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속에 있다

일본총리 자문단 ‘21세기 일본의 구상’보고서

  • 입력2006-11-27 15: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라는 말에 만족하지 않는다.

    너무 오래 그 자리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자문단 ‘21세기 일본의 구상’ 간담회가 지난달 총리에게 전달한 보고서는 바로 그에 대한 회답이다. 보고서에 ‘영어공용론’이 들어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그것은 보고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당초 오부치 총리가 간담회를 구성하며 던진 화두는 ‘부국유덕(富國遺德)’이었다. 총리가 “지금 우리는 잘삽니다. 그러나 잘 살 뿐만 아니라 덕도 있는 국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 이 보고서다. 오부치 총리가 말하는 ‘덕(德)’의 개념은 확실치 않다.

    대체로 경제력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면에서 세계무대에서 존경받는 국가, 영향력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물론 달라진 일본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오부치 총리는 1월28일 정기국회 본회 연설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보고서는 일본 및 일본인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21세기 최대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숱한 고난을 극복해온 우리 일본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안에 있다’는 보고서의 제목은 일본 및 일본인 안에 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힘차게 선언하고 있다. 정말로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이런 평가로 볼 때 오부치 총리가 보고서의 내용을 전부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꽤 참고할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이날 신문 한 면에 해당하는 오부치 총리의 긴 시정연설 구석구석에는 벌써 보고서의 냄새가 상당히 배어 있었다. 정치인들이 이 보고서의 내용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지 알 수 없지만 이 보고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웃국가, 그것도 무시하지 못할 국가의 지식인들이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료들이 만든 보고서가 아니라 비교적 발언이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참신함도 눈에 띈다.

    보고서는 6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장이 총론이고 나머지는 간담회를 구성하고 있는 5개의 분과별 보고서에 해당한다. 5개 분과는 이름부터 발상의 전환을 느끼게 한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본’ ‘풍요로움과 활력’ ‘안심할 수 있고 윤택한 생활’ ‘아름다운 국토와 안전한 사회’ ‘일본인의 미래’라는 분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오부치 총리의 말대로 ‘곤충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새의 눈’으로 본 것이므로 큰 틀에서 본 일본의 장래라 할 수 있다.

    간담회는 1999년 3월30일 16명으로 출발했다. 좌장은 가와이 하야오(河合準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이 맡았다. 5월에는 33명이 추가됐다. 학계 경제계 언론계는 물론이고 문화계 인사 등도 폭넓게 참여했다. 8월에는 오부치 총리까지 참석해 ‘합숙’을 해가며 토의를 하는 등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였다. 책상머리에서 회의만 한 것이 아니다. 국내외 인사들의 의견도 두루 수렴했다. 손정의(孫正義) 소프트방크 사장도 의견을 개진했다.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5개국 70명과 접촉했는데 이중 한국인은 모두 18명으로 비중있게 다뤘다. 김종필(金鍾泌) 당시 국무총리, 이종찬(李鍾贊)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 어어령(李御寧)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최상룡(崔相龍·현 주일대사) 당시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 조석래(趙錫來) 효성그룹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간담회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높아서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의 김태동(金泰東) 위원장 등 9명이 집단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시대가 바뀔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저런 청사진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청사진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할 만한 역량과 의지를 그 국가가, 아니면 정치적 리더가 갖고 있느냐이다. 이 점이 보고서 내용보다 더 궁금한 대목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눈으로 그 가능성을 해부해 보자.》

    이 보고서는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라는 큰 제목 아래 ‘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속에 있다- 자립(自立)과 협치(協治)로 건설하는 신세기’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내용은 총론(제1장)과 5개 분과별 보고서(제2장에서 제6장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과별 배경 설명 및 의미는 주로 총론에 해당하는 제1장의 내용을 참고했고, 총론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과 구체적인 방법론 등은 각 분과별 보고서에 실린 내용을 요약했다. 발췌할 때는 역자가 판단해 일본을 이해하고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이 보고서에서 새롭게 등장한 조어(造語), 번역상으로 의미가 확실히 전달되지 않는 용어들은 별도의 설명(상자 기사)을 달았다. (번역·정리/ 신정화)

    [ 일본의 거대한 잠재력 ]

    일본 국민들은 1990년대 들어 무엇인가 크게 변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거품경제의 붕괴, 고베 대지진의 충격, 그리고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옴진리교 테러사건과 나고야(神戶) 연쇄살인사건 등-은 일본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더 나아가 일본사회의 가치체계와 윤리규범이 병들었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현 일본사회의 경직성과 취약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전(戰前)시대부터 일본 내부에 조금씩 일상적으로 축적되어 온 결과다.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강조된 ‘서양 따라잡기’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 ‘서양 따라잡기’ 모델에 기초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서방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 동안 쌓아올린 국가시스템은 일본의 정치·사회에 안정을 가져왔고 국민들은 이 시기를 ‘성공시대’로 기억하게 됐다.

