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인터넷은 지금 선거혁명중 N세대의 정치의식

  • 김상현 동아닷컴 기자

    입력2006-12-06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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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이 한국 정치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더 이상 ‘불특정 다수’가 아니다. 인터넷이 낳은 ‘신인류’ N세대가 사이버 정치혁명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 뻔뻔함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는데, 국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법에 어긋난다” “불법이다” 등등 이런 말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법은 무엇입니까? 시민들의 안전과 주권을 위해 만들어진 규범 아닙니까?

    시민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우리의 대표인 당신들을 얼마나 불신하면 낙선운동을 펼치겠습니까?

    시민의 대표라는 거짓된 탈을 쓴 어르신들 당신들의 그 뻔뻔함은 어디까지입니까?(‘고3’이라고 밝힌 전병호군·agape31k@hanmail.net)

    첨에 정말 기대도 컸다. 이제 울나라도 되는구나 하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기도 안 찼다. 오로지 민주당 입맛대로 되지 않았나. 난 한영애 이인제 이종찬 천용택이가 빠진 이유를 안 좋은 머리 굴려가며 찾았다. 시민연대이기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내 돌머리로는 도저히 못 찾겠다. 즉각 시민연대는 이회창 한영애 이인제 천용택이를 반대 명단에 올려라. 이건 여러분 운동의 정당성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freebird)



    학교 컴퓨터실에서 해서 비밀번호, E-메일 주소도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저는 10대지만 너무 어린 11세 소녀랍니다. 우리 반에선 책벌레로 통하죠. 저는 텔레비전에서 시민연대가 하는 일을 보았답니다 … 옛날에 ‘나라’라는 나무가 있었어요. 그 안에는 정치인이라고 하는 벌레가 살았지요. 그 벌레 몇몇은 나무에 해를 안 주었지만, 나머지는 나무를 갉아먹었어요. 그 나무에서 먹이를 따먹는 시민이라는 동물들은 나라라는 나무가 시들자 매우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시민연대’라는 딱따구리가 날아와 나쁜 벌레들을 쪼아먹었지요. 그래서 나라라는 나무는 풍부한 열매를 맺었답니다.

    시민연대 화이팅!


    다양하다. 뜨겁다. 치고받는 ‘글’의 난타전이 여간 아니다.

    때로는 도를 넘어 지독한 인신 공격과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여기서 자기 신분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숨길 수 있다는 익명성은 그 싸움의 약이자 독이다. 수많은 갑남을녀들이 이 글싸움에 끼어들어 판을 넓히고 힘을 키운다. 이 힘은 곧 ‘여론’이다. 개중에는 화해를 도모하는 이도 있고, 도리어 싸움을 부추기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주먹다짐은 없다. 멱살잡이도 없다. 이들은 오로지 단어와 문장, 그리고 그것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 논박하고, 논박당한다. 그 단어와 문장은 대개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고, 따라서 투박하고 생경하다.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후닥닥 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개중에는 논박의 수준이 유치할 때도 있고, 비논리적일 때도 있다. 때로는 쓰레기에 불과한 욕설의 나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생산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

    인터넷이 이끄는 정치

    인터넷이 한국의 정치 지형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낙천·낙선 운동을 펼치는 여러 시민단체들에 힘을 더해준 것은 물론, 그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여론을 즉각 반영해 보여줌으로써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가 개설한 웹사이트(www.ngokorea.org)는 그중에서도 지각 변동의 기미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네티즌들이 이곳을 찾아 낙천 대상자 명단을 확인하고, 게시판에 의견을 올리고, 다른 네티즌들과 논쟁을 벌인다. 총선시민연대를 격려하는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이를 비판하는 글도 적지 않다. 여당을 탓하는 이, 야당에 책임을 묻는 이, 정권의 독재를 성토하는 이 등등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신랄하고 직설적이다.

