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장관은 過客, 관료들에겐 천국

왜 교육부 폐지론인가

  • 글: 김현미 khmzip@donga.com

    입력2003-01-02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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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교육대통령’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 사교육 축소와 대학입학제도 개선은 DJ의 최대 공약사항. 그러나 교육현실은 더욱 나빠졌고 혼선에 빠진 교육정책은 끈질기게 국정의 발목을 잡아왔다. 대한민국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교육인적자원부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비전 없는 단명 장관, 일반직과 전문직의 파워게임, 인맥만들기와 보신주의.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표현은 교육부에 딱 들어맞는다.
    장관은 過客, 관료들에겐 천국

    DJ 정부의 교육개혁은 ‘이해찬 세대’라는 조롱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2002년 11월6일 대학수학능력 시험장에서 선배들의 고득점을 기원하는 고등학생들.

    2002년 11월22일, 노무현과 정몽준 두 대선후보의 단일화 TV토론. 노후보가 먼저 정후보의 교육공약을 공격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폐지를 주장하는데, 그러면 국가인적자원 개발 기능은 어떻게 합니까.” 정후보는 이렇게 받아 쳤다. “교육부는 평가와 정보제공 기능만 갖고 나머지는 지자체와 단위 학교에 주자는 뜻입니다. 그러면 지방에도 서울대가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이하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부로 통일).

    정몽준 후보의 교육부 해체론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교육부 폐지’를 들고 나오면서 정부조직개편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노·정의 후보단일화 이전, ‘대한매일’이 실시한 대선후보 정책검증 작업에서 서울대 오석홍 명예교수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의 역할은 줄어들었는데 거꾸로 교육부총리를 부활시키는 등 시대에 역행하는 개편을 해왔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대선에서 제시된 공약 가운데 정부조직 개편은 반드시 실천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교육부, 국정홍보처 등 폐지론이 제기된 관계부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이상주 교육부총리는 “특정 정당이 교육부 폐지나 국·공립대학 지방 이전 같은 교육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좌시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불쾌감을 표시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 해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어 교육부 직장협의회가 정후보의 교육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외국에서는 교육부처의 기능을 강화하는 마당에 일부 대선 후보가 갑자기 ‘교육부 폐지’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장관들이 앞장서서 각 당 대선 후보의 공약을 집중 비판한 데 대해 정치권과 여론은 “국무회의에서 대선 공약도 논의하느냐”며 싸늘한 반응이다. 국민통합21의 전성철 정책위의장은 “교육문제는 국민이 심판할 사안이다.국민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이 부총리와 TV토론을 제의한다”고 했다. 한나라당도 “공약의 실현가능성, 타당성 등 전반적인 사항은 표로 심판할 문제”라며 정부부처 비판에 한 목소리를 냈다.



    상황은 마치 5년 전 15대 대선 직후로 돌아간 듯하다. IMF구제금융의 위기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작은 정부 만들기’ ‘행정부처의 군살빼기’를 최대 목표로 삼았다. 물론 구조조정 대상이 된 부처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였다. 통합 대상 부처들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했고, 설사 다른 부처에 흡수 통합되더라도 조직은 살아 남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교육과학부’론이 나온 것도 그 무렵.

    1998년 1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위원장 김광웅 서울대 교수) 공청회’.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는 교육부 축소 혹은 과학기술처나 문화부(당시 문화체육부)와의 통폐합을 논의한 끝에 교육부는 살리되 기구만 축소하기로 했다. 결국 교육부 내에서 지방교육행정국이 폐지되고 고등교육실이 국으로 격하되는 등 3실 4국 11심의관 34과 체제가 2실 4국 8심의관 27과 체제로 바뀌어 규모로만 보면 21% 가량 축소됐다. 그러나 “기구명칭만 바뀌었지 기능이나 권한에서 달라진 것이 뭐냐”는 반발이 있었다. 그렇다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 교육부는 5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권 초기 해체 위기에서 살아 남은 교육부는 2000년 교육인적자원부로 개편되고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했다(2실 3국 6심의관 30과 체제). 그야말로 전화위복.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신년사에서 교육부총리제 도입을 밝히고 “부총리에 인적자원 개발정책의 총괄·조정기능을 부여하고 학교교육과 관련한 교육부 기능과 조직은 대폭 축소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 관료주의를 개혁하랬더니 거꾸로 관료의 권력을 강화시켰다며 경악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더하여 제4부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큰 원칙 하에서 교육인적자원부로 승격된 것을 환영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교육연구소 유상덕 소장은 교육부총리제를 적극 찬성했다.

