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벤처기업인 (주)메디슨을 창업한 이민화회장은 최근 펴낸 책에서 벤처산업의 육성과 전망에 대해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벤처연방’과 ‘주식과세’를 역설한 이유를 들어보니….》
이 자그마한 벤처 빌딩의 주인인 이민화(李珉和·47) 메디슨 회장의 영향력은 빌딩의 크기를 휠씬 넘어선다. 이 회장은 1995년부터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벤처산업의 ‘프런티어’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30개의 벤처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2년전 부도 위기에 몰린 국산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인 ‘글’을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인수하려 했을 때 이를 저지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민화 회장은 2월말 벤처기업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지난해에 임기가 끝났지만 IMF 상황에서 1년간 더 맡아달라는 회원사들의 요청이 있었던 것.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과 때를 맞춰 이 회장은 이광형(李光炯)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교수와 공저로 ‘21세기 벤처대국을 향하여, 뒤집어보니 벤처국민이네’란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정보화시대에 우리나라가 벤처강국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전략과 벤처기업의 육성 방안 등을 담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부정적인 국민성 중 하나로 꼽히는 ‘빨리 빨리 문화’나 ‘냄비 근성’이 벤처산업에는 맞다든지,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다수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엔젤펀드’를 만든다거나 주식거래 차익에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 등을 담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을 펴낸 이민화 회장을 지난 2월10일 저녁 메디슨벤처타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회장은 1976년에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85년에 메디슨을 창업했다.
우리 국민 벤처 근성 있어
“그 녹음기 쓸 만해요?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만든 건데 저는 그것도 별도로 가지고 다니기가 불편해 아예 녹음기능을 갖춘 휴대폰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주 자그마한 만년필형 디지털 녹음기를 꺼내놓자마자 이민화 회장은 벤처기업가답게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묻고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우리 국민의 조급성이 벤처산업에 오히려 적합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
“전세계가 빠른 속도로 정보화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산업화시대의 변화 속도와 강도에 비해 20~30배 빠르고 강합니다. 따라서 1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이 서로 앞서기 위해 지식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 결과는 무섭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10등만 해도 차지할 것도 있고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정보화사회에서는 3등안에 들지 않으면 차지할 것이 없어 살아남기 힘듭니다. 지식전쟁의 전사들이 바로 벤처기업가들인데, 그 벤처 근성이 우리 국민에게는 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와 ‘냄비근성’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가장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할 겁니다.”
―벤처 근성이 있어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갖춰져야 할 터인데… .
“우리 나라는 벤처기업을 하기 좋도록 제도가 잘 정비돼 있습니다. 스톡옵션제, 세금 혜택을 주는 벤처빌딩, 실험실 벤처 등이 있어요. 실험실 벤처가 가능하려면 대학교수가 강의와 연구를 하면서 학교에서 상품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 재작년부터 노력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이제 우리나라 벤처산업이 도입기에서 도약기로 들어가면서 장차 한국을 이끌고 나갈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봅니다. 2005년까지는 한국 GNP의 4분의 1이 벤처기업에서 만들어질 겁니다. 그래서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혁명에서는 일본보다 30년 뒤졌기 때문에 식민지가 됐지만 이제 지식혁명에서 1년을 먼저 가면 우리가 일본을 앞지를 수 있습니다.”
―흔히들 산업화는 일본보다 뒤졌지만 정보화는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고 하는데… .
“그동안 산업화시대에는 대부분 일본의 제도를 베껴왔어요. 그러나 벤처산업에 관한 제도는 일본이 이제 우리 것을 베껴가고 있어요. 실험실 벤처의 경우는 일본에서는 대학교수가 기업인을 겸직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일본은 산업화시대 제조업의 강자이기 때문에 그 미련 때문에 정보화시대에는 뒤처지는 것 아닐까요.
“그렇죠. 일본이 자스닥은 코스닥보다 먼저 시작했어요. 그러나 작년말까지 자스닥의 거래 규모가 코스닥의 10분의 1도 안됩니다. 인터넷 이용자 수만 하더라도 인구비례로 볼 때 일본은 우리나라의 60% 수준입니다.”
인터넷사업, 일본보다 앞서
―인터넷사업에서도 우리 나라가 앞서간다는 이야기입니까.
“물론 더 늦은 분야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인터넷 사업 모델이 일본보다는 1년, 중국보다는 2, 3년, 유럽국가들보다 6개월 정도 빠릅니다. 인터넷 사업 모델은 우리가 더 빨리 개발했습니다. 요즘 1년의 차이는 예전이면 10년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델을 가지고 일본이나 중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수출하는 겁니다.”
