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파국으로 치닫는 DJP 이인제가 최대 변수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1-24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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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와 이회창 총재 그리고 이인제 선대위원장 3인은 모두 중원(中原)의 근거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이인제 카드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이니 DJ에게는 여간 기분 좋은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 김대중(DJ)의 ‘정치 생물론’은 정치평론가 사이에서 DJ가 남긴 정치 아포리즘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래서 그러한 현실 상황론은 변화무쌍한 한국 현대 정치를 설명하는 데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지난 1월24일 ‘15대 국회의원 공천반대 명단’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97년 5월 처음 등장한 이래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어찌 보면 만난(萬難)을 뚫고 유지해온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공조 구도가 이처럼 빨리 그리고 쉽사리 파탄의 길로 들어서리라고 예측하는 정치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1월24일 오전 10시 총선시민연대가 공천반대 인사 명단을 발표한 서울의 프레스센터 19층에는 무려 200~300명의 기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거기에 혹시 명단에 포함될지 몰라 불안해한 정치인들이 한시라도 빨리 명단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보좌진 수십명이 몰려 열기를 더했다. 그런데 이날 총선시민연대가 15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발표한 공천반대 인사 1차 명단 67명 가운데는 불과 얼마 전에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발표 현장에 나온 자민련 당직자들과 의원 보좌진은 즉시 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자민련은 경악했다. 정치권에서는 JP가 명단에 들지 않으리라고 100%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5·16 쿠데타의 원죄와 그 공과(功過)를 떠나 40년 동안 온갖 영욕과 풍상을 겪어왔고 지금은 공동여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8선 의원 JP가 시민단체의 공천 반대자 명단에 들리라고는 이른바 정치 9단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JP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8선의 지역구(충남 부여)까지 김학원 의원에게 물려준 그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정치권 전체가 시민단체한테 허를 찔린 셈이었다.

    총선시민연대가 적시한 JP에 대한 공천 반대 사유는 여섯 가지였다.

    ① 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제2공화국을 붕괴



    ②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공작정치의 시대를 열고 스스로 초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

    ③ 공화당 창당을 위한 4대 의혹사건(새나라자동차 사건, 워커힐 사건, 증권파동 사건, 파친코 사건) 주역

    ④ 65년 한일협정 과정에서 완전한 과거청산 문제를 포기

    ⑤ 80년 당시 부정축재 혐의로 계엄사령부에 연행, 조사받는 과정에 부정축재가 드러난 점

    ⑥ 6·27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 핫바지론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한 점

    이 모두가 어쩌면 JP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업보(業報)였다. 그러나 지역감정 조장 대목을 제외하고는 하나 하나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뒤흔든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총선시민연대는 공천반대자 67명 가운데 JP와 정몽준 의원(울산 동·무소속) 두 사람의 공천반대 사유 밑에다 ‘당구장 표시’를 해 토를 달았다.

    “※현재 자민련의 명예총재로서 사실상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공천반대 대상자라기보다는 명예로운 은퇴를 권고함”

    정몽준 의원의 경우에는 4년간 법안 발의 1건, 결석률 82.5% 등 두 가지 공천반대 사유를 적시하고 그 밑에다 역시 당구장 표시(※)를 붙여 “월드컵 준비로 인해 의원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면 총선에 출마하지 말고 월드컵 준비에 충실할 것을 권고”했다.

    사유는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천반대라기보다는 ‘불출마 권고’라는 나름대로 고심한 꼬리표를 남긴 것이다. 실제로 총선시민연대에서도 JP를 명단에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총재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공천권을 가진 JP와 다른 당의 김대중·이회창 총재와의 형평성,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에 연루된 이회창 총재와의 형평성 등을 들어 논란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서야”

    정계 은퇴를 권고받은 JP가 보인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한 것이었다. 자민련 당사에서 공천반대자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보고받은 JP의 첫 반응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서 되겠는가. 하기는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데…”