    “이를 계기로 교육부는 인적자원 개발 및 조정기능, 중장기적 교육정책 수립 기능, 교육평가 기능을 주로 하는 부서로 탈바꿈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지나치게 중앙집권적 통제와 간섭을 해 온 데서 초래된 교육현장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자율성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급조된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법적·제도적 보장이 미흡했다. 중장기적 인적자원의 개발계획을 세우려면 부처간 중복기능을 총괄·조정해야 하는데 부총리급 장관에게 예산편성 권한 같은 실권이 없었다. 유아교육관련 입법만 하더라도 보육(어린이집)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와 교육(유치원)을 관장하는 교육부가 5년 내내 주도권 싸움만 벌이다 결국 다음 정권으로 과제를 넘긴 것이 좋은 예다.

    그나마 과거 교육부가 갖고 있던 권한의 상당부분을 시·도교육청으로 위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교육부가 교육전반을 기획하고, 예산을 분배하며, 부교육감 인사권을 쥐고 있는 등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한다. 상명대 박거용 교수(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는 이런 교육인적자원부의 등장에 대해 “기형적 신자유주의와 관료주도 교육정책의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교육부총리제를 추진하면서 교수,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현장의 실질적 주체를 배제하고 행자부, 기획예산위 주도로 일을 진행했다. 이는 총체적 교육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과는 동떨어진 것이며, 현재 교육부가 안고 있는 관료주의 폐단과 독단적 교육행정 등을 또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교육계 원로는 “교육부가 정작 넘겨야 할 업무는 안 넘기고 넘기지 말아야 할 업무는 넘겨버렸다”고 개탄했다.

    “교육부의 주요기능은 관리와 장학, 두 가지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경우 장학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자치라는 이름으로 장학 기능은 지방으로 넘겨버리고, 대학 관리기능만 움켜쥐었다. 장학은 돈이 안되고 관리는 돈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이처럼 교육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로 변화된 데 불만이 많은 교육계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교육부 개편론을 제기한다. “차라리 교육부가 없는 게 낫다”는 푸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난 5월 전국대학교수대회에서는 “교육부가 죽어야 대학이 산다”는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교육부를 견제하기 위해 초당적·초정권적 교육개혁기구의 설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총은 16대 대선에 출마한 각 당 후보들에게 국가교육정책 심의 의결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를 공약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전교조도 일찍부터 교육부 장관을 지원하고 견제하는 합의제 집행기구이며 교육정책 결정의 최고 의결기구로서 ‘국가(혹은 중앙)교육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초정권적 교육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한나라당은 16대 대선에서 초정권적 교육정책기구로서 ‘21세기 교육위원회(가칭)’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교육혁신의 일관성·계속성·신뢰성을 제도화하고 교육개혁추진기구를 법제화하기 위해 ‘교육개혁법’을 제정하고 교원과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주체와 교육전문가, 교육행정가, 시민사회단체 관련자 등 교육당사자가 참여하는 ‘교육개혁국민회의(가칭)’ 또는 ‘교육혁신위원회(가칭)’를 대통령 직속으로 법제화해 상향식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교육부 개혁안은 당장 교육부 폐지와 같은 급진적 변화는 아니더라도 견제장치를 통해 우회적인 개혁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9월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가 발표한 교육부 개편 방안은 교육부 직제의 초·중·중심 재편과 함께 ‘고등교육위원회’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2002년 11월1일 창립 1주년을 맞은 전국교수노동조합은 ‘교육개혁은 교육부개혁으로부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이 자리에서 교육관료체제의 개혁과 교육부 개편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교육학)는 “교육부 폐지론은 현실적 대안이 아니라 개혁의 필요성 내지 당위성을 담고 있는 구호”라고 지적하고 “현행 교육부를 집행기능 중심으로 재편해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로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력 재배치에 대해서도 교육정책 수립에 관한 전문인력은 위원회로, 교육현장 밀착적인 업무를 수행할 인력은 교육부로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이뤄져 교육부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로 꼽히는 일반직과 전문직의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의 향방에 관계없이 교육부는 수술대에 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민의 정부, 교육부 장관만 7명

