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70여 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배철현 서울대 교수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홍중식 기자|free7402@donga.com

    입력2017-08-27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는 원래 신학도였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부모님의 염원으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81학번)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신앙이 깊지 못해 학과 공부를 등한시했고 쫓기듯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했다. 학점은 바닥권이었고 학교는 신군부에 반대하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믿음’보다 ‘앎’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신학엔 관심이 없었지만 경전의 원문을 제대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해외 유학을 결심했죠. 군복무를 카투사(주한미군 파견 한국군)로 하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토플이나 GRE(대학원입학자격시험) 점수는 높았지만 학점이 문제였습니다. 복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 줄줄이 A학점을 받았음에도 평균 학점이 2.3(4.3학점 만점)밖에 안 됐죠.”

    놀랍게도 그 학점으로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았다. 평균 학점보다는 급격한 학업성취도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필생의 스승을 만난다. 하버드 학생들 사이에서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보다 아카드어를 더 잘하고, 파라오 람세스보다 이집트어를 더 우아하게 기록하며, 이스라엘의 솔로몬이 고대 히브리어로 남긴 ‘시편’을 줄줄 외운다’고 소문난 존 휴네가르드 교수였다. 그가 부인인 조 앤 해킷 교수와 함께 2009년 텍사스대(UT) 오스틴으로 옮겨가면서 고대 중동학 연구의 중심이 미국 동부에서 서남부로 이동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선 ‘고대 에티오피아어’ 강의를 들어야 했다. 수강생은 그를 포함해 딱 3명. 한 명은 바티칸 교황청의 성서학 교수가 된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에티오피아 유학생이었다. 그에겐 외계어나 다름없었지만 휴네가르드의 가르침을 따라 필사적으로 공부해 3명 중 2등을 했고 제자로 받아들여졌다. 동아시아인으론 최초였다. 그렇게 10년을 공부한 결과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포함한 셈족 언어와 헬라어(고대그리스어)와 라틴어를 포함한 이란·인도어 계통 언어 70여 개 언어 해독이 가능하게 됐다.

    이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기원전 6세기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꼽히는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한 다리우스1세는 자신의 공적을 기록한 베히스툰 비문을 세웠다. 이 비문은 3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아카드어(메소포타미아 최초 통일왕국의 언어), 엘람어(페르시아제국의 공식 언어), 당시 페르시아 민중이 사용하던 고대 페르시아어다. 그의 박사 논문은 이 3가지 판본을 비교한 것이었다. 세계 최초였다. 여기에 다리우스1세가 당시 같은 내용을 23개국에 외교문서로 보낼 때 사용한 아람어(당시 중동 지역 공용어) 판본까지 4개 언어를 아울렀다. 아카드어와 아람어는 셈족 언어이고, 고대 페르시아어는 지금의 이란어처럼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다. 그리고 엘람어는 굴절어인 이들 언어와 전혀 다른 고립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2003년 서울대 종교학과의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담당 교수가 됐다. 종교학 전공자가 아니지만 이들 세 종교의 경전을 원어로 읽고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종교를 믿는 학생들의 통념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서울대에서 가장 위험한 강의를 펼친다’고 소문난 배철현(55) 교수다.

    배 교수는 야심 찬 새 시리즈 집필에 들어갔다.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했고, 언제부터 인간이 됐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찾아가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다. 전체 10권으로 계획돼 지난 7월 출간된 1권은 유인원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한 600만 년 전부터 인류 최초의 신전인 ‘괴베클리 테페’가 등장하는 1만1500년 전까지를 다룬다. 내년 출간될 2권은 농업혁명이 발생한 1만 년 전 부터 문자가 탄생한 기원전 3300년까지를 다룰 예정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라틴어학명을 변주해가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다. 1권만 해도 호모 크레안스(기획하는 인간)부터 시작해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까지 14개의 라틴어학명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인간적 특징으로 생각하는 요소가 처음 등장한 시점을 다루며 그 의미를 음미해간다.