    그러나 전후 일본의 성공모델은, 정확히 말해 모델에 대한 과신은 일본의 활력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제는 ‘서양 따라잡기’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완성된 새 모델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답을 외부에서 찾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국가를 참고로 하면서도 일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즉 일본의 미래에 적합한 모델은 일본 안에 잠재하는 뛰어난 자질, 재능,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꽃피우는 것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일본 ]

    21세기 일본의 프런티어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그것들이 일본 외부가 아닌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것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일본어 ‘센쿠(先驅)’는 우리말로 ‘선각(先覺)’의 의미를 갖고 있다. 남보다 앞서서 나간다는 뜻에서 ‘개척정신’으로 바꾸었다(역자).

    일본에는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개인이 앞서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는 일본인에게 팽배한 ‘평등’의식과 관계가 깊다.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고 종(縱)적 조직, 횡(橫)적 의식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21세기 일본은 개척정신으로 무장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도전과 활약에 일본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결과의 평등’을 종결시키고 ‘새로운 공평성’을 도입해야만 한다. 개인의 능력과 재능에는 차이와 격차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업적과 장래성을 평가하는 ‘공정한 격차의식’을 갖고 ‘기회의 평등’이 보증돼야 한다. 동시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이 가능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의 개념을 바꿔야 하며 특히 영어교육을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

    ①교육의 전환: 개인과 사회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개척정신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의 균질성과 획일성을 타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메이지 시대의 교육목표인 근대화를 위한 인재양성법의 근본부터 고쳐야 한다. 평등을 위한 교육에서 각 개인의 능력에 맞는 교육으로 변화시킨다.

    ‘의무로서의 교육’은 최소한으로 하고 엄격하게 시행한다. 반면 ‘서비스로서의 교육’은 시장 질서에 맡기고,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지원에 그쳐야 한다. 예를 들어, 초중등교육은 교육의 내용을 엄선해 현재의 5분의 3까지 내용을 축소한다. 학교는 주 3일 수업을 한다. 이 3일은 ‘의무로서의 교육’을 하고 나머지 2일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사회 양식에 비추어 건전한 목적을 지닌 일을 한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5분의 3으로 삭감된 교육내용은 국민이 국민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저 한도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달성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적으로 제공되는 보충수업교실을 개설한다. 이 보충수업은 학교 교사가 3일 수업 후 남은 2일 동안 실시해도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교사들이 학교 밖에서 자신들이 경영하는 학원에서 실시해도 된다. 이 부분은 의무교육의 연장이므로, 국가가 그 비용을 100% 부담한다.

    한편 주3일의 교과내용을 완전히 소화한 학생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한층 고도화된 전문영역-학업, 예술, 스포츠, 각종 기술 등-을 배우게 된다. 이 부분은 민간교육기관이나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교육집단이 참가하며 나아가서는 기존 학교의 교실을 개방해도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은 국가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행정에 해당하므로, 거기에 알맞은 재정 지원을 행하면 된다.

    예를 들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교육 쿠폰을 지급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제도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르며 악용을 방지할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 쿠폰 전매 금지, 또는 민간 교육기관과 지도자의 자격 인정 등 논의할 문제는 산더미 같다.

    이 제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장에만 맡겨두었던 문화활동을 국가가 지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극장, 콘서트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생애학습강좌, 보이스카우트 활동, 지역시민운동 등이 이제와는 다르게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된다. 기존 교사 입장에서 보면 가장 기초적인 부분(학교교육)은 공적으로 보장되지만 개인적인 노력과 열의에 따라 자유롭게 민간교육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부담할 교육비 총액은 현재보다 증가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는 앞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다.

