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전국 5대 도시 밑바닥 民心을 훑다

  • 입력2006-12-06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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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3 총선을 향한 정치권의 물살이 가파르게 흐르고 있는 가운데 전국 주요도시에서 살핀 민심은 아직 겉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깊숙이 자리잡은 지역감정의 파고는 시민단체 낙선운동을 계기로 싹트는 ‘인물교체론’을 또다시 삼켜버릴 조짐이다. <편집자주> 》
    [ 부산 - 심화된 대여(對與) 비판정서 ]

    조용휘/동아일보 지방자치부 기자

    4·13 대 4·13총선은 새 천년 정치의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총선이 과연 금권, 관권선거 및 지역주의 할거 등 역대 선거의 구태를 벗고 ‘유권자 혁명’을 통해 선진 정치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부산지역 총선 분위기는 ‘이렇다’ 하고 뚜렷하게 단언할 단계는 아직 아니지만 여권에 대한 시민들의 정서가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조체제가 무너진 상태에서 여권에 대한 비판적인 지역정서가 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



    최근 지역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부산시민들은 절반(52%) 정도가 보통수준, 33.9%는 ‘못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하고 있는 점으로는 지역차별정책 심화(30.6%), 부산경제 낙후(12.2%) 등을 들었으며 특히 부산이 다른 지역보다 경제회복이 느린 이유도 정부의 차별정책(37.1%)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현 정부의 지역감정 타파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갈등과 비판적 정서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여야 정당과 후보들은 ‘당선’을 담보로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과거와 다름없는 선거운동을 할 것으로 우려돼 자칫 총선이 혼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극단적인 지역감정이나 특정 정당에 표가 몰리는 현상은 완화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선거가 새 천년의 첫 선거라는 점과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젊은층의 투표율이 예년에 비해 높을 것으로 분석하는데, 최근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지역차별론·침제론이 변수

    이런 분위기 속에 여야 선거법 협상 결과 부산지역은 4개 선거구가 통합될 것으로 보여 이곳을 텃밭으로 여기고 있는 한나라당의 공천갈등 여부가 총선판도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원외지구당을 놓고 측근들의 부산출마를 희망하는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측과 30%의 지분을 요구하는 이기택(李基澤) 전총재권한대행측, 당내 계파불인정을 밝힌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3각 구도에 따른 힘겨루기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관심거리다.

    아울러 김전대통령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먹혀들지도 이번 부산 총선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당에 비해 부산지역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민주당은 지역정서의 장벽을 뛰어넘는 묘안을 찾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바람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기재(金杞載) 전행자부장관과 김정길(金正吉) 전청와대정무수석, 노무현(盧武鉉) 의원 등이 포스트에 포진하고 지역 상공계 및 여성계 인사들이 외곽에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으나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시지구당 당직자는 “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중앙당에서조차 부산지역의 민심을 추스릴 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지구당 차원에서 침체된 부산지역 경제를 되살리고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정권상실 후 커져만 가는 지역차별 등으로 인해 부산지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 민심을 총선에 유리하게 이끌어간다는 전략이다.

    부산의 경우 유일 야당인 한나라당이 어려울 때마다 시민들이 성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점을 중시하고 이번 총선에서도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강력한 야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시지구당 당직자는 “한일 어업협상으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와 삼성자동차 문제 등은 부산의 권리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잃었던 것을 되찾기 위해 정부측에 대안을 촉구하고 시민들에게 ‘작은 공약 큰 실천’을 내걸고 동의를 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민련은 부산경제와 부산발전을 책임지는 신보수 정당의 슬로건을 내걸고 균형 있는 지역발전 책임론의 여론을 확산시켜 나간다는 전략이다.

    시지부는 국내정치 환경이 보수와 개혁으로 나뉘고 신보수와 안정이 경제발전과 직결된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 침묵하고 있는 40%의 보수층 잠재세력을 단계적으로 공략하고 정책여당으로서 여야 3당과 정 관 학계 지도자가 공동 참여하는 ‘부산발전협의체’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시지부 관계자는 “이를 위해 3당 상설협의체 구성을 이달 중 실현하고 해묵은 정치행태의 구악과 관습을 일소하며 희망찬 부산을 위해 우리 당이 앞장서겠다”며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가 자칫 자민련으로 흘러들지 않을까 그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학생 조현제(趙鉉濟·24·B대 3년)씨는 “여야가 어차피 3당 3색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겠지만 이제는 ‘정치의 질’ 자체가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라며 “정치가 지역이나 나라발전의 방해꾼이 될 수 없도록 유권자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인 이강호(李康浩·35)씨는 “선거때만 되면 온갖 사탕발림의 망령들이 되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정치인들의 자정노력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혁명도 필요하다”고 과열 혼탁 분위기를 경계했다.

    지역주의 조장후보 응징 움직임

    한마디로 요즘 현역의원들은 ‘걱정되네’다. 과거의 선거와는 달리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은 이번 선거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염증이 극에 달해 있는데다 시민단체의 운동이 신선한 충격과 함께 후보선택과 투표 참여 유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

    부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낡은 정치판’을 바꿔보자는 ‘유권자 심판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이 운동은 서울 중심의 총선 관련 시민운동을 벗어나 지역 여건에 맞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 특징.

