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처남 전태일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 임삼진 전 청와대 민정비서실 국장

    입력2006-11-27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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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다 사표를 내고 4·13총선에 뛰어들었던 한 정치신인. 공천관문의 ‘비민주적 현실’ 앞에서 그가 맛봐야 했던 좌절좌 분노. 그리고 정치개혁의 ‘진짜 장애물’에 대한 체험적 고발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2000년 1월29일 오후 5시 그동안 내가 선거를 준비해온 강서구 화곡동 국민정치연구회 강서지부 사무실에는 긴장을 넘어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주말 오후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달려온 50여명의 사람들. 나와 더불어 삶의 무게를 나누던 분들, 선후배들, 선거 준비를 돕던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과 중대한 결정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제가 한평생 살아온 민주주의자의 길을 갈 것인가,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나선 후 활동하면서 저는 경선없는 공천제도는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설령 제게 불이익이 올지라도 이런 문제를 알고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날 모임은 정치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킨 ‘국민주권 회복을 위한 어느 민주주의자의 선택’을 발표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최종 판단을 내리기 위한 자리였다. 눈시울을 적시며 뜻을 밝히는 내 비장함 속에는 이미 결론이 담겨 있었는지 모른다. 공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자의 길을 가는 것은 의로운 일’이라는 격려 속에 ‘경선을 통한 상향식 공천운동’을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비장한 각오

    청와대 민정비서실 국장직의 사표가 1999년 12월 29일자로 수리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뛰어든 지 꼭 한 달만의 일이었다.



    예상한 일이지만 함께 일하던 비서실 동료들로부터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공천이 안될 것 같으니까 무모한 행동을 한다고 비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 담긴 충고를 들었고, 나를 아끼던 어느 분에게는 매서운 질책을 받기도 했다. 모두가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일 것이다.

    “제 양심의 선택입니다. 전면적인 경선이 어렵다면 수도권이나 호남 등 일부 지역에서라도 경선을 실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비록 공감을 얻지는 못했지만 내 주장을 견지했다. 지지와 격려도 적지 않았다. ‘함께 하는 시민행동’이라는 한 시민단체는 곧바로 성명을 내기도 했다.

    “16대 총선과 관련하여 공천신청 과정의 민주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임삼진씨의 고백을 보고 한편으로는 우리 정치의 현실에 대해, 또 한편으로는 정치신인들의 현실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으며 기본적으로 임삼진씨의 주장에 지지를 보낸다.

    진정한 정치개혁 없이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정말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권에도 훌륭하고 역량을 지닌 많은 분들이 있고 또 그러한 분들이 정치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를 유지하는 시스템의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정말 올바른 변화와 희망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천이라는 벽

    군부독재의 폭압에 저항하여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의 외길을 고집해온 나는 지금도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눈물 없이는 부를 수 없을 만큼 대학시절의 민주화운동에 강한 감동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전태일 열사의 막내 여동생과 결혼한 사람이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통령 비서실 근무까지 한 내가 ‘돌출행동’이라는 비난을 각오하면서까지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국회의원 출마 문제를 아내와 상의하는 것을 듣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짜리 장남이 “아빠, 그 지저분한 것을 꼭 해야 돼?”라고 물었을 때 나는 출마를 결심했다. 이 지경까지 돼버린 정치를 개혁하여 국민들에게 신선함과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해보자, 국민들에게 희망의 샘물 역할을 하는 정치를 해보자는 결심이 확고히 섰다. 이런 소박한 신념을 주위 분들과 상의한 뒤 사표를 냈다.

    먼저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년반 가까이 살아온 터라 그래도 나를 아껴주는 분들의 격려로 기분 좋게 시작했다.

    많은 주민을 만나면서 내가 시민운동이나 청와대 민정국장 시절에 알 수 없던 ‘현실’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정치인으로서 사람을 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어디에 있고, 왜 있는지도 배웠다.

    “4년간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선거 때 되니까 표 달라고 와서 굽실대고… 제발 그런 식의 정치는 마쇼.”

    “IMF 한파로 국민은 어려울 때도 세비 한푼 깎지 않고 버티더니, IMF 극복하기도 전에 세비부터 올려? 정치가 서민들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지, 그렇게 서민을 배신해도 되는가.”