    의무교육 수료 후 교육은, 현재의 고교를 포함해 자유화와 다양화 그리고 상호경쟁원칙에 맡겨야 한다. 대학과 대학원이 각각의 이념과 학풍에 따라 개성화되며 그에 따라 원하는 학생상을 명확히 표명해야 한다. 고교교육은 그것을 어느 정도 지향하면서, 동시에 실제 사회의 다양화라는 목적에 맞춰 한층 더 복선화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그 정도로 준비를 갖추면 다음은 학생과 부모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일본사회의 다양화는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애에 걸쳐 문화와 친숙하고, 모험심이 풍부하고, 자기 책임에 눈을 뜬 기품 있는 인간을 길러낼 수 있다.

    ②일본의 국가전략으로서 영어교육: 국제 공용어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를 알고, 세계에 접근하기 위한 기초능력을 구비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영어교육 문제는 단지 외국어 교육이 아닌 일본의 국가전략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일본인 모두가 사회인이 될 때까지 실용영어를 구사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 위에서 학년에 구애받지 않는 수준별 반편성, 영어교사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충실한 연수, 외국인 교원의 과감한 확충, 외국어 학교에 영어강의를 일임하는 등의 방법이 고려돼야 한다.

    그와 함께 공적 기관의 간행물과 홈페이지를 일어와 영어로 작성하도록 의무화하는 방법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영어를 제2공용어로 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것은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며, 우선 영어를 국민의 실용어로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성이 일본의 힘이다

    과거 일본 사회는 동질성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다양화 시대에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은 곧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다음 4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①스스로 설계하는 생: 국가와 공적 기관이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 수준의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가운데 그 이상의 것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자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②지방자치 강화: 지금까지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중앙이 지방에 부(富)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중앙집권형이었다. 21세기에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사 및 시읍장에게 이관한다는 지방분권의 발상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지역정부의 존재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역이 수평적인 관계에 서야 한다. 또한 지역주민이 서비스와 부담을 선택하는 본래적 의미의 ‘자치’가 구축돼야 한다. 지역행정은 최대한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실질적인 집행이 가능한 조직이 되도록 하며, 반면 중앙정부의 역할은 전 국가적 차원의 일로 축소한다.

    ③과감한 이민정책: 글로벌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일본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종합적인 환경을 만든다. 간단히 말해 외국인이 일본에서 살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회와 그를 위한 ‘이민정책’을 마련한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문호를 개방해 자유롭게 외국인의 이주를 허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인의 이주·정주를 촉진하는 명시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있는 유학생에 대해서는 일본의 고교·대학·대학원을 수료한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우선책’도 생각해야 한다.

    21세기는 개인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NPO(비영리조직)의 참가가 확대됨으로써 개인은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일본의 기존 시스템은 21세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미래에 대단히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의 기존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바꿀 것을 제안한다.

    ①투명한 의사결정과정: 의사결정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명시하며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기준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향상시키며 개인의 지혜와 아이디어를 중시해 개인의 권한과 책임이 명확한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개혁한다.

    ②국제 대화능력(Global Literacy): 개인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려면 컴퓨터와 인터넷 등 정보기술 이용방법을 숙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국제공용어로서 영어를 불편 없이 구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또 국제화의 흐름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일본의 좋은 점과 진실을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서도 국제대화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일본인의 영어구사능력은 아시아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1998년의 토플에서 아시아 최하위의 성적). 또 대화능력도 결여돼 있다.

    ③정보기술혁명에 대응: 기술혁명을 맞이하는 일본의 준비는 미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가정과 학교, 기관 등에 24시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설치하는 등 싼값에 빠른 속도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 국민들이 정보기술에 통달할 수 있도록 정보기술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④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시대 준비: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적게 낳고 오래 사는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다. 이 현상이 일본사회에 끼칠 영향은 심각하다. 소자고령화가 일본사회의 활력을 소멸시킬 것이라는 우려로 일본의 쇠퇴론과 비관론이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사회보장제도의 확립, 고령자의 자립, 젊은 세대의 고령자 부양 부담을 줄이는 문제 등이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최선의 해결책은 일본사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즉 여성의 사회참여를 보장하고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다.

