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에게도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세계화를 이루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느니, 세계화를 가로막는 법적·제도적·심리적 장벽을 하루 빨리 철폐해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는 어느새 이 시대를 지배하는 목소리가 됐다. 그런데 세계화의 명확한 실체는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일례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IMF 경제위기와 세계화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깊이있고 명쾌한 설명은 그동안 매우 드물었던 게 사실이다.
이 글은 미국의 저명한 계간학술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최근호에 실린 ‘세계화 논쟁(Dueling Globalizations)’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외신담당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프리드먼과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띠끄’의 편집자인 이그나시오 라모네가 각각 세계화의 찬반 양측 주장을 대변하면서 치열한 논전을 벌이는 이 글을 통해서 독자들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계화에 대해 한결 깊이있는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
[ 세계화가 가져온 새 체체, DOScapital ]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외신담당 칼럼니스트)
범 법행위에 대한 기소기한법(起訴期限法)이 있다면 국제관계를 특징짓는 상투적인 표현에도 기한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냉전 이후의 세계’는 이미 끝났다고 선언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냉전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동안 세상의 실체를 잘못 인식해온 탓에 잘못된 정의를 내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제체제가 냉전을 대신해서 등장했음이 확연해졌다.
그렇다. 바로 세계화다. 시장과 자본, 그리고 기술이 통합됨으로써 세계는 점점 작아지고 인류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더 멀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싼 비용으로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화는 단순히 경제분야에서만 진행되는 조류가 아니다. 반짝했다가 사라지고 마는 일시적인 유행 또한 아니다. 지금까지 등장했다가 사라졌던 모든 국제체제가 그랬듯이 세계화는 모든 나라의 국내정치, 경제정책과 대외관계를 직접, 간접으로 좌우하는 것이다.
장벽과 통합
국제체제로서의 냉전은 나름대로 힘의 구도를 갖추고 있었다. 각자의 동맹국을 포함한 미국과 소련 양 진영 사이의 균형이 그것이었다. 냉전체제에는 미·소 어느 강대국도 대외관계에 있어서 상대방 영향력의 중심 영역은 건드리지는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도 있었다. 냉전체제하에서 저개발국가들은 자국의 국가산업을 일으키는 데에 전념했고, 개발도상국은 수출주도 성장, 공산권 국가들은 자급자족 경제, 그리고 서방진영은 통제 무역에 전념했다.
냉전시절을 지배했던 사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동서(東西) 화해, 비동맹주의,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등이었다. ‘철의 장막’ 때문에 공산진영에서 자본주의 진영으로의 인구이동은 거의 얼어붙다시피 했고, 가난한 남(南)으로부터 개발된 북(北)으로의 인구이동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기술 면에서는 핵무기와 제2차 산업혁명이 냉전시대를 상징했지만, 많은 개도국에서는 아직도 망치와 낫이 널리 쓰였다. 냉전체제를 규정하는 또 한 가지로, 핵으로 인한 지구 멸망이라는 불안감을 들 수 있다. 통틀어서 볼 때, 이런 냉전체제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을 좌지우지했다.
오늘날의 세계화 체제는 냉전체제와는 아주 다른 속성과 법칙, 동기와 특징을 보여주지만 냉전과 마찬가지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냉전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분단이었다. 세계는 조각 조각이 나서 분단국끼리 서로 위협도 하고 기회를 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냉전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장벽’이었다.
반면에 세계화 체제는 한마디로 통합을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한 나라가 마주치는 위협과 기회는 그 나라와 ‘접속’된 나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흔해지고 있다. 세계화 체제를 상징하는 심벌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는 장벽을 중심으로 했던 체제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체제로 이전한 셈이다.
한 나라가 일단 세계화라는 체제 속으로 뛰어들면, 그 나라 엘리트들은 통합이라는 개념을 체질화하고는 지구촌 울타리 안에 머물고자 노력한다. 1998년 여름 필자는 암만을 방문해서 요르단의 유명 정치 칼럼니스트인 친구를 만나 “요즘 뭐 재미있는 일 없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CNN 세계 일기예보에 요르단이 막 포함됐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CNN처럼 세계화된 사고방식을 가진 기관이 암만의 날씨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요르단으로서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통해서 요르단 사람들은 자신이 지구촌의 중요한 성원이라 느끼게 됐고, 더 많은 관광객과 세계적인 투자가들이 요르단을 방문해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를 만난 다음 날, 필자는 이스라엘 은행 총재인 야콥 프렝켈을 인터뷰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자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종전에 거시경제학을 거론할 때는 각국의 국내 시장, 국내 재무구조, 그리고 이들의 상호 관련성을 분석하는 데에서 시작해 추후 고려사항으로 국제 경제를 살펴보았다. 국내 영업이 주된 관심사였고 여력이 있을 때 해외로 눈을 돌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는 어떤 상품을 생산할까 결정한 뒤에 어느 시장으로 수출할까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국제시장을 먼저 연구한 뒤에 어떤 상품을 생산할지를 결정한다.”
