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한국의 UFO 목격자들

현역 공군중령에서 김병현 CF촬영팀까지

  • 맹성렬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학박사·한국우주과학회 부회장

    입력2006-08-0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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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상공에서 공군 비행조종사들에 의해 목격된 UFO만도 두 차례. 이들 공군 장교들은 팬텀기로 UFO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지구상의 비행물체가 아님을 증언했다. 특히 UFO는 정치·군사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전 세계적 추세. 이제 UFO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난 9월 14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야구 경기장에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선수 김병현을 모델로 CF 촬영한 필름에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찍힌 것이 발견됐다. 촬영을 마친 필름을 국내에서 스태프들이 편집하던 중 김병현의 머리 뒤편에 빛을 발하는 하얀색 점이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타났던 것.

    촬영팀이 이 필름을 ‘한국UFO연구협회’에 의뢰한 결과, 이상한 비행물체는 필름상의 오류가 아닌 UFO로 판명됐다. 광원의 밝기 정도와 불규칙하고 다양한 움직임의 비행 패턴, UFO 특성상 관찰되는 광휘(Aura)현상이 나타난 점으로 미루어 당시 UFO가 비행중에 카메라에 포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TV에도 소개된 화면에서는 괴비행체가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에서 기존의 어떤 비행체와도 뚜렷이 구분되는 이상한 비행 특성을 나타내는 물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런 비행물체들을 UFO라고 부르며, 요즘은 한국 상공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필름에 UFO가 촬영되는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95년 9월4일에도 발생했다. 경기도 가평의 한 시골집 앞마당에서 추석 풍경을 사진으로 담던 ‘문화일보’ 김선규 기자의 카메라에 UFO가 촬영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당시 한국UFO연구협회 연구부장으로 그 사진 분석에 참여하여 사진 속의 UFO는 길이가 100m이며 속도는 음속의 10배인 것으로 추정했다. 필자는 또한 한 방송사의 ‘UFO 현상’ 다큐멘터리물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 필름의 원판 분석을 영국과 프랑스에 각각 의뢰했는데, 거기서도 그것이 결코 필름의 자체 결함이거나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김선규 기자가 UFO를 촬영하던 시점에 UFO를 목격했다는 보고들이 한국UFO연구협회로 쇄도했다. 그 중의 한 가지 사례는 필자를 매우 흥분케 했다.

    공군 비행사의 UFO 목격담

    9월 4일 오후 2시 40분경 김선규 기자가 UFO사진을 찍던 시점에서 약 3시간 전에 한 공군 소령이 1.5km 상공에서 비행훈련 중 계룡산 근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곧 그는 그것이 유성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성이었으면 지상에 충돌하거나 공중에서 소멸해버렸을 텐데, 그 물체는 지상 300m 상공까지 내려온 다음 그 소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 쪽으로 수평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약 15초 동안 그 물체를 관찰했다. 그 물체가 자신의 비행기 바로 아래 쪽으로 지나갈 때에는 그 모양을 아주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물체는 지름이 3∼4m쯤 되는 팽이형태로 표면에서는 은빛 광택을 내고 있었다.

    필자는 95년 9월9일 그와 면담했다. 당시 필자는 그가 현역 공군 조종사 신분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실명으로 공개될 경우 혹시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이라도 받게 될지 몰라 발표하기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이 실명으로 공개돼도 좋다고 허락했기 때문에 이제 지면을 통해 그의 신분과 당시 작전상황을 밝혀야겠다.

    그의 이름은 박종국이고, 현재는 현역 공군 중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95년 당시 그는 초등비행교관이었으며, UFO를 목격한 그날도 그는 비행훈련을 맡고 있었다. 청주 비행장에서 프로펠러식 훈련기를 타고 이륙한 후 육군본부가 있는 계룡산을 지나 남쪽으로의 훈련 비행코스가 잡혀 있었다. 그가 UFO를 목격하던 때에 훈련병들은 이미 남하해 시야에서 멀어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 자, 각도기, 그리고 계산기를 꺼내서 UFO가 이동한 궤적을 직접 표시해가며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그가 계산해낸 UFO 속도는 음속의 7.3배였다. 가평에서 사진기자에게 찍힌 UFO 속도에 비견되었다.