    장관은 過客, 관료들에겐 천국

    DJ정부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는 8개월에 불과하다.현 이상주 장관 이전 6명의 전직 장관들, 이해찬, 김덕중, 문용린, 송 자, 이돈희, 한완상씨(왼쪽부터).

    해방 이후 교육부 직제는 53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1년에 한 번 꼴로 바뀌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형은 바뀌었으나 내용이 바뀌지 않았고, 기구는 달라졌는데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교육부 수장인 장관은 수시로 교체됐다. 1948년 정부수립 후 교육부 장관은 44명, 평균 재임기간이 1년 남짓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은 5년 간 7명, 평균임기가 8개월밖에 안된다. ‘새교육신문’의 김병옥 국장은 “현정부 출범 전만 해도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이므로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겠다’고 말했지만 잦은 장관교체로 교육계에서 장관에 임명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보인다”고 우려했다.

    2002년 11월22일 학교사랑실천연대와 교육개발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교원, 학부모, 정부간 상호신뢰회복을 통한 학교교육 정상화 방안’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충남대 김언주 교수(교육학)는 “현 정부에서 7명의 교육부 장관이 교체됐는데 7명의 장관 중 4명의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이었다. 이 정도면 ‘敎育一年之小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나. 물론 장관의 경질이 교육정책의 기본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정책을 실시하는 방안과 구성원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주어 교육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전문성이나 경력면에서 교육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래서 교육계로부터 경원시되던 인물이 장관으로 왔다가 교육계를 흔들어 놓고 유유히 떠나갔다”며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새 정부에서는 교육장관의 인사검증 시스템과 최소 2년의 임기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교육공약 개발에 참여했던 김진성 한국교육정책연구회장(명지대 객원교수)은 “장관이 취임하면 3~4년의 중·장기 교육개혁정책을 남발하고, 장관이 경질되면 이미 발표한 내용은 없었던 일로 하거나 수정해버린다”고 꼬집었다. 물론 DJ정부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의 수명이 유난히 짧았던 것은 분명하다. 교육부 내에서는 “장관이 부임하자마자 새 장관이 또 언제 오나 기다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

    애초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육부장관으로 정치인을 발탁했을 때는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개혁의 칼을 쥐고 교육부로 들어간 이해찬 장관은 곧 관료들에게 에워싸였다. 많은 교육 관계자는 “이해찬 장관은 교육계에 대한 인식 부족과 불신 때문에 관료들의 말만 들었다. 심지어 장관 취임 후 교사, 교장, 학부모 등 교육계와의 간담회 도중 계속 반대의견을 내는 교장을 쫓아낸 일도 있다”며 초기 교육부 내부개혁의 기회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했다.

    김대유 전교조 전 정책연구국장은 “2000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펴낸 교육분야 부패방지대책 자료를 보면 교육분야 부패 발생빈도가 가장 높은 곳이 교육부(17.6%)고 다음이 시도교육청(10.6%), 사립대학(18.4%) 순이었다”며 “처음부터 누가 개혁의 대상인지 확실히 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해찬 장관은 ‘교원정년 단축’과 함께 ‘촌지’와 ‘과외’ 추방을 내걸고 제일 먼저 학교 현장에 칼을 댔다. 당시 여당쪽에서 교육부 내부 보고서만 보지 말고 당쪽 보고서도 참조하라고 요청했지만 이장관은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계 이익집단간 이해갈등이 심화됐고, 교육주체인 교사와 학부모의 분화가 가속되었으며 교사와 교수들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됐다.