컴퓨터화, 소형화, 디지털화, 위성통신, 광섬유, 그리고 인터넷 등과 같이 세계화를 대표하는 기술들은 통합을 촉진했다. 그리고 그 통합이 이제는 냉전체제와 세계화체제 간에 많은 차이를 주도하게 됐다.
케인스와 슘페터, 스모와 100m 경주
냉전체제와는 달리 세계화에는 특유의 문화가 있다. 이 때문에 통합은 동질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동질성은 과거에는 지역적 규모로만 형성됐다. 서유럽과 지중해 연안 지역의 로마화(化), 아랍권에 의한 중앙아시아와 중동 및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이슬람화, 소련 지배하의 동유럽과 중유럽, 그리고 유라시아 일부 지역의 러시아화를 보라. 문화사적 관점에서 보아 세계화란 싫든 좋든 간에 빅맥(Big Macs)과 아이맥(iMacs), 그리고 미키마우스로 상징되는 미국화의 확대다.
냉전의 척도가 중량, 특히 미사일 탄두의 중량이었다면 세계화 체제의 척도는 상거래와 여행, 통신과 기술혁신 등의 속도다. 아인슈타인의 질량과 에너지 방정식인 e=mc²이 냉전을 지배했다면, 세계화를 지배하는 공식은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이다. ‘동맹’이 냉전체제를 규정했다면, 세계화 체제를 정의하는 것은 ‘협상’이다. 틀에 박힌 세력다툼 속에서 아주 잘 아는 적에게 말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냉전 시절을 휩쓸었다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적의 신속한 변화라는 두려움, 즉 우리의 직업과 일자리, 그리고 공동체가 한순간에 미지의 경제력 혹은 기술력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공포가 세계화 시대를 휩쓴다. 이 경제력과 기술력은 틀에 박힌 것과는 거리가 멀다.
칼 마르크스와 존 케인스가 냉전체제를 정의한 경제학자였다면, 세계화 체제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는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와 인텔의 회장인 앤디 그로브(Andy Grove)다. 마르크스와 케인스가 자본주의에 재갈을 물리려 애쓴 데 비해서 슘페터와 그로브는 속박없는 자본주의를 주장한다.
오스트리아의 전 재무장관이며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슘페터는 1942년의 고전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요체를 ‘창조적 파괴’의 과정, 다시 말해 낡고 효용이 떨어지는 상품과 서비스를 새롭고 효용이 높은 것으로 끊임없이 바꿔나가는 순환과정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그로브는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는 슘페터의 통찰을 제목으로 삼은 자기 저서를 통해서 실리콘 밸리를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볼 수 있는 비즈니스의 전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로브는 오늘날 산업의 변화를 야기하는 극적 혁신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반화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런 기술혁신 덕분에 새로운 창안이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쓸모없이 되거나 생필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파멸시킬 새로운 뭔가를 창안하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들보다 한발 앞서 살아남기 위한 방도를 찾는 사람들, 다시 말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감싸주는 보호막은 점점 얇아지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의 비유에 따르면, 냉전은 스모다. “엄청나게 살진 선수 두 명이 모래판에서 온갖 폼을 다 잡고, 갖가지 의례를 행하고, 잔뜩 별렀다는 듯 발을 쿵쿵 찍어대지만, 상대방을 모래판 밖으로 밀어내 씨름이 끝날 때까지 사실상 별다른 몸싸움도 없고, 어느 한 쪽이 죽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세계화 체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100m 달리기라고 할 수 있다. 몇 번을 이겼느냐와는 상관없이 다음 날이면 다시 경기에 나서야 하고, 100분의 1초를 뒤지나 1시간을 뒤지나 진 것은 마찬가지다.
세계화시대의 ‘힘의 구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화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힘의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힘의 구조는 냉전시보다 훨씬 복잡하다. 냉전은 단지 민족국가 사이의 관계였고, 양대 진영을 중심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반해 세계화 체제는 서로 중첩되고 상호 영향을 주는 3개의 균형 위에 정립했다.