    시민연대는 출마예상자들의 정보를 공개하기로 하고 지역감정 조장이나 개혁입법 반대 등의 공천 후보자를 상대로 낙천 낙선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연대는 지난달 부산YMCA 등 부산지역 4개 시민단체와 부산공명선거실천시민협의회에 참가한 20여개 단체와 함께 이 운동을 벌이기 위해 시민단체 워크숍을 갖고 후보자 바로 알기와 정보공개, 전자메일을 통한 선거개입운동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

    또 최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와 광주시민연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마산 창원 진해 참여자치시민연대, 지방자치참여 순천시민연대, 청주시민회, 울산참여자치시민연대, 전북시민운동연합, 새대구경북시민회의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국민통합 지역연대’는 부산에서 모임을 갖고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정치인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역연대는 선거운동기간에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후보자에 대해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당선될 경우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공천 신청자의 재산현황과 납세실적, 병역기록, 전과기록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 그 내용을 공개하고 후보자의 공약을 분석해 유권자에게 알리기로 했다. 부산참여자치 박재율(朴在律) 사무처장은 “비교적 균형적인 경쟁구도를 갖춘 수도권과는 달리 지방에서는 특정 정당과 후보가 거의 독점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에 지역특성에 맞는 실질적인 수단을 동원, 총선대응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부 황현희(黃鉉熙·36·부산진구 양정동)씨는 “서민들을 고통에 빠뜨린 낡은 정치권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아줌마부대’가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며 “앞으로 시민운동이 ‘국민에 의한 선거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마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여정서 = 한나라당 지지?

    부산 시민들의 역대 투표선거 성향은 야당 지향적이고 정치권에 대해 ‘억센’ 모습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전국 어느 곳보다 ‘반여(反與)정서’가 강한 곳이지만 최근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 등과 지역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를 감안하면 이러한 성향이 야당 지지로 작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파’ 비율이 전례없이 높아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무당파 비율이 62.5%로 나타나 기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물갈이 욕구가 적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야당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부산지역 의원들은 시민연대의 낙천대상자 발표에 ‘영남 죽이기’라고 주장하며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부산지역의 성향을 역이용하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시민 김재천(金在千·44·연제구 거제동)씨는 “과거에는 일부 정치인들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면서 금배지를 달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경고했다.

    부산은 또 15대 총선까지만 해도 ‘YS’란 1인 보스정치에 길들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는 ‘1인 그늘 정치’의 폐해를 유권자들이 분석하고 우선 사람과 정치행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신진 정치인에게 거는 기대가 과거와 달라 보인다. 현재 참신성 개혁성 전문성을 내세우며 4·13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정치 신인은 15명 내외.

    기성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이들의 활약은 당선 여부를 떠나 단순한 인적 교체의 의미보다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현 정치권의 구조적 변화가 시도됐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보고 있다.

    부산에서는 선거 때마다 공무원의 ‘여론’이 위력을 발휘하는 특유의 지역성향을 갖고 있어 이들의 움직임과 여론몰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한 특징이다.

    특히 IMF체제 이후 봉급삭감과 구조조정 등으로 누적된 불만이 유무형으로 표출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공무원의 정치세력화를 무마하는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배홍락/매일신문 정치1부 기자

    “아이고 선거요, 그거 관심 없습니다. IMF로 먹고 살기 바쁜 판에 뭐 먹을 것 있다고 선거에 신경쓰겠습니꺼.”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고 있는 김상진(45)씨의 말이다. 김씨의 이 말은 사실 지역일반의 기류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는 4월 총선을 두고 새 천년을 맞아 치르는 첫 선거니 하면서 언론 등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대구지역에서는 아직껏 선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여야 정당마다 공천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출마 예정자들과 주변 인사들만 중앙당 방문과 지역 여론 조성 등에 분주할 뿐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불붙기 시작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에 대해서는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관심이 느껴진다.

    총선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이 이번 선거에 끼칠 영향에 적잖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3공 이후 6공화국에서 이르기까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해 어느 지역보다 보수 성향을 보여온 대구사람들이 시민단체라는 개혁성향 단체의 활동에 (각자의 긍·부정적인 평가는 차치하고) 이처럼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례적이다.

    변화 외면 한나라당 먹을 것 없는 총선밥상

    공천과정에서도 민주당과 자민련은 공천을 주려고 해도 적당한 사람이 나서지 않아 인물난에 허덕이는 반면, 한나라당은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뤄 교통정리에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였다.

    통상 현실적으로 철저히 무장돼 있기 마련인 정치 지망생들의 이와 같은 모습에서 이곳 정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소위 ‘한나라당 정서’란 것이 이 지역의 현주소인 셈이다.

    한나라당 공천을 따내면 사실상 당선이라는 ‘한나라당 말뚝론’이 여전히 팽배해 있는 실정인 것이다.

    15대 총선 때는 YS정권의 실정으로 반 YS정서가 드높아지면서 자민련이 지역에서 녹색돌풍을 일으켜 대구 지역 의석 13석 중 8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강재섭(대구·서을), 김석원(대구 달성군) 의원만이 당선되는 데 불과, 처참한 몰골을 보였다.

    한나라당(신한국당)의 그와 같은 처지는 지난 97년 대선을 전후해 완전히 반전을 이뤘다. 현실을 빙자한 자민련과 무소속 인사들의 신한국당 입당도 총선 직후부터 대선 때까지 꾸준히 봇물을 이뤘다.

    반 DJ 선봉이라 할 대구가 국민회의(현 새천년민주당)와 자민련에 맞서 선택할 착지점은 이회창 후보를 내세운 한나라당뿐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한나라당 말뚝론’을 실감케 했다. 대구시장 선거는 물론 대구 지역 8개구·군 중 무소속이 당선된 남구를 제외한 7개 지역의 기초단체장 당선에다 광역의회마저 싹쓸이했다. 특히 광역의회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당시 인물은 불문한 채 선거기호 1번인 한나라당 후보를 찍는 행태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같은 선거행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지방선거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더라도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다는 것이 이유로 꼽힌다. 영·호남과 충청 등 삼각축을 이루어온 지역구도는 시간이 갈수록 이번 선거에서 더 뚜렷하게 전개될 판이고 DJ정권의 남다른 구애(求愛)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반DJ정서 또한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에서 ‘이번 선거는 DJ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차기 대선의 예선 격’이라며 ‘대구 경북에서 다음 정권을 되찾아오자’는 등으로 ‘원초적 본능’을 자극할 경우 상황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타지역에 비해 이 지역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바가 낮은 것은 아니다.