    예를 들어 인간이 미술 활동을 처음시작한 시기가 언제일까. 인류 최초의 예술조각으로 간주되는 ‘라 로슈코타 얼굴형상’은 3만5000년 전경에 제작됐다. 프랑스 중서부 라 로슈코타 동굴 입구서 발견된 얼굴 형상의 돌조각이다. 독일 홀레펠스 동굴에서 발굴된 ‘홀레펠스 비너스상’은 3만5000년~3만3000년 전 매머드 상아에 조각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적 연구결과만 놓고 보면 그림은 조각보다 늦다.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로 알려진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가 그려진 시점이 3만2000년~2만3000년 전 사이로 추정된다. 책에서 호모 스칼펜스(조각하는 인간)가 호모 핑겐스(그림 그리는 인간)보다 앞에 소개되는 이유다.

    배 교수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한 인간적 요소는 따로 있다. 호모 베네볼루스(배려하는 인간), 호모 스피리투알리스(영적인 인간), 호모 콘템플라스(묵상하는 인간), 호모 코무니칸스(더불어 사는 인간)이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리처드 도킨슨(‘이기적 유전자’를 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타적 유전자’에 있습니다. 그것은 본능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입니다. 저는 이를 ‘신적인 유전자’라고 부릅니다. 횃불을 들고 홀연히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 들어간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의 심연 깊이 숨겨진 그것을 발견하고 다른 호모 사피엔스와 공유해 이를 발현시키면서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배 교수의 책은 따뜻하다. 공감과 배려, 희생과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적 요소이며 인간의 여정이 위대한 이유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배 교수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온화한 현자(賢者)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그는 인문정신으로 무장한 투사(鬪士)에 가까웠다.


    리처드 도킨슨 비판

    인간적으로 온화한 건 사실이지만 학자로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양날의 도끼였다. 그 한쪽은 인류가 남긴 정신적 가치를 폄훼하는 과학을 향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종교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 둘은 그에겐 무지의 동의어나 다름없는 근본주의라는 괴물이었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맹신을 초래해 인류의 정수가 담긴 고전과 인문주의 정신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막아서는 가시나무이자 독초였다.

    “찰스 다윈이 1859년 발표한 ‘종의 기원’은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던 종교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표상합니다. 하지만 그 서문에서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든 자연’이란 테니슨의 시구를 인용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상의 씨앗을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인류의 진화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기초했다는 인문학적 이타주의를 부정하는 ‘이기적 유전자’류 사고방식이 유행하게 됐습니다.”

    그는 도킨슨 비판을 위해 같은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란 칼을 빌린다. 윌슨은 1975년 ‘사회생물학’을 발표하며 개미와 인간처럼 사회를 형성하는 생물은 상호이익을 추구한다고 설파했다. ‘내가 도움을 받기 위해 남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호혜적 이타주의다. 그다음 해인 1976년 발표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는 결국 이 호혜적 이타주의를 극대화, 대중화한 것이라는 게 배 교수의 비판이다.

    윌슨은 2010년 발표한 ‘지구의 정복자’에서 그런 이기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타주의를 비판하고 나선다. 한 존재가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진화한 생물군이 지구의 정복자가 됐다며 이를 ‘집단선택(group selection)’으로 설명한 것. 도킨슨은 이 역시 자신이 주장한 ‘혈연선택’(유전자 보존을 위해 혈연성이 강한 개체를 돕도록 진화했다)의 일종이라며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도킨슨의 이타주의에는 인간적 이타주의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의도성과 도덕성입니다. 슈바이처가 의대에 진학하고 아프리카로 간 것이나 오스트리아 수녀 두 분이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본 게 본능적 선택입니까? 의도적 선택이잖아요. 또 내가 큰 회사 경리사원인데 회사 돈을 훔쳐 노숙자를 돕는다면 이타적이라고 할 순 있어도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인슈타인과 베라 루빈

    배 교수의 비판은 겸손하지 못한 과학에 대한 비판이다. 인문학적 성찰이 빠진 과학에 대한 비판이다. 그 핵심은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다.