    그러나 자민련은 경악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명예총재인 JP를 비롯해 부총재 5명,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대다수가 명단에 들어가 ‘줄초상’이 난 자민련은 충격과 분노로 들끓었다. 특히 ‘명예총재’에게 ‘명예로운 은퇴’를 거론한 것에 대해 이양희 대변인은 “JP까지 난도질이냐, 이게 무슨 공동정권이냐…”(이양희 대변인)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당직자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민주당 이인제 선대위원장은 빼놓은 채 JP만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개편 구도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김현욱 사무총장은 이날 JP와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이 참석한 긴급 간부회의의 결과를 담은 성명서에서 “시민단체의 명단 발표는 민주 법치국가의 법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혁명적 작태”라고 공격했다. “민중 선동적 행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 같은 거친 표현이 마구 튀어나왔다. 김총장은 “시민단체의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즉각 수사를 요구하며 이 요구가 지연되면 특검제를 도입하겠다”고 맞대결을 선언했다.

    한편 이날 간부회의에서는 향후 대응책과 당의 진로를 놓고서도 토론을 벌였는데 일부 참석자들은 장외투쟁까지 요구했다. 특히 “이제 청와대의 의도가 분명해졌으니 공동정권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철수의 방법과 수순만 남았다는 얘기였다.

    ‘공조’하지 않고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3당의 의석수 기준으로는 공천반대자 명단에 자민련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되었지만 의원 절대수로는 한나라당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공천반대자 명단(67명)을 3당의 의석수 기준으로 보면 ▲한나라당 30명(총 133명의 22.6%) ▲민주당 16명(총 105명의 15.2%) ▲자민련 16명(총 53명의 30.2%) 등이다.

    ‘명예로운 은퇴’를 권고받은 JP는 이날 저녁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JP는 이날 강남의 한 호텔 음식점에서 백강회(百江會) 회원 20여명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평소에는 멀리하던 술을 많이 마셨다. JP의 평소 주량은 맥주 한 잔 정도. 어떠한 자리건 대체로 이 선을 넘기지 않는다. 기분 좋을 때는 가끔 와인을 즐기기도 하지만 결코 한 잔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금주를 시작한 후 새로 들인 JP식 음주 습관이다.

    금주 선언했던 JP의 통음

    JP가 금주를 하게 된 계기는 95년 가을. 당시 김영삼(YS) 대통령한테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제발로 걸어나간(혹은 쫓겨난) 뒤에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 보란 듯이 재기했던 그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JP는 오는 술 그냥 보내는 법이 없는 애주가였다. 그러나 우연찮은 기회에 폭탄주가 오가는 질펀한 술자리가 만들어졌고 그 일로 JP는 상당 기간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청구동 자택과 자민련 당사만을 오가는 칩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술로 인한 후유증이었고 그 때문에 JP가 “중풍에 걸려 입이 돌아갔다”느니 하는 뜬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부터 금주를 실천해 오고 있던 터였다.

    백강회는 JP의 고향인 충남 부여 출신 재경(在京) 인사들의 모임이다. 다른 의례적인 모임과 달리 어릴 적 불알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한다. 허물없는 고향 친지들이 권하는 술인 만큼 사양하지 않았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이날 JP의 통음은 아무래도 이날 오전에 있었던 ‘기가 막힌 일’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JP는 이날 참석자들에게도 “이런 일(시민단체의 정계은퇴 요구)이 있을 수 있냐”면서 “기가 막힌 일”이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는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강력히 대처하겠다”라고 현 상황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JP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으로 몰린 일본 육군대장의 일화를 예로 들고, 5·16과 한일회담 추진 당시의 상황 등을 회고하면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탄압받는 JP 이미지를 겨냥한 자팽?