    새천년 민주당의 보스 김대중은 국민회의 당명을 2년 만에 버리며 신차 새민당을 뽑았다. 차를 사면 10년 정도는 타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대한의 국민된 도리라 할 수 있건만 통합민주당을 탄 지 얼마 안 돼 국민회의를 뽑더니 다시금 새민당이란 신차를 산다 … 군사정권이 정치안정론을 내세우는 것을 비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야당할 때 말 다르고 여당할 때 말 다르니 이들의 하는 짓거리가 마치 낮엔 야당 밤엔 여당하던 유진산을 연상케 한다.

    작금의 정형근 사태를 냉철히 한번 바라보자. 왜 하필이면 총선 전이라는 미묘한 시기에 긴급체포라는 형식의 강경한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가. 시간은 작년에도 있었고 재작년에도 있었다. 굳이 정형근의 고문관련문제 내지 오익제 관련문제를 꼬집고 싶었다면 재작년이나 작년에 거론하며 문제를 해결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형근이가 현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대여 공격의 선봉에 서자 전라도당의 괴수 김대중은 정형근이 정부를 괴롭히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검찰을 이용해 다시금 정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검찰의 주구노릇을 언제까지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형근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장관이 전라도 사람이고 검찰총장의 처가가 전라도고 서울지검장이 전라도 사람이다. 청와대의 사정사령탑인 민정수석까지 전라도 사람이다. 사태가 이러한 지경인데 어찌 이나라 민초들이 검찰의 순수성과 중립성에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저 정도 상황이면 대통령이 기침만 해도 알아서 척척 할 수 있는 상황 아닐까. 박정희와 이후락을 비판하던 김대중, 그가 박정희를 닮아가면서, 그가 야당시절 때 주장했던 개혁을 외면하면서 어찌 감히 총선 승리를 바란단 말인가.


    편견 갖고 혼자 사세요

    ‘尖兵(첨병)’이라는 ID를 가진 사람의 글이다. 그 바로 밑에 가지치기 모양으로 달린 ‘답장’도 눈길을 끈다. 이민철이라는 사람이 쓴 반박문이다.

    답답한 양반 여기 또 하나 있군요.

    리플(reply·답장) 달기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국민에게 인기 얻으려고 조직폭력배 일제단속하면 정치적 동기가 있는 거라서 잘못된 건가요? 그래서 경찰에게 반항하는 깡패는 민주투사겠네요.

    둘러 말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말하세요. 김대중이 씹으니까 정형근이가 좋다고. 내 세계관은 위대한 지역감정이라고. 단순한 편견을 논리로 합리화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자기 편견이 편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는 김대중이가 무조건 싫다, 그래서 정형근이가 무조건 좋다고. 사이비종교 믿는 사람들 측은하기는 하지만 지가 지 인생 망치는 것이니까 별 상관 안 합니다마는 싫다는 정상인들한테 억지로 포교하고 다니는 것 보면 진짜 성질납니다. 그냥 편견 가진 채로 혼자 그대로 사세요.

    아무래도 비슷한 고향 출신인 것 같아서 인간적 동정심으로 한마디 덧붙이는데요, 당신의 그 김대중을 향한 혹독한 기준을 조선일보에 한번 적용해 보세요. 당신의 인생이 100배는 윤택해질 겁니다. 당신 것을 빼앗아가고 있는 진짜 주적은 따로 있다는 얘기입니다.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다 화풀이 해봐야 말짱 헛일입니다.


    한겨레신문의 만평을 오독(誤讀)해 망신살이 뻗친 자민련 이양희 의원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더없이 뜨거웠다. 인터넷의 대표적 패러디 사이트인 ‘딴지일보’(Ddanji.netsgo.com)는 신랄하기 그지 없는 풍자 기사를 실었다. ‘대한민국 국민’(i-ssaguri@han mail.net)이라고 밝힌 네티즌도 ‘푸하하~!!! 자민련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허탈과 실망의 감정을 드러냈다.