    결국 출범 1년도 안돼 개혁의 칼날은 무뎌졌고 이해찬 장관의 뒤를 이은 김덕중, 문용린, 송자, 이돈희, 한완상, 이상주 장관에게 다시 칼을 벼려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주대학의 실직적 주인이었던 김덕중 장관은 애초부터 ‘개혁’에 한계를 안고 있었다. 문용린 장관은 입각 당시부터 교육부총리제 전환을 앞둔 ‘한시적 장관’으로 레임덕에 시달렸다.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송자 장관은 대기업 실권주 인수와 표절시비에 휘말려 4주를 못 채우고 도중하차했다.

    특히 송장관의 경우 개인적인 문제로 물러났지만 교육계 내부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평도 있다. 교육학과나 사대인맥이 강한 교육부에서 비서울대 출신에다 교육계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송자 교수가 갑자기 장관에 발탁되자 교육계 내부의 저항이 컸고, 막상 장관이 궁지에 몰렸을 때 아무도 두둔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교육계와 교육부 시스템이 장관을 밀어냈다”고 말한다.

    다른 장관들도 소신껏 정책을 펼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거나 처음부터 개혁 의지가 별로 없었다. 이돈희 장관은 문민정부 시절 교육개혁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주목받았다. 이장관은 새교육공동체위원회를 이끌면서 국민의 정부 교육정책을 문민정부의 연장선에 두려고 고집했다. 결과적으로 교육부의 권위에만 집착해 교육계 밖의 지적에 귀기울이지 않은 것이 한계였다.

    한완상 부총리는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부총리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내부개혁은 손도 대지 못했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이상주 부총리가 낙하산식으로 등장했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위한 자리마련용으로 갑작스럽게 부총리가 됐으나 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평이다.

    어쨌든 손님처럼 왔다가 떠나는 장관들로 인해 국민의 정부 교육개혁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더욱이 장관의 잦은 교체는 교육 관료들에게 안주의 기회를 제공했다. “정권이 자주 바뀌면 관료들의 천국이 된다”는 말에서 정권 대신 장관을 넣으면 딱 맞는다. 잦은 개각과 함께 새장관 부임에 따른 후속인사가 관료들의 책임의식을 희박하게 만들었다.

    교육관료들은 6개월도 안돼 이리저리 보직을 바꾸는 일이 허다할 뿐 아니라(평균 1년 미만) 비리가 발각되거나 윗사람 눈밖에 나면 잠시 시도교육청이나 대학 등 외곽을 돌다 상황이 유리해질 때 슬그머니 본부로 돌아왔다. 김대유 전교조 전 정책연구실장은 “교육부 장관의 잦은 교체에다 승진을 위한 관료들의 끊임없는 자리 이동, 이른바 교육 마피아들의 파워게임과 줄서기 등 여파로 정작 초·중·고 교육정책 기능은 축소되는 기형적인 직제개편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장관은 過客, 관료들에겐 천국

    2001년 1월30일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등이 교육인적자원부 현판식을 갖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작은정부’원칙까지 버리면서 출범했으나 성과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2000년 11월 김성동 교원징계재심위원장이 차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으로 선정되자 교육단체들이 교육관료의 낙하산 인사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와 국가단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국가 출연 연구기관. 김성동 원장 내정에 대해 반대성명을 낸 한국교총은 “교육부가 공개모집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나눠먹기식 인사를 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평가원 내부에서도 연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최우선시하는 법인체에 교육관료를 발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에 대해 김성동 위원장은 현장 교사 생활과 행정관료 경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사학위 등을 제시하며 전문적 식견을 갖춘 행정관료로서 자격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교육부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 가지 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 일반직과 전문직의 파워게임, 둘째 교육관료들의 박사학위 만능 풍조, 셋째 교육관료들의 산하기관 요직 독점현상이다.