    신진인사에 대한 기대가 53.7%에 이르고 부동층 또한 45.5%에 이르는 등 지역 여론조사기관인 에이스리서치가 지난 1월 대구 경북 지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같은 바람을 오는 총선에 투영시키는 데 유권자들은 현실적 한계를 느끼고 있다. 사실 각 정당이 이번 총선에 나설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을 보더라고 유권자들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지역 제1당인 한나라당의 공천심사과정을 지켜보면 현역의원 위주로 공천이 진행되면서 지역의 일반적 바람인 신진인사로의 교체 등 변화된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DJ와의 공조’라는 원죄로 인해 이 지역에서 최악의 당 인기도를 보이고 있는 자민련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구 달서 갑 위원장이던 김한규 전총무처장관을 비롯한 탈당 사례가 이어지면서 아예 현 지구당위원장 교체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공석인 지구당을 채우기 위한 사람 찾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이 지역에서 첫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민주당은 반 DJ정서의 두터운 장벽에서도 인물 찾기에 고군분투중이다. 하지만 그나마 몇 안 되는 출마 확정 인사조차 지역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밥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낙천명단 중시한다지만

    공천이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지역의 시민·노동단체들도 우려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 대구본부 사무국장인 권혁창(33)씨는 “시민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여야 경쟁을 통해 눈가리고 넘어가는 예전과 똑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정형근 의원 사태로 또다시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는 시각인 것이다. 한국노총 대구본부 의장인 김경조(53)씨는 각 정당의 공천 과정과 관련,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인사를 공천하고 있는 각 정당의 행태가 대단히 아쉽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 단체가 정당을 보는 눈에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해 권씨는 “정책 면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자민련 등에 비해 개혁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구 경북지역에 관한 한 민주당에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언급으로 대신했다. 민주당의 지역 공천 대상인사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득표력 기준이어서 개혁적 의미를 부여하기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김씨는 한국노총 정치국에서 지난 1월 지역 노동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노총과 제휴할 정당으로 한나라당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지역의 일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치인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 전개 속에 총선 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이 이번 총선 중 지역에서도 일정 효력을 가지느냐에 주목되고 있다. 일단 시민들은 이들 단체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명단 발표가 가시화한 지난 1월 말 에이스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대구와 경북 지역 유권자 가운데 ‘(낙천대상에 끼면) 지지후보를 바꾸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76.7%에 달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런 응답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은 듯 한나라당은 지역에서 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에 의해 몇 차례 발표된 낙천 대상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 중 극히 일부만 배제한 채 그대로 공천을 주고 있다. 배제 인사조차도 시민단체의 의견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공천자 교통정리에 활용할 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자 명단발표를 공천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힌 민주당조차 인물난 등으로 지역에서 원칙 없는 공천을 하고 있다. 자민련은 아예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언급할 필요도 없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처럼 ‘대담한’ 공천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지역구도라는 큰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물론 자민련도 제기 하는 ‘음모론’이 지역에서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믿음에서다. 낙천대상 명단에 오른 지역의 한 현역 의원은 낙천대상 혐의를 극구 해명하면서도 “낙천 낙선 명단에 오른 것이 오히려 선거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사실 지역에서는 시민단체는 낙천 낙선운동이 ‘시민단체와 여권 핵심부 간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음모론적 해석에 적지 않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식자층도 시민단체의 그와 같은 활동이 오히려 지역구도를 자극해 결국 대구·경북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을 도와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어떤 활동이든 그 순수성을 의심받게 되면 더는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이 지역에서도 여전히 지켜봐야 할 주요 변수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낙천운동에 이어 낙선운동으로까지 번질 경우 유권자들의 방향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방향을 잡을 경우,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맞물리면서 휘발성이 큰 사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변수는 소위 ‘영남신당’ 창당을 들 수 있다. 영남권을 주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정호용 의원 등이 물밑에서 추진해온 영남신당이 태동할 경우, ‘차기 대선에 나설 지역 인사를 키우자’는 등으로 지역민의 정치적 공허감을 자극해 세를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병무비리와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색깔론 시비 등도 지켜 볼 변수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이 ‘전가의 보도’로 여겨지는 ‘지역구도’를 압도하는 위력을 떨칠 것인가에는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정규/동아일보 지방자치부 기자

    과거 민주화투쟁 시절 ‘야도(野都)’로 손꼽히던 인천의 표심(票心)은 어디로 흐를 것인가. 96년 15대 총선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참신한 인물을 앞세워 11개 지역구 중 9곳을 휩쓸었지만 97년 대선에서는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평균 38.5%를 얻어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2.1% 포인트 차로 제쳤다.

    98년 지방선거에서는 공동여당이 연합공천을 통해 인천 전지역을 석권했다.

    그러나 지난해 계양-강화 갑 재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등 계속 ‘표심’이 변화를 보여온 곳이 인천이다.

    최근에 여권균열 파장이 현실로 나타난 좋은 예는 지난 1월25일 치른 인천 남동구청장 보궐선거.

    이번 보선은 애초 민주당과 자민련이 일찌감치 이호웅 후보를 연합공천한데다 이 후보가 오랫동안 지역을 다진 탓에 여권의 낙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이었다.

    여권에선 이번 선거패배의 주요원인으로 공동여당의 균열을 들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자민련이 민주당의 내각제 강령 삭제를 문제 삼아 반발의 강도를 높여갔고 급기야 선거 당일인 25일엔 자민련이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대상자 명단 발표와 관련해 청와대와 민주당의 배후음모설을 제기하며 여권공조 파기를 예고하면서 충청표가 대거 이탈했다고 선거관계자는 분석했다.