    정운영의 100분 토론을 두 차례에 걸쳐 봤습니다. 그런데 … 너무나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찡그리고 사는 국민을 위해 자민련이 선뜻 나서서 국민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것 말입니다. 저 이 프로 보고 진짜 실컷 웃었습니다. 너무 웃겨서 말이죠~!!!

    푸하하~!!! 사오정인가 아님 텔레토비인가? 아냐아냐 둘 다 맞어~!!! 푸하하~!!!

    정말이지 이번 총선 때 집에서 잠이나 자려고 그랬는데 맘 바꾸었습니다. 왜냐구여~ ? 자민련의 ‘자’자라도 들어가는 칸을 보면 X표 할려구여~!!!

    정말이지 왜 그렇습니까~? 언제 음모론이 아니었을 때도 있었습니까~? 조금만 불리하면 무슨 음모론이다, 여당 또는 야당 파괴 공작이다, 뭐다 해서 괜히 시사초점 다른 데로 돌리고, 그러다가는 국민들이 영영 시선 돌립니다. 지금도 위험수위지만여~!!! 제발 정신 좀 차리세여~ !!!!

    전 솔직히 자민련에 대한 생각 아니 반감 같은 거 없었는데, 정말이지 이제는 짜증이 나려고 하네여~! 음모론. 제가 이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럼 음모론의 일부라고 생각하시겠네여~!!! 푸하하~!!! 유명한 코미디언 많으니깐, 그쪽은 그냥 집에서 푹 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 정말이지 이 나라 살기 싫어져요~!!!


    시공을 뛰어넘는 정치비판

    총선시민연대 웹사이트만이 아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신문사의 웹사이트, 국회의원 지망자들의 홍보 사이트에도 어김없이 게시판이 있고, 여기에는 온갖 다양한 의견과 비판, 반(反)비판이 올라 온다.

    이처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어떤 내용의 의견이든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것, 마치 직접 마주 보고 말다툼하듯 즉각 갑론을박할 수 있다는 것, 어떤 논쟁거리에 대한 찬반의 향배를 거의 실시간에 알 수 있다는 것 등이야말로 인터넷이라는 대화형, 혹은 쌍방향(Interactive) 매체가 지닌 미덕이다.

    어떤 이의 글이 내 생각과 다르면 나는 즉각 그 글 밑에 반박문을 올릴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뻗어가듯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고리를 만들고 변주되는 것 같다.

    이제 시민들은 더 이상 힘없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다. 이들은 이제 인터넷이라는 신매체의 힘을 빌려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아무런 거름장치도 없이, 신문사나 방송사 같은 거대 언론사 없이도 자유롭게 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막강한 이유는 무서운 전파력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도 일개 시민의 울분이나 비판이란 술자리의 일회성 안주에 불과했다. 파급력 또한 함께 모인 친구나 동료 몇 명에서 그쳤다.

    인터넷은 이러한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내가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그 글은 내 손을 떠난다. 시간과 공간도 뛰어넘는다. 내 글을 한두 사람이 보고 말 수도 있지만,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이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과거에도 시민의 힘, 특히 유권자의 힘은 무서웠다(혹은 무섭다고, 언론에 의해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의견을 공론화할 수 있는 통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이 언제나 ‘시청자(독자) 만세!’를 외쳤지만 진정한 언로(言路)는 존재하지 않았다. ‘옴부즈만 제도’라든가 ‘독자편지’ 같은 지면은 실속보다 형식에 더 얽매여 있었다(지금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특정 매체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을 터뜨렸다가는 ‘데스크’라는 게이트키퍼에 의해 삭제되거나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일방향 매체가 지닌 한계였다.