    “다 바꿔야 돼. 참신한 사람들로 바꿔야지 원…”

    극도로 심화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정치신인인 나에게는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돼야죠’라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어느 놈이나 똑같지 뭐’ 하는 한통속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그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정치를 설계하고 비전도 그릴 때 힘이 났다. 정치를 시작한 것이 잘한 일이고, ‘생활정치’가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만나는 시간은 지역사회의 비전과 정치의 미래를 설계하는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 “젊고 개혁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며 개혁을 강조하는 분들에게서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공천’이라는 말이 가끔씩 김빠지게 했다.

    “청와대 출신이니까 공천은 받아 왔겠죠? 일단 공천을 받아와야지. 공천 안 받으면 모든 게 허사일지도 몰라요…”

    이런 말들 속에서 이 나라의 정치가 어디서부터 왜곡됐는지를 깨닫게 됐다. 어이없게도 강서갑에서 뛰는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강서을 공천내정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장성민 전 청와대 상황실장도, 박홍엽 당 부대변인도, 박항용 변호사도, 늦게 뛰어든 이성재 의원도 하나같이 공천을 보장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내정자입니까?”

    그 사람의 정치적 비전이나 공약, 신뢰성 같은 것은 들어볼 것도 없다. 공천을 받아야 한다. 호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지자들은 지역을 돌려는 후보들의 등을 떠밀며 ‘왜 시간 낭비하느냐, 중앙에 가서 공천 따와야지’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 공천은 정치의 모든 것인 셈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열심히 뛸수록 현실의 벽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것인데, 주민들의 뜻과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공천이 결정되는 모순을 직접 겪게 된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온 하향식 밀실공천의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역행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솔직히 나 자신도 ‘내가 공천 받으면 잘된 공천이고, 남이 공천받으면 문제가 있는 공천’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당내 민주주의니, 민주주의 원리니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내 공천’이 중요할 뿐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현실 정치’에 관한 조언을 들었기에 ‘공천’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대통령 비서실 근무경험과 인간관계, 민주화운동 어른들의 신뢰, 이소선 어머니의 후원 등은 공천에 긍정적 요소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현 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민주화운동의 어른들께도 “잘 말씀 드려달라”고 공천을 부탁드리기도 했다. 장모님을 모시고 핵심 실세라는 분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그분들 가운데 일부가 시민단체들의 낙천후보로 발표된 후 정말 괴로웠다. 평생 민주화운동이라는 대의를 지키면서 곧게 살아오신 어머니를, 내 정치적 욕심으로 어머니께 허물을 드린 것은 아닌지, ‘욕심에 눈먼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정치가 뭐기에, 못난 사위가 어머니까지 이용하려 들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것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러나…’ ‘옳지 않은 길이라면 빨리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내심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몇몇 정치신인들이 공천 정보를 얻으려고 실세 비서들과 친해지려 애쓰거나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나는 그 속에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보았다. 나는 자신에 대해 좀더 솔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개혁세력답게 정치를 하고 있는가.”

    “이렇게 위를 보는 정치를 한다면 기성 정치인들과 달라질 게 있을까?”

    스스로를 돌아볼 때 깊은 회의가 생겼다. 어느새 기성 정치가의 관행을 따르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 것이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목표는 당초 공천권을 얻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결심했던 청년시절의 심정으로, 허위로 둘러싼 껍질을 깨고 참 민주주의자로 다시 태어나리라 다짐했다.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신인 몇 사람과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 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젊은 피’로 불리는 분들도 경선이라는 민주적 제도의 정착보다는 ‘인물 교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칫 경선이 인물교체 분위기를 제약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나도 그런 의견에 부분적으로 공감했으나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충실한다면 결론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선제도가 정착되지 않고 밀실공천이 계속되는 한 현재의 잘못된 정치구조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새 인물’도 기성정치가가 되고 말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깨지 않는 한 한국정치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가오는 불법 타락선거의 유혹

    오염된 과거 선거판의 잔영은 나에게도 예외없이 다가왔다. 나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분들조차 때로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식당에 사람들을 모을 테니 와서 저녁을 사라는 것. 이미 다 모아놓고 연락이 왔을 때 그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단호하게 거부하는 나와 승강이가 오가기도 했다.

