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이는 네 권의 책을 사서로 묶었을 뿐 거기 주석을 달지는 않았다. 하나로 연계된 사서에 처음으로 주석을 단 사람이 주희다. 중국사상사에서뿐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사에 빛을 발한 그 유명한 ‘사서집주’는 그렇게 성립하였다. 집주(集註) 혹은 집해(集解)란 선인(先人)의 제주(諸註)를 취사선택하여 또 하나의 주석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이미 고전 그대로가 아니다. 기존의 주(註), 즉 해석들을 자신의 주관과 이미지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가공의 고전(古典) 세계가 만들어지며, 그를 통해 주석자의 사상과 세계관이 윤곽을 드러낸다.
주희는 기존에 전해 오던 ‘대학’과 ‘중용’의 체제 및 내용에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벌인다. 자기 생각대로 본문에 해당하는 ‘경(經)’과 그 해설부분에 해당하는 ‘전(傳)’을 판별하고 장(章)과 구절(句節)을 나눈 것이다. 이것이 ‘사서집주’ 중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중용장구(中庸章句)’다. 두 책은 지금 전해지고 있는 ‘대학’과 ‘중용’의 기본체제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명대의 왕수인(호는 양명(陽明)·1472∼1528)은 이 새롭게 성립한 주희의 ‘대학’(이것을 ‘신본대학(新本大學)’이라 부름)에 대해 ‘예기’ 속의 옛날 ‘대학’(이것을 ‘구본대학(舊本大學)’이라 부름) 그대로가 옳다는 신선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어쨌든 주희는 오경(五經)이 아닌 사서(四書)를 채택해 체계적으로 주석을 덧붙이는 한편,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매우 중요한 작업을 했다. 그는 이러한 주석작업을 통해 송학의 궁극적 성격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은 당시 유행하던 불교와 도교의 사상적 논리에 대항해 새로운 유교 체계(=신유학)로서의 성리학(性理學)을 세우는 역사적 작업이기도 했다. 원(元)대 이래 명(明)·청(淸)대에 걸쳐서 과거시험이 주로 사서에서 출제되면서 그 권위와 학습 열기는 오경을 능가하게 되었다.
주희는 사서를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서로 읽을 것을 주장했다. 그러면, 그는 왜 ‘대학’을 처음에 두었을까?
‘대학’에는 학문의 총괄로서의 삼강령(三綱領)과 그 분석인 팔조목(八條目)이 나온다. 그래서 그는 ‘대학’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유교의 이상, 즉 공자의 가르침의 골격(규모)을 깨우치는 ‘초보자가 덕성함양에 들어가는 문(初學入德之門)’으로 간주한 것이다. 주희는 사서 가운데서도 ‘대학’을 가장 중시했고, ‘대학’ 가운데서도 격물(格物) 두 자를 중시했다. 이것은 정이의 사상적 입장을 계승한 것이다.
‘대학’ 다음에 ‘논어’를 둔 것은 공자와 그 제자들이 유교의 이상인 ‘대학’의 도를 어떻게 실천했나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맹자’가 세번째가 된 것은,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이론화·철학화해 심오한 경지로 끌어올렸으며, 또한 송대 신유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의 심성론(心性論)에 대항할만한 인간 마음에 대한 이론적 논거를 제시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맹자’에서는 인간의 본성문제를 다루며 성선론(性善論)을 전개한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불성론(佛性論)에 대응할만한 주요 논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맹자’에는 위아주의자(爲我主義者·극단적 이기주의자)인 양주와 겸애주의자(兼愛主義者·박애주의자)인 묵적과 같은 이단의 사설(邪說)을 비판·배척하고, 별애(別愛·차등적/원근법적 사랑)를 주장하는 등 유가적 논조가 담겨 있어 도통(道統) 확립에 지대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중용’을 둔 것은 성(性) 도(道) 교(敎)의 관계를 천명(天命)과 결합시켜 설명하고 있어, 유학의 최종 결론격인 천인합일지도(天人合一之道·우주와 인간 합일의 원리)를 이해하기 쉬우며, 하늘의 운행 원리를 언표한 형이상적 개념인 성(誠) 등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용’은 인간과 사물의 근저에 있는 추상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기에, 다른 경전을 먼저 읽고 이것을 맨 마지막에 읽어야 마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학’이 인간과 사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도록 한 것이라면, ‘중용’은 그 이면을 성찰토록 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먼저 ‘대학’을 통해 ‘학문의 규모를 정하고 뜻을 정립하며’ 다음으로 ‘논어’를 배워 ‘학문하는 근본을 세우고’ ‘맹자’를 읽어 ‘학문의 발전과 의리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며’ ‘중용’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터득한다’는 것이 주희의 ‘사서 읽기 철학’이다. 주희가 확립한 사서 독해의 순서는 이후 일반화되었다. 사서를 읽을 경우, 특별한 생각과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주희의 방법을 따르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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