    인터넷이 집집마다 보급되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인터넷이 뭐야?’, ‘E-메일을 어떻게 쓰지?’라고 묻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팩스 번호보다 E-메일 계정을 먼저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아직 TV나 오디오기기를 쓰듯 편안하게 이용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터넷이 몇몇 컴퓨터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사라진 것이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 1000만명 돌파’, ‘○○인터넷 기업 회원 600만명 돌파’ 같은 주장은 다분히 과장된 것이기는 해도, 그만큼 인터넷이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히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른바 ‘N세대’는 그중에서도 인터넷이 낳은 신인류라 할 만하다. 여기에서 N은 ‘네트워크’의 첫 글자. 바꿔 말하면 ‘인터넷 세대’라는 뜻이다.

    아무리 인터넷 대중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수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특히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인터넷은 여전히 낯설고 부담스러운 존재다. 설령 그것을 이용한다고 해도 꼭 필요한 몇 가지 기능에 그치기 쉽다.

    N세대로 묶이는 10~20대는 다르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기술도, 낯선 도구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거실이나 자기 방에 놓인 여러 가전제품들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들은 TV를 켜고 끄듯 심상하게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디지털 경제’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시장 분석가 돈 탭스코트는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Growing up Digital)’라는 새 책에서, 네트워크 환경에서 자란 ‘와이어드 세대(Wired Generation)’, 혹은 ‘디지털 세대’를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신세대는 정보 기술을 그들 자신의 일상적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95년 실시된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 정도가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을 ‘멋진(Cool)’ 일로 여겼으나 98년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88%가 인터넷, 특히 온라인 대화를 ‘멋진’ 일로 생각하고 있다.

    탭스코트는 ‘N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젊은이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열려 있으며 혁신적일 뿐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 욕구와 강한 자기 의견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한다. 탭스코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어린이들이 사회적으로 중차대한 현안들에서 강력한 권위를 갖게 됐다”며 이들이 사회와 기업으로 진출함에 따라 그 사회와 기업도 그만큼 더 개방적이고, 덜 위계적인 대신 더욱 협력적인 곳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탭스코트의 진단은 국내 사정에도 잘 들어맞는다. 인터넷을 통해 표현되는 N세대의 모습은 감정적이고, 개방적이며, 자기 표현 욕구가 매우 강하다. 총선시민연대의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이들 N세대의 참여가 단연 두드러진다. 웹사이트의 성격상 30대 이상의 참여가 높은 편이지만 10~20대의 열성도 그에 못지않다. 기실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가상공간을 주도하는 것은 이들이다.

    지난해 말 ‘전자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등장한 ‘이마크러시’(www.emocracy .co.kr)를 보자. 인터넷 정치 마케팅업체임을 내세우는 이 사이트의 대표 문의배씨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91학번이다. 기획팀이나 디자인팀, 기술지원팀 직원들은 95~98학번이다. 89학번인 정책팀의 김문규씨가 원로처럼 여겨질 정도다. “인터넷을 통해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해 보이겠다”는 것이 이마크러시측의 포부다. 이곳을 찾는 네티즌들도 대부분 10~20대 신세대들임은 불문가지.

    그렇다고 이들이 여론의 일부만을 반영한다고 내치기는 어렵다. 정책팀 김문규씨의 말.

    “국내 인터넷의 주이용자들인 20~30대는 유권자의 지형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투표 등 실제 정치 참여에는 무관심하다. 국내 정치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다. 이들을 실질적인 투표 집단, 그리하여 의식 있는 정치 여론집단으로 끌어가는 것이 우리 목표다.”

    이마크러시는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유게시판에 좋은 글을 띄워 38회 이상 추천을 받으면 글쓴이의 이름으로 북한 어린이에게 쌀 10kg을 보내주는 특별 이벤트도 마련했다. 그밖에도 이마크러시는 16대 총선 출마(예상)자들의 약력과 정책, 의정활동 자료, 신문기사 등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여러 정치 현안에 대한 유권자의 의견을 들어 후보자들에게 알리고, 특정 공약이나 정책에 대한 후보자들의 답변을 듣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총선정보통신연대도 최근 웹사이트(www.netngo.or.kr)를 마련하고 정치 개혁에 나섰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개인의 사생활 보호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 등을 주창하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온 통신연대가 총선 대비 체제로 탈바꿈한 것. 역시 20대의 N세대가 연대의 중심이다.

