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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칸과 칸 사이, 피가 흐른다

보이는 것 그 너머

  • 글: 성완경 인하대 교수·미술 이론 / 미술평론가 lunapark@unitel.co.kr

칸과 칸 사이,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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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과 그림의 결합, 만화. 그를 완성하는 건 독자의 상상력이다.
  • 이미지로 표상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힘, 만화의 매혹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칸과 칸 사이, 피가 흐른다

오세영 작 ‘투계’. 만화를 문학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수작이다

만화는 재미있다. 만화는 우리를 빨아들인다. 대부분의 만화는 그렇게 재미있지만, 한편 그렇고 그런 상투형(常套形)이다. 그런 만화들은 대개 빨리 읽어치우고 잊어버리게 된다. 소비적 만화들이다. 사실 만화를 읽을 기회나 환경이란 것 자체가 집중적 독서나 진지한 감상과는 거리가 있다. 만화란 가볍고 흔한 것이어서(사실 요즘엔 어디에나 만화가 있다) 오다가다 시간 때우기로 잠시 뒤적거리거나 빨리빨리 책장을 넘겨가며 대충 보는 대상이지, 뭐 명작소설이나 명화 감상하듯 찬찬히 음미해가며 즐기는 대상은 아니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또 설사 만화가 감동을 준다 하더라도 그 감동의 강도나 깊은 맛, 여운 같은 것이 명작소설이나 한 편의 좋은 영화, 혹은 음악이나 미술작품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상투적 재미를 넘어 진지한 창작품으로서 깊은 감동을 주는 것들도 있다. 스토리가 좋아서건, 그림이 좋아서건, 혹은 그 둘 다이건. 사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어떤 만화는 대단히 심오하고 감동적이며, 그것이 보여준 ‘새로움’(모든 예술은 새롭다는 것이 생명이다) 때문에 마음이 설레는 경우도 있다. 천재적 예술성에 깜짝 놀라는 그런 만화들도 있다.

그러나 만화가 가벼운 소일거리냐 진지한 예술이냐의 구별이 곧 좋은 만화와 그렇지 않은 만화를 가르는 기준은 아니다. 만화가 만화 고유의 대중문화적 즐기기의 대상이란 사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만화에는 그 특유의 문화가 있다. 팬덤(스타를 좋아하는 방식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나 마니아의 세계가 있고 특유의 숭배와 열광, 평판과 비평의 형식이 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열광을 나누며, 주관이 확고한 비평가의 몫까지 톡톡히 해내고, 때로 직접 만화를 그리기도 한다. 그들은 대개 인터넷 사이트를 갖고 있으며 독특한 커뮤니티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만화가가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도 많다.

꺼벙이와 무당거미,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는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작가와 독자, 그리고 독자와 독자 사이에 주고받는 쌍방 소통적 요소가 중요하며 팬덤과 마니아의 정서가 가득한 영역이다. 한국의 아마추어 만화문화의 저변은 대단히 넓다. 수천개의 아마추어 만화 동아리들이 학교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결속돼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중·고등학생 등 어린 세대가 중심이 된 것이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탄생했다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1986년 이래 12년간 판진(Fanzine ; 만화 마니아이자 아마추어 작가인 이들이 만드는 잡지. 실험성과 도발성이 도드라진다)을 발행하고 있는 동아리도 있다.



‘판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아마추어 만화의 특징은, 프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보편적’ 취향과는 다른, 독자들 자신의 개성에 기반한 더욱 다양하고 소수자적인 취향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보이그룹 멤버들을 만화 속에 등장시켜 서로 동성애를 나누는 것으로 묘사한다든지, 이미 프로로 데뷔한 작가가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단편들을 발표하기 위해 다른 필명으로 판진을 발간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런 동아리들에 활동 무대를 제공하는 정기 행사 또한 많이 열리고 있다.’(김낙호 ‘한국의 아마추어 만화’ 2003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한국만화전 카탈로그 중에서)

이렇게 보면 만화는 저자와 독자가 인기·애정·대화를 함께 나누는, 대단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언이 만화를 텔레비전과 더불어 쿨 미디어의 하나로 정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독자가 참여하는 미디어라는 뜻이다. 이 점은 만화라는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놓치지 말아야 할 대단히 중요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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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완경 인하대 교수·미술 이론 / 미술평론가 lunapark@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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