―미국과 비교해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죠. 그러나 우리 나라 벤처기업이 모든 면에서 미국처럼 잘할 수 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가지 점은 우리가 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터넷기업인데, 우리 국민 근성에 참 잘 맞아요. 두번째는 신제조업입니다. 미국은 신제조업을 잘 못합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는 잘 만드는데 그것을 기계와 접목시키는 신제조업은 시원찮아요. 반면 중국은 하드웨어는 잘 만드는데 소프트웨어가 약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은 모두 신제조업이나 인터넷기업입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벤처기업 중 성공한 사례는 10%도 못되지 않아요?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겁니다. 한국 벤처기업은 ‘3년간 생존율’이 70%가 넘어요. 3년만 유지할 수 있으면 망하지 않거든요. 미국은 3년 생존율이 10%밖에 되지 않아요. 미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지요. 소프트웨어를 주로 만드는 미국에서는 1등만 살아남습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에 소비자들이 몰리게 돼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 나라는 2, 3 등도 살아 남습니다. 가령 모빌 폰을 만든다면 1, 2, 3 등이 각각 차지할 시장이 있습니다. 미국 벤처기업은 생존율은 낮지만 일단 살아 남으면 크게 성공합니다. 포털사이트 업체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야후가 압도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야후, 네띠앙, 다음의 규모가 비슷합니다.”
다음과 네띠앙은 국내에서 운영하는 포털사이트(모든 정보를 검색해볼 수 있는 관문격의 사이트)업체다. 이 포털사이트업체의 우열은 가입회원수에 달려있는데 세계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야후도 우리나라에서는 ‘토종’을 쉽게 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랄까, 사이버 공간의 커뮤니티는 우리 나라가 제일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보통 인터넷사업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티, 커머스 등이 중요한데 궁극적으로 커뮤니티가 핵심입니다.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조직을 만들 듯이 사이버상에서도 똑같은 조직을 만듭니다. 이것을 우리 국민들이 잘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학연 지연 등에 관심이 많찮아요.”
―인터넷 사업의 마지막 승부처는 역시 컨텐츠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
“그럴 수 있죠. 그러나 컨텐츠는 이 분야에서 3D에 속합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다른 업체와 차별화가 돼야죠.”
―산업화시대에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 주도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인데 정보화시대에도 역시 살 길은 수출 아닙니까.
“지식기반 제조업은 그 자체가 수출 주도 산업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의료장비, 공작기계 등이 모두 수출 산업입니다. 벤처기업수가 1년에 두 배로 증가합니다. 벤처기업 총매출액은 3배가 증가하고 기업가치는 5배 증가합니다. 그리고 수출이 그 정도로 증가합니다. 앞으로 한국경제는 벤처기업이 이끌어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다행히 벤처산업이 우리에게 적합합니다.”
―벤처산업의 발전은 일시적인 거품이라는 비판론도 있습니다.
“비관할 것은 없어요. 다만 벤처산업 발전에 대한 경계론도 있습니다. 부의 격차가 심해진다는 겁니다. 코스닥에 상장하기 전에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0.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앞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국가의 부를 대부분 가져갑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그래서 부의 분배가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21세기의 새로운 공산주의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주의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나온 것인데 산업사회는 그래도 10등 안에 들면 어느 정도 부를 누렸지만 정보화시대에는 3등 안에는 들어야 하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해집니다. 20 대 80의 사회가 아니라 10 대 90의 사회가 되지요.”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할 방안은 있습니까.
“나눔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벤처기업이 부의 분배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나눔의 문화는 본질적인 부의 재분배는 아닙니다. 약간 완충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이 회장은 본질적인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국민벤처펀드가 나와야 합니다. 국민엔젤펀드라고도 하지요. 모든 국민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국민들이 직접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국민벤처펀드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간접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벤처기업 성장의 결과도 분배할 수 있지요.”
―현재 투자조합은 49인 이하로 제한돼 있어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기가 법적으로 힘들 터인데… .
“현재는 막혀 있어요. 정부가 보기에 벤처투자는 위험하다는 거지요. 아무나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줬다가 나중에 쪽박을 차면 정부에 항의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버린 겁니다. 이것을 풀어줘야 합니다. 개개인의 인간이 죽는다고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벤처기업 한 개가 망한다고 벤처산업이 망하지는 않아요. 벤처산업이 망한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벤처산업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주식거래차익 과세해야
―다른 나라에 모델이 있습니까.