    실제로 선거운동 초기에는 민주당 이 후보가 선전했지만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는 한나라당 윤태진 후보가 격차를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선거가 18.6%이라는 극히 저조한 투표율을 보인 것은 정치권에 대한 인천 유권자들의 냉소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공동여당 분열 비집고 한나라당 약진

    이번 인천 남동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로 민주당과 자민련에 비상이 걸렸다. 16대 총선에서 인천 공략이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얘기다.

    인천은 충청권 출신이 30%에 육박하는 지역. 이 때문에 자민련에선 한때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인천 출마설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9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연합공천을 통해 인천시장과 이 지역 10개 기초단체장을 석권했을 당시 국민회의 지지율이 한나라당에 비해 20% 이상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 여야 간 지지율 격차가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인천의 한 지역에 대해 벤치마킹(특정사례를 집중 연구하는 방법)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충청 출신의 과반수가 연합공천을 해도 민주당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충청 출신이 특별히 자민련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인천의 자민련 지지율은 5∼6% 정도로 전국 평균과 비슷하다.

    “인천에 사는 충청 출신들의 투표행태는 충청도에 사는 사람들과 많이 다르며 수도권의 평균성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벤치마킹 조사에 따르면 인천에 거주하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출신들의 경우도 지난해까지 국민회의 지지가 우세했으나 지금은 한나라당 지지가 더 많아졌다는 것.

    민주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인천에선 오히려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나라당에게는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총선에 출마할 뚜렷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취약점이어서 선거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새천년민주당 인천시지부 황수명 사무부처장은 “남동구청장 보궐선거는 남동구에만 국한된 결과일 뿐 인천지역 전체의 민심을 보여줬다고는 볼 수 없다”며 “참신한 경제전문가를 내세워 안정론을 펼치면 압승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민련 인천시지부 박정석 사무처장은 “전지역에 공천자를 내 인천 표심을 자민련으로 끌어들이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나라당 인천시지부 김용환 조직부장은 “이미 인천 유권자들의 표심은 여당을 떠났기 때문에 16대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시민연대와 별도로 인천 시민단체가 펼치고 있는 낙천 낙선운동도 당락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천지역 22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2000년 총선, 부패정치청산 인천행동연대’는 지난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와 별도로 인천지역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공개했다. 인천행동연대가 발표한 공천반대 명단에는 민주당의 이강희(李康熙)·서정화(徐廷華) 의원과 한나라당의 조진형(趙鎭衡)·심정구(沈晶求) 의원 등 4명.

    이중 심의원은 최근 출마를 포기해 인천행동연대가 현재 낙천 낙선운동을 벌이는 의원은 3명인 셈이다. 심의원은 “지역내 4선의원으로 의정활동을 계속하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뒤에서 후원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출마를 포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낙천운동 지지하는 시민들

    심의원의 출마포기선언은 인천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물갈이’ 신호탄이 되고 있다.

    인천시민연대가 이들 의원에 대해 낙천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이의원의 경우 인천시청 상공에 경비행기를 띄운 자녀호화결혼식과 당적변경, 서정화 의원은 국회고스톱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와 당적변경,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대유권자 약속운동 미서명, 조진형 의원은 임차보증금 반환청구소송건과 아들 대학 부정입학 등이다.

    이에 대해 이의원측은 “호화결혼과 관련, 당시 피로연을 맡았던 홍익뷔페에서 경비행기로 축하쇼를 했을 뿐이며 축의금은 고아원, 자선단체에 모두 기부했다”고 밝혔다.

    서의원측은 당적변경에 대해 “서민과 중산층의 대변자로 나선 국민회의와 정치 신념이 같아 소신있게 결정한 사안이며 고스톱사건에는 개입도 안했다”고 말했다.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대유권자 약속운동 미서명과 관련해선 “시민단체에 미처 답변을 못했을 뿐 국회의 법제정 과정에서 서명을 했다”고 덧붙였다.

    조의원측은 “임차보증금 반환소송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현재 항소해 재판계류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들의 대학 부정입학 및 괌 KAL기 참사 때 기념 촬영한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들 의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시민단체들의 낙천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다.

    시민들 사이에는 “스스로 쇄신능력을 상실한 정치권에 던지는 국민들의 경종”이라며 “낡은 정치를 몰아내고 진정한 선거혁명과 정치개혁으로 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시민 이광용(42·인천 연수구 연수동)씨는 “소위 여야 중진급 의원들이 대거 포함된 것을 보고 속이 후련했다”며 “그러나 실제로 부패한 정치인이 더 많은데 생각보다 발표자가 적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인천지부 박종성 기획연구부차장(30)은 “시민단체가 낙천 낙선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개혁능력을 잃은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 줄 참신한 인물이 대거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행동연대가 지난 1월16일에 홈페이지(www.NGO.inchon.kr)에 낙천 낙선의원 명단을 올린 이틀 동안 500여명이 접속하는 등 많은 시민이 부패정치인 청산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했다.

    이처럼 인천행동연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이 폭주하면서 불통되는 사례도 빈발했다. 시민 최모씨(34)는 “낙천 낙선운동에 관심이 있어 인천행동연대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려고 1시간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접속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더 나아가 부패정치인들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히는 글까지 올리고 있다. 인터넷 아이디가 ‘Y2Kbbung’인 한 시민은 “썩어빠진 정치, 무능정치, 사대주의 정치…를 시민의 힘으로 갈아 엎어 버립시다”라며 부적격 정치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지역개발론보다 정치혁명론 ‘약발’

    여기에다 지역 정치인들의 비위 사실에 관한 제보도 속속 접수되는 등 인천행동연대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마치 부패정치인에 대한 ‘공개재판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인천행동연대 관계자는 “시민들이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일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동안 국민들이 얼마나 정치인들을 불신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여기에 인천행동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장외에서 낙천 낙선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어 표심의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인천행동연대는 지난 2월13일 오후 종합문화예술회관 앞에서 공천반대인사 낙천 낙선운동을 위한 서명운동 및 항의집회를 가진 데 이어 계속 서명운동을 하기로 했다.