    명예총재의 이런 의지가 밤 사이에 전달된 것일까? 자민련 당사에서는 95년 JP가 YS한테서 겪은 토사구팽(兎死狗烹)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토끼 사냥을 끝낸 DJ가 사냥개(JP)를 삶아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당직자들은 한 발 더 나갔다. YS는 자력으로 대통령이 될 기반(영남권)이라도 있었지만 DJ로서는 JP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오늘의 공동정권을 누가 만들어 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느냐고 분노했다. 이날 이한동 권한대행이 주재한 간부회의에서는 1월27일로 예정된 DJP 회동을 거부키로 결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현욱 사무총장은 전날부터 뜸을 들였던 ‘집권세력의 음모설’을 정식으로 제기하며 사실상의 ‘공동정권 철수’를 선언했다. 김총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김성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민주당의 이재정 정책위의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두 사람이 여권에 들어오기 전에 재야·시민운동 활동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총장은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벌이는 이와 같은 선동행위가 배후세력에 의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조종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총장이 밝힌 ‘모든 상황’이란 사실 결과론이었다. 김수석이 배후라는 근거는 그가 최근 일간지 인터뷰에서 했다는 “총선을 계기로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질 것이며 낙선운동뿐 아니라 이런 사람을 당선시키자는 운동도 나올 것”이라는 표현이었다. 김수석의 전망과 예고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정황 근거였다. 또 이의장이 배후라는 근거는 총선연대의 작업이 이루어진 성공회 소속 수녀원은 외부인사에게 공개되거나 출입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는 ‘종교계의 관행’이었다. 총선시민연대 유권자 100인 위원회가 공천 반대 인사에 대한 최종 선정 작업을 한 장소가 성공회 소속 수녀원인 만큼 성공회 신부 출신인 이의장이 ‘편의 제공’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 청와대 배후조종설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공동여당의 틈새를 한껏 벌릴 수 있는 이런 호재를 놓칠 한나라당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형근 기획위원장이 나섰다. 정의원은 “김대중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제1당, 한나라당 제2당, TK(대구·경북)당 제3당, 자민련 제4당으로 만들려는 구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이 구도에 따라 ‘자민련 죽이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95년에는 YS가 최형우 의원을 통해 JP를 팽(烹)했다면, 지금 DJ는 시민단체를 통해 JP를 죽이고 있는 것”이라는 친절한 비교분석까지 했다.

    어쨌든 이때까지만 해도 공동여당의 관계가 겉으로는 파열음이 커지고 있지만 안으로는 봉합의 여지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민주당 일각에서는 탄압받는 JP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일종의 자팽(自烹) 전술이라는 분석마저 나왔다. 또 국민회의의 내각제 강령이 민주당의 강령으로 승계되지 않을 때부터 이미 시작된 자민련 ‘몽니’의 연속선상에서 해석되었다. 저러다 말겠지.

    총선시민연대가 공천 반대자 명단을 발표하기 나흘 전인 지난 1월20일 오전. 이날 열리는 민주당 창당대회를 목전에 두고 자민련은 이양희 대변인 명의로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창당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자민련(혹은 JP)은 민주당(혹은 DJ)이 내각제 강령을 수용하거나, 내각제 강령 삭제에 따른 성의 있는 제스처나 자민련이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카드를 보내오길 바랐던 것일까.

    “우리 당은 오늘 오전 9시30분 당 총재실에서 이한동 총재 주재로 긴급 당 5역회의를 열고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을 축하하기 위하여 김현욱 사무총장이 참석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종필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는 참석치 않기로 하였다.”

    논평 아닌 성명을 낸 것부터가 자민련다운 어법이었다. 아니 JP식 어법이었다. 총재단의 불참 성명 뒤에는 토가 달려 있었다.

    “1997년 ‘제15대 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 선언 및 합의문’에 명시된 바 있는 내각책임제 추진과 관련된 사항들이 신당의 강령에 포함되지 않고 있음에 대하여 유감을 뜻을 표한다. 내각책임제는 공동정권의 기반이며 대국민 약속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창당대회에 민주당 총재의 자격으로 참석해 정치 개혁과 총선 승리를 고취하던 그 시각에 자민련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은 남산 자유센터의 깃발이 휘날리는 장충동 타워호텔에서 한국의 보수단체 대표자 100여명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며 보수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총재는 이 자리에서 본인의 정치적 소신인 보수대통합의 구상을 설명하고 자민련이 주축이 돼 보수대통합을 이룩할 터이니 보수세력들이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말 것을 부탁했다.

