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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속으로 | 서가에 들어온 한권의 책 |

개인이 농축해 사회가 배양한 惡 | 작은 인생들의 꼼지락거리는 투쟁記 | 끝나지 않은 “평화를 향한 여정”

악의 해부 | 기사단장 죽이기 | 외교의 길

  •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 박성원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 spark@stepi.re.kr

개인이 농축해 사회가 배양한 惡 | 작은 인생들의 꼼지락거리는 투쟁記 | 끝나지 않은 “평화를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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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농축해 사회가 배양한 惡 | 작은 인생들의 꼼지락거리는 투쟁記 | 끝나지 않은 “평화를 향한 여정”

기사단장 죽이기 | 작은 인생들의 꼼지락거리는 투쟁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1권 598쪽, 2권 565쪽,
각권 1만6300원

이번 여름휴가엔 하릴없이 빈둥거릴 생각이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심심풀이용 소설책이나 한 권 읽으마고 했다. 우연히 하루키의 새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집어 들었다. 역대급 로열티니, 7년 만의 장편이니, 온갖 형용구가 미디어에 난무하던 터라 굳이 나까지 거들고 싶진 않았지만, 책을 읽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뜻밖의 즐거움(serendipity)’과 실망이 겹치기에.

소설 줄거리는 간단하다. 초상화가인 30대 중반의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럽게 이혼을 통보받고 집을 나간다. 오갈 데 없이 방황하던 나는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다락방에서 아마다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는데, 이 그림이 온갖 미스터리의 발단이 된다.

현실과 비현실이 명확한 구분 없이 한데 버무려진다.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장치가 이 작품에도 예외 없이 등장한다. 세계의 끝으로 연결되는 땅속 구멍이나 신비한 정신세계를 지닌 인물들, 혹은 그림 속 인물의 모습을 차용하고 현실에 등장하는 영적 존재…. 어떻게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이 탁월한 이야기꾼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인생에 대한 묵직한 질문도 담겨 있다. 전쟁과 학살에 대한 문제의식도 등장하고, 인간 존재의 중심에 있는 가치를 찾는 장면들도 등장한다. 이혼당한 ‘나’뿐 아니라 어려서 엄마를 잃은 소녀,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쫓기는 아가씨,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도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불륜을 저지르는 중년 부인처럼 ‘작은’ 인생들이 행복을 찾아 꼼지락거리는 눈물겨운 삶의 투쟁도 있다. 책 속 문장에도 나오듯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 관점이야말로 이 책이 지니는 진정 소중한 가치 아닐까.



음악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재즈바를 운영했고,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음악 대담집을 낼 정도로 음악적 식견이 높은 하루키다. 이 책에도 수많은 명곡이 등장한다. 멘델스존 현악 8중주나 슈트라우스 오페라 ‘장미의 기사’, ‘기사단장 죽이기’의 모티프가 됐을 법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이 오페라 속에 기사단장을 죽이는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등 책에 등장하는 곡들을 들으며 독서하니 그 맛이 별나다. ‘산뜻한 아침햇살이 바닥에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다’ 같은 자연의 경이를 표현하는 맛깔스러운 문장들도 뜻밖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실망스러운 점도 없진 않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미스터리가 해결되면서 자연히 긴장감이 풀어지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일찍 나사가 풀리는 느낌이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건 좋지만 중간에 이야기의 요점 정리가 너무 많다. 작가는 (아무리 많은 책을 써도) 결국 ‘한 권’의 책을 쓴다고 했던가. 이번 책도 미스터리 부분을 빼면 대표작 ‘노르웨이 숲’의 변주곡 같은 느낌이 든다. 이루지 못한 사랑, 광적인 섹스, 재즈와 클래식 음악, 위스키, 아웃사이더 인생 스토리.
그래도 나의 여름휴가와 함께한 이 책에 애착이 생긴다. 어차피 인생의 완성은 어려우니 조금씩 나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런 움직임 속에서 때때로 ‘자기 스타일을 대담하게 깨뜨리고’ 도약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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