    지역개발은 이번 총선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 앞바다 지도를 바꾸고 있는 송도신도시개발, 인천국제공항건설 등과 문학종합경기장 신축 등 굵직한 대형 사업이 진행중이지만 지역개발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사 진병수(49·인천 남구 주안동)씨는 “정부나 인천시에서 갖가지 대형 프로젝트를 시행중이나 이번 총선은 지역개발의 공헌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혁명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높아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김모씨(53)는 “송도신도시를 개발하고 공항을 건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썩은 정치판을 도려내는 일”이라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정치혁명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김권/동아일보 지방자치부 기자

    광주 전남지역에서 이번 선거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DJ 1인 지배체제’ 아래 치르는 마지막 총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굳이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면 그가 이끄는 당이 ‘만년야당’에서 벗어나 사상 처음 여당으로서 선거를 치르게 됐다는 사실뿐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DJ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예외없이 적용될 것이라는 데는 뚜렷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 사실 되돌아보면 지난 대선에서 ‘전원투표’와 마찬가지이라는 97.3%(광주)의 몰표를 받았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건재하는 한 이 지역에서 투표행태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각각 94.6%와 92.3%의 득표율을 보였던 전남과 전북에서도 이와 같은 추세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역시 우세하다. 한 후보측근은 “특히 농촌지역 고령자층에서는 지금도 ‘호남대통령 나왔으면 그만이지 무슨 토를 다느냐’는 사람들로 꽉 찼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의 통치기간 2년을 갓 넘긴 지금까지 대선승리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던 금남로의 축제분위기가 지금껏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벌써부터 ‘포스트DJ를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긴 ‘5·18 최후의 수배자’로 유명한 윤한봉(민족미래연구소장) 같은 이는 지난 대선 직후 “호남사람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DJ에게 쏟아진 몰표는 냉정한 정치의식보다는 원시적인 집단정서에 따른 것”이라며 오늘의 변화를 예견하기도 했다.

    또한 YS 추종자들이 일찍이 경험했던 “우리동네사람 대통령 만들어도 별 볼일 없더라”는 ‘허상파괴’조짐이 여기서도 벌써부터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DJ추종자들의 표정이 예전만큼 밝지는 않은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지난해 ‘옷로비사건’으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잇따른 실정에 대해서도 아직도 “대통령은 잘 하시는데…”라며 주로 ‘무능한 참모’를 탓하는 지역여론의 흐름은 ‘총선물갈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DJ, 빚 갚는 자세로 후보 엄선해야

    소위 ‘지역주의 투표행태’에 주목해 온 전남대 지병문(池秉文) 교수는 대폭 물갈이의 당위성을 특유의 ‘즐거운 투표론’으로 설명한다.

    “우선 5공 6공을 거치면서 나라 전체가 지역패권주의 열풍에 휩싸였고, 그런 측면에서 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호남에 한정지어 돌아본다면 그동안 ‘무조건 야당지지가 곧 정권교체’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더 나아가 ‘정권교체는 곧 민주화의 시초’라는 시각이 논리적으로 수용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초월해야 할 때다. DJ로 대표되는 현재의 민주당이 또 다시 국회의원의 자질과는 무관하게 ‘옛날에 같이 고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지해 달라면 이는 다시 호남사람들에게 엄청난 멍에를 지우는 것이다.

    이제 DJ측이 정권 창출에 진 빚을 갚는 자세로 이쪽 사람들이 그야말로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투표할 수 있는 후보를 엄선해 내세워야 한다. 그런 모범을 보일 때만 호남은 타 지역을, 민주당은 다른 정당의 정치개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시대적 요구를 읽지 못한다면 총선 이후 급속한 민심이반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월31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광주 금남로의 모 보험사건물 8층에서 열린 ‘광주 전남 66인 유권자위원회’의 첫 모임.

    언론의 추적을 피해 두 차례나 장소를 바꿔 가며 극비리에 열린 이 자리에서 이 지역출신 선량들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는 이 모임을 기획했던 ‘광주전남 정치개혁 시도민연대’(85개 단체가 참여, 1월14일 출범)측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어 갈수록 높아만 갔다. ‘시도민연대’측은 미리 작성한 개인별 기초자료를 공개하고 의견을 듣는 수준에서 모임을 준비했으나 결국 유권자들의 즉석제안을 수용, 15대 국회에서 활동한 이 지역출신 전현직 의원(전국구 포함) 28명을 대상으로 공천 찬반을 묻는 기명투표에 들어갔다.

    이어 공천부적격자 최종 선정을 위해 광주 서구 화정동 구 광주가톨릭대 부지 내 가톨릭사회교육원에서 밤샘작업에 들어간 송기숙(宋基淑·소설가·전남대 교수) 등 ‘시도민연대’ 공동대표 9명은 밀봉된 유권자 투표결과를 개봉하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전체 28명 가운데 6명을 빼고는 ‘공천반대’의견이 과반수를 넘게 나타난 것.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많아야 절반 정도를 예상했는데 80%에 육박하는 ‘교체의견’을 확인하고는 당초 미국재판의 배심원제도 개념으로 활용하려 했던 이 투표결과를 공개하기 어려웠다”며 “만약 무기명투표였다면 더 높은 수치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물갈이 기대수치는 이미 그보다 열흘 전 ‘광주전남정치개혁포럼’이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됐다.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만족도와 자질에 대해 각각 41.4%, 42.2%의 ‘불만족’의견을 나타냈다.

    ‘현 의원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이 70.8%에 이른 반면 ‘현의원 재공천’은 17.7%에 불과했다.