    이번 선거를 보수 대 진보 혹은 보혁 대결구도로 이끌어 가려는 자민련의 차별화된 전략이었다. 이한동 의원을 당총재로 영입한 것부터가 그런 선거구도를 선명하게 유지하려는 전술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초의 ‘연내 내각제 개헌’ 약속이 지난해에 DJP 합의로 유보됨으로써 DJP 연합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그 이후 추진된 합당 혹은 거대 신당 프로젝트마저 무산될 때부터 JP와 자민련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합당이 물 건너 간 뒤로 자민련은 당장 지난해 말부터 독자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제는 전적으로 정부에서 당으로 복귀한 JP의 몫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연내 내각제 개헌 유보 이후 지금까지 실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자민련의 정당 지지율은 한번도 10%대를 넘어선 적이 없다. 심지어 지난 1월에는 그때까지 정식으로 창당하지도 않은 민주노동당(창당준비위)보다 지지도가 훨씬 더 낮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권인 자민련의 지지도가 내각제라는 존립 기반을 유보함으로써 당에 대한 지지 또한 유보된 것이다.

    그런 여건에서 JP의 운신의 폭은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번 물린 내각제를 되돌릴 수도 없으니 뾰족한 대책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런 과부(JP) 사정을 뻔히 아는 홀아비(DJ)가 이런 와중에 내각제 강령을 배제함으로써 자민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JP로서는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홀아비 사정도 있을 법했다. 내각제 강령을 승계하지 않은 그 진의는 내심 의심스러웠지만, 어차피 내각제 개헌이란 것이 민주당 강령에 들어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강령에 없다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YS는 금고에 보관해둔 내각제 합의각서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깟 종이조각보다는 DJ의 의지와 결단이 더 중요한 것이다.

    JP의 처지에서 그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길 들이려고 했던 이인제라는 ‘새끼 호랑이’를 DJ가 선대위원장으로 기용한 것이었다. 이위원장은 그 누구보다도 드러내 놓고 내각제를 반대해온 대통령제 주창자이다. 내각제 강령은 빼고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거 사령탑으로 앉힌다? 이건 제 갈 길을 가자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위원장은 자민련과의 합당이 무산된 뒤로는 JP의 텃밭인 고향(논산) 출마 의지를 내비쳐 오지 않았던가. 총선시민연대로부터 당한 ‘명예로운 은퇴’ 권고라는 불명예는 어찌 보면 참고 또 참아야 할 평생의 업보지만 이건 생존의 문제였다. 어, 최형우 대신 이번에는 이인제인가? JP로서는 그런 생각이 퍼뜩 들 만도 했다. 과부 사정 빤히 아는 홀아비가 장성한 양자까지 들인 격이라고나 할까.

    JP냐 이인제냐 양자 택일하라는 시위

    그것은 JP의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런 판에 때 마침, 어차피 보수세력과는 거리가 먼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공천 반대자 명단을 들고 나온 것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보수대통합과 신보수주의는 아무리 외쳐도 지지율에서 표가 나지 않지만 DJ 혹은 그 홍위병들이 시민단체들을 동원해 ‘JP 죽이기’에 나섰다는 음모론은 굴릴수록 커지는 지역감정의 ‘눈덩이 효과’를 낳는 묘약이었다. 겉보기에는 DJ에게 진보세력을 동원한 ‘JP 죽이기’를 중단하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JP의 홀로서기’였지만 실제로는 JP냐 아니면 이인제냐를 양자 택일하라는 시위였다.

    물론 JP는 그때까지도 말을 삼갔다. JP는 아직까지 공조 중단이니 공동정부 철수니 하는 말은 일절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런 쪽으로 분위기가 휩쓸릴 규탄대회나 비상 당무회의 같은 민감한 자리에는 아예 참석하지도 않고 있다. 그 대신 이한동 권한대행과 김현욱 사무총장을 내세운 막후 수렴청정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평시(平時)라면 원래 청와대에서 DJP 회동을 가졌을 날인데 이미 전시(戰時)나 다름없었다. 이한동 권한대행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국회 헌정기념관 앞에서 개최한 ‘헌정질서 파괴책동 규탄대회’에서 “공동여당(민주당)에 대해 더 이상 약속을 구걸하지 말고 양당 공조니 연합공천이니 공동정권이니 하는 미련을 오늘을 기해 떨쳐버리자”고 기염을 토했다. 또 이날 열린 자민련 의원총회에서는 “말로만 공조 중단을 주장할 게 아니라 총리(박태준) 철수를 논의해 단안을 내리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더 논의되지 않았다.