    총선시민연대와 ‘주체적으로 동참할’것이라고 밝힌 총선정보통신연대는 웹사이트 개설과 함께 ‘네티즌 행동지침’을 공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공간을 통해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고, 투표 참가운동을 벌이며, 각 지역별 사이버 선거감시단을 만들어 불법 선거운동을 막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사이버 공간으로 몰리는 정치인들

    그러나 무엇보다 인터넷에 대해 적극적인 것은 총선 출마(예상)자들이다. 이는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사전 선거운동을 하기 어려운 데 견주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심마니(www.simmani.com)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까지 심마니에 등록된 국회의원 홈페이지 수는 82개에 불과했으나 올 1월 말 110개로 증가, 한 달 사이에 34.1%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심마니의 전문 서핑(surfing) 팀이 심마니에 등록된 홈페이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까지는 소속 정당별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 등록 수가 새천년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30개, 자민련 32개, 한나라당 19개, 무소속 1개였으나 올 1월 들어 새천년민주당이 13개, 자민련이 3개, 한나라당이 11개, 무소속이 1개를 각각 신규 등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에 따라 1월 말까지 정당별 국회의원이 등록한 홈페이지 수는 새천년민주당이 43개, 자민련 35개, 한나라당 30개, 무소속이 2개로 늘어났다.

    또한 정당별 관련 홈페이지 수도 지난해 말에는 9개에 그쳤으나 1월 말에는 15개로 늘어났다.

    이처럼 총선 출마(예상)자들이 인터넷에 관심을 갖는 것은 웹사이트를 통해 사전 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이유말고도, 국내 인터넷 사용인구의 주류인 20~30대 젊은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를 선거현장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들의 세계인 사이버 스페이스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비용이 싼 데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심마니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회의원 선거운동 관계자들로부터 네티즌이 인터넷상에서 국회의원 홈페이지를 검색할 때 나타나는 ‘검색결과 및 분류’ 화면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의 홈페이지 순서를 눈에 잘 띄는 위치로 옮겨달라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라고 말하고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많은 출마 예정자들이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거나 옛 홈페이지 내용을 업데이트 하는 등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용한 사이버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그 형식과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총선 출마(예상)자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수준 이하다. 물론 평균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뜻이다. 디자인은 더없이 조악하고 촌스럽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이미지 로딩(Load ing)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린 것도 있다.

    노무현, ‘사이버 보좌관’ 모집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자기 홍보에 급급해 네티즌들의 참여 공간을 배려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유게시판 정도다. 토론실, 온라인 여론조사, 사이버후원회, E-메일 클럽 등 인터넷의 장점과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웹사이트는 그리 많지 않다.

    민주당 노무현 의원은 그런 면에서 인터넷의 뛰어난 ‘연결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는 20~30대 네티즌을 상대로 ‘사이버 보좌관’을 모집, 100명 안팎의 보좌관을 뽑았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민심 동향은 물론 다양한 총선 전략 아이디어를 내놓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과 이상희 의원, 민주당 김민석 의원 등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 N세대 공략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공천 반대 인사 명단에 포함된 총선 출마(예상)자들의 웹사이트를 찾아보는 일도 퍽 흥미롭다. 민주당 김상현 의원의 웹사이트는 자신의 무고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경우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따로 팝업(Pop-up) 창이 뜨는데, 거기에 담긴 것은 총선시민연대에서 단식농성중인 김의원을 지원·격려하려 ‘각계각층 인사’가 농성장을 방문했다거나,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국회환경포럼이 ‘94·95·96·97·98년에 이어 99년도 최우수연구단체상 수상, 6연패 달성’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자민련 박철언 의원은 1월26일 ‘시민단체 이름 아래 국법질서 유린하는 급진 진보세력의 배후는?’이라는 제목으로 배포했던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의 초기 화면에 연결해 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함께 뜨는 팝업 창의 ‘즉석 여론조사’ 결과. ‘최근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에 정치적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는 대답(231명·54%)이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193명·45.6%)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와 있다. ‘네티즌 한마당’이라는 제목의 게시판 내용도 박의원에 대한 격려성 글 일색이다. 그에 대한 비판의 글은 보이지 않는다.