    “우리가 아는 과학은 10년 뒤 100년 뒤면 오류로 판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정적 가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과학 근본주의입니다. 20세기 과학의 영웅인 아인슈타인은 달랐습니다. 모든 과학과 예술과 인문의 원천은 신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죠. 허블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별이 2000억 개라면 이를 대체할 웹 망원경이 관측할 별은 2조 개라 하더군요. 하지만 우주의 별은 그 2조 개의 다시 2조 배가 됩니다. 무한에 가까운 거죠. 무한의 세계에서 우리가 아는 지식은 낫싱(nothing)에 가깝습니다.”

    배 교수는 특히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 베라 루빈의 발견을 강조한다. 20세기 초 천문학자들은 은하수 성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물질’을 가정하며 이를 ‘둔클레 마테리에’, 즉 암흑물질이라고 명명했다. 루빈은 우주상에 우리가 아는 물질은 4%에 불과하며 우리가 모르는 암흑물질(22%)과 암흑에너지(74%)가 96%를 차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암흑물질이 우주를 수축시키는 인력의 근원이라면 암흑에너지는 이를 팽창시키는 척력의 근원이다.

    “루빈은 이를 성냥개비의 작은 불씨로 주변만 잠시 밝히는 상황에 비견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깨달았던 ‘알 수 없음’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신학도 출신이어서 자연에 대한 경외와 신비를 강조하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배 교수는 “20세기 후반 이후 종교는 시대를 이끌고 갈 지도력을 상실했다”고 매섭게 비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 역시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그런 신을 믿지 않습니다. 배타적 종교의 신이니까요. 자신이 우연하게 경험한 세계를 진리라고 착각하는 종교,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종교는 난센스에 불과합니다. 중동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유일신은 결코 그런 신이 아니었습니다. 힘없고 약한 자를 배려하는 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듣는 신이었어요.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너희들이 고생할 때 내가 두 눈으로 봤고 너희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신이고 ‘시편’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하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노래하는 신이었습니다. 전복적이고 민주적인 신이었습니다. 성경 번역을 통해 독일이란 나라를 재구성하고, 미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원천이었습니다.”

    그처럼 기존 시스템을 바꾸고 혁신을 가져왔던 일신교 신앙이 왜 지금은 그런 역할을 못하게 된 걸까. 배 교수는 역시 근본주의에서 그 문제점을 찾는다.


    “배타적 종교의 신은 죽었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일신교는 근본주의라는 정치경제적 사상으로 무장합니다. 이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이름으로 헤게모니를 쥐려는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왜 그때 등장했을까요. 과학이 발전하고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이들 종교 경전의 권위가 의심받게 되자 이를 거부하려는 반동적 흐름이 생긴 겁니다. 1920년대 미국 남부 크리스천들이 성경무오설과 예수가 3일 만에 육체적으로 부활했으며 사후세계에 천당이 있다, 이런 것을 믿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펀더멘탈스(fundamentals)’라는 책자를 돌린 게 그 시작입니다. 정말 무식한 짓이었지요, 이미 1세기부터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축자적 해석이 가장 수준 낮은 해석이란 이론이 확립됐는데….”

    이제 그의 전공 영역에 들어섰다. 우리가 아는 일신교의 신은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며 벌주는 무서운 신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다 예수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사랑의 신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었던가.



    신성은 내 안에 있다


    “종교 경전도 다 작가가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무서운 하느님, 벌주는 하느님을 강조하고 어떤 작가는 사랑의 하느님, 배려의 하느님을 강조합니다. 성경뿐 아니라 고대 신앙체계에서 두루 발견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벼락을 내리는 무서운 신이기도 하지만 ‘손님의 신’이기도 합니다. 낯선 이를 환대하라는 것이 그의 계율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발생한 것도 이런 신과의 약속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환대받았던 손님(파리스)이 주인의 부인(헬레나)을 채간 것이 신성모독으로 간주됐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외동아들 이삭을 낳게 된 것도 낯선 손님 3명을 극진히 대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천사 곧 신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고전에서는 이렇게 항상 낯선 자 안에 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럼 일신교는 왜 하나같이 중동 지역에서 배태된 걸까. 그 첫 시작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였는데 실패했고 왜 이스라엘과 아랍에서 성공한 것일까.

