. 중국도 미국에 강경과 온건, 대립과 타협이라는 이중적 대미전략을 사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향후 중국은 성급하게 무력 대결을 시도하기보다는 ‘주권 침해’를 무기로 미국에 맞대응하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거래를 준비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1972년 2월21일. 닉슨과 마주 앉은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수상은 “우리에게 다른 점이 있어도 그것이 전쟁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 한 마디로 20여년간 계속돼온 미·중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역사적인 데탕트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대만 앞바다는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원수가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냉전이 종결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냉전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과연 미국이 2차세계대전 이후 50여 년 동안 구축해온 아시아 방위의 정점인 대만을 포기할 수 있을까. 중국이 민족 통합, 자주권 회복, 영토 보존의 보루인 대만이 미국의 어깨에 기대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볼 수 있을까. 대만은 50여 년 동안의 부단한 노력으로 일궈온 대만의 번영과 자유를 포기하고 사회주의 중국에 편입할 수 있을까. 이들은 한 치도 물러날 수 없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합종연횡을 계속할 것이다.
대만해협에서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아시아 패권과 세계 패권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온전하게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지 않는 한 대만·중국·미국의 삼각관계는 해결될 수도 없고,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중국과 미국과 대만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깊게 맞물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