    ‘만약 현 의원을 재공천할 경우 선거에서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다른 후보지지’의견이 54.9%, ‘현 의원지지’는 20.0%로 큰 격차를 나타냈다.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과 관련해서는 ‘부적격자를 공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65.4%에 이른 반면 ‘공천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은 26.4%에 그쳤다.

    ‘지역구의원을 재공천할 경우 불신임하겠다’는 의견을 지역별로 보면 △전남 광양 △여수 △강진 완도 △담양 장성 △광주 북구 등이 60.0%를 넘었다.

    ‘특수정서’ 앞에 한계 봉착하는 낙선운동

    ‘시도민연대’가 2월 1일 발표한 ‘공천부적격’대상은 이 지역출신 전현직 의원가운데 서울의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선정해 발표한 국창근(鞠根) 의원 등 8명에다, 독자선정한 이영일(李榮一) 임복진(林福鎭) 배종무(裵鍾茂) 한영애(韓英愛) 의원 등 4명을 더해 모두 12명. 이 단체가 밝힌 부적격기준은 △부정부패 △의정활동능력 △개혁입법 및 정책에 대한 태도 등 8가지로 대개 서울의 기준과 비슷하지만 ‘광주항쟁이후 군사정권에 적극 참여한 자’ 및 ‘반민주 반인권전력’기준이 눈길을 끈다. 5공 당시 11대(전국구) 12대(광주동구)의원을 지낸 이영일의원(광주동구)은 바로 ‘군사정권 참여’기준에 걸려 부적격대상에 포함됐다. 이의원은 당일 ‘공개질의서’를 통해 “민정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시점은 85년이었다”며 “‘5공참여’라는 단 하나의 기준과 사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부적격선정을 결코 승복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지난해 ‘옷로비청문회’에 등장해 눈길을 모았던 한영애(화순-보성) 의원은 ‘번번이 품위 없는 발언으로 국민들에게 정치적 혐오감을 줌’이라는 이유로 선정됐다. 한의원 역시 ‘절대불복’을 선언한 상황.

    ‘시도민연대’의 정철웅(鄭澈雄) 총선특별대책위원장은 “이 명단에 들지 않은 인사들이라고 해서 결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며 각 당의 공천명단이 발표되면 그 동안 축적한 자료와 제보를 바탕으로 전 후보에 대한 검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공천과정에 낙점이 유력한 후보일수록 더 많은 제보가 접수됐다”며 “만약 민주당이 우리가 선정한 부적격인물을 공천할 경우 적어도 한곳에 대해서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낙선운동을 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도민연대’ 역시 이 지역의 ‘특수정서’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러울 수는 없는 실정. 우선 이 연대에 참여한 단체의 대표 또는 주요관련인사가 이번 총선출마 의사를 밝혀 중도에 탈퇴했거나 언젠가 정치권 진출을 목표로 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깨끗하게 털지 못하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특히 타 지역과는 달리 정치권 진입이 ‘DJ당’일변도로 한정된 현실에서 그 당 관련인사들을 주검증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것. ‘시도민연대’ 주도그룹은 결성당시부터 “이번에 후보를 낼 만한 단체나 대표는 제외시키자”고 분명한 선을 그었으나 2월12일 회의를 거쳐 민주당 공천신청자를 낸 단체 및 개인을 가맹단체에서 제외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런 한계를 빗대 한 언론인은 “엄밀히 따지자면 이제 광주에 재야는 없다. 단지 관변단체가 있을 뿐”이라고 극언하기도 했다.

    또한 낙선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규정과는 별개로 낙천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간 낙선운동을 펼칠 토양이 돼 있지 않다는 점이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당공천자가 스스로 선정한 ‘부적격자’라 하더라도 한나라당 등 타당 소속후보 또는 무소속후보가 아예 나오지 않을 경우 현실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

    더욱이 현재 공천 이후 최대과제의 하나로 떠오른 지역주의 투표행태 감시활동도 아직 뚜렷한 방향과 방법론을 찾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영호남 시민단체간의 교류 등 가시적 활동도 필요하지만, 밑바닥 여론을 되돌릴 논리개발이 가장 중요한데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

    ‘시도민연대’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낙천운동보다는 지역감정해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지역감정조장후보 가려내기’ 등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선거 막판에 ‘저쪽은 다 뭉친다더라’식의 이야기가 들려온다면 어떤 논리로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고 털어놓았다.

    치열해진 내부경합, 후유증 우려

    평균 경쟁률이 10 대 1에 육박한 이번 민주당 공천에서 나타난 특징은 종전 야당시절에는 드물었던 고위공직자 기업가 변호사 등 전문직 출신 입지자들이 대거 지원했다는 점. 반면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경우 지난 15대총선보다 더욱 심한 후보 기근현상에 직면할 전망이다.

    지난 88년 13대때 민정당, 92년 14대 때 민자당후보로 광주북구에 도전했다가 15대때 자민련전국구로 처음 국회진출의 꿈을 이룬 지대섭(池大燮·청호컴퓨터회장) 의원의 행보는 이런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한때 광주전남지부장을 맡았던 자민련에서 최근 탈당,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광주북을에 공천신청을 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소망했던 ‘국민회의-자민련 합당’이 무산된데다 지역 내 마이너당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중선거구제 도입이 물건너간 마당에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자신의 변신을 ‘개인적 합당’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변신은 ‘3김 이후’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위치에서 내린 발빠른 결단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번 선거의 후유증, 좁혀 말하면 민주당공천의 후유증이 예상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이상황이다. 이와 같은 전망은 무엇보다 과거 야당시절 은밀성이 유지됐던 동교동 단일채널 공천구도에서 벗어나 각 지역구의 밑바닥 여론과 지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소위 ‘구조변경’에서부터 초래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충성도에 기준한 일방적 낙점방식에서 ‘현지여론’을 강조하다 보니 여론 잡기에 갖은 탈법이 동원된 것.