    “다 그렇게 하는데 혼자 이렇게 선거를 해서 어쩌자는 거야.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

    “저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단 10원의 식사비도 지급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에 사무실에서 점심을 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0표를 못 얻어도 좋으니 밥 사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내가 직접 하지도 않은 약속이지만 펑크를 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사랑방 좌담회의 유혹도 많았다.

    밥값을 지급하기 시작하면 선거 때까지 그 돈만 4억~5억원이 든다는 얘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조직활동에 탄력이 붙으면 활동하는 사람이 최소 100명은 될 것이다. 100명이 활동하면서 커피값과 밥값을 쓰기 시작하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의 최소 경비는 하루 10만원 이상이다. 10만원도 쓰지 않는 활동원이라면 그 활동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단순계산으로 한달에 3억원이라는 경비가 나온다. 10만원×100명×30일=3억원. 여기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그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언론에 정치 신인들이 이미 몇억을 썼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기사들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예 “활동비, 식대, 교통비를 일절 지급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원칙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지난 15대 선거경험을 바탕으로 방송인 서유석 선배가 들려준 충고도 이런 결정에 큰 도움이 됐다. “절대로 돈 쓰지 말라. 다 쓸데없는 일이니까. 임형의 원칙을 굳건히 지켜라.”

    정치신인들의 활동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현행 선거법은 기존 정치인들이 신인들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장벽 노릇을 하고 있다. 솔직히 그분들이 ‘의회민주주의자’인지 묻고 싶다.

    정치신인의 어려움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명함 문제다. 현행 제도는 ‘현재의 직책’만 쓰도록 하고 있다. 내 경우 ‘녹색교통운동 사무총장’ ‘대통령 민정비서실 국장’의 약력을 넣어야 하는데 이것은 불법이란다. 결국 내 명함은 언뜻 보기에도 정치사기꾼 냄새를 풍기며 전혀 신뢰감이 없어 보인다.

    신문 인터뷰 기사 몇 개를 복사해 사무실에 비치했다가 ‘선거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구민회관에서 행사를 하려 해도 현역 의원은 되고, 신인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 현역 의원의 ‘의정보고서’에는 어째서 출신중학교까지 소개돼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의정보고에 왜 약력이 필요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내용이란 의정보고와 거의 상관없는 ‘사실상의 선거용 홍보물’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선거법을 그대로 두고 선거를 치르자는 의원님들의 인격 수준에 놀랄 뿐이다.

    선진국에 비해 정치가 30년 뒤졌다느니, 40년 뒤졌다느니 하는 말도 있지만 미국에서도 예비선거제도가 정착할 때 나름대로 부작용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대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보스 지배체제 종식’ ‘당내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더욱 중요한 대의가 중시되었다. 현재 우리의 공천제도는 미국에서 이미 100년 전에 폐기된 전근대적·비민주적 제도다.

    나는 이제 ‘내가 공천을 받는 것이 이 나라의 정치개혁’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오히려 ‘멋지고 공정한 예비선거를 통한 후보자의 결정(후보자 사이의 선의의 경쟁) 쮒 후보자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여 선거를 치름(패배자는 승리자를 도움) 쮒 선거 후에는 지역사회에서 정치인들의 성의 있는 활동 쮒 다음 예비선거’ 방식으로 정당활동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믿는다.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문제점이 예상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고 옳지 않은 길을 갈 수는 없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말자는 것은 교묘한 왜곡 아닌가.

    출마의사를 밝힌 사람이 ‘타당한 절차나 과정’ 없이 당내 선거 등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위에서 결정한 공천자를 무조건 도우라고 하는 것은 ‘제도화된 폭력’이다. 그래서 탈당이나 무소속 출마가 나오고 이른바 철새 정치인이 양산되는 ‘정당정치의 왜곡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향식 공천제도는 민주주의의 학교가 되어야 할 정당을 비민주적인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향후 정치개혁의 핵심 고리는 ‘경선의 정착과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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