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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가 끝났을 때, 발레가 시작됐다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 글: 이은경 국민일보 문화부장 eklee@kmib.co.kr

모든 언어가 끝났을 때, 발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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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육체가 도달할 수 있는 美의 최고 경지’ 발레. 까치발과 튀튀가 등장하기까지 발레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 알기 쉽고 흥미진진한 발레 입문 다이제스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떠오른 적이 있다. 물론 맞는 이야기이며 발레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무얼, 얼마나 알아야 하고,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음 굳게 먹고 두꺼운 전문서적과 씨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선 전문용어투성이인데다 그나마 참고할만한 책도 제한적이다. 또 전문용어를 죽 꿴다 해서 발레를 제대로 이해한다 말하기도 어렵다. 발레 테크닉을 구체적으로 구별하거나 무용가들의 계보를 따지는 것보다 나름의 안목과 감수성으로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발레를 제대로 이해하는 첩경일 것이다. 박자나 화음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레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보자. 발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잠자리 날개같이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가냘픈 발레리나가 까치발로 무대 위를 떠다니듯 오가는 환상적인 장면일 것이다. 이 간단한 장면 묘사에 발레를 이해하는 핵심 단서들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발레용어로는 쉬르 레 푸엥트(Sur les Pointes)라고 하는 까치발은 발레 테크닉의 출발점이자 발레를 다른 장르와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다. 튀튀(Tutu)라 불리는 발레의상은 육체의 언어를 천상의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한몫하는 동시에, 그 변천사가 발레 테크닉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냘프게 보이는 발레리나들의 체격조건 역시 발레를 환상의 예술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발레라는 예술의 핵심요소가 무엇인지는 사람들이 이미 부지불식간에 알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조금 살을 붙이고, 발레가 어떻게 생겨나 어떤 변천을 거쳤으며, 음악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등을 곁들이면 발레를 즐기는 데 필요한 기본요소는 갖춰지는 셈이다. 거기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개인의 감수성과 발레예술에 대한 관심도에 따라 선택할 문제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러시아로



발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발레의 역사다. 발레가 언제 어떻게 생겨난 예술이며 그것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하는 역사적 개관은 발레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발레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궁정에서 싹터, 프랑스로 건너가 꽃봉오리를 맺은 뒤, 러시아에서 화려하게 만개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태동했을 당시의 발레는, 눈부신 테크닉의 향연을 펼치는 오늘날의 발레와 큰 차이가 있었다. 굽 높은 구두에 한껏 부풀린 스커트, 거추장스러운 머리장식 등으로 잔뜩 모양을 낸 왕족과 귀족들이 플로어 위를 우아하게 왔다갔다하며 즐기는, 여흥용이나 사교춤 수준이었다.

발레가 지금처럼 전문 예술가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극장예술의 형태로 나아가는 토대를 갖춘 것은 프랑스에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명문인 메디치가 출신 카테리나 데 메디치(1519~89)가 프랑스 왕실로 시집가면서 프랑스에 발레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카테리나가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조국에서 즐기던 발레를 프랑스에 소개한 것이다.

이렇게 전파된 발레가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꽃 피게 된 데는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루이 14세는 서양 춤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발레 스타라 해도 좋을 만큼 발레 사랑이 유별났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외친 프랑스 절대왕권의 상징이자 전쟁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전제군주가 발레 스타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다섯 살에 왕위를 계승해 어려서부터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을 법한 그는 13세 때 처음 발레를 접한 후 춤에 매료되고 만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27편의 발레에 출연했으며 ‘태양왕’이라는 별칭도 사실 발레에서 얻었다. 그가 15세 때 출연한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라는 작품에서 황제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태양을 상징하는 장식을 달고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루이 14세는 발레 출연에 시큰둥해졌다. 그럼에도 발레 자체에 대한 애정은 여전해 그 중흥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661년에 세계 최초의 무용교육기관인 ‘왕립무용아카데미’를 설립했는데 이는 발레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발레의 과학적 원리를 정리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한편, 왕이 주재하는 공연에 출연할 무용수들을 훈련시키는 일까지 맡았던 이 아카데미는, 발레가 지배계급의 여흥에서 전문가의 예술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발레의 무대가 왕궁에서 극장으로 옮겨지고, 전문 무용가들이 등장하게 되는 발판이 이 학교에서 마련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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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은경 국민일보 문화부장 e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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