    사실 자민련이 공조를 중단하거나 공동정부로부터 철수한다면 그 핵심은 박태준 총리의 철수인데 박총리가 그런 요구를 받았거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기색은 없다. 그런 점에서 위장전술이니 제한전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JP의 반DJ 드라이브 목표는 권력 핵심으로부터 탄압 받는 2인자 이미지를 되살려 자신의 텃밭(충청권)을 지키고 연합공천의 몫을 늘리려는 일종의 마조히스트적인 자팽(自烹)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DJ로서는 JP의 진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DJ는 김봉호 국회 부의장(1월25일)과 한광옥 비서실장(1월28일)을 차례로 청구동으로 보내 내각제에 대한 자신의 충심(衷心)을 전달하고 JP의 이해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협상 등 한시가 급한 DJ로서는 JP가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의 초청으로 방일(2월3~8일) 하기 전에 연합공천 문제 등 현안을 매듭지어야 했다. JP는 그럴수록 느긋해 보였다.

    자물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두 사람의 입에서는 JP와 나눈 구체적 대화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JP가 언제 공조가 깨졌다고 한 적 있느냐”(자민련 이덕주 공보특보) “자민련에서 공조를 깨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의미 있다”(남궁진 정무수석) 같은 고공 탐색전만 오갈 뿐이었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 JP가 수도권 연합공천 배분비율을 둘러싸고 DJ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민련은 2월1일 보도자료를 내고 “JP는 한광옥 비서실장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공동정권이면 그쪽에서 6을 가져갈 때 4는 자민련에 베풀어야지, 당신들은 8을 가져가고도 2를 베풀려고 하지 않는다’고 자민련의 소외감을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연합공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는 주장.

    JP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인 2월2일 이한동 권한대행과 함께 합동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의원이 자민련에 들어온 뒤로는 일절 기자들과 따로 만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JP는 2여 공조에 대한 입장과 연합공천에 대한 전망 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디에 원인이 있건 간격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신의를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도리 없는 것이다…앞으로의 과정을 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좌표에 서 있다. 좀더 지켜봐라.”

    JP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정가 일부에서는 JP가 DJ에게 이인제 선대위원장의 배제나 적어도 이위원장의 충청권 출마 포기를 요구한 것으로 관측했다. 자민련 의원들은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가 있다고 말했다. JP는 선거법 협상 막바지에 일본에서 돌아와서도 여전히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JP가 일본에서 가져온 보따리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비록(秘錄)’이라는 책을 읽어보라는 선(禪)문답이 전부였다. 중국 대륙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든 문화혁명 시절의 마오쩌둥과 홍위병은 그가 한국 정치에도 곧잘 대입해온 화두였다.

    이인제의 스윙전략과 인물 대망론

    그러나 청와대를 겨냥한 JP의 침묵 공세가 이어지는 동안 이인제 진영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JP를 딛고 일어선다는 중대한 결단이 무르익고 있었다. 이른바 인물 대망론과 스윙 전략으로 JP를 정면 돌파한다는 이인제 선대위원장의 결단이다.

    이위원장의 핵심 측근은 이위원장이 선대위원장으로서 청와대에 들어가 자신의 지역구 출마 결심을 밝히고 김대통령 앞에서 선거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직접 그렸다는 한반도 지도와 S자 모양의 화살표가 그려진 스윙(Swing) 전략 메모를 보여주었다. 스윙 전략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해 호남-충청-수도권-강원으로 이어지는 벨트를 구축한다는 것인데 이를 지도상에서 보면 S자 형태이다. 여기에 바람몰이라는 의미를 덧붙여 스윙이라는 말이 된 것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영남에서 올라오는 한나라당의 기세를 이 벨트를 구축해 차단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스윙 전략의 이론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주는 당의정이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 승리를 위해서 이 벨트를 통한 바람몰이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본거지인 목포·광주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켜 대전·논산의 충청권을 경유, 수도권을 거쳐 강원도로 빠져 나가는 바람몰이 전략이다.