첫째, 민족국가들 사이의 전통적 균형이다. 세계화 체제하에서도 민족국가 사이의 균형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균형은 지금도 중동에서의 이라크 봉쇄나 러시아에 대비해 나토를 중유럽까지 확대하는 등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뉴스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다.
둘째, 민족국가와 세계시장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세계시장은 마우스를 한번 클릭만 하면 자본을 세계 곳곳으로 이동시키는 수백만 투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이 투자자들을 ‘전자적 무리 (Electronic herd)’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은 소위 ‘슈퍼마켓’이라고 일컫는 프랑크푸르트, 홍콩, 런던, 그리고 뉴욕 등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 몰려 있다. 미국은 폭탄을 투하해 우리를 파괴할 수 있지만 이 슈퍼마켓들은 당신네 채권의 신용을 평가절하 해버려서 당신을 파괴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을 누가 축출했는가? 그건 강대국이 아니라 이들 슈퍼마켓이었다.
세계화체제의 세번째 균형은 개인과 민족국가 사이의 균형이다. 이 균형은 세계화의 세 균형 중에서 가장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는 그동안 사람들의 이동과 접근을 제한했던 많은 장벽을 무너뜨렸고 동시에 세상을 네트워크로 연결했기 때문에, 개인들은 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직접적인 힘을 갖게 됐다. 따라서 지금의 세계에는 강대국, 슈퍼마켓들뿐만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개인들도 존재하는 셈이다. 초능력을 가진 개인들 중에는 분노에 떠는 자도 있을 것이고 아주 건설적인 이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들 모두가 정부나 기업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직접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디 윌리엄스는 지뢰를 금지하는 국제운동을 벌인 공헌으로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녀는 강력한 여러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로부터 별다른 도움도 없이 지뢰 금지에 호응하는 국제 연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세계 6대주에 걸쳐 있는 1000여 인권 및 군축관련 단체를 조직한 그녀만의 비밀무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전자우편이다.
조디 윌리엄스와는 다른 경우로, 1993년 2월26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폭탄을 터뜨린 장본인인 램지 아메드 유세프는 전형적인 ‘분노에 가득 찬 초능력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그의 계획은 무엇이고 그의 사상은 무엇이었나? 그는 미국에 있는 최고층 빌딩 중 2개를 날려버리기로 작정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뉴저지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려고 했을까? 아니다. 그는 단지 미국에 있는 최고층 빌딩 중 2개를 날려버리기로 작정했을 뿐이다. 그는 맨해튼에 있는 연방지방법원 증언에서, 자신의 목적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 중 하나를 폭파해 다른 쪽 건물을 덮치게 함으로써 시민 25만명을 살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전지전능한 이슬람 사회로 전파되는 미국의 메시지를 찢어발긴다는 것 외에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없었다.
결국 세계화(다시 말해 미국화)는 그에게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미국화에 대항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은 그에게 힘을 준 것이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유세프의 음모 대부분(1993년의 세계무역센터 폭파 시도 외에 1995년에는 아시아에서 10대가 넘는 미국 여객기를 폭파하려고 계획했다)은 그의 컴퓨터 파일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흰색 계열의 도시바 랩톱 컴퓨터는 그가 검거되기 직전인 1995년 1월 필리핀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도주할 때 버리고 간 것을 경찰이 회수했다. 수사관들이 유세프의 랩톱 파일을 분석해보니 비행 일정표와 공범들의 사진이 포함된 신상서류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모든 계획을 도시바 랩톱의 C 드라이브에 차곡차곡 챙겨두다니 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 행동인가? 그렇다고는 해도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분노에 떠는 초능력자들이 있고, 이들은 미국과 세계화 체제의 안정에 위협 세력이 되고 있다. 램지 유세프가 초능력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에서는 누구라도 램지 유세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더 이상 혼란스럽고 사리에 맞지 않는 ‘냉전 이후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세계화라고 정의해야 할 나름의 법칙과 특성을 가진 새로운 국제체제 속에 살고 있다. 이 체제가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냉전에 빗대 보면, 지금의 세계화 체제는 1946년 정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 세계화 체제가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은 처칠이 ‘철의 장막’ 연설을 했던 1946년에 냉전체제가 어떻게 돌아갈지 이해했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새로운 체제가 부상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분석하고, 우리 나름대로 이 새로운 체제에 이름을 붙여줄 때가 됐다.
나는 이를 ‘DOScapital’(이 글의 필자인 프리드먼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중 제7장의 제목이다. - 역주)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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