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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지영 “이제는 자만도, 자학도 하지 않는다”

5년 만에 새 소설집 ‘별들의 들판’펴낸 공지영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공지영 “이제는 자만도, 자학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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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자 가슴이 막 답답한 게, 무슨 변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하여튼 그런 상황이 평생을 이어져온 것 같아요.”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네요.

“그렇죠. 언제나 어떤 오해 같은 거, 오해 받고 있다는 생각. 난 나대로 자연스럽게 한 건데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구나….”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가봐요.

“그렇지 않아요. 저 원래 다른 사람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런데 공격을 받으면 많이 억울해요. 하여튼 여섯 살 때 그 일이 제게는 운명적 사건만 같아요.”



-그래서 말과 글 속에 ‘상처’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건가요.

“그게, 어떤 사람의 말 한 마디, 눈빛 하나에도 전 평생 아프거든요. 예를 들어 학교 다닐 때도 선배들이 너 치마가 어떻다 저떻다 하면 그걸로도 깊이깊이 상처 입었어요. 그 사람 말을 곱씹고 되씹으며, 내가 뭘 또 잘못한 걸까. 예민한 데다 기억력은 좋으니까 그런 것들이 자꾸 증폭되는 것 같아요.”

“마당극도, 판소리도 싫었다”

-공지영씨 작품에 대해 ‘감상적’이라는 평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요.

“제가 감정 기복이 좀 심해요. 그걸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저 사랑 얘기 같은 거 보면서 안 울거든요. 사춘기 때 친구들이 ‘촛불 켜고 음악 듣자’ 그러면 속으로 ‘꼭 저래야 하나’ 생각하는 편이었고. 감상적이라는 게 감정과 이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거라면 난 절대 아니다, 내 속에 다른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면이 있다는 걸 잘 아니까. 그래서 전엔 누가 감상적이라 그러면 ‘아니에요 저’ 하면서 손사래를 치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냥 받아요. 감상적이죠 뭐, 감성적이기도 하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열넷, 열여덟살에 만나 엄마 스무 살 때 결혼한, 그런 분들이세요. 하지만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고요. 남들이 뭐라 해도 니가 올바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늘 강조하셨어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전 성질 드러운 것까지 아버지랑 꼭 닮았대요. 예를 들면 무슨 일을 할 때 머리 나쁜 건 절대 못 참아주는 거라든가. 그래선지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어요. 애교는 기본, 영특하기까지 한 데다(웃음) 서로를 너무 잘 이해했으니까.

제가 ‘왜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은 우리집에서 몽땅 사라졌어요. 그런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처음 깨진 게 저 대학교 2학년 때인 1982년이에요. 형사가 처음 집을 다녀간 후 아버지가 ‘이제부터 밤 10시가 니 통금시간’이라 못박았죠. 그 전까지 전 부모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평생 처음 강제 조항이 생기니 뒤 돌아볼 것도 없이 싸웠죠.

아버지한테 막 소리를 질렀어요. 왜 아무 합리적 이유 없이, 내가 정하지도 않은 규칙을 강요하느냐구요. 할 말이 없으니까 아버지는 궁여지책으로 ‘니가 아니라 세상을 못 믿어 그런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그랬죠. ‘좋다, 그렇다면 내게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뭐냐, 강간 같은 거냐. 그럼 해를 입을 위험에 처한 나를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왜 족쇄를 채우느냐’. 이후로 그렇게 간혹 다툼을 벌이곤 했는데, 마지막 싸운 건 지난번 선거 때예요.”

-대학시절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난 갈 데 없는 부르주아’라는 의식이었겠죠.

“난 혜택을 참 많이 받고 자랐는데 그걸 어떻게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세상에 정의로운 사람이 많은데, 사실 난 운동 같은 거 하기 싫은데 등 떠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싫었어요. 저 마당극 싫어하거든요. 판소리도 싫어해요. 정제된 클래식 음악, 그런 걸 좋아해요. 획일적 운동권 문화가 무지 싫었고, 너는 도대체 치마가 뭐냐, 머리카락 좀 어떻게 해라, 그런 잔소리들도 말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괴로웠죠. 갈등도 많았어요.”

“너 외모에 신경 좀 그만 쓸래?”

-그런데 어떻게 노동운동까지 하게 됐을까요.

“아휴, 저 운동 안 했어요. 그건 운동 축에도 못 끼어요. 한 달도 다 못 채운 걸. 어떻게 됐냐 하면, 대학교 졸업하면서 (사회활동의) ‘전망’을 세우잖아요. 전 최소한 전두환 정권에 도움 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취업을 포기했어요. 마침 그때 만들어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전화 받을 사람이 필요하단 얘기를 듣고 그리 갔죠. 어찌 보면 집안 생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죠. 거기서 일하면서 채광석 형(1948~87, 시인·문학평론가)한테 무지 구박당했어요. 노동운동 안 한다고. 저말고 현준만(번역가), 위기철(작가), 김사인(시인), 김정환(시인) 같은 사람들도 야단 많이 맞았죠. 어쩌다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렇게 극진히 잘 해주고. 자기도 노동운동 안 하면서 말이죠(웃음). 하여튼 우린 그 구박을 주눅들어가며 고스란히 받아냈어요. 그 땐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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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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