    박소령은 그 비행물체가 미국이나 러시아의 비밀병기일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몇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그 물체의 표면이 명백히 반질반질한 금속성인 것처럼 보였음에도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다. 스텔스기는 레이더 반향음을 내지 않기 위해 표면에 광택나는 금속을 쓰지 않는다.

    둘째, 지상 300m에서 음속의 7.3배나 되는 속도로 날아갔는데, 소닉 붐(sonic boom, 대기 중에서 비행체가 음속 이상의 초고속으로 이동할 때 생기는 충격음)을 발생시키지 않았다.

    셋째, 아무런 추진 수단이 보이지 않는데도 마치 누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죽 잡아당기듯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박소령이 지적한 위의 세 가지 특성은 UFO의 전형적인 특성이었던 것이다.

    4명의 공군 조종사가 목격

    현역 공군이 UFO를 목격한 것은 박종국 중령이 처음은 아니다.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이 진행되던 1979년 3월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임병선 대령과 이승배 중령은 각각 2대의 F-4기를 타고 강원도 일월산 북쪽에서 야간요격 훈련을 마친 후 대구 기지로 귀환 중이었다. 비행고도는 약 4.5km. 팬텀기 2대로 이루어진 편대가 일월산 쪽에서 대구 부근의 팔공산 방향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요기(2번기)에 타고 있던 이중령은 팔공산 동쪽에서 유난히도 밝은 별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것이 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편대의 진행 방향에 있던 그 물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만일 별이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비행기 탑재 레이더에 그 물체가 포착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임대령과 이중령은 확인해보기로 결정했다.

    “순간 호기심이 일더군요. 꼭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별을 향해 다가갔죠. 약 30마일 정도로 접근해보니 우리와 같은 고도에 있었습니다. 15마일 정도 접근했을 때쯤, 그 물체는 순간적으로 영일만 쪽으로 이동하더니 다시 공중에 정지해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휙’하고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중령이 자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편대는 그때까지의 비행 방향을 바꿔 괴비행체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번에는 팬텀기 편대가 약 300m 가까이까지 접근했는데도 그 물체는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팬텀기 편대는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며 2차례 선회비행하면서 그 UFO를 관찰했는데, 보잉 747기 정도의 크기에 타원 모양을 하고 있었다.형태로 보나 비행 특성으로 보나 그것은 지구상에서 개발된 기존의 어떤 비행물체와도 구분되었다. 주변으로는 형형색색의 빛이 점멸하고 있었고, 중심부에서는 마치 용광로에서 나오는 듯한 황금빛 섬광이 솟아나고 있었다.

    두번째 선회비행이 끝나자 괴비행체는 다시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동해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당시 한 비행기에 2명의 조종사가 타고 있었으므로 모두 4명이 그 괴비행체를 목격한 것이다. 이들은 기지로 귀환한 후 당시 부대 정보장교였던 박오상 대령에게 목격 사실을 보고했다.

    필자가 박오상 대령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때는 1991년 9월이다. 그는 당시 공군 정훈감으로서 전역을 몇달 앞둔 상태였다. 박대령은 이승배 예비역 대령을 한국UFO연구협회에 소개시켜주었으며 이 UFO 사건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는 임병선씨에 대해서는 비보도를 요청했는데, 당시 그가 현역 공군 소장이었기 때문이다.

    1979년 당시 정보장교였던 박오상씨는 4명의 조종사들이 작성한 UFO 목격보고서를 상부로 전달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해결하였다. 그런 내용을 보고해봤자 모두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뿐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전역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이 사건을 한국UFO연구협회에 발설한 이유는 아마도 이 사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현역 신분일 때 공개해야겠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임병선씨도 전역한 상태이므로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UFO 사건에 예비역 공군 소장이 관련되었음을 이 지면을 통해 최초로 공개한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1979년은 남한이 정치나 치안에 있어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묘하게도 UFO가 자주 등장하는 때는 정치·군사적으로 긴장돼 있던 시기와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다.