    교총이 이 인사에 대해 이례적으로 “전문성 확보를 위한 학문적 연구 등을 주요기능으로 하는 평가원 수장에 일반행정 관료를 임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데는 일반 행정관료들의 독주를 막고 교사 출신 전문직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평가원장은 일반직이 아니라 전문직의 몫이라는 주장을 은근히 담고 있는 셈이다. 김진성 명지대 객원교수의 말.

    “교육부에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있다. 그 하나는 행정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통해 임용된 일반직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원 출신의 전문직이다. 그간 교육행정을 움직이는 이 두 수레바퀴는 협력보다는 갈등 속에 시간을 보냈다. 대지를 박차고 힘차게 달리려면 두 바퀴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바퀴의 크기와 속도가 각기 다르니 수레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교육부 내 일반직과 전문직의 해묵은 갈등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 1963년부터 교육부는 행정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통해 임용된 일반직에게 관리기능을 맡기고, 교원출신 전문직에게 장학기능을 맡기는 이원화 체제를 고수했다. 그러나 교육부 내에서 일반직의 위상이 크게 올라간 것은 이들이 문민정부 시절 교육개혁위원회를 매개로 개혁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일반직들은 국민의 정부 이해찬 장관 시기에도 ‘교육발전-5개년계획’을 입안하거나 장관 주재 ‘교육정책토론회’를 주도하며 교육부의 중심세력이 됐다.

    일반직의 독주와 비교해 전문직들은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태. 일단 전문직은 인원면에서 일반직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직제에서도 교육부 실, 국, 과장 전체 정원 41개 중 전문직은 4개에 불과하다. 전문직 교육관료 출신인 김진성 교수는 “교육행정의 역사는 일반직 권한 확대의 역사요, 전문직 권한 축소의 역사”라고 못박았다. 그러니 전문직들은 일반직 눈치 보면서 일하기 싫어서라도 하루 빨리 교육부를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전문직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전문직은 교육현장과 유리돼 있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일반적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문직 상당수가 오로지 일선 학교에 교감이나 교장으로 발령받는 데 전념하는 풍토에서 소신과 철학을 갖고 교육정책을 펴나가는 것은 요원하다.

    김대유 전 전교조 정책연구국장의 지적처럼 김대중 정부에서 실패하고 표류한 교육정책들-수행평가, 열린 교육, 조기영어교육, 교원정년단축, BK21, 사립학교법-이 현장경험이 전무한 일반직들에 의해 입안되고 집행됐다. 문제는 이들 직군(職群)의 이원화와 파워게임이 교육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문직이 주도한 7차교육과정과 대학을 관할하는 일반직이 만든 2005년 대학 입시안의 충돌이다. 간단히 말하면 고등학교 과정에서 이미 선택형, 수준별 교육을 받은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 학부제에 따라 한데 섞여버리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7차교육과정은 2005년 대학입시안과도 충돌한다.

    부임초기 이해찬 장관의 입에서 “현재 교육부는 사무관·서기관이 중심인 젊은 조직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우수한 인력이어서 큰 힘이 된다”는 말이 나오게 했고, 인사기록을 본 한완상 부총리의 입이 벌어지게 한 교육부 내 박사급 엘리트들은 대부분 일반직 출신이다. 김성동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이들 중 한 명.

    그러나 교육관료들의 박사학위 따기 열풍에 대해 교육계 밖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안승문 서울시교육위원은 “최근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활동 경험이 없는 교육부 사무관 이상 일반직들 가운데 국비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아온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도 학문적인 바탕을 가진 교육전문가라고 자칭하며 더욱 독선적으로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지만 한국의 교육실정을 모르는(대개 미국것만 배워오는) 그들이 내놓는 정책들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황폐화를 부채질하는 탁상공론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교육부 내에서는 ‘박사학위를 위한 장기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즉 2년짜리로 연수를 갔다가 내친김에 1년 더 연장하고 길어지면 아예 휴직을 한다. 학위를 위한 유학에 치중하다 보니 실무연수보다 박사학위를 따기 쉬운 미국의 특정대학(아이오와대학 등)으로 줄줄이 연수자가 몰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또 연수 준비자에게 암묵적인 특혜를 주는 일도 많다. 연수 신청자를 지역 교육청이나 교육위원회, 대학의 한직으로 발령을 내서 유학 준비시간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신청자는 비교적 한가한 자리에서 3∼5개월 정도 근무하며 준비를 한 뒤 유학을 떠난다. 이런 교육부 관료들 간의 상부상조 개념이 지나쳐 지역교육청 해외연수 몫까지 교육부가 빼앗아가고 있다는 불평이 나온다.