“벤처혁명이 막 시작됐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국민벤처펀드를 모으는 예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가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메디슨, 새롬기술, 한글과컴퓨터, 미래산업, 다우기술, 다음커뮤티케이션, 네띠앙 등 국내 선두 벤처기업들과 미래에셋 등 자산운용사가 모여 코리아인터넷홀딩스란 투자지주회사를 설립, 3월부터 국민엔젤펀드 모금에 들어간다. 그동안 벤처투자가 등 극소수만 하던 벤처기업 투자를 소액투자가들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민화 회장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두 번째 제도로 주식거래 차익에 대한 과세를 주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식총액이 440조니까 GNP를 넘어섰어요. 앞으로 몇 년안에는 주식총액이 GNP의 몇배를 뛰어넘습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요. 가령 주식 총거래액이 GNP의 몇 퍼센트 수준일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주식 거래를 통해서 GNP의 50%에 해당하는 부가 이동한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전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만든 부의 크기와 주식거래를 통해 그냥 생긴 부의 크기가 같다는 겁니다.”
―주식거래차익에 대해 과세하겠다면 증권 시장에 찬바람이 불 터인데… .
“종합과세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산층이 버는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10만~20만 달러 정도의 소득은 내버려둡니다. 그 이상 되는 것은 과세하지요. 그러나 그 이상도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면 과세를 유예해줘야 합니다. 즉 산업자금으로 사용할 때는 과세를 보류하고 개인자금으로 쓸 때는 과세한다는 거지요. 비과세론자들의 주장은 과세를 하면 산업자금이 조성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소득이 있는 곳에는 과세가 있다는 조세의 형평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민화 회장이 주장하는 것 중에는 ‘벤처연방체’라는 것이 있다. 벤처산업의 발전을 위한 ‘제휴 전략’의 일종이다.
―벤처기업들의 제휴 형태인 벤처연방체를 제안했는데 재벌기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표현입니다만… .
“벤처연방이란 개별적인 벤처기업들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대기업은 효율성은 있지만 의사결정은 느립니다. 어떤 조직이 커지기 시작하면 거대한 몸집을 관리하기 위해 관료제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집니다. 이에 비해 개별 중소기업은 혁신지향적이지만 시너지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대기업의 효율성과 중소기업의 혁신성을 합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벤처연방입니다. 앞으로 벤처연방이 지식경제의 일반적인 형태가 될 겁니다.”
기업가정신 있어야 벤처기업가
―대기업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벤처연방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첫째 벤처연방은 관련분야의 다각화를 추구하는데 재벌기업은 비관련분야를 다각화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동안 대기업은 관련이 없는 분야, 즉 유통업을 하던 회사가 건설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은 국가 자원의 손실입니다. 그러나 관련다각화를 추구하는 벤처연방은 하는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가령 채팅서비스로 알려진 ‘하늘사랑’은 한글과컴퓨터와 연관된 일을 하다보니 효율성이 증대합니다.”
이 회장은 대기업그룹과 벤처연방의 두번째 차이점으로 기업가 정신을 들었다.
“벤처연방은 각각의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창업자입니다. 이들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자회사에서는 진정한 기업가가 없어요. 왕회장이 바꾸라면 자회사 사장이 바뀌는 거지요. 벤처연방의 기업가들은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겁니다. 종속돼 있지 않아요. 그래서 연방이란 표현을 쓴 겁니다.”
세번째로는 대기업그룹과는 달리 통제기구가 없다는 것이 벤처연방의 특징이라고 한다.
“대기업은 그룹 차원의 기획조정실 등 중앙의 통제기구가 있지만 벤처연방에서는 중앙의 통제기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벤처연방은 가장 효율적입니다.”
―조금전에는 대기업의 효율성을 이야기했는데… .
“규모가 크니까 대량생산해서 싸게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기동성은 떨어질 수 있어요.”