    상대비방과 흑색선전은 순진한 편이고 수개월 전부터 상대방의 조직을 빼오려다 보니 막대한 현금수요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 관전자들의 평가다. 여기에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공천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기관에 현 정권 출범 이후 대거 진출한 호남출신 인맥을 총동원한 전방위로비도 치열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처럼 로비활동 대상이 종전에 비해 훨씬 넓어지고 경합열기도 뜨거워지면서 비공식활동자금의 규모가 일부 선거구의 경우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30억원설’ ‘50억원설’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본선에서 예상치 못한 무소속 변수까지 맞닥뜨려 그야말로 한판 승부를 벌인다면 금배지 하나 따는 데 드는 전체 운동자금의 규모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 후보운동원의 말.

    “선거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갖가지 경력의 ‘선거꾼’들이 줄을 잇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이들을 홀대할 경우 곧바로 역풍을 일으키기 때문에 공천과정에서부터 경쟁적으로 바닥에 현금을 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실효성 없는 상향식 공천에 미련두기보다는 제도 자체를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기진/동아일보 지방자치부 기자

    선거 때가 되면 대전 충청지역을 ‘자민련의 텃밭’으로 부른다. 그만큼 자민련을 내걸고 출마하는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준다. 14대 총선과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그랬고 15대 총선에서도 대전 충청 지역민은 JP(김종필 명예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에 힘을 몰아줬다. 그 힘은 결국 공동정권을 창출하게 했고 충청인은 해방 후 처음으로 ‘여당’을 해봤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공동 여당’이기는 하지만.

    묘하게도 자민련은 선거 때마다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는 모습을 보였다.

    95년 지방선거 때 JP는 신한국당에 ‘팽(烹)’당해 얼굴 군데군데 반창고 투성이였다. 96년 총선 때도 여당의원의 ‘충청도 핫바지’발언으로 JP는 물론 충청인들은 멍이 든 가슴을 안고 선거를 치렀다.

    이번에도 JP는 외견상 권력의 한켠에 밀려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선거를 맞았다. 벌써부터 ‘JP가 낙화암(JP 지역구인 충남 부여에 있는 문화유적지) 벼랑 끝에 놓여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다시 “충청인들이 똘똘 뭉쳐야 대우받는다”는 선거 전략이 등장할 조짐이다.

    복잡해진 충청 선거 구도

    이번 선거에 앞서 충청권은 그야말로 ‘변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련은 선거양상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양당 대결 구도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보수와 혁신의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큰 틀은 세워놓은 상태.

    그러나 정작 집안격인 충청도에서의 수신제가(修身齊家)도 그리 쉽지 않게 됐다.

    연합공천은 물 건너갔고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은 충남 논산-금산지역에서의 출마를 공식화하며 자민련에 전면전을 선포해 놓았다.

    내일 모레 칠순을 맞는 자민련 의원 지역구에서는 민주당의 475세대(40대 나이에 70년대 학번, 50년대 후반 출생)가 참신성을 내세우며 그들을 경로당으로 보내려 하고 있다. ‘포스트 JP’로 여겨졌던 김용환(金龍煥) 의원이 딴살림을 차리고 JP를 정면공격하고 나섰다.

    JP 자신은 물론 상당수 소속당 중진 의원들이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대상자에 포함돼 있는 것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불리한 상황이다. 아니 역대 선거사상 최악의 전황(戰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적어도 현 상황으로선 자민련이 믿을 거라곤 ‘JP바람’,‘녹색바람’뿐이다.

    애초부터 충청권에서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합공천을 불가능한 것으로 본 사람이 많았다. 겉으로는 공동정권을 형성해왔지만 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겨냥해 충청권에서 꾸준히 힘을 키워왔다.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수도권과 영호남의 교두보인 충청권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전망은 이위원장의 충남지역 출마발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월7일 민주당이 ‘4·13’ 총선후보 공모를 마감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충청권에서 민주당 공천희망자 경쟁률은 전국 평균 경쟁률에 약간 밑돌지만 3.6 대 1에 이르러 공동여당간 연합공천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2월13일 민주당 이위원장의 충남 논산-금산 출마선언은 사실상 실낱 같은 연합공천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출마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전국에서 골고루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밝혀 충청도에서 자민련과의 일대 격돌을 선언했다. “자민련 텃밭인데 자신 있느냐”는 질문에 “텃밭을 인정치 않는다. 국민을 위해 정당이 있는 것이지 정당을 위해 국민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위원장의 발표에 자민련측은 겉으로는 불쾌해했지만 “사실상 올 것이 온 것 뿐”이라는 반응이다.

    충청권에서 민주당의 공천은 예상보다 공세적이다. 이위원장이 출마할 충남 논산의 인접 지역인 대전 서갑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박병석(朴炳錫)씨를 내세운 게 대표적이다. 박씨는 측근에게 “출마를 고사했으나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결심을 바꿨다”고 말해 충청권에서의 이와 같은 공세적 공천을 청와대에서 주도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민주당측에서는 이위원장과 박병석씨,그리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송석찬(宋錫贊) 전 유성구청장이 출마하는 대전 유성구와 연계한 IJ벨트(이인제바람 극대화전략)를 형성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럴 경우 민주당 의원의 불모지인 대전 충남 17개 의석 중에 3∼4석이 가능해 전국 정당의 발판을 충청권에서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련 의원들은 “이위원장이 충남 논산이 고향이라며 출마를 밝히고 있으나 사실은 고향 찾아가는 길도 모른다”며 “그동안 고향을 위해 해놓은 일이 뭐냐”고 반문한다. 민주당으로 이 지역에서 출마하는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도 “세입자가 사랑방에 살다가 주인한테 안방을 내놓으라는 격”이라며 불쾌해하고 있다.