    UFO현상이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출몰한다는 사실은 6·25전쟁 기간인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한반도 전역에서 100여 명의 미 공군 조종사, 육군, 지상 레이더 요원, 해군들에 의해 50여 차례에 걸쳐 UFO가 목격돼 보고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리처드 하인스라는 미국의 UFO연구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25전쟁 중에 주로 원반형·구형·타원형의 UFO가 목격되었고, 약 20%의 사례에서 당시의 항공기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탁월한 비행 성능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한국 상공에서의 UFO 출현은 특히 1952년 5월∼8월에 집중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5월26일 북한 상공에서 미 공군기가 UFO에 추적당한 사례일 것이다.

    그날 오전 3시 20분경 북한 상공을 비행중이던 F-94 요격기 승무원들은 지상 관제탑으로부터 비행기 뒤쪽에 괴비행체가 따라가고 있다는 교신을 받았다. 이때 요격기의 레이더상에도 후미 7000야드 영역에서 그 물체가 포착됐다. 그 물체와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승무원들은 백색의 발광체가 그들에게 직선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물체는 어느 시점에서 시속 3000마일이나 되는 고속으로 상승하여 F-94기로부터 멀어졌다. 레이더 상에 그 물체가 포착되었던 시간은 약 15초였다고 한다.

    그 밖에도 5월 31일에는 철원 남쪽, 6월6일은 김포, 6월 20일·22일·25일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협에서 UFO가 목격됐다. 8월 9일에는 38선 부근에서 해병대 비행단 소속의 한 조종사가 화염을 내뿜는 미확인 비행물체를 목격했고, 8월 23일에는 미 공군 소속 승무원 6명이 북한 상공에서 약 3분간 UFO를 목격했다.

    같은해 비슷한 시기에 6·25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도 유사한 UFO 소동이 벌어졌다. 1952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역에서 1500여 건의 UFO 목격 보고가 있었는데, 그 중 80%가 6월∼8월 사이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이런 소동은 7월 19일과 26일 워싱턴 상공에 UFO 편대가 출현함으로써 정점을 이루었다. 이때 UFO들은 워싱턴 관제탑 레이더와 육안에 모두 포착되었으며, 출동한 요격기들을 따돌리는 뛰어난 기동력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격기가 접근하자 마치 전등을 끈 것처럼 UFO가 조종사의 시야와 레이더 스크린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으로 미 공군은 7월 하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합동기자회견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미 공군은 공식적으로 그 현상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들은 이런 주장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상공을 미확인 물체가 침입해 자유자재로 유린했다는 사실은 미 국민들에게 소련의 핵 공격에 대한 공포심과 함께 외계인들의 침략에 대한 공포심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이와 같은 미 국민들의 UFO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그해 하반기 동안 148개의 미국내 신문사에서 1만6000여 번에 걸쳐 UFO 기사를 다루었던 당시 매스컴의 반응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이후 한국에서도 UFO 출현이 잦아 사진이나 필름으로 찍어서 매스컴에 자주 보도되는 일이 발생한다. 필자는 요즈음 우리나라에 UFO 출현이 빈발하는 이유도 한반도가 국제 정치·군사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결부시키고 싶다. 특히 1995년 전후엔 북한의 김일성 사망과 관련해 북한이 붕괴한다는 루머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UFO, 환상인가

    “거의 1년 이상 비행접시의 출현이 보고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소유한 비밀 군사무기라고 말한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들은 외계인들이 탄 우주선이라고 아주 심각한 어조로 주장하기도 한다.”

