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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무소유 실천하며 진리 찾는 데니&젬마 부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원하는 대로만 살겠다, 하하!”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무소유 실천하며 진리 찾는 데니&젬마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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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운틴에서 무조건 행진하던 발걸음을 일단 멈췄다. ‘더 많이, 더 크게’를 향한 갈망을 회의했고 ‘바쁘게 일하는 게 선’이라는 일차적 판단을 반성했으며 지금 내가 누리는 터무니없는 풍요에 당황했다.

마운틴은 ‘사람이 잘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질과다의 시대에 우리가 꼭 한번 마주쳐야 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삶이란 다툼이 아니라 즐거움임을, 깊은 평화는 물질로 얻을 수 없음을, 빈손일 때 인간은 진정 강해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것도 아주 가볍게. 젬마가 빈 꿀병에 가득 꽂아놓은 강아지풀처럼 대수롭지 않게. 아주 무심한 터치로!

출산·양육·재산증식을 거부하고

전에 데니는 예수회의 수사였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 9년 동안을 거기서 보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실천가 기질이 강했던 데니에게 당시 수도회 내부를 강타한 해방신학과 보수신학의 갈등은 견디기 어려웠다. 고민하다 결국 사제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외롭고 힘겨웠다. 누군가 사람에게 기대고 싶었다. 데니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이야기나 나눠보라고 소개해준 사람이 젬마였다.

데니를 처음 만났을 때 젬마는 그의 작은 키가 영 마음에 걸렸다. 실망하는 젬마에게 천성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데니가 말했다.



“젬마씨,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다시 한번 봐주세요. 내 키가 정말 그렇게 작아요? 다른 사람들은 키가 위로만 자라 뿌리가 얕지만 나는 아래로도 자라 뿌리가 깊어요. 전체 길이를 따져보면 내가 그들보다 훨씬 크다고요” 하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젬마에겐 그 모습이 그렇게나 순진하고 진지해보였다.

또 데니는 “사람은 청빈해야 내면의 힘이 생겨 행복해져요. 청빈이란 무욕과 정직입니다”라고 말했고, ‘사랑받는 날에는’이란 시집을 건네주면서 “가짜일지라도 누군가가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해주면 그 누군가에게는 진짜가 되죠. 그리고 사람은 한번 진짜가 되면 영원히 진짜가 되는 거예요”라고도 했다.

마음을 울린 데니의 프로포즈

데니의 그런 얘기들은 젬마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다니엘 수사님을 잊을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서른넷의 데니와 스물일곱 젬마는 결혼을 결심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일이다.

결혼하면서 둘은 출산, 양육, 집 마련, 집 늘리기, 재산 불리기라는 삶의 일반과정을 걷지 말자는 데 동의했다. 대신 함께 추구할 게 있다는 데 합의했다. 남들이 다들 정신없이 달려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서자 세상은 완연히 달라졌다. 결혼에서 딱 그치고 출산, 양육, 재산증식을 사양하자 출퇴근, 일, 경쟁, 피로가 모조리 생략됐다. 온갖 ‘지지고 볶고’가 다 소용없고 오로지 둘이 마주 누워 새소리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걸로 충분하고 충만했다. 자연히 산에 올랐다. 아니 반대다. 산에 오르면서 충만과 무욕을 배웠다.

결혼 당시부터 그들의 집은 북한산이었다. 산이 집이고 별장이고 작업실이었다. 나는 데니와 젬마의 집을 알고 나서 마음속에 빛을 품은 사람처럼 따스해졌다.

그들의 살림살이는 지극히 간소하다. 물건이 없으니 마운틴은 좁아도 전혀 옹색하지 않다. 데니의 집에서 손으로 까먹는 귤이 초호화 타워팰리스에서 먹는 맛보다 못할까. 아니, 마운틴의 과일이 더 달다는 데 나는 한 표를 던지겠다. 산에서 주운 말라빠진 밤 한 톨도 귀하게 여겨 입에 녹여 단맛을 우려낼 줄 아는 그들이다. 음식의 근원을 생각하며 입에 넣는 과일이니 원래의 맛과 향이 최대한 풍길 수밖에.

데니와 젬마의 살림은 ‘각자 큰 배낭 하나에 꾸려 어깨에 메면 족할 만큼’만 있다. 그 이상의 소유는 짐이다. 언제든 앉은 자리에서 털고 일어설 수 있게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당장 필요치 않은데도 쌓아두고 싶은 욕망을 지우고 나니 자유가 찾아왔다. 맑은 밤이면 그들은 산으로 올라간다. 산꼭대기 적당한 곳에 잠자리를 편다. 나란히 누워 너무 찬란해 잠들 수 없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새벽빛, 해돋이. 아침을 맞는 꽃과 새들의 청명과 천진을 함께 보고 바람결, 솔향기, 물소리를 함께 느낀다.

젬마는 넙적한 바위를 책상삼아 글을 쓰고 데니는 가까운 샘에서 물을 길어온다. 차를 끓이고 과일과 떡으로 아침상을 차려 젬마 앞에 대령하는 건 데니의 몫이다. 이게 그들의 일상이다. 도시적 삶을 버리고 돈과 자식을 포기하고 얻은 자연과의 합일이다.

“데니, 행복이란 뭐지요?”

이런 질문에 데니만큼 선명하게 말할 이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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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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