    박의원의 홈페이지 방문자가 대부분 그의 지지자였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에 대한 비판·비방의 글을 게시판 운영자가 삭제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은 낙천 대상자의 홈페이지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면서 ‘삭제하지 말아주십시오’라는 부탁성 문구를 잊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의 웹사이트는 퍽 인상적이다. 그는 당초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손잡고 인터넷을 활용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무지개연합을 발표한 뒤 얼마 안 있어 한나라당으로 말을 바꿔 탔다.

    그러한 화제성 행보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남다른 지명도 때문인지 그의 웹사이트는 비교적 많은 네티즌들이 방문하고 있다. 특히 게시판은 홍의원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시끌벅적한데, 주류는 그에 대해 실망했다거나 그의 행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무지개 신당이 어부지리를 안겨주기 때문에, 현실 정치의 벽 때문에, 능력부족으로…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홍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게 언제입니까. 신민당 시절입니다.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야당 생활을 했지 않습니까. 참으로 실망이 큽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포기하면 누가 합니까.

    얼마 전 정운영의 100분 토론 때 우리는 얼마나 통쾌하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 홈페이지를 보니 참 문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홍의원의 명저 ‘지금 잠이 옵니까’를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차라리 무소속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우리 같은 후배에게 본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정치를 떠나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자연인 홍사덕이 되길 소망합니다.


    ‘홍의원 실수한 거요’라는 제목으로 40대의 김기환씨가 올린 위와 같은 글이나 20대의 신광민씨가 올린 다음과 같은 글은 ‘양반’에 속한다.

    지역정치 타파, 정책정치니 뭐니 하더니 결국 한나라당 가기 위한 몸값 올리기 작전이었군요…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무지개 연합이니 뭐니 하더니 결국 한나라당 선대위원장 자리 받으려는 언론플레이였군요… 며칠 후 정형근과 두 손 맞잡고, 두 팔 번쩍 들어 만세 부를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배신감보다 측은감이 앞섭니다.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감정에 북받쳐 내뱉듯 올린 글도 적지 않다. 30대의 ‘프라우다’라는 이가 올린 아래 글은 그 제목 -‘정치윤락녀 홍사덕, 이회창한테 원조교제 하러 갔다’-부터 민망하다.

    오늘 홍사덕이 하는 꼴을 보고서 나 정말 실망했다… 장기표와 함께 만들었던 신당 홈페이지 한 달 사용요금도 내기 전에 그래, 말을 뒤엎어?? 참 정말 지조없는 인간이구나… 야!! 정말 골때린다… 선거 때 신한국당 안기부 출신 정형근이로부터 온갖 방해를 다 받은 당신이 어떻게 그런 정치범법자들과 함께 할지… 참으로 이넘의 정치판 정말 아이러니하다… 당신 그 배신으로 인간적 남은 정마저도 뒤틀린다. 잘 해처먹고 잘 살아라, 이 쓰레기야, 퉤……

    홍사덕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한 정치 혁명의 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가능성은 무엇보다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용인했다는 점이다. 인터넷 특유의 쌍방향성, 혹은 대화적 특성을 잘 활용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홍의원측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비난과 공격에 대해 해명이나 반박 등 적절한 대응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즉자적이고 감정적으로 여과되지 않은 표현을 마구잡이로 쏟아부은 네티즌들도 문제다. 인터넷이 아무리 즉자적이고 발빠른 매체라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견해로는 바른 대화나 토론을 할 수가 없다. 네티즌들에게 좀더 성숙한 의식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인터넷은 ‘제5부’