―대기업은 조직이 관료화돼 있어 효율성이 더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대기업은 효과성이 떨어지지요. 효과성이란 쉽게 말하면 시장이나 주변 여건의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동력은 지녔지만 소규모이기 때문에 효율은 떨어지는 벤처기업들이 연방형태로 뭉치면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대기업에서는 한 조직안에 반도체 공장과 가전제품 공장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상품생산 효율성이 높아요. 그러나 벤처기업의 경우 연방체가 없으면 서로 밀접하게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민화 회장은 의료분야 벤처기업들의 연방을 형성하고 있는 메디슨사 외에도 한글과컴퓨터사가 국내 벤처기업중 벤처연방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수백만명의 채팅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하늘사랑, 포털검색사이트인 네띠앙 등이 한글과컴퓨터사에 속해 있지만 각자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연방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벤처연방이 모여 벤처생태계를 이룬다. 벤처연방을 스위스 연방에 비유하면 벤처생태계는 유럽연합(EU)에 해당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벤처산업이란 제휴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안되니까 연방을 만들고 생태계를 만드는 겁니다. 벤처연방의 기업들은 각각 특정산업 분야가 있습니다. 가령 메디슨 하면 의료산업 분야, 다우기술 하면 소프트웨어 분야인데 이것 가지고는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영토를 가진 국가끼리 경쟁을 했는데 앞으로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들이 모여 만든 생태계끼리 경쟁을 하는 겁니다. 크게 보면 손정의 생태계, 빌 게이츠 생태계끼리 경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고 벤처기업 혼자서 경쟁해서 이기기는 불가능합니다.”
―손정의 생태계와 경쟁하기는 더더구나 힘들 터인데….
“인터넷사업의 부는 증권에서 만들어집니다. 인터넷기업의 주식을 증권에서 팔아 수익을 낸다는 것이 손정의 모델입니다. 손정의 사장이 인터넷 쪽에 거대한 투자를 했는데 지금까지 성공을 했어요. 앞으로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 이게 숙제인데…. 문제는 대항세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어요. 증권쪽은 더 위험해요. 지금 손정의 사장이 나스닥재팬을 만들기로 했어요. 만약 나스닥재팬을 관리하게 되면 세계 두번째 부국이 손정의 인터넷 제국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손정의 사장은 나스닥유럽을 만들고 코스닥에도 투자하려고 하는데 각국의 지도자들이 이것을 받아들이면 큰일난다고 봅니다.”
―손정의 사장의 인터넷 제국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일종의 가상 세계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인데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닙니다. 누구든지 커질려고 하는 거지요. 로마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역사상 하나의 국가가 지나치게 커지면 반드시 재앙이 생깁니다. 벤처 생태계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가 공존합니다. 경쟁이 없으면 위험합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하니까 위기감을 느껴 국민벤처펀드를 만드는 데 주도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
“제 자신이 위기감을 느낄 거야 없죠. 개인적으로 손정의 사장과 부딪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늘 소비자 입장에서 봅니다만, 인터넷 벤처기업들은 손정의 사장이 온다니까 어떻게 해서든 투자를 받아보려고 줄을 서는 겁니다. 선택의 기회가 없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기회가 없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소비자, 즉 벤처기업가 입장에서는 선택의 기회가 있든 없든 손정의 사장의 투자를 받게 되면 좋은 일 아닙니까.
“손정의 사장의 투자를 받으면 손정의의 생태계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코리아인터넷홀딩스와 같은 다른 투자지주회사가 있으면 벤처기업은 선택이 가능한 겁니다. 두 군데 모두 투자 유치를 할 수 있어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겁니다. 건전한 발전은 다양한 선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군데로 몰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민화 회장은 손정의 사장의 대한 투자선언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손 사장의 투자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위기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손정의 사장의 인터넷 사업이란 옛날 같으면 제철산업과 자동차산업에다가 철도와 도로사업까지 합친 규모입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제철소 철도망 도로망 등 전부가 다 선택의 기회 없이 한 군데로 넘어가게 됩니다. 한 개의 그룹이 전체를 다 지배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한 군데가 지배하지 못하게 견제 세력을 둬야죠. 국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일인데 국부가 한꺼번에 유출되면 안되죠.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코리아인터넷홀딩스사입니다. 코리아인터넷홀딩스가 생겨 대한민국 사람들중에서 손해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메디슨은 이 회사에 어느 정도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메디슨의 지분이라는 것이 20%도 안됩니다. 그것 가지고 메디슨사가 코리아인터넷홀딩스사를 좌지우지하겠어요?”
―이회장이 투자하고 있는 회사는 몇개입니까.
“투자하고 있는 업체는 30개 될 겁니다. 의료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메디다스가 있는데 인터넷에서 진료해주는 사이버호스피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이외에도 심전도 모니터를 만드는 바이오시스 등이 있는데 모두 메디슨과 관련이 있는 업체들입니다. 의료 이외의 업체에는 투자한 것이 없습니다.”