    “교육부 내 200여 명의 일반 행정고시 출신 교육관료들이 교육부에서 청와대로, 청와대에서 다시 교육부로, 또다시 교육청과 국립대학으로, 국립대학에서 국책연구기관으로 요직만 독식한다. 이들은 짧게는 수개월마다 옮겨 다니면서 그 밥에 그 나물로 교육을 재단한다. 퇴직한 뒤에는 교원공제회 등의 교육부 산하단체 임원 또는 사립대학의 교수나 직원으로 재취업하여 각종 로비에 동원되기까지 하니 참으로 가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계는 그들만의 나라인 것이다”(김대유, ‘교육은 살아있다’에서).

    퇴임 이후 대비하는 관료들

    정상환 교원징계재심위원장은 전형적인 교육관료의 길을 걸었다. 교육부 학술연구지원국장에서 교원징계재심위원장(1급)으로 승진했으나, 교육부내 파워게임에 밀려 민주당 교육전문위원으로 파견나갔다 2002년 다시 원직인 교원징계재심위원장으로 돌아가는 희한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관료들은 편의에 따라 교육부와 여당, 국회, 산하기관을 옮겨 다닌다. 2003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교원공제회 이사장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물밑 싸움이 치열하다.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은 “서울시 교육지원국장 자리를 왜 교육부가 차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교육청 교육지원국장은 사립학교에 대한 행정·재정업무, 학교급식 관련업무, 저소득층·만5세 무상교육지원, 학생 중식 지원, 학교신축 및 증개축 업무, 교육환경개선사업, 산하기관 및 지역교육청 시설업무 등 막대한 예산을 관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 교육지원국장의 임기는 길어야 1년6개월이다. 임기가 끝나면 교육부로 되돌아가거나 다른 지방 또는 대학으로 간다. 그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지역교육청의 사립학교 지원 업무와 막대한 시설 사업들이 맡겨진 상황에서 현장밀착적인 책임 있는 행정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사립대학 초빙교수 자리도 교육관료들에게 활짝 열렸다.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에서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얼룩진 공직 기강을 확립한다며 긴급 암행감사를 실시했을 때 한 교육부 국장이 사학법인 관계자로부터 향응과 돈 봉투를 받는 현장에서 걸리는 망신을 당했다. 이 사건은 받은 액수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교육부 내부에서 쉬쉬하고 덮어 경징계로 끝났다. 당사자는 그 후 모 대학 초빙교수로 부임했다. 비리를 저지른 그가 현재 명문대학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할까.

    장·차관급 관료들은 퇴임 후 사립대학 총장으로 가는 게 관행이었지만 최근에는 젊은 관료들이 일찌감치 퇴임 이후를 준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대학을 관장하던 관료들이 법인 사무국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박사학위를 배경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며 인연을 맺어두었다가 여차하면 학교로 자리를 옮긴다. 더욱이 교육부 폐지론이나 축소론이 나오고 산하기관에서도 낙하산 인사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대학은 교육부 관료들에게 일종의 보험처럼 인기가 높다.

