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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인터뷰|출감한 박주선 격정 토로

“검사가 무섭더라”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검사가 무섭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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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정말 억울해 했다. 한마디로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패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제가 보고한 문서가 밖으로 새나가 큰 문제를 야기해 결과적으로 대통령께 누를 끼쳐서 그렇지, 법률적으로 도덕적으로 저는 책임을 질 일이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최선을 다한 장수라도 패전하면 책임을 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 책임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당시 연정희씨의 쇼핑 내용은 정확히 파악했습니까.

“나, 그 점에 대해 얘기 좀 할게요. 내가 내사를 지시한 사항은 연정희씨의 호화사치 생활이 아니었어요. 첩보에 나온 대로 연씨가 최순영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 받고 앙드레김과 라스포사에서 그런 거래를 하고 옷값 대납요구를 했는지, 또 이형자씨가 대납요구에 응하지 않아 연씨가 옷값으로 현금 3500만원을 지불했는지, 그런 사실을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앙드레김과 라스포사에 가서 그 사실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만 하면 끝나는 겁니다. 앙드레김에선 옷 2벌을 120만원에 산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대금도 연씨가 수표로 결제했고. 라스포사에선 그런 일이 없다고 했는데, 고객 보호 차원에서 정일순씨가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 점을 조사해 보고하면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무슨 나나부티크니 페라가모니 다른 가게까지 돌아다니며 조사를 했더란 말이지. 그건 내가 지시한 사항이 아니란 말이에요. 연씨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그건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연씨의 옷 구입 내용을 전부 조사한 저의가 의심스러워요. 이는 경찰과 검찰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연씨가 뇌물을 받아먹었다면 또 몰라요. 개인적인 옷구입 내용을 왜 조사합니까. 내가 당시 이런 얘기는 했어요. 무슨 놈의 여자가―난 그때 연씨가 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기 때문에―옷을 이렇게 많이 샀다가 또 반납했다가 이 여자가 왜 이러고 다니냐고. 장관 부인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말입니다.



대통령께도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경고를 줘야겠다고. 그런데 그건 기본적으로 개인의 옷 거래 내용인데다 실제 옷값을 보면 꼭 호화사치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샀다가 반납했고, 반납 명목도 공직자 부인으로서 부담이 돼 돌려줬다는데 그걸 뭐라 그럽니까. 내가 문제삼은 건 공직자 부인들이 고급 의상실에 떼거지로 몰려다닌 일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게 더 보기가 싫더라구요. 그리고 돌려주긴 했지만 한달 간 거래 내용이 1500만원 가량 된다는 건 문제였지요. 그 이야기도 최종보고서 올릴 때 대통령께 다 말씀드렸습니다.”

연씨의 옷값이 커진 것은 나나부티크에서 산 400만∼500만원짜리 니트코트와 라스포사의 400만원짜리 호피무늬반코트 때문이다. 나나부티크 옷은 산 지 일주일쯤 뒤에, 라스포사 옷은 20일쯤 뒤에 반납했다. 이 두 벌을 뺀 연씨의 옷값 총액은 앙드레김과 라스포사 것을 합쳐 3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중 200만원 어치는 상품권(라스포사)으로 구입한 것이다.

연정희를 형수로 부른 적 없다

―대통령도 연씨의 옷구입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까.

“그럼요. 대통령께도 그대로 다 보고했습니다.”

―김태정 연정희씨 부부를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지 않았습니까.

“잘 알지요. 여섯 번이나 같이 근무했는데.”

―사석에선 형님, 형수님이라고 부른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제대로 확인해 보세요. 나는 한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 양반이 술을 먹으면―특수부에 같이 근무한 검사들은 1년에 한두 번씩 만나거든요―후배들에게 ‘야 임마, 형님이라고 불러’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다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참 나, 형님 형수님이 뭐야. 모시던 상사한테. 난 절대 그렇게 부른 적이 없어요.”

―평소 왕래가 잦지 않았습니까.

“김태정씨 집에 두 번밖에 안 가봤어요. 그러니 부인에 대해선 잘 몰라요. 검찰에 있을 때 나는 그 양반에 대해 야당 구실을 했지요. 그 양반이 술 드시면 말을 막하는 편이거든요. 그러지 말라고 충고했어요. 내가 뭐 생명 바쳐 그 양반 모실 처지는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선배긴 했지만 존경하는 선배는 아니었습니다.”

―야당 구실이라 하면?

“그 양반이 설화를 많이 입잖아요, 설화. 말을 과격하게 하는 탓에. 내가 그 점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직언을 해댔지요.”

박씨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몇 차례 반전을 거듭하고도 검찰 수뇌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법처리를 망설였다. 반면 수사팀은 사직동팀의 진술을 앞세워 구속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 과정에 수사팀을 이끌던 이종왕 대검 수사기획관이 사표를 냈다. 일촉즉발의 긴장이 대검 청사를 에워쌌다. 이수사기획관의 사표는 박씨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사법처리를 둘러싸고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의 갈등이 심했는데요.

“수사팀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다고 들었어요. 내가 지금 얘기를 다 못해서 그렇지 할 말이 많아요.”