―한글과컴퓨터에 투자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것은 투자하려고 해서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한컴에 어려워서 투자한 것인데 그후에 이상하게 잘 됐지요. 국민주를 모집했는데 100억원이 모여야 회생이 가능한데 마지막날 보니 20억원이 모였어요. 국민들이 그 정도라도 모금해준 것은 고마운데 회사를 정상화하려면 모자란단 말입니다. 만약 20억원밖에 모금하지 못했다고 공표하면 금융기관들이 달려들어 그동안 진 빚을 다 뜯어가려고 하지 않겠어요. 간신히 막아놓았는데…. 그래서 할 수없이 우리가 50억원을 내놓고 대외적으로는 70억원 모금됐다고 발표한 겁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시대에 민족적인 것을 내세우며 ‘글’을 팔지 못하게 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 회장이 가장 반대를 했는데 그 이유는 한글과컴퓨터에 이미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는 비난도 있는데… .
“그것은 예전의 한글과컴퓨터 주주 명부를 보면 알 수 있죠.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글을 인수하려 한 것에 반대한 것은 외국 자본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공정거래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글을 인수해서 없애버리려 했기 때문에 반대한 겁니다. 불공정거래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경쟁 제품을 사들여 그것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불공정거래는 소비자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동안 글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로 바꾸려면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메디슨도 외국인 투자가 40% 정도 되는데 외국인 투자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닙니다. 메디슨 사업의 80%가 해외사업입니다. 우리 국내 사업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사겠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아요. 글을 사서 없애겠다니까 문제를 삼은 겁니다. 만약 없애게 되면 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1조원이 되는데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2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했거든요. 비교가 됩니까.”
열변을 토하는 이민화 회장이 한숨을 돌리자 인터넷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민화 회장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며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각 조직과 분야가 얼마나 큰 변화를 겪는지 마치 강의를 하듯 자세하게 설명했다.
“시장경제를 놓고 보면 자본주의는 전체 부의 절반이 유통에서 나옵니다. 유통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은 유통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 첫번째 한 일입니다. 그래서 거대한 산업변화가 일어났죠.”
대학원 사라져
―교육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고 봅니까.
“교육이야말로 물질이 필요없는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대표적인 인터넷 산업이지요. 교육의 기능은 길어야 5년안에 인터넷으로 넘어갑니다. 기존의 캠퍼스는 교육을 위한 장소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류 경영대학원들이 대부분 사라집니다. 하버드대 등 명문대에서는 MBA 코스의 경우 대부분 인터넷에서 강의하니까 구태여 2류 경영대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지요.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이 바람이 불 것이고 유명 교수 몇 명 외에는 일자리가 없어집니다. 최고의 명강의를 하는 교수의 강의를 지금까지는 큰 강당에서 400~500명이 들었으나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수만명, 수십만명이 동시에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면 교수가 한명 한명씩 개별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가르칠 수 있어요. 이것을 누가 먼저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대학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까요.
“대학과정은 존속할 겁니다. 대학까지는 여전히 얼굴을 보며 교육해야 하니까 큰 변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학원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대학원은 어떻게 변하느냐. 예전에 군산복합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지산복합체가 등장할 겁니다. 대학원은 지식산업단지로 바뀝니다.”
―지식산업단지로 바꾸면 대학 안에 공장이 생긴다는 얘긴데….
“전국의 대학교들은 이제 그 대학 캠퍼스 안에 지식산업단지를 함께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가는 나라가 핀란드입니다. 핀란드의 대학들은 전부가 지식산업단지입니다. 벤처기업들이 대학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이것을 보고 제가 재작년에 열심히 만들어놓은 것이 실험실 벤처입니다. 대학교에서 교수들이 직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아주 많은 데서 하죠. 저의 올해 목표가 1700개의 실험실 벤처기업을 만드는 것인데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전통적인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은 사라지는 겁니까.
“앞으로 대학들은 전부 인큐베이터(창업 준비 공간)를 중심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우스운 논쟁 중에 하나가 상아탑 논쟁이예요. 신성한 대학에서 웬 산업이냐는 거죠. 지금의 한 달은 예전의 1년인데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 안타까워요. 개화기 때 개화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듯이…. 학원산업에서 대규모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오프라인 모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식만 전달하면 되니까요. 인터넷으로 강의하면 쌍방향 수업이 가능합니다.”
