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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특집|시민 선거혁명은 폭발하는가

‘지리산 결의’에서 공천철회운동까지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지리산 결의’에서 공천철회운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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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총선시민연대 대변인을 맡은 장원 사무총장의 기억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강경 발언’이 주류를 이뤘다. “정치권이 굉장히 오염돼 있다” “아주 강력히 대처하지 않는 한 정치권 개혁은 요원하다” “(낙천·낙선운동) 명단을 발표해야 한다” 등 울분에 찬 얘기들이 쏟아졌다. 신중론은 거의 없었다.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하자”고 결의했다. 회의가 끝난 후 이들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공천반대 및 낙선 대상자를 선정, 이들을 정치권에서 추방하기 위한 광고·홍보활동을 펼치는 한편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참여를 가로막는 선거법 87조 철폐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12월18일엔 실무자들의 토론회가 마련됐다. 토론 주제는 ‘2000년 총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총선시민연대 구성을 위한 실무적 토론이었다. 우선 전의(戰意)부터 다졌다. 불법을 감수하고라도 낙선운동을 강행하는 데 동의하는 단체들만 참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반면 공천반대자와 낙선대상자를 정하는 방법에 대해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논란 끝에 선정기준은 보통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데에 합의하고 기본자질 평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부패·선거법위반·반인권·반민주주의 전력 등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준들을 우선 적용하되 지역감정 유발, 여성비하 등 특정 행위에 대해선 별도의 평가를 덧붙이기로 했다.

실무 대표자들은 각 단체 대표자 연명으로 제안서를 만들었다. 그후 열린 대표자 간담회에선 준비모임을 이끌 공동대표 3명을 뽑았다.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 지은희 여성연합 상임공동대표,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이 맡았다. 불법운동이라는 점을 감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제2, 제3의 대표단까지 내정해 두었다. 상당히 비장한 분위기였다. 참여연대가 공동사무국 사무실을 마련키로 했다. 초기 가입단체는 매월 30만원씩 분담금을, 뒤에 가입하는 단체는 10만원씩의 회비를 내기로 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그간 시민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경실련의 행적. 총선시민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낙천·낙선 움직임에 소극적인 동조를 보이던 경실련은 12월18일을 분기점으로 대열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경실련은 이날 토론회에 불참했다. 총선시민연대측에 따르면 초청장을 보냈는데 공식 불참을 통보했다는 것.

그러나 경실련측 주장은 조금 다르다. 이석연 사무총장은 “공식초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위야 어떻든 경실련은 그후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명분은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펼치겠다는 것. 일부에선 이를 시민운동의 주도권 다툼으로 비판하지만 경실련측엔 그럴 만한 명분이 있었다. 경실련은 99년 초 문제의 선거법 87조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1월25일 합헌결정을 내렸다. 낙천·낙선운동에 뜻을 같이 하는 시민단체들이 준비모임으로 분주할 때였다. 이사무총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경실련은 10년 동안 합법운동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합법성을 강조해온 경실련이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12월22일 마침내 공동사무국이 문을 열었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참여연대 옆 안국빌딩 2층이었다. 가장 시급한 일은 낙천·낙선 대상자 선정의 기준이 될 기초 자료 수집이었다. 뒤에 총선시민연대의 정책기획국장을 맡은 참여연대 이태호 시민감시국장을 팀장으로 한 자료조사팀이 만들어졌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이강준 간사가 부팀장을 맡았다. 12명의 상근자와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합쳐 꼬박 한달 동안 자료조사에 매달렸다. 총선시민연대의 탄생은 이들의 눈물겨운 밤샘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사팀은 먼저 15대 국회의원 속기록, 국회 출석기록, 법안발의 현황자료, 재산공개 자료, 공약사항 기록, 국감요구자료 등 국회 자료를 수집했다. 거기에 각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모니터 자료들을 덧붙였다. 그밖에 모든 일간지와 주·월간지 기사, 그리고 국보위 백서 등 수백권의 단행본을 모았다. 15t 트럭 한 대 분량의 방대한 자료였다.

2000년을 사흘 앞둔 12월28일. 총선시민연대 준비위원회는 서울 명동에서 가두집회를 가졌다. 20세기와 더불어 낡은 정치도 사라지기를 염원하는 송년집회였다.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이 사회를 맡은 이날 집회는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날 이후 낙천·낙선운동이라는 말이 언론에 공공연히 등장했다.

성공적인 여론화와는 별개로 각 참가단체 실무자들 사이에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간부회의가 열리면 대세는 ‘낙선’을 못박고 가자는 쪽이었다. 반면 소수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불법성과 고의성을 너무 강조하면 정치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법적 시비에 휘말려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엉뚱한 데 힘을 뺄 수 있다는 신중론이 만만찮았다. 특히 지방 시민단체들이 부담스러워 했다.