    민·관 협력 시대가 시작된다

    일본에는 오랫동안 ‘위에서 아래로’ 또는 ‘관에서 민으로’라는 관존민비형의 통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한 일본의 현실은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영어에 적합한 일본어가 없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21세기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창출하고 성숙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를 위해 일방적인 지배가 아닌, 법과 책임원칙에 근거해 쌍방간 합의 형식을 기초로 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①‘나’의식의 확립과 공공성 창출: 20세기가 ‘조직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개인의 세기’다. 더불어 일본 국민들은 물질적 풍요를 계속 누릴 것이다. 또 지금까지 극히 소수에게만 부여됐던 개인의 자유와 파워가 국민 대다수에게도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21세기의 상황은, 각 개인에게 ‘나(個)’를 확립할 것을 요구한다. 즉 21세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집단(家)’의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나(個)를 확립하고, 자발적인 나에 기초한 공(公)을 구축해야 한다. 개인이 자립하고 자유로워야만, 새로운 공공의 창출이 가능하며, 새로운 공공이 창출되는 가운데, 개인은 자신의 존재를 높이고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다. 나(個)의 확립이 공공을 창출하고, 공공의 창출로 더 큰 선택과 기회를 다시 개인에게 돌려주는 공명(共鳴)효과가 일본사회에 새로운 거버넌스를 창출할 것이다.

    ②개인과 기업의 새로운 관계: 20세기 일본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종신고용제다. 기업은 종업원인 개인을 지배하고 시간적으로 구속하면서 헌신을 요구한다. 가족과 매우 유사한 시스템이다. 획일성과 횡(橫)적 평등에 의해 운영되는 이런 기업 시스템은 전후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으나, 다양한 개성을 필요로 하는 21세기에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 따라 기업과 개인의 관계, 기업과 사회의 관계는 다시 설정돼야 한다. 먼저 21세기 기업은 재래형 기업의 특징인 개인을 지배하는 속성을 버려야 한다. 이제 기업과 개인은 대등하게 주고받으며 서로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해서 계약을 맺는 관계가 됐다. 또한 기업은 첫번째 임무인 이윤추구, 즉 ‘부의 창출’ 과정과 그의 분배과정을 통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책임이 있다.

    ③ 사회적 협치: 20세기에는 국가(중앙정부)가 민주주의를 무대로 권력을 쥐고 지속적으로 그 권력을 보강하면서 운영됐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국제정세의 변화와 정보기술의 발달은, 국가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관점에서 국가 역할의 수정을 광범위하게 요구한다. 국가와 사회적 주체들의 관계도 크게 변화했다. 국가에 의한 통치로부터 다양한 조직의 협력·경쟁에 의한 자치의 추세는 세기의 전환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다.

    이제까지 일본에서 관(官)은 권력을 쥐고 민(民)은 지배를 받는 쪽으로 나뉘어 관이 공공성을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는 관과 민이 협력하고 상호 비판, 격려하면서 공공을 지원해가는 시대다. 민은 관의 허락을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참가 조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 공인회계사, 변호사, 과학자 등 전문집단의 활약이 요구된다. 이들 전문집단이 역할을 수행하려면 자율적인 윤리규범 제정과 공포, 서비스와 활동에 관한 정보의 표시, 그리고 제3자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감시관청과의 밀착 등이 시정돼야 한다.

    또 개인이 공적 활동에 참가하는 방법으로 미술관, 병원, 학교 등 자신의 관심분야에 무보수 평의원 등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적 활동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식은 있지만 실제 참가가 불가능할 경우 발런티어 휴가의 제도화 등을 통해 그 장애요소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단체뿐만 아니라, 오래된 조직과 단체도 이런 방향으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특히 노동조합, 지방자치제 등은 공공의 재구축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④ 중앙정부와 국민의 관계: 21세기에도 중앙정부는 국제관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의 역할과 관련해서 공적 활동을 펼치는 ‘자립한 개인’과 중앙정부가 어떠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또 중앙정부가 ‘공공성의 실현을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등이 논의될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사라져야 한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단지 외형적으로 축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향상할 국민에 대한 서비스 수준과 질의 향상을 꾀한다. 이를 실행할 때 지켜야 할 대원칙은 ‘민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정부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공개, 설명책임원칙, 정책평가 등을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이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중앙정부가 국내에서 수행할 기본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명확한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 둘째, 광범위한 시장의 움직임을 보완하고 공평성을 실현한다. 셋째, 국민생활의 안정이 위협받는 중대한 재해와 사고, 그 밖에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재해, 사고, 환경악화로부터 국민을 보호)는 정부가 단독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자치제·기업·지역 커뮤니티·NPO 등이 사전대책과 사후대책을 함께 세우는 굳건한 연대(파트너십) 위에 업무를 수행하는 구조로 형성돼야 한다.

    또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동시에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역할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특히 세금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즉 원천징수 방법과 신고제의 수정, 세금 사용용도의 결정 과정과 사후의 체크에 관한 정보개시와 설명책임(Accountability)의 강화를 실행해야 한다.