    1950년 신프로이트 학파의 태두인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정신분석과 종교’에서 당시의 UFO 소동을 묘사한 대목이다. 이 책에서 프롬은 우리 인류가 외면적으로는 풍요한 물질문명 속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적 실체와의 접촉을 상실함에 따라 일종의 정신분열증과 같은 증세를 겪게 되었으며, UFO 현상이 바로 그런 증상의 좋은 예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로 인류는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된 장밋빛 청사진에 들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적인 측면에서 프롬의 해석은 매우 그럴 듯해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초창기의 UFO 현상은 외형적인 안정과 평화의 시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며, 오히려 정치적·군사적으로 불안하거나 긴장상태에 있던 시기나 장소와 관련이 있었다.

    UFO의 최초 출현은 1943년부터 1944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이던 유럽 서부전선과 태평양 지역에서 보고되었다. 당시 언론에 의해 ‘푸파이터스’라고 불린 공모양의 UFO들은 시속 800km나 되는 고속에서 단속적으로 발광을 하며 마치 춤을 추듯 자유자재로 미군 폭격기들 사이를 날아다녀 비행기 조종사들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런 물체들이 레이더상에는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정보기관에서는 이 현상이 대중환각에 기인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미확인 비행물체의 출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도 계속되었는데, 당시 군사적·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이었던 북유럽이 그 주무대였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스웨덴에 주로 출몰해 매스컴에서 ‘유령 로켓’이라고 불린 미확인물체는 주로 시가 형태로 꼬리에서 오렌지 또는 녹색의 불꽃을 뿜어대며 비행기와 거의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정보기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개발한 V형 로켓을 소련에서 제작 실험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UFO 출현 역사에서 최초로 가장 체계적인 조사를 시도한 사람은 당시 그리스에서 정부의 지원 아래 군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자국 상공에 출몰하던 유령 로켓을 조사했던 폴 산토리니 교수다.

    맨 처음 그가 유령 로켓 조사를 맡은 것은 그것이 소련제 로켓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연구 결과 그는 그 물체가 어떤 종류의 로켓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보다 더 자세한 조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정보 교환 후 갑작스런 그리스 정부의 태도 변화로 인해 공식적인 조사를 중단해야 했다.

    20년 후 그는 한 우주항공 관련 회의석상에서 유령 로켓은 다름 아닌 UFO이며, 전세계의 정부들이 UFO의 존재를 비밀로 하려는 이유는 각국의 정부가 무방비상태로 미확인물체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UFO와 국가 안보

    UFO는 미확인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의 약자다. 이 용어가 맨 처음 쓰인 것은 1948년경 미국 공군의 정보부서에서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다. 이렇게 군사용어로 시작된 이 용어는 오늘날 ‘외계인의 우주선’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정착되었다.

    이 용어가 사용되기 전 미국에서는 비행접시(Flying Saucer)나 비행원반(Flying Disc)라는 용어가 먼저 소개되었다. 1947년 6월 24일 케네스 아놀드라는 미국의 한 민간인 비행사가 9대의 미확인비행물체가 마치 ‘물 위를 튀어가는 접시’처럼 날아가더라고 매스컴에 밝힌 것이 AP통신의 기자에 의해 비행접시라고 조어(造語)되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지 2주일 후 미국 뉴 멕시코주의 로스웰이라는 곳에 ‘비행원반’이 불시착해 미 공군이 회수했다는 기사가 지역신문에 게재되면서 UFO 외계인 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후 미국은 광란적인 UFO 소동에 휩싸이게 되는데, 실제로 1947년 6월∼7월 사이 일반 시민들과 항공기 조종사들이 목격한 UFO가 1000여 건이나 되었고 미국의 주요 신문에 모두 보도됐다.

    그해 7월 10일자 ‘뉴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엔 ‘전쟁이 사람들의 정신을 한바탕 휘저어버리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이 적대국가에서 미국에 대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에리히 프롬의 해석과 정반대인데, 당시의 UFO 목격이 군사 정보나 기밀과 관계없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 것이었다면, 이런 정신분석적인 결론이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정보 자유화법에 의해 공개된 당시 군사 정보나 기밀 보고서들에 의하면, 이 문제는 미군 정보기관에서조차 매우 심각하게 취급되었다.

