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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경영’ 실천하는 (주)삼구 박종구 회장

맨해튼 7번가 ‘실크 박’의 ‘비단결’ 봉사 인생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나눔 경영’ 실천하는 (주)삼구 박종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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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번번이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뿐이었다. 다행히도 미국 진출을 포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국제실크협회(ISA) 관계자와의 상담이 순조롭게 이뤄져 4만달러의 수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겨우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고급 취향을 가진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문제였다. 고민 끝에 무조건 뉴욕 맨해튼 7번가의 고급 패션 스토어를 누비며 한국산 실크 제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유명 여배우를 동원해 미국인들에게 실크의 아름다움을 알렸고 때로는 ‘보그(VOGUE)’ 같은 패션 전문지에 기사를 싣기 위해 잡지사 관계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박 회장의 이런 영업전략이 현지 관계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는지 당시 맨해튼 패션가에서는 ‘실크 박’이라는 그의 별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략은 서서히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고급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 원단보다는 완제품 요구가 늘면서 경기도 시흥 공장을 새로 인수해 여성용 실크 블라우스와 드레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국 수출을 시작한 첫 해인 1975년에 200만달러 수출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76년 400만달러, 1977년 700만달러로 수출액이 급신장하면서 그 해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7번가의 기적’



특히 실크는 자연섬유라서 미국 수출 쿼터의 적용을 받지 않아 대규모 수출의 길을 열 수가 있었다. 당시 실크사업의 성공은 아직까지도 (주)삼구의 기반을 다진 초석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2001년 그의 고희(古稀)를 맞아 주변의 지인들이 펴낸 수상집(隨想集) 제목이 ‘실크로드로 가는 길’이었을까.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소비자들이 ‘삼구’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1994년 홈쇼핑 프로그램 사업자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삼구쇼핑’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자본금 300억원 규모의 홈쇼핑 사업자로 선정되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삼구’라는 회사 이름과 똑같은 39번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다고 39번 채널을 갖기 위해 일부러 로비를 벌인 것도 아니었다.

“케이블TV 사업자 선정 당시 홈쇼핑 사업자가 맨 마지막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좋은 번호는 사실 다른 채널들이 모두 확보해 간 뒤였어요. 우리 회사 이름이 ‘삼구’니까 그냥 ‘혹시 남아있는 번호 중에 39번 있으면 그것으로 달라’고 했을 뿐이죠, 뭐.”

‘삼구(森久)’라는 사명(社名)은 당시 유명한 한의사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70년대 중반, 허리 통증 때문에 침을 맞으러 다니던 박 회장은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겠다고 결심하고 당시 동양철학에 정통했던 담당 한의사에게 새로 출범할 회사의 작명(作名)을 부탁했다. 이 한의사가 내놓은 회사명이 바로 ‘삼구(森久)’였다. ‘삼(森)’자는 ‘나무 빽빽할 삼’, 즉 ‘많고 성(盛)함’을 뜻하는 것이고 ‘구(久)’자는 박 회장의 이름 끝자와 똑같은 ‘오래 구’자이니 ‘오래도록 번성하라’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박 회장의 홈쇼핑 사업이 오히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홈쇼핑 진출 초기부터 박 회장을 대신해 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외아들 경홍씨가 1998년, 나이 마흔도 안 돼 유명을 달리했다. 삼구쇼핑을 시작으로 드라마 채널 인수, 텔레마케팅 회사 설립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당시 박경홍 사장은 삼구쇼핑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 ‘포춘(Fortune)’지에 ‘한국을 대표하는 21세기 경영자’로 소개될 정도로 앞날이 기대되는 젊은 경영자였다. 아들의 사고 소식은 박 회장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었다. 그때 박 회장의 나이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 회장은 삼구쇼핑 이사에서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아들을 대신해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섰다. 그러나 박 회장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얼마전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첨단 정보통신기업을 이끌고 가는 것이 벅찼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니, 말도 못 꺼내나?”

사업가라면, 그것도 박 회장 표현대로 ‘쇠장사에서부터 소금장사까지’ 안 해본 것이 없는 사업가라면 매사에 과감하고 저돌적인 스타일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미군부대에서 고철을 주워다 팔면서 사업을 시작했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밑바닥에서 시작해 갖은 고생 끝에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답지 않게 박 회장은 저돌적이기보다 온유한 스타일이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기보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편이다.

박 회장이 회사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는 가끔씩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최고경영자의 아이디어가 직원들보다 서너 걸음씩 앞서가다 보니 직원들이 불만을 가진 경우도 있고 때로는 박 회장의 아이디어가 지나치게 이상론에 치우친 것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 박 회장은 고집을 피우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직원들을 다독거린다. 박 회장이 슬쩍 물러나며 던지는 말은 간단했다. “아니, 말도 못 꺼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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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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