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어찌나 자주 오르내리는지, 누구와 대화를 나누더라도 그것이 가장 빈번한 주제가 된다.”(뷔로)
2003년 1월 현재, 한국에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이 말은, 사실 500여 년 전 르네상스기의 인물이 한 말이다. 르네상스는 개혁 그 자체였다. 우리 시대에도 개혁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르네상스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담아, 나는 너를 세상의 중심에 세웠노라. …너 자신을 실현하고 창안하는 자로서, 네 자유의 존엄성으로부터 네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미란델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 “자유로운 사회에서만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발휘할 수 있다.”(리누치니 ‘자유에 대하여’)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힘과 영민성 같은 자연의 특별한 은총을 찬미해 마지않는다.”(모어 ‘유토피아’)
이 말들 역시 2003년 1월, 한국인의 새해 좌우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역시 500여 년 전 르네상스기의 가장 위대한 경구들이었다. 르네상스는 바로 그런 사회, 르네상스인은 바로 그런 인간을 추구했다. 우리 시대에도 그런 인간, 사회, 자연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르네상스의 인간관·사회관·자연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때라 해서 완벽한 개혁이 이루어졌거나, 자유의 존엄성이 완전하게 보장됐거나, 의심할 바 없는 자연의 은총이 확보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기 인간은 ‘자유의 존엄성’을 그 어느 때보다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적어도 르네상스에서 인간은 ‘자유인’을 추구했다. 그렇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자유, 사회의 자치, 아름다운 자연을 향한 개혁의 몸부림이었다.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활동과 함께 인간의 육체도 그 존엄성을 획득했다. 이전까지 육체는 신의 이름으로 경멸당해왔을 뿐이다. 비로소 사람들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자유의 존엄성을 해치는 궁핍과 무지, 편견과 독단, 권위와 억압은 비난받았다. 법이 그 존엄성을 인권으로 규정하거나, 궁핍과 무지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렇더라도 정신만은 확실히 고양돼 있었다.
‘전문가’는 전인적 지성인의 적
르네상스인(성·계층·국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은 개혁가이자 창조자고, 박식가이자 사상가며, 여행가이자 생활인이었다. 그들은 학문과 예술에 두루 관심을 가졌으며 항상 자기만의 새로움을 창조하고자 노력했다. 또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모든 곳을 여행했으며,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에 충실했다.
이로써 그들은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상대적 관용으로 다양성과 변화를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롭고 드높은 삶의 보편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는 그렇게 지성인·교양인·보편인이라는 참된 인간상의 길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지성인·교양인·보편인이란 흔히 그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대학 교수 등 이른바 전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앞뒤가 꽉 막힌 ‘전문가’는 오히려 보편인의 적이자 르네상스의 전인적 지성인 혹은 교양인에 반하는 개념이다.
그보다는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추구하고, 새로운 사회와 세계, 조화로운 자연을 모색하는 성실한 생활인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는 흔히 천재들의 명단과 그 작품들로 대변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암기용 리스트’가 아니라 르네상스의 핵심 정신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르네상스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즉 휴머니즘·유토피아·생명력을, 그 핵심을 형성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어느 영문학 교수와 르네상스 이야기를 하며 셰익스피어를 언급하자, 그는 왜 셰익스피어를 르네상스에 포함시키냐며 의아해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르네상스 하면 이탈리아, 그것도 피렌체, 그리고 거기서 산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만을 떠올린다. 이른바 ‘르네상스의 3대 천재’라는 식의 암기교육이 낳은 폐해다. 르네상스가 피렌체를 중심으로 중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3대 천재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와 학자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알베르티나 마키아벨리도 여기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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