    때로는 대학이 비리관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가벼운 뇌물 수수로 적발되거나 소위 ‘상관에게 찍히면’ 국립대학 사무국장으로 발령받아 그들 말대로 ‘조용히 쉬다’ 온다. 국립대학이야 어차피 교육부 관료들의 순환보직 근무처이기 때문에 관계없다지만, 최근에는 휴직을 하고 사립대학 초빙교수로 가는 게 유행이다. 심지어 자신이 2년 정도 임기를 채우고 교육부로 돌아올 때쯤 되면 후배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 마치 순환보직처럼 활용하고 있다. 대학들은 대학정책을 관장하는 관료들과 친분을 쌓아서 손해 볼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공무원의 고용휴직제도를 남용한다는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국민의 정부 교육개혁.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교육정책에 깊숙이 관계했던 한 교육계 인사는, 김대중 정부가 첫 여야 정권교체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구세력을 다시 등용함으로써 개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초대 대통령 사회문화 수석비서관이었던 조규향씨는 교육계 최대 인맥의 하나인 ‘진주 마피아’(진주사범 혹은 진주고 출신들로 구성되며 범 영남계 인맥) 출신으로 90년 최연소 차관이 된 인물이다. 그 아래 김성동 전 한국교육평가원장, 이기우 현 기획관리실장이 범PK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교육부 차관을 거쳐 부산외대 총장을 역임한 조규향씨가 다시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청와대가 임명 전 수석 후보 공개라는 이례적인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유력 후보였던 윤성태 전 보사부차관이 의료보험통합 반대론자라는 이유로 시민단체의 집중 공격을 받아 흠이 나는 바람에 조 전 차관이 수석에 임명됐다는 후문이다. 조규향씨는 2002년 한국방송대 총장에 취임함으로써, 이상주 부총리에 이어 3관왕 총장이 되어, 교육부 관료의 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사실 조규향 수석이나 김성동 전 평가원장이 교육부를 떠남으로써 교육계 내 최대 인맥이었던 ‘진주 마피아’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 내에서는 여전히 지역과 학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교육부 차관급에서 보면 조선제·김상권 차관이 호남출신 인맥이고,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인 최희선 차관, 서울대 교육학과와 호남출신이란 두 가지 배경을 갖고 있는 김신복 차관이 서울대 인맥을 형성한다. 이원우·서범석 청와대 교육비서관도 호남출신 인맥.

    특히 DJ정권에서 주목받은 것은 서울대 인맥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이며 교수를 지낸 이상주 부총리가 임명되자 16대 국회 교육위 위원장을 지낸 이규택 의원(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이 서울대가 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차지했다며 “한국 교육은 서울대 사대가 책임지게 되었다”는 엉뚱한 보도자료를 배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부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교육부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다. 최근 일련의 교육정책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교육부와 조율도 없이 재정경제부 등 타부처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재정경제부는 부동산 투기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날로 폭등하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값의 오름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신도시 등 수도권에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건설교통부와 한국토지공사가 ‘판교신도시 교육인프라 집적지역 조성계획’을 발표할 때도 정작 교육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교육부와는 사전조율이 없었던 상태. 더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에 체벌금지 조치를 요구하며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권고한 것도 주객이 전도됐다. 여기에 2002년 벽두에 진념 부총리가 고교평준화 해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평준화 논란이 일었던 것도 교육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행자부가 교육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원신분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 역시 월권에 해당한다.

    새교육신문의 김병옥 국장은 ‘흔들리는 교육정책’이라는 사설에서 이처럼 타부처가 교육정책을 간섭한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면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교육정책에 대해 타부처가 왈가왈부 나서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육부에 책임이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추락하는 교육부, 해법은?

    남승희 전 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현 명지전문대 교수)이 교육부를 떠나면서 한완상 부총리에게 띄운 공개편지가 교육계 안팎으로 잔잔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편지에서 남교수는 “국민들의 교육부에 대한 불신과 지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해 이러다가 교육부가 공중분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듭니다”라고 교육계 밖의 분위기를 전달한 뒤 교육부 쇄신을 건의했다.

    “책임있고 양심적인 민간 전문가들로 쇄신위원회를 구성하십시오. 교육부 스스로 옷을 벗고 신체검사를 받는 자세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진단을 받으십시오. 그들이 제안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받아들이십시오. 업무를 경감하고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십시오. 특히 대학입시 업무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털어내십시오. 지금 교육부는 교육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고, 권위적이고 관료적입니다.”

    1년 전의 애틋한 고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밖에서 밀려드는 교육부 폐지론에 발끈할 게 아니라 교육부는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더이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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