    스윙 전략의 핵심은 역시 충청권. 충청권 본거지에서 이인제 바람을 일으켜야 충청권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충청권표가 결집한다는 논리이다. 그렇게 JP 아성인 충청권에 깃발을 꽂으려면 이인제 위원장의 지역구 출마가 불가피하고 결과적으로 JP와는 각을 세우고 충청권에서 대치 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주축으로 한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후보로 논산-대전벨트를 형성하고 당에서도 동교동계가 직접 지원해 줄 것을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동석한 정치학 교수 출신의 장을병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역시 이인제 위원장”이라며 무릎을 쳤고 DJ도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DJ로서도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는 셈이다.

    JP와의 또 다른 정면 돌파 전략은 이른바 충청권 인물 대망론. 이 또한 스윙 전략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도권 인구에서 충청권 인구 비율은 20% 선이다. 어느 일방의 압도적 우세를 점할 수 없는 수도권의 접전 양상에 비추어 그 20%가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으로 가면 민주당의 수도권 석권 전략은 깨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인제를 충청권 대표주자(인물 대망론)로 내세워 수도권의 충청권 표를 민주당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그럴려면 본거지(충청권) 민심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본거지 연고 없는 표는 날아가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신이 충청권에서 JP와 각을 세우고 대치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윙 전략이 아니더라도 DJ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민련이 선거법 협상·표결에서 1인2표제를 거부하는 바람에 민주당의 숙원사업인 전국 정당화의 길은 어렵게 되었다. 불리한 선거법 협상의 결과로 의석수가 줄어든 민주당으로서는 한 석이 아쉬운 판이다. 쉽게 말해 이번 선거가 지역구도대로 간다 해도 영호남 의석수 차이는 36석. 수도권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분점한다 해도 영호남 의석수 차이를 극복하려면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을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눌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DJ에게 보고한 이위원장의 스윙 선거전략은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JP는 흔히 만화나 캐리커처에서 토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긴 이빨을 드러낸 ‘토끼아범’의 외양은 나름대로 JP의 외모와 내면의 특징을 잘 잡은 것이다. 그런데 JP는 토끼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몇 해 전에 JP의 측근이 만화가들에게 JP를 토끼 모습으로 안그렸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는 것이다. 토끼의 약한 이미지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토사구팽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고사성어의 본뜻으로 보자면 JP 이미지는 ‘구팽’(狗烹)에 해당하지만 얼핏 듣기에는 ‘토사’(兎死)의 토끼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한반도는 지도상으로 보면 토끼 모양이다. 스윙(Swing)의 첫 자가 S자이기도 하지만, 그런 토끼 모양 때문에 지도상의 스윙전략 거점을 이으면 S자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윙전략은 ‘토끼몰이 전략’ 즉 JP를 잡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위원장은 이번 공천에서 국민신당 지분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분은 이번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패하면 물론 지분은 없다. 그래서 이위원장은 자신이 전면에 나선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 JP는 결코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위원장이 지분과 전국구를 버리고 고향(논산)을 지역구로 택한 배경에 대해 한 측근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16대 총선구도는 IJ(이인제)에게 단순한 지역구 의원 선거가 아니라 총선과 경선 그리고 대선 전초전을 겸한 트리플 구도를 띠고 있다. 따라서 국민신당의 지분 논란은 무의미하다. IJ는 이제 대선 광맥(鑛脈)의 초입에 막 들어선 것이다. 경선의 대주주는 DJ와 동교동계이다. 단기필마인 IJ로서는 DJ와 동교동계를 껴안아야 한다. 대선 레이스는 등산에 비유하면 그 고지에 오르는 데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베이스캠프 없이는 반드시 실패한다. 박찬종 의원의 실패가 그것을 웅변한다. 박찬종은 베이스캠프 없이 대선 고지에 오르려다 지금 서울에서 미아가 되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아직 한국 정치에서 근거지 없이는 대선 고지를 오를 수 없다. 그래서 IJ에게 JP는 1차 극복대상이다. 지역적 근거로 봐도 그렇고 전국적 혹은 세대로 보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다. JP를 극복하지 못하면 IJ의 미래는 없다.”

    이인제는 DJ 가문 이으러 간 대속자

    이인제 위원장을 잘 아는 한 정치평론가는 이위원장의 당내 미래와 DJ와의 관계 설정을 꽤 흥미롭게 분석했다.