    로스웰 사건은 최근 50주년을 맞아 매스컴에서 다시 다루면서 미국 국회에서 논란이 되는 등 오늘날 UFO 소동의 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UFO의 실체적 존재가 군의 공식경로를 통해 공표되었다는 점과 곧 그 내용이 다시 번복되었다는 사실에서 이 사건은 세인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으며, 추락된 UFO 주변에서 외계인의 시체가 회수되었다는 루머까지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이 정말로 외계인과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사건을 조명하는 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 관련된 군부대가 원자폭탄 제조 및 운반의 보안에 관련된 ‘509 원자 폭탄 그룹’이라는 점일 것이다.

    당시 뉴멕시코주에는 핵무기를 비롯한 많은 비밀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사실 미 공군이 ‘프로젝트 사인’ 또는 ‘프로젝트 블루북’이라는 이름의 UFO조사전담반을 구성한 것은 UFO의 주요 출몰지역이 군사시설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49년에 미 육군 제4군 정보참모가 작성해 미국 원자력위원회에 접수된 다음과 같은 보고서는 당시 UFO가 얼마나 예민한 국가 안보상의 문제로 미 군부에 인식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뉴멕시코 보안당국은 이런 현상 때문에 매우 긴장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외부세력이 원자력 시설을 감시하기 위해 녹색 광구를 보내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것을 적대국이 실험중인 방사능 무기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혹은 미 군사당국에서 극비리에 실험중인 최신 병기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문제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과학 기술진을 하루속히 이 지역에 파견하여 진상을 규명할 것을 건의한다.”

    UFO 문제가 처음부터 크게 문제되었던 것은 그 출처가 불명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것이 보여주는 비행 패턴이 현 지구상의 항공기술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1967년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마르코비츠는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UFO라고 보고된 물체들 대부분이 현재까지 알려진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UFO는 일상적인 물리현상의 착각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몇몇 사례에서 이를 위반하는 듯한 특징을 보이며, 따라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신빙성 없는 것으로 단정하거나 현재의 물리법칙을 의심하는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물리법칙들이 이론과 실험적인 측면에서 확실한 결과를 예측하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에게 UFO와 물리법칙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현재의 물리법칙을 고수할 것임이 틀림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물리법칙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경고로 논문을 끝맺고 있다.

    정말로 UFO가 현대의 물리법칙에 위반되는 비행특성을 보여주는가? 필자는 10여 년간의 UFO 연구조사에서 실제로 가장 신뢰할 만한 사례일수록 UFO가 현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행 패턴을 보여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UFO의 가장 대표적인 비행특성은 음속을 돌파해도 소닉 붐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1955년 6월 23일 미국 뉴욕주의 유티카 근처 1km 상공을 비행하던 DC-3기의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밝은 회색 빛을 발하는, 지름 50m 가량의 둥근 UFO가 음속의 6배 속도로 자신들의 비행기로부터 150m 정도 높은 위치에서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시각 같은 지역을 비행하던 2대의 다른 비행기 조종사들도 똑같은 물체를 목격했으며, 또한 뉴욕주의 알바니 관제탑과 보스턴의 레이더 기지에도 포착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UFO가 소닉 붐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미 공군사관학교에서 펴낸 ‘우주과학 입문(Introductory Space Science)’이란 교재에 “음속의 6배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로부터 소닉 붐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도저히 기존의 비행물체로는 설명할 수 없고, 아마도 현재의 물리법칙을 위반하는 것 같다”고 쓰여 있다.

    음속돌파를 한 UFO가 소닉 붐을 발생하지 않는 사례는 1956년 8월 13일 영국의 벤트워터스라는 곳에서도 일어났다. 영국 공군과 미 공군의 레이더 스크린과 근처 상공을 비행하던 비행기 조종사의 육안으로 목격된 이 물체는 음속의 5배 속도로 지상에서 1.2km 상공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소닉 붐은 보고되지 않았다.

