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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떠나살기|작가 한승원의 장흥 앞바다에서 찍는 마침표

어둠 감지기능의 녹 벗기기

  • 한승원 소설가

어둠 감지기능의 녹 벗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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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보면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맛깔스러운 안주를 보면 술 생각이 나고, 그 안주와 술이 있으면 친구 생각이 나듯. 좋은 것일수록 혼자서 먹고 혼자서 다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나누어야 한다.

휴대전화기를 통해서 서울 바닥이나 광주 바닥의 쇠붙이 소리에 지쳐 있을 그리운 사람들에게 파도의 말을 들려준다. 사치나 호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중계방송을 하듯이 물새가 나는 광경, 노을이 지는 광경, 미역냄새 나는 거친 바닷바람을 먹고 사는 소나무 가지와 어부들이 쌓아놓은 그물 더미에다가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는 왕거미의 작업 상황, 은빛 공단을 깔아놓은 듯한 달빛에 대하여 휴대전화의 송화기를 통해 말해준다. 문학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해준다.

파도의 말을 해설해주고, 파도의 머리에 얹혀 있는 흰 거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 흰거품 얹혀 있는 파도가 ‘까치파도’라는 것을 말하고, 물새들이 머리 위 허공에서 선회하는 것이나 게와 갯강구들이 나를 피해 달아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나는 신이 난다. 내 말을 듣고 있을 그들의 가슴 속에 자연의 친화력을 넣어준다는 생각에.

어떤 때는 응접실 통유리창 앞에 선 채 바다를 내다보면서 ‘전축 위에 누워 있는 바다’에 대해서 중계해 주기도 한다. 나의 율산 집 응접실 전축의 회전틀 위에는 사진 액자 하나가 놓여 있다. 열반부처(涅槃佛)가 그 액자 속에 들어 있다. 석가모니가 죽어가는 순간을 표현한 것인데, 죽음을 느낄 수 없다. 선정(禪定)에 든 모습, 해탈의 모습 그 자체다. 그것은 중국 돈황을 여행하면서 사온 책의 표지를 뜯어 만든 액자다. 나는 그 액자 밑에 ‘바다’라고 쓴 흰 쪽지를 놓아두었다. ‘바다’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액자 속의 석가모니 얼굴은 나에게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평생 소설로 써온, 내 앞에 누워 있는 고향 바다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

그것은 내가 도달해야 할 죽음, 나의 근원적인 고향이다. 환원해야 할 원형질이다. 가진 것 다 버리고 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 바다이다. 오직 하나만을 위해 분투하듯이 살다가 모두 돌려주고 흘러 들어가고 싶은 잠 아닌 잠. 그것은 슬픈 소망이다.



“어이, 형, 자네는 어떤 바다로 흘러갈 것인가. 자네 가진 것들, 집, 회사, 꼬불쳐 놓은 돈, 감추어 놓은 애인 다 챙겨가지고 하늘 저쪽 어디인가에 있다는 극락이나 천국으로 혼자 들어가 영원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가. 마지막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다고 했는데 말이여.”

자연현상을 중계해주다 보면, 나 스스로 파도가 되어 재주를 넘고, 물새가 되어 허공중을 선회하고, 게나 갯강구가 되어 갯벌밭을 기어다니고, 노을이 되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달빛이 되어 세상에 깔린다. 나는 없고 그 자연 현상들만 있게 된다.

응접실 전축의 회전틀 위에 누워 있는 ‘바다’의 표정과 ‘말없는 말’에 대하여 중계해 주다보면 나 스스로 그 ‘바다’가 되어 누워 있곤 한다. 그 바다는 영원한 시간이고 나의 길이다. 죽은 다음 그런 자연현상들이 되어 세상을 꽃 한 송이 풀잎 하나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다니다가 그 길 위에서 열반하셨다. 제자들은 시체를 관 속에 넣어놓은 채 가섭을 기다렸다. 먼 곳에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던 가섭은 엿새 뒤에 도착했다. 가섭이 관 앞에 꿇어 엎드려 절을 하고났을 때 관 아래 쪽이 터지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두 발이 그의 앞으로 나왔다.

열반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두 발이 곽을 뚫고 나온 사건을 ‘곽시쌍부(槨示雙趺)’라고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왜 하필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제자인 가섭 앞에 두 맨발을 내놓았을까. 그에게 대관절 무얼 말해주려고 그랬을까.