    그러나 인터넷이 가진 잠재력, 따라서 시민의 요구와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현실 정치판을 개혁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정치참모인 딕 모리스는 ‘보트닷컴(Vote.com): 어떻게 대자본의 로비스트와 미디어가 영향력을 잃고, 인터넷이 국민에게 권력을 주었는가’라는 책에서, 신문매체는 제4부로서의 권력을 잃을 것이며, 인터넷이 제5의 권부에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급기야 국민으로 하여금 그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급진적인’ 주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의 확산이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와 같은 형태의 전자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인터넷 덕택에 국민과 국가를 연결하는 중간매개체인 국회와 언론의 역할은 약화되며, 심지어 정당정치의 일반적인 메커니즘과 공천 과정, 여론조사 등도 인터넷에 그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그의 견해대로라면, 지금 국내에서도 그와 같은 정치적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상은 모리스의 전망으로부터 여전히 멀리 있는 듯하다. 현실 정치의 벽은 여전히 두텁고 높으며, 몇몇 계파 보스에게 독점되어 있는 공천권 또한 안녕하다. 시민단체의 낙천자 명단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선 정당들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려 하지 않는 행태 또한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모리스의 주장에는 비현실적인 대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인터넷은 메이저리그 야구의 자유계약선수와 같은 제도를 언론 분야에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온전히 수긍하기 어렵다. 몇몇 자유계약선수처럼 소수 스타급 언론인들은 고액 연봉자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독립적인 언론기관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환경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디어 소유권을 줬다는 주장은, 따라서 옳은 것이 아니다. 선거 자체가 인터넷으로 이전될 것이라는 주장도 아직 허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수많은 웹사이트들을 통해 진행되는 즉석 여론조사를 지나치게 일반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웹사이트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기 투표, 연예인 관련 여론 조사 등은 보안성이나 공정성, 대표성 등에서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일정 부분 여론을 수렴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를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까지 확대 적용하기까지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물론 이러한 한계가 모리스가 전망한 인터넷의 위력이나 파장을 현저하게 축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생활 필수품으로 쓰기 시작했고-남궁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올해 말까지 국내 인터넷 이용자를 2000만명으로 늘리겠다고 호언했다-따라서 이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일, 정부나 정치인들에 대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일 등은 점점 더 일반적인 현실로 자리잡아갈 것이다.

    그와 함께 인터넷상의 표현의 한계 문제, 사이버 스페이스의 익명성을 악용한 각종 음해성 루머나 유언비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 문제 등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그늘에 대한 보완 또한 더없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될 것이다.

    혁명은 성공할 것인가

    이번 4·13 총선의 결과도 이른바 ‘인터넷 선거혁명’의 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상당 부분 인터넷으로부터 그 동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여론조사에서는 낙천·낙선운동을 지지한다고 해놓고 실제 투표에서 마음을 바꾸거나, 아예 투표조차 하지 않을 경우 이는 실패한 혁명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무슨 나라가 이러나. 걱정이다.”

    총선시민연대에 의해 ‘명예로운 정계은퇴’를 강요받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측근들로부터 ‘낙천 대상’에 포함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렇게 탄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현욱 자민련 총장은 “이(시민단체의 발표)는 법을 떠난 민중선동적 행태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이며, 이 나라를 이만큼 잘 살게 만든 근대화 세력과 이 강토를 지켜온 보수세력의 숨통을 끊으려는 급진 진보세력의 음해이자 공작”이라고 했다.

    그러나 웃기지 마라. 너희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세력이며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구악에 다름아니다. 이제 새로운 시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그런 역사적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너희 시대는 이제 끝났다.

    ‘무슨 나라가 이러나’가 아니라, 이제 나라꼴이 되어가는 것이다.(Zeroguy_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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