    “DJ 정부는 기본적으로 지역등권을 업은 소수파 정권이다. 그런데 DJ와 동교동계는 대를 이을 수가 없는 무정란(無精卵)에 비유할 수 있다. 지역갈등구조가 낳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지만 동교동계는 DJ의 대권을 이을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인제 위원장은 대속자(代續子)로 DJ 가문에 들어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수혈 받은 혈액의 테스트 과정이다. 피가 잘 적응하는지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대속자가 잘 되려면 대속자는 종손(從孫)들을 포용하고 종손들은 대속자를 지원해야 한다. 이번 총선이 그 첫 시험대이다.”

    이인제 선대위원장은 2월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구(논산-금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위원장은 DJ로부터 출마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려 왔다. JP와 일전을 벌여도 좋다는 내락을 받은 셈이다. 그 뒤에는 박병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대전 서갑) 등 그와 함께 이인제 벨트를 형성할 신진 인사들이 배석했다. 민주당은 다음날에도 속속 충청권 공천자를 내정하는 등 본격적인 충청권 공략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위원장을 축으로 남재두·송천영 전 의원(대전 동구), 박병석(대전 서갑), 송석찬 전 유성구청장(대전 유성), 이원성 전 대검차장(충북 충주), 이용희 전 의원(보은·옥천·영동) 등으로 충청권에 ‘이인제 벨트’를 형성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자 충청지역에서는 JP의 지역구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벌써부터 긴장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그럴 경우 JP와 이인제뿐만 아니라 자민련과 민주당의 정면 충돌도 예상된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련이 여당의 ‘공멸’ 우려가 있는 충청권 대격돌을 피해 대타협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충청권 독자출마를 포기하고 자민련을 지원하는 대신 자민련은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연합공천을 성사시켜 공동여당의 공조를 실현하는 정치적 타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옥두 사무총장도 “이인제 선대위원장은 평소부터 논산·금산 출마를 원해온 만큼 당에서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자민련의 김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이 지역구에 출마할 경우 이 지역에는 공동정부간 정치적 예우 차원에서 공천하지 않을 방침이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또 여권 일부에서는 “이위원장이 충청지역에서 어느 정도 파괴력을 발휘하면 JP도 고민에 빠질 것”이라며 “3월 초순께 연합공천을 포함한 두 여당의 ‘선거공조’ 문제가 다시 물위로 떠오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귀염둥이’ 이인제 꽃놀이패

    정치권 정보를 다루는 호사가들은 이인제를 ‘귀염둥이’로 표기한다. JP는 분명 지난 대선 집권의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이인제 역시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여야 정권교체의 숨은 공신이다. 그래서 그를 귀염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귀염둥이는 JP뿐만 아니라 예산을 고향으로 내세우는 이회창 총재에게도 눈엣가시이다. 세 사람은 모두 중원(中原)의 근거지(충청권)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이다. 이인제 카드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이니 DJ에게는 여간 기분좋은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다.

    JP의 총리 시절에 국무총리실 웹사이트에 개설한 김종필 국무총리의 홈페이지인 ‘휴먼 JP’에는 그의 약력과 가족관계, 인생관, 성격과 취미, 건강상태와 신체조건, 심지어 별명이나 첫사랑, 그리고 애정관에 이르기까지 JP의 모든 것이 상세하게 들어 있다. JP는 이 ‘휴먼 JP’에서 자신의 인생 고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① 4·19 전후 정군운동으로 구속, 강제 예편되었을 때

    ② 5·16 혁명

    ③ 3선 개헌 당시 일체의 공직사퇴

    ④ 1980년 5·17로 구금, 정치활동 규제

    ⑤ 1995년 민자당 탈당

    사실상 팽(烹) 당한 것으로 알려진 다섯 번째 고비를 그는 ‘민자당 탈당’이라는 ‘능동형’으로 적고 있다. 수동과 피동 그리고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고집스런 일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이제 여섯 번째 인생 고비를 맞고 있다. 이 ‘어지럽고 혼란스런’ 국면을 그가 어떻게 돌파할지 궁금하다. 다만 JP의 인생 행적에 비추어 분명한 것은 그가 이 난국 돌파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그의 의지보다는 4·13 총선을 향해 째깍째깍 움직이는 ‘이인제 시한폭탄’의 파괴력에 달려 있다는 수동적인 국면이 JP한테는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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