살아 있는 팔십 평생 내내 인도 전역을 걸어다녀야 했던 그 맨발. 부르텄다가 낫고 또 부르텄다가 나으면서 옹이 같은 굳은 살이 박인 그 맨발을 보고 가섭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맨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길, 그것이다.

나는 나의 길만 가는 삶을 그분에게서 배웠다.

나는 낚시질을 하지 않는다.

고기 낚아올릴 그 시간이면

당신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낚아올릴 생각에서

나는 등산을 하지 않는다.

산에 오를 그 시간이면

당신의 끝 닿을 길 없는 산정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더 올라가볼 생각에서

나는 삼봉도 고스톱도 트럼프도 당구도 골프도 하지 않는다.

그 놀이의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오직 당신과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는 마음이 한치라도 닳을까 두려워서.

나의 길 가기의 모습을 서산대사의 시를 통해 내 아들 딸에게 보여주려고 생각한다.

…눈을 밟으며 들판 한가운데를 갈 때는(踏雪野中去)

함부로 어지럽게 가지 않을 일이다(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밟아간 발자국은(今日我行跡)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노정이 된다(遂作後人程)

이것은 내 응접실 전축 위에 올려놓은 ‘바다’ 다음가는 보배거울이다.

세상의 모든 불, 모든 빛은 어둠을 먹고 산다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는 것은 머리속에 있는 어둠 감지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불은 빛을 필요로 하는 자, 잠들어 있지 않고 깨어 있는 자, 어둠을 인식하는 자가 밝히는 것이다. 어둠이 내리자마자 불을 밝히는 자동 가로등은 내부에 어둠 감지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그 어둠 감지장치(센서)는 자기 불빛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자기 불빛을 감지하면 금방 꺼져버리기 때문에. 어둠 감지기능은 반드시 자기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 불은 그 가로등이 어둠을 감지한 결과물이다.

세상의 모든 불, 모든 빛은 어둠을 먹고 산다. 소설도 그러하다. 소설은 소설가가 어둠을 감지한 결과 만들어 낸 빛이다. 소설가는 어둠 감지기능이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을 쓰지 않고 있거나 못 쓰고 있는 상태인 소설가의 어둠 감지기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유방과 엉덩이가 아니었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 르누아르는 늙음으로 말미암아 그림 그리는 데에 필요한 손이 마비되자, 간병사에게 붓을 손끝에 묶어달라고 해서 끊임없이 그렸다. 그를 후원하는 한 화상이 찾아왔을 때 그는 “손은 똥이야”하고 말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영혼으로 그린다는 말이었을 터이다. 그는 또 죽음을 몇 개월 앞둔 어느날 아들에게 말했다. “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려야 가장 잘 그린 그림인가를 바야흐로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자기 길을 열정적으로 꾸준히 가는 자는 끊임없이 열리는, 전혀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생명과 작가적인 생명에 대하여 늘 생각하곤 한다. 엽총 자살을 한 어네스트 헤밍웨이, 가스관을 물고 죽은 가와바다 야스나리,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의 삶과 죽음이 나를 그러한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하곤 했다.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상을 받은 자기에게 “그 사람 소설은 끝났어!”라는 혹평을 한 평론가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에밀아자르라는 조카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함으로써 다시 한 번 콩쿠르상을 받은 로맹가리가 죽어가면서 한 유언 ‘나는 재미 있었다. 안녕’을 늘 떠올리곤 한다. 작가는 한 작품 한 작품을 쓸 때마다 참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 생명력을 잃게 된다. 나는 감히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말하곤 한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거라고.

나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쓴 모든 단편과 중편과 장편, 내가 쓴 모든 시편들과 산문들은 모래알처럼 알알이 흩어지고, 외로운 섬들처럼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줄거리를 달리 한 하나의 큰 강물줄기, 또 하나의 우주 구멍 속에 떠도는 별들 같은 연작이다. 감히 우주를 나의 목소리 나의 색깔 나의 냄새로 색칠하고 있다.

내 몸 속의 피와 기름이 다 닳을 때까지 색칠을 계속할 것이다. 그 색칠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둠 감지기능이 녹슬지 않아야 한다. 나의 어둠 감지기능이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기능을 통해 계속 빛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지금 나 여기 와서 이렇게 살고 있다. ‘나, 한승원에게는 시간이 있는가’하고 성난 얼굴로 자문하곤 하면서.

신동아 200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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