    1969년 미국과학진보협회의 UFO 심포지엄에서 당시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대기 과학과 교수였던 제임 맥도널드 박사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닉 붐에 대해서 아무런 보고도 없었다. 그런데 매우 신뢰할 만한 여러 보고서들에서 음속을 넘어 비행하는 UFO가 소닉 붐을 내지 않았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은 UFO 문제와 관련되어 현재로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들 중 하나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유성은 그런 속도와 높이에서 날지 않는다. 그리고 비행기일 가능성도 제외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물체가 소닉 붐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비밀 초음속비행기였다면 우레와 같은 소닉 붐이 보고되었어야 한다.”

    과연 어떤 종류의 비행물체가 대기 중에서 소닉 붐을 발생시키지 않고 음속 돌파를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유럽연합의 등장과 동구권의 몰락 등 한창 유럽권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던 때인 1990년 3월 31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1952년 미국의 워싱턴 UFO 출몰사건과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날 새벽 브뤼셀 남단에 위치한 글론스의 NATO 기지 레이더와 브뤼셀 서쪽 세머자에 설치된 벨기에 군 레이더망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포착되었다. 군용기든 민항기든 레이더에 정체를 확인시키는 트랜스폰더를 부착하게 되어 있는데 이 비행체로부터는 아무런 신호도 포착되지 않았다. 명백히 그 비행체는 벨기에 영공을 무단침입했으며 따라서 벨기에 공군 당국은 F-16기 2대에 긴급 출격명령을 내렸다. 출격한 F-16기는 자체 추적 레이더로 UFO를 포착한 후 접근을 시도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파리 마치’지의 기자 마리 테레르 드 브로스가 벨기에 공군의 드 브루워 대령으로부터 제공받은 2장의 블랙박스 사진은 UFO가 정말로 당시 F-16기의 레이더에 자동 추적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이는 정확한 목표물을 향한 미사일 발사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 UFO는 조종사들의 의도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처음의 고도인 3km 상공에서 급강하해 200m 이하로 내려갔다. 200m는 레이더로 추적할 수 있는 한계고도이므로 이 UFO는 F-16기의 추적권에서 벗어나 버렸다. 이것은 UFO가 F-16기와 지상의 레이더망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지능적인 운행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당시 수많은 브뤼셀 근교의 거주자들이 F-16기와 UFO가 쫓고 쫓기는 장면을 눈으로 지켜보았는데, 그 중에는 20여 명의 국립경찰 요원도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UFO가 지상 200m 이하로 하강하여 F-16기들을 따돌릴 때의 속도가 음속의 1.5배였음에도 지상에서 그 누구도 소닉 붐을 듣지 못했으며 아무런 피해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뉴턴의 법칙 위배하는 직각회전

    보고된 UFO의 운행특성 중에서 물리법칙을 위반하는 듯한 또 다른 경우는 직각회전(right angle turn)이다. UFO가 고속으로 비행하다 회전 반경 없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다. 바로 야구선수 김병현의 CF 필름에 포착된 UFO가 이런 비행특성을 보여준다.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UFO목격사례도 적지 않다.

    1952년 7월 14일 밤 8시10분경 미국 팬암 항공사의 DC 4기 기장 윌리엄 내시와 부기장 윌리엄 포텐베리는 뉴포트 상공에서 8대의 붉은색 원반형 UFO를 목격했다. 이들 편대는 DC기의 아래쪽을 지나가다가 급선회했다. 내시 기장의 표현에 따르면, 그 괴비행체들은 호를 그리거나 흐트러짐 없이 맨 처음 진행방향에 대해 직각방향으로 새로운 대형을 이루어 돌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시 기장이 그 비행체들을 목격한 시간은 12초. 그의 어림에 의하면 방향 전환시 그 물체의 속도가 최소한 시속 2만km, 즉 음속의 16배나 되었다고 한다.

    UFO의 직각방향 전환은 1990년 벨기에 브뤼셀 사건에서도 보고되었는데, 같은 해 9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플라즈마 물리연구실 책임자인 장 피에르 프티 박사는 프랑스 일간지 ‘파리 마치’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많은 목격자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UFO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갑자기 직각 회전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가속도는 무한대다. 그런데 그 물체가 소멸되지 않고 그런 회전을 견뎌낼 수 없다.”