―인간적으로 김태정씨에게 (내사 사실을) 귀띔해줄 만도 한데요.

“내사에 착수하면서 피내사자에게 귀띔해준다면 내사에 의미가 없습니다. 연씨가 조사를 받던 1월18일(99년) 밤 김총장이 내게 격렬하게 항의했어요. 그후론 연씨를 조사한 적이 없어요. 그날로 중요한 조사가 다 끝났거든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검찰총장이 다치는 건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총장에게 사전에 알려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미리 막을 수 있거나 적당히 덮을 수 있는 사건인 경우에 한해서지, 도저히 그렇게 안 되는 사건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첩보에 적힌 내용이 이미 세간에 상당히 퍼져 있어 적당히 끝낼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최종보고서를 통해 최순영 회장 구속을 건의했습니다. 이 사실을 당시 김태정 총장에게 알려줬습니까.

“연초부터 검찰쪽에서 최회장을 구속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연두순시도 안 끝났는데 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해줬어요. 그러다 연정희씨 관련 첩보가 들어왔어요. 첩보 내용을 조사한 후 조치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김총장이 최종보고서에 최회장에 대한 ‘구속 건의’가 들어간 사실을 알고 최회장을 구속한 것입니까.

“김총장에게 ‘구속 건의’ 부분을 공식적으로 알려준 건 나중에 최종보고서를 건넬 때였어요. 그 전에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종보고서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직후 김총장에게 ‘최회장을 구속한다는데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는 했습니다. 구속하는 게 좋겠다고 말입니다.”

박씨의 말대로라면 청와대와 검찰이 최회장 구속 시기를 조율한 셈이다. 또한 검찰은 청와대의 OK 사인이 날 때까지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대질신문 때 최광식 경찰청 조사과장(사직동팀 팀장)이 검사의 협박으로 허위자백했다고 말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정경감(사직동팀 직원)이 검찰에 약점을 잡힌 탓에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소송기술상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최과장이 ‘검사가 협박해 허위자백했다’고 진술했다는 점입니다.”

―검사도 그 얘기를 들었습니까.

“그럼요. 검사와 최과장이 책상을 두고 마주 앉았고, 나는 한쪽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검사가 협박사실 시인

―검사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최과장이 그 얘기를 했다는 겁니까.

“그렇지요. 조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어요. 마주앉은 검사 앞에서.”

―검사의 반응은요?

“아, 시인합디다. 수사기술상 그렇게 했다고.”

―그건 참 중요한 문제인데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때 나는 정말 점잖게 대응한 겁니다. 구속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음모’가 있었다고 봅니까.

“몇 가지 짚이는 데가 있지만 소송기술상 문제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직동팀의 문건이 외부로 도저히 유출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왜 불가능합니까. 누군가 작성해 바깥사람에게 갖다주면 그만인데.”

―검찰 주변에선 사직동팀과 검찰의 모 부서가 평소 정보교류를 한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잘은 모르지만 정보 장사를 많이 한답디다. 사직동팀의 조사내용이 나를 통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논리적으로 그게 인정된다면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지요. 그걸 부인하면 나는 나쁜 놈이지, 이렇게 부인만 하고 있으니. 그러나 나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최과장이 나한테 보고했다는 주장은 정황에 비춰 너무 안 맞아요. 검사에게 이런 문제를 조사해달라고 요구하면 조사를 안 해요. 진술 자체를 받으려 하지도 않고. 내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요.”

―검사들이 혐의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까.

“제가 구속 전에 말했잖아요. ‘편견과 선입견의 늪이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고요.”

―고의성이 있었다는 겁니까. 아니면 잘못 알고 그랬다는 겁니까.

“두 가지 다예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처음 출두하는 날 바로 피의자 진술서를 받자고 하더라구요. 무슨 근거로 나한테 피의자 진술을 받습니까. 처음 조사 받으러 간 날인데.”

―놀랐겠습니다.

“놀랐지요. 피의자 조서는 못 받겠다고 거부했지요.”

박씨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놈의 소설이 어디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옷사건 내사 당시 터졌던 대전법조비리 사건을 들먹이며 방향을 그쪽으로 몰고 가더라구요. 그 사건으로 김총장의 검찰 내 입지가 약화됐는데 부인이 관련된 사건까지 터지면 곤란해질까봐 미리 대비하라는 뜻에서 내가 최초문건을 건네줬다는 겁니다. 그걸 대전 사건에 연관시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소장엔 그렇게 돼 있어요. 내가 김총장에게 언제 어떻게 줬는지에 대해선 전혀 설명도 없으면서.”

―그 말대로라면 비애를 느꼈을 법한데요.

“검사가 정말 무섭다는 걸 느꼈습니다. 취사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중에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든….”

박씨에 대한 검찰 안팎의 평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검찰에 있을 때 그는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호남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출세 코스를 달렸다. 청렴과 강직의 이미지로 선후배 검사들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그런데 그 모든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에게 ‘권력의 옷‘은 생래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신이 내게 가혹한 운명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속성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검찰이 제대로 판단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겠지요. 재벌의 거대한 음모가 있었는데 검찰이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여론에 휘둘려 검찰권을 바르게 행사하지도 못하고….”

신동아 200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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