    ⑤법에 기초한다: 이전 시대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 사법기능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우선 법조인구를 증대시켜야 한다.

    분쟁처리절차의 다양화도 필요하다. 정부의 규제도 이전과 같이 사전규제가 아니라, 법규를 명확히 한 뒤 민간의 자유활동에 맡기고, 법을 위반했을 때에만 사후의 장치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후 규제장치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준 사법 기관(공정거래위원회, 증권거래감시위원회 등)의 행정 기능을 강화해, 사후규제가 어느 경우에 적용되는가를 국민들이 예측 가능하게끔 명시한다.

    [ 세계로 열린 일본 ]

    90년대 국제관계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걸프전으로 시작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 오키나와 기지를 둘러싼 위기, 대만해협 미사일 위기 등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위기들을 경험했다. 이를 통해 일본 국민들은 미국이든 국제연합이든 누군가가 국제질서를 유지해 줄 거라는 기대나, 과거 침략 경력이 있는 일본은 국제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식의 소극적인 태도로는 일본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일본이 안전보장을 위해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적도 없다. 일본 국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불황이었다. 그 상실감이 워낙 커서 밖으로 나아가기보다 국내 상황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21세기를 맞이하는 일본이, 외교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관점을 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일본은 국제평화와 자유로운 국제경제질서가 유지돼야만 생존과 번영이 가능한 나라다. 그런데도 국제문제에 눈을 돌리고 적극적으로 관여할 의욕을 상실한 채 국내문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자멸에 가깝다. 세계를 알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일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는 먼저 세계를 알고 국가를 건설한다는 근대 일본의 성공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스위치론과 양자택일론 같은 경직된 사고로 외교를 말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처사다. 특히 냉전시대의 특징이었던 양극질서가 붕괴되고, 다양성과 유동성이 특징인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일·미관계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으로 계속 활용해 나가면서 한편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창조적인 관계 구축을 시도하는 것이 의미 있는 해답이다.

    세계 각지에서 지역통합과 지역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적으로 근린지역 국가들과의 성숙한 상호이익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렀다. 21세기 일본은 근린국가들과의 관계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근린외교(隣交)야말로 앞으로 일본이 추구해야 할 과제다.

    셋째, 오늘날의 대외관계는 다각적일 뿐만 아니라, 중층적이다. 양국간 관계의 총화에 더하여 다국간 지역협력의 틀이 있고 그 위에 글로벌한 여러 가지 틀이 있다.

    안전보장문제도 중층적이다. 일본이 전후기의 제약을 넘어 자신의 안전보장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일본인이 내셔널리즘에 충실해서가 아니라, 전후와 냉전기의 특수성이 용해된 이상 기본적으로 신변보장을 위한 자조(自助)능력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을 위해 자조능력, 동맹국과 의 우호, 국제 시스템이라는 3단계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이 추구하는 것은 건전한 국제협력하에서 안전보장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열린 국익을 추구한다

    전전(戰前) 일본 역사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일은 근대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에 반해 주변 아시아 국가의 희생을 통해 일본제국의 확대를 꾀했던 것은 비참한 역사다. ‘서양의 침입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이룬다는 대의를 내세워 일본의 독선적인 목표와 질서를 주변국에게 강요했다. 타국의 희생으로 제국의 확대를 추구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참사를 일으킨 것은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어리석고 비참한 행위였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공공연히 파워 폴리틱스(Power Politics) 원리로 국제위기에 대처한다면 과거의 어리석음을 다시 반복할 수도 있다. 어떤 나라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국제환경 변화를 포함해, 대국적 차원에서 국익을 정의하는 것은 전전 일본이나 오늘의 일본에서나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사회는 안정과 지속을 각별히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정치문화는 멀리 내다보는 국가전략이 부재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보호하며 항상 내부화합에 매달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정치문화가 결국 일본을 자멸적인 전쟁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후 일본의 자산은 평화적 발전(경제국가로 회생), 자유, 민주주의, 일미(日美)동맹이다. 반면 국제적 책임과 자기 결정능력의 저하,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부채를 지고 있다.

    자세히 보면, 전후 일본의 경제중심주의 노선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자국의 안전보장과 국제질서 유지를 미국에 의존하는 습성을 만들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역할과 책임감, 자기결정능력을 저하시켰다. 또한 일본과 아시아, 특히 근린국가와의 관계(중국·한국 등)가 아직도 심화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책임감과 자기결정능력을 향상시켜 국제시스템의 구축에 참여하는 것이 21세기 일본의 과제다.