    만일 이런 극단적인 가속과정에서 보고되는 바와 같이 그 물체가 소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뉴턴의 관성법칙을 어기는 것이 된다.

    UFO의 또 다른 비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비행 특성은 그것이 아무런 가시적인 추진 수단 없이 급가속과 급감속을 한다는 점이다. 프로펠러도 제트분사도 사용하지 않고, 대기 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 역시 뉴턴의 작용 반작용 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1959년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비행접시들’이란 책에서 UFO의 이와 같은 비물리적 비행특성을 주목했다.

    그는 UFO가 도저히 그 안에 생명체가 타고 있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속한다거나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꾼다는 사실로부터 그 현상이 인간의 심층심리에 도사린 집단적 무의식과 공명하는 것이란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이런 원형이 초과학적인 맥락에서 종교의 기원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 아델레이드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 폴 데이비스는 UFO가 오늘날 고등종교가 과학 문명에 밀려 세력을 잃고 있는 시점에서 재등장한 가장 원시적 형태의 종교적 상징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비행접시가 인간세계의 거추장스런 로켓이나 엔진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지구 중력에 상관없이 빠른 속력으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이른바 종교의 초자연적 사건들에 나타났던 상징들 중 많은 것들이 현대의 UFO 신앙과 관련해 재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있을 것이다.”

    UFO 현상의 종교적 특성은 최근 부각되고 있는 ‘UFO에 의한 인간의 납치현상’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는 단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잡미묘한 측면이 있으며, 여기서 다루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특별히 관심있는 사람은 필자가 쓴 ‘UFO 신드롬’이나 곧 번역 출판될 예정인 하버드 의대 존 맥 교수의 ‘납치(abduction)’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제 UFO의 초자연적 특성을 과학 기술적인 의미로만 국한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UFO를 목격했다는 매우 신뢰할 만한 보고들이 전 세계 각처에서 쏟아져나오자 이 문제에 대해 무시해버리거나 부인하는 식으로 대처해오던 현대 과학이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어떻게 UFO는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박사는 UFO 현상에서 우리가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얻어낼 것이란 점에 회의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장 피에르 프티 박사는 이런 모든 UFO의 특성은 매우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모습을 나타내며,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버드 대학의 존 맥 교수 역시 우리보다 수천년 앞선 기술을 가정한다면, 현재 서구 과학의 연장선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UFO 조사 연구의 필요성

    필자는 지금까지 10여년간 UFO 조사 연구활동을 해오면서 문헌을 통해, 그리고 항공기 조종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UFO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 또 그것이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UFO연구협회 임원들은 그 동안 몇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우리나라 공군의 UFO 조사연구 상황에 대해 문의한 바 있다. 하지만 항상 답신은 그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면 왜 현역 공군 조종사들이 우리들에게 찾아와서 이런 문제를 하소연한단 말인가?

    미국에서는 이미 1940년대부터 수십년 동안 UFO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들은 1960년대 말에 모든 UFO 현상을 자연현상의 착각이거나 대중 환각으로 설명할 수 있어 아무런 안보상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공식적인 UFO 조사연구를 종결지었지만, 필자는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확신한다.

    10여 년 경력의 필자와 같은 민간인 UFO 연구가에게도 우리나라에서만 벌써 2건이나 되는 공군 내부의 중요한 UFO사건이 보고되었는데, 이미 1940∼60년대에 이런 문제로 커다란 논란이 있었던 미국에서 1970년대 이후 UFO 관련 사건이 군에서 발생하지도 않았고, 또 조사하는 기관도 없다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아직도 박오상 예비역 대령과 박종국 중령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필자는 지금이라도 공군이나 국정원이 나서서 UFO 문제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조직을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그럴 경우 필자를 위시한 박사급의 민간인 전문가들도 국가 안보를 지키는 대열에 적극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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