    반면 ‘4·13’총선을 향한 ‘소걸음’행보를 하고 있는 자민련은 내홍까지 겪고 있다.

    대전 서을 지역구에서는 이재선(李在善)의원에 대항해 조병세(趙炳世) 보훈처차장과 문형식(文亨植) 변호사가 공천경쟁에 나서 식구들끼리 치고받는 싸움을 벌였다.

    자민련 내 공천잡음 속 민주·한나라 공세

    대전 유성구에서도 조영재(趙永載) 의원에 대항해 이창섭(李昌燮) 전 SBS앵커가 공천경합을 벌이고 있다. 충남에서는 한영수(韓英洙) 부총재가 15대 총선에서 변웅전(邊雄田) 의원에게 물려줬던 지역구를 되찾겠다고 선언했고, 이 밖에 선거구가 통합된 충북 괴산 진천 음성에서 5선인 김종호(金宗浩) 의원과 초선인 정우택(鄭宇澤) 의원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대전 동구와 충남 공주-연기, 홍성-청양, 천안갑, 보령-서천, 아산에서도 마찬가지가 양상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타 경쟁자가 공천에 나선 것은 대전의 ‘저승사자’ L의원의 이간질 때문이라며 말한다. 한 의원은 “L의원이 대전 충남 공천을 물말아 먹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붓었다.

    공천후유증이 심화되고 낙천자의 지지표가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는 대목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가세 또한 만만치 않다. 동구에서 자민련을 탈당한 김칠환(金七煥)의원이 한나라당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고 오랫동안 터밭을 다져온 이재환(李在煥·대전 서갑)·김원웅(金元雄·대전 대덕) 전 의원이 와신상담을 벼르고 있다. 한나라당도 ‘비JP, 반DJ’의 표심을 끌어모아 2∼3석을 넘겨보겠다는 각오다.

    7일 공천마감에서는 대전 6개 선거구에서 14명이, 자민련 정서가 강한 충남지역에서도 천안 공주 보령 논산시 등에서 5,6명이 나서 높은 경쟁률을 보인것도 이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연고가 충남 예산이라는 점도 선거전에 동원될 전망이다. 자민련으로서는 이인제 위원장 이회창 총재 등 거물급의 파상공세에 대항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영·호남 바람’ 불면 충청도 분다

    자민련은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를 ‘헌정파괴행위’로 규정하고 ‘민주당과의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평가해 버렸다. 공천과 선거운동 과정에 이들의 주장에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더욱이 지난 설 연휴기간에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을 ‘보수세력과 자민련 죽이기’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홍보한 결과 적극적인 호응을 얻은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충청권 의원들은 김종필 명예총재를 비롯해 자민련 지도부가 대거 시민단체로부터 낙선 대상자로 지목된 데 대한 충청권 유권자들의 반발심리가 매우 거셌다고 전했다.

    강창희(姜昌熙·대전 중구) 의원은 “낙천 낙선운동이 화제에 많이 올랐으나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양희(李良熙·대전 동구) 의원도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을 ‘자민련 죽이기’로 보고 흥분해 있다”고 전했다. 정치를 담당하는 한 정보과 형사는 “시민단체가 자민련 의원을 너무 많이 건드렸다. 심지어 공천권자인 JP까지 건드렸으니 JP가 명단에 오른 다른 의원들을 손대려 하겠느냐”며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조차 명단에 소속된 의원들에 대한 자신들의 낙천 낙선운동이 실제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전 충남지역 6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전 충남 2000년 총선시민연대’도 이런 점을 고려한 탓인지 자체적으로 낙천 낙선명단을 작성하는 데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중앙차원에서 발표한 명단만을 토대로 ‘부패정치인은 안된다’는 원칙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자민련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불공정시비가 야기된 마당에 자민련 텃밭에서의 낙천 낙선운동이 자칫 반발표를 만들고 지역구도를 고착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시민단체의 이번 발표와 유권자운동이 아무 결과가 없는 공중전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다만 정치현실에 냉담한 계층과 젊은층에게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킨 것은 성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결국 시민단체의 발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 명단은 유세현장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의 ‘양념거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적이다.

    이번 총선이 자민련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힘겨울 것이라는 전망 중에 또 하나는 부총재를 지낸 김용환(충남 보령)의원이 이탈하면서 지역역량도 어느 정도 갈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의원은 지난 12일 충남 보령시에서 열린 ‘희망의 한국신당’ 창당식에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내각제를 스스로 포기해놓고, 또 김대중 대통령에게 진상을 해놓고 이제 와서 민주당이 내각제를 강령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면서 “충청인은 더이상 JP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김의원은 13일 대전에서 열린 서을지구당 창당대회에서도 역시 강한 어조로 충청권의 정치적 지도자 교체론을 강력하게 폈다.

    ‘희망의 한국신당’ 당수격인 김의원의 이와 같은 행보는 충청권 내에서 JP의 교체를 고대하면서도 정당의 지역기반을 어느 정도 인정하려는 주민들에게 나름대로 호소력을 갖고 있다. 김의원의 선전여부에 따라 자민련의 생채기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예전 선거 때도 그랬듯이 최대의 변수는 선거막판 민심의 동향이다.

    선거 후반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정치현실상 어쩔 수 없는 영호남의 지역구도가 이번에도 얼마만큼 강하게 작용할지에 따라 충청권의 민심 역시 크게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영호남지역에서 세찬 지역바람이 불어올 경우 선거당락을 결정지을 만큼의 바람이 충청권에도 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떠들어두 소용 없더라구. 선거 며칠만 남겨두면 바람이 확 불어 버리는디. 혹시 모리지. 영남과 호남이 조용하면 여기두 조용해 지닌께.”

    충남도청 한 고위공직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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