    외교교섭과 국민의 안전보장이라는 국가 본연의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 중시되겠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지지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국민은 무엇이 진정한 일본의 국익인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일본의 국익은 장기적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하며, 일본이라는 국가 만들기와 관련해 정의하고 구축해가야 한다. 자국의 국익 추구가 세계의 공익 추구에 부합되고, 세계의 공익 실현이 자국의 국익 실현이 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열린 국익’이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의미에서 현실에 근거한 국익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 이제 일본은 ‘국익’이라는 말을 정면으로 내세워 정책을 논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일본 국민 모두 그러한 정책논의에 참가해, 정책을 제안하고 세계를 향해 당당히 발표하고 대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한다. 다음은 구체적인 방안이다.

    ①글로벌 시빌리언 파워(Global Civi lian Power): 21세기에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자국의 발전을 확보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점점 정당성을 상실할 것이다. 인간의 안전보장과 국제적인 공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군사적 방법이 아닌 사회복지 차원에서 공정하게 유지, 증진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그 동안 일본은 세계경제시스템의 안정, 빈부격차해소, 환경보전, 인권확보, 평화유지활동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제 공공재 창출분야에서 군사력이 아닌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기여해 왔다. 전후 일본은 ‘비군사 경제대국’을 거쳐 서서히 ‘글로벌 시빌리언 파워’를 추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일본의 능력에 맞는 글로벌 시빌리언 파워 형태를 더욱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하며, 국제 사회가 일본을 그러한 국가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②다단계 안전보장 : 21세기에도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안전보장 확립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환경을 정비하는 노력, 더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고 회복하려는 노력까지 요구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일미(日美)동맹의 안정과 유지다. 자조능력이 요구되지만 그렇다고 일본 단독으로 안전보장을 완수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는 반면 효과는 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세계의 안전보장 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들어 주변국과 불필요한 마찰과 긴장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 미·일동맹을 확고히 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 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를 위해 필요한 법제를 정비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에 관해서도 국민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우호국을 늘리고 국제적 신뢰를 높이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분쟁방지를 위한 예방외교, 군비관리·군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제안전보장 질서 강화, 신뢰를 기반으로 한 다국간 협력, 적극적인 국제기구 참여 등이 요구된다.

    21세기의 안전보장은 군사, 경제, 사회, 환경, 인권을 내용으로 이 요소들이 횡단적으로 포함되는 종합적인 보장이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 국가, 지역, 전지구적 차원의 안전보장을 위해 국민과 정부가 협력하는 다단계 안전보장을 구축해야 한다.

    ③근린외교(隣交): 일본의 대외 관계는 앞으로도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통합유럽을 포함한 미·일·유럽 삼각협력을 토대로 진행될 것이다.

    더불어 지리적으로 근접하며 역사적·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고 잠재력이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일본과 한국·중국의 관계를, 단지 외교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일·한·중의 관계는 단순히 외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와 일본의 관계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근린외교(隣交)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근린외교를 펼치기 전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 있다. 하나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분쟁, 즉 영토문제다. 또 하나는 사상과 인식의 차이다. 문화, 역사가 다른 이상 국가관과 세계관이 다른 것은 당연하며, 그 다양성은 환영받아야 한다.

    따라서 관념상의 대립이 근린외교를 펼쳐야 할 민족들의 공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상호이해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공통의 이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인식의 차이는 일본·한국·중국 사이에 장기간에 걸쳐 정치문제가 됐다. 이 차이를 줄이기 위해 꾸준하고도 객관적인 학술연구를 추진해, 공통 이해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관념상의 차이는 정부차원에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간 차원에서 폭넓은 상호교류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차이가 해소되어가는 부분이 크다.

    따라서 일본인은 이들 인접국의 역사, 전통, 언어, 문화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학교에서 양국의 역사와 일본의 관계사, 특히 현대사를 가르치는 시간을 강화하고 더불어 한국어와 중국어 교육을 크게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일본의 주요 안내판에는 영어와 함께 한국어·중국어를 병기해서 근린외교감각을 기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양국간 또는 3국간의 지적 교류, 문화 교류, 지역간 교류, 청소년 교류 등 다층적인 대화와 교류가 펼쳐져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국경의 의미를 넘어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회의)을 발전시켜 일·한·중 동북아시아자유무역권을 만들고 에너지를 공동개발하며 통화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버금가는 아시아 전역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