    “일신교가 탄생한 지역은 인류의 탄생지인 아프리카와 이웃하고 있으면서 수메르와 이집트 같은 인류 최초 문명 지역에 이웃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도의 추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보통 사람은 수백 개라고 설명하는 신이 하나라고 설파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추상의 산물이고 사상의 발전입니다. 이집트에서 실패했다가 이스라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핵심에 사랑과 배려를 담아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와 연결됩니다. 이집트에선 파라오의 엄청난 힘과 권위로 밀어붙였지만 다른 지역에선 그 신을 힘없고 약한 자를 돌보는 신으로 상정했기에 일반인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럼 그가 믿는 신은 어떤 신이고, 그가 열망한다는 종교는 어떤 종교일까.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냐고. 그때 신이 답합니다. ‘나는 나이다.’ 영어로 ‘I am who I am’이죠. 신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끌어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최대한을 탁 잡아 흔들어서, 그 사람을 신적으로 만들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아는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산스크리트어 ‘타트 드밤 아시(tat tvam asi·나는 그것이다)’와도 공명한다. 내가 추구하는 그것이 곧 나라는 깨달음이다. 표현은 달라도 둘 모두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깨달아 이를 발현시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발 하라리 비판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말하면서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거기서 포괄적 통찰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라리는 인류 역사를 개괄하긴 했지만 IT세계와 인공지능(AI)처럼 미국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꺼내 들었죠. 그러면서 21세기가 되면 인간이 신의 경지를 넘보게 되는데 그게 디스토피아를 불러올 수 있다며 희망보다는 겁을 좀 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신성이란 게 이미 내 안에 있는데 왜 그걸 과학기술을 통해 추구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신이 곧 우리라면 언제가 인간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배 교수는 이 질문에 “인간과 같은 자식을 이미 만들어내잖아요. 그게 신적인 거죠. 어떻게 더 정교한 것을 만들어냅니까”라며 껄껄껄 웃었다. 이미 우리 안에 신적인 것이 다 갖춰져 있다는 통찰에서 나온 일갈이었다.

    “AI는 내가 입력한 것 이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을 이긴 것 갖고 호들갑을 떠는데 너무도 당연한 거예요. 내가 만 원짜리 카시오 전자계산기보다 계산을 못해요. 그렇다고 내가 만 원짜리 계산기보다 못한 존재인가요? 인간의 창의성은 입력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입력하는 능력, 그래서 발상의 점프를 이뤄내는 것에 있습니다. AI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건 아주 요원한 일입니다.”

    그는 ‘호모 데우스’에 등장하는 데이터교(dataism)라는 게 결국 남 따라 하기라는 점에서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데이터 근본주의라는 비판이다.

    “데이터라는 게 결국 10년 후, 100년 후면 낫싱(nothing)이 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행동을 추적해 데이터를 만들면 뭐해요, 그게 다 알려지면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과 다르게 행동하게 될 텐데. 세상이 자꾸 자기 자신은 안 들여다보고 남이 한 것을 엿보고 훔쳐보게 만들고 있어요. 진정한 창조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건 자기성찰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안 하기’의 종교

    배 교수의 이런 주장은 실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고전인문학자로 공부하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살았던 그는 2010년 자신이 ‘번 아웃’(burn out·소진)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2011년부터 경기 가평 골짜기에 집을 마련하고 매일 달리기와 명상으로 심신을 단련하며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집필 활동과 강연에만 주력하고 있다. 2015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 그리고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 모두 그 산물이다.

    “제가 매일 하는 것은 아침에 5km가량을 달리는 것과 40, 50분 정도 앉아서 묵상하는 겁니다. 묵상은 좌정하고 앉아서 오늘은 안 해도 될 게 뭘까 같은 걸 생각하는 겁니다. 한 3년간 하루에 하나씩 안 해도 되는 걸 써가다보니 1000개가량이 되더군요. 또 안 만나도 될 사람을 하나씩 지워가다 보니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도 거의 없어요. 나 없어도 돌아가는 것은 안 한다가 제 원칙이니 제 종교는 ‘안 하기’인 셈입니다(웃음).”