여론 업고 초반 대세 장악

지역 단체 대표자 간담회에선 낙선운동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왔다. 그에 따라 일단 ‘낙천’에만 주력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으나 실무진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강경론자들은 내심 ‘초반에 어떤 모양을 취하든 결국은 낙선운동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참가단체들의 이런 내부 갈등을 해결(?)해준 것은 공교롭게도 독자노선을 걷던 경실련이다. 경실련이 합법성을 강조하며 은근히 시민연대측의 불법성을 비판하자 분위기가 바뀐 것. 1월7일 시민연대측 지도부는 강경으로 돌아섰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원칙을 고수하는 소수만 가자”며 선명성 기치를 내걸었다. 정치권도 그쯤부터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불안감이 담긴 논평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은 시민연대측은 세불리기에 나섰다. 그간 참여를 희망하는 단체의 가입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던 편이었는데, 그때부터는 기본 취지에 동의하는 단체라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다 받아들였다. 십 단위에 머물던 참여단체의 수가 순식간에 백 단위로 올라섰다. 총선시민연대 김기식 부대변인에 따르면 그것은 전쟁 선포였으며 그때부터 조직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100여 단체가 한꺼번에 가입한 날도 있었다. 가입 단체 수는 며칠 만에 400여개로 늘었다.

그런데 돌발변수가 생겼다. 1월10일 경실련이 총선 부적격인사 164명의 명단을 전격 발표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진 것. 보기에 따라선 시민단체들의 분열로 비칠 만했다. 총선시민연대의 한 간부는 당시 경실련의 명단 발표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다들 격앙했어요. 경실련이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같이 가자는 제의를 끝내 거절하고선 다른 단체가 하는 일에 합법이니 불법이니 운운하는 것도 부당한 일이었는데, 이쪽이 먼저 위험을 감수하며 합법 공간을 만들어 놓은 후-당시 선관위가 모호한 해석을 내놓았거든요-그런 식으로 터뜨리니 우리로선 황당한 일이었지요. 리스트에도 문제가 많았지요. 경실련의 리스트는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을 줬습니다.”

경실련이 ‘적전 분열’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선수’를 친 데는 어떤 속사정이 있는 걸까. 이석연 사무총장에 따르면 경실련은 ‘졸속’이라는 일부 주장과 달리 12월초부터 명단 공개를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이총장은 경실련의 ‘독자 행동’을 이렇게 해명했다.

“지난해 11월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과 낙천·낙선운동의 방법에 대해 몇차례 협의했어요. 그런데 10년 동안 합법운동을 해온 경실련에는 건전한 진보를 지향하는 세력의 뿌리가 매우 깊어요. 정치개혁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거에 참여한다는 뜻은 같았지만 방법 면에서 시민연대측과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경실련의 명단 발표는 낙천운동이 아닌 정보공개 차원이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살생부’ 작성되다

경위야 어쨌든 경실련의 명단 발표는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전쟁을 앞당기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은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지지하고 있었다. 1월12일 마침내 총선시민연대가 공식 출범했다. 1월9일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부패·선거법위반·민주질서파괴·반인권전력 등을 공천반대의 주요 기준으로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은 “법이란 내용이 정당해야 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악법’에 대한 불복종을 선언했다. 주요 참여단체들은 공동사무처 파견자 수를 늘렸다. 각 단체는 또 각자의 고유사업을 전면 보류하고 올 상반기엔 낙천·낙선운동을 통한 정치권 개혁에 집중하기로 뜻을 모았다. 상근자 수는 30여명으로 늘어났다.

조사팀은 전·현직 의원 329명에게 공문을 보냈다. 1월14일부터 의원들의 소명자료가 쏟아져 들어왔다. 14일 하루 동안 70여건의 답변서가 들어왔다. 1월15일 총선연대사무실에서 상임집행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다. 공천반대 검토대상자로 95명이 선정됐다. 최초의 ‘살생부’였다.

다음날인 1월16일은 일요일이었다. 이날 오후 3시 ‘100인 유권자위원회’가 서울 마포동에 있는 민언련 강당에서 첫 회의를 열고 공천반대 대상자 선정기준과 1차 선정대상자 중 논란이 되는 10여명을 심의했다. 참가 인원은 61명. 이들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제시한 지역별·성별·연령별 기준에 따라 500여개 참가단체 소속 회원과 일반 시민 중에서 선정된 사람들이다.

1월17일 여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 폐지를 비롯한 선거법 개정 재협상에 나섰다. 야당 또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재협상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선거법 87조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한 시민이 박원순 집행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낙선운동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3000만원을 기부했다.

1월18일 오후 2시. 상임대표단 및 상임집행위원장단 회의가 열렸다. 상임공동대표단은 김정헌(문화연대 대표) 김중배(언개련 공동대표) 박상증(참여연대 공동대표) 성유보(민언련 이사장) 송기숙(광주·전남정치개혁포럼) 지은희(여성연합 공동대표) 최열(환경연합 사무총장) 오충일(기사협 공동대표) 이남주(YMCA연맹 사무총장)씨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대표단회의에서 명단에 변동이 생겼다. 공천반대 대상자 중 그 사유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 18명이 탈락, 77명으로 줄어든 것. 77명은 ‘가확정자’와 ‘판단 유보자’로 분류됐다.

1월19일엔 정책자문단이 출범했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147명의 교수들로 구성된 정책자문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낙천·낙선운동을 ‘한국판 시민혁명’으로 규정하며 적극적인 지지활동을 다짐했다. 정책자문단은 이날 오후 ‘100인 유권자위원회’의 자문을 거친 명단선정 기준을 심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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