―의료 분야의 전문가이신데 이쪽에서는 어떤 변화가 예상됩니까.
“의료교육시스템도 달라집니다. 그동안 의료교육의 대부분이 암기였는데 인터넷에서 키 하나만 누르면 필요한 처방이나 진단이 나오기 때문에 암기하는 것이 필요없게 됐어요.
―환자를 직접 상대해야 할 터인데… .
“해부도 직접할 필요가 없어요. 버추얼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해부하면 시뮬레이션 게임하듯이 해부를 할 수 있어요. 버추얼 리얼리티 시뮬레이션에서 잘못 해부를 하면 피가 튀어요. 그러면 평점이 나빠지지요. 전쟁에서도 시뮬레이션 게임을 많이 한 미군이 현장에 나가 직접 훈련한 러시아군보다 나아요. 그리고 의료처방이나 진찰 자료 등은 인터넷을 통해 교환이 가능하니까 이제 병원을 옮길 때마다 엑스레이 검사 등을 구태어 다시 할 필요도 없습니다. 법률서비스나 행정서비스도 모두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어요.”
기업 경계 불명확해져
―이미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만 기업문화도 격변을 겪을 터인데….
“기업간의 경계선이 없어집니다. 기업간에 융합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우리 기업인지 불분명해집니다. 계속해서 전략적 제휴를 하고 아웃소싱을 하니까…. 옛날에는 안과 밖이 분명했지만 이젠 뫼비우스띠처럼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재벌을 해체하는 반면 외국에서는 거대 기업들이 합병하는 추세인데… .
“재벌의 해체는 필연적입니다. 그것은 비관련 다각화이기 때문에 자원의 효율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대기업들이 제휴하는 것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겁니다.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거지요. 국경을 넘어 지구차원에서의 합병은 지식산업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서로 주식을 주고 받으면서 시너지를 올리는 겁니다. 기업가정신도 살리고 혁신성도 살리는 거지요.”
―재벌은 문어발 확장을 해서 문제라는 겁니까.
“공정한 게임의 룰이 문제예요. 재벌이 문어발 확장을 해서 망하든 성공하든 기업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상호지급보증 등은 공정한 게임 룰이 아닙니다. 상호지급 보증을 하게 되면 자원이 무한하니까 마음대로 확장하는데, 이걸 제한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는 쪽으로만 집중하게 되는 거지요.”
―산업화시대엔 재벌들의 연합체인 전경련이 중심이었지만 벤처산업이 중심인 시대에는 전경련의 역할은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 이헌재 재경부장관도 전경련 해체를 주장했고… .
“부작용을 막자는 거겠죠. 전경련과 벤처기업협회는 비교의 대상도 되지 않아요. 다만 전경련은 열린 조직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전경련 회원사의 이익을 지키는 데 주력했어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정치자금은 많이 냈지만 공익을 위해서는 별로 한 것이 없지 않나 싶어요. 우리 사회와 선순환을 못했죠. 가령 재단을 만들더라도 편법상속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면이 있단 말입니다. 산업화시대의 주역이면서도 대우를 못받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벤처기업협회는 열린 조직이 되어야겠다는 겁니다. 오해하는 분도 계시지만 제가 공정 과세를 이야기하고 국민엔젤펀드를 이야기하는 것은 열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벤처여야겠다는 겁니다.”
―벤처기업들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는 만큼 정치적 욕구도 있을 터인데….
“정치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정책적인 요구는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고, 정치자금을 낼 이유도 없어요. 다음 대선부터는 돈이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미디어선거까지는 돈이 들지만 인터넷선거는 별로 돈이 들지 않아요. 다음 대선인 2002년까지는 우리 인터넷인구가 3000만명을 돌파하게 될 겁니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선거운동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오라말라 하며 밥 사줄 이유도 없어요. 인터넷을 통해 시민단체들이 엄청난 일들을 할 거예요. 인터넷이 정치를 바꾸고 국회의원들이 할 일도 줄어듭니다. 대의정치라는 게 직접민주주의를 못해서 만들게 된 것인데 인터넷으로 직접투표가 가능하니까 직접 국민투표가 엄청나게 늘어날 겁니다. 정책에 대한 투표가 그날 해서 그날 결과가 나옵니다.”
이민화 회장은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인터뷰 예정시간이 넘자 결재서류가 밀리는 것 같았다. 비서들이 독촉하자 이 회장은 “벤처업계에서는 ‘잘못된 결정’이 ‘미루는 결정’보다 낫다”는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