    대신 오전엔 글을 쓰고 오후엔 책을 읽는다고 했다. 저녁엔 그리스비극 작품이나 ‘길가메시’(영생을 찾는 모험을 담은 인류 최초의 서사시) 같은 작품을 번역하며 책 쓰기와 강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

    “뭘 자꾸 하려고 하지 않는 게 핵심입니다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제거하면 남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걸 하면 돼요.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라파엘도 다빈치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대리석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해보세요. ‘다비드상은 이미 그 대리석 덩어리 안에 완성돼 있다. 내가 할 일은 필요 없는 것을 쪼아내는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쓸데없는 것을 덜어내면 내 안의 신성이 절로 드러납니다.”

    배 교수는 이를 위해선 수련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대해 4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연, 수련, 고요, 승화다.

    “동굴에 들어가 자기자신에 집중했던 고대인처럼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바라보는 훈련이 시작입니다. 그게 심연의 단계죠. 그런데 이게 그냥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둘씩 제거해나가는 훈련이죠. 이게 수련의 단계입니다. 그러고 나면 내 존재의 의미가 침묵 속에 떠오르는 순간을 맛보게 됩니다. 고요의 단계죠. 마지막 단계는 완전한 변신입니다. 과거의 내가 애벌레라면 깨달음에 이른 나는 그와 전혀 다른 나비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승화입니다.”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


    횃불을 들고 동굴 속에서 자기성찰을 통해 문명을 만들어낸 게 인간이다. 그런데 왜 문명이 더 발달했다는 현대인은 고대인의 그런 지혜를 갖추지 못한 걸까.

    “어떤 인간이 되려느냐고 물으면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인간이 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수능 점수를 많이 받고, 좋은 직장에 가고, 남들보다 떵떵거리며 살고. 그런 것이 자기라고 착각합니다. 이 게임은 제로섬 게임으로 망할 수밖에 없어요.”

    배 교수가 그런 제로섬 게임에서 한국 사회를 건져내기 위한 베이스 기지로 삼은 것이 건명원(建明苑)이다.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라는 뜻의 건명원은 배 교수와 의기투합한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회장이 100억 원을 쾌척해 2014년 설립된 인문학 인재 양성기관이다. 2015년부터 30명 안팎의 학생을 선발해 1년간 인문, 과학, 예술 융합교육을 실시한다. 수요일엔 배 교수의 라틴어 강좌와 최진석 서강대 교수(건명원 원장)의 도덕경 강좌가 펼쳐지고 토요일에는 6명 교수의 특강이 한 명당 2시간씩 다섯 차례로 돌아가며 이뤄진다.

    7월 31일 인터뷰가 이뤄진 곳이 서울 북촌에 위치한 건명원이었다. 한옥 건물인 건명원은 생각보다 작았다. ㄷ자 형태 한옥을 개조해 50명 정도가 들어갈 강의실과 강사 대기실을 만들고 빈 공간에 식당 겸 휴식공간을 배치한 게 다였다. 

    “학력은 안 보고 면접만 봐서 학생을 뽑습니다. 서울대 학생도 있고 고졸도 있고 탈북자도 있고 재벌 아들도 있고 온갖 아이들이 다 있습니다. 일주일에 수요일과 토요일 각각 4시간씩 강의가 진행되지만 키케로의 연설문이나 도덕경을 통째로 외워야합니다. 못 쫓아오면 바로 내보냅니다. 졸업률이 40%죠. 올해가 3기인데 36명 중 20명만 남았습니다.”

    건명원이 4만 년 전 동굴 속으로 들어갔던 고대인이 들고 있던 횃불이 될 수 있을까. 배 교수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호모 사피엔스 중 0.001%만이 동굴에 들어가서 의례를 행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됐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해 자기 내면의 ‘이타적 유전자’를 발견하고 이를 미래에 투사했기에 인류 문명이 탄생한 것입니다.”
    권재현의 심중일언



    이 사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