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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酒黨千里|북한술

들쭉, 인삼, 버섯, 인진쑥… 청정 산천에서 빚어낸 꼿꼿한 야생의 맛

  • 글: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품평가 soolstory@empal.com

들쭉, 인삼, 버섯, 인진쑥… 청정 산천에서 빚어낸 꼿꼿한 야생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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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라면 북한의 이런 방식이 반가울 수도 있다. 괜히 비싼 나무 상자에 넣고 화려한 디자인의 유리병이나 도자기병에 담으면 술값만 비싸지기 때문이다. 애주가는 병 새지 않고 술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상품이 그렇게 나태해서야 어찌 경쟁력을 갖겠는가. 더욱이 마셔보기 전에는 속내를 알 수 없고, 마셨다 하더라도 품질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 술이다. 결국 술도 의류처럼 브랜드의 이미지와 디자인이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술은 그런 경쟁세계와 딴 세상에 있을 따름이다.

진로의 고향은 ‘평남 용강 진지동’

그렇다면 북한술 맛은 어떤가. 술꾼에게 중요한 것은 맛이다. 맛이 좋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맛을 논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둘 게 있다. 북한은 소주가 세다. 북한에선 통상 알코올 도수 25% 이상의 술을 마신다. 탁주나 청주(약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20% 이하의 술은 ‘닝닝하고 심심해서’ 별로 마시지 않는다. 남쪽보다 추운 지방에 살기 때문이다. 이런 술문화는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분단 전에는 북쪽 소주가 남쪽의 술에 영향을 미쳤다. 남쪽 소주의 내력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남한 소주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참이슬 ‘진로’라는 상표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 진지동에서 태어났다. 진로 창업주인 장학엽씨가 진천양조회사를 시작하면서 진지동(眞池洞)의 참 ‘진(眞)’자와 소주를 뜻하는 노주(露酒)의 이슬 ‘로(露)’를 합쳐서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술로 문배주, 면천두견주, 경주교동법주 세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유일한 소주인 문배주가 평양술이다. 평양 평천양조장에서 빚던 술인데, 제조자가 6·25전쟁 때 피난 내려온 뒤로 서울에 터를 잡고 있다가 1986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최고로 잘 팔리는 희석식 소주의 본적이 북한이고,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유일한 증류식 소주의 고향이 북한이니, 남한 소주의 기가 한풀 꺾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술 또한 달라졌을 테니 어디 한번 살펴보자.



현재 남쪽에서 잘 팔리는 북한술로 들쭉술, 인풍술, 백로술, 개성인삼소주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 들쭉술의 행보가 단연 돋보인다.

들쭉은 주로 백두산 일대에서 수확되는 열매다. 들쭉나무는 진달래과 식물로 추위에 강하고, 물 빠짐이 좋은 화산지형에서 잘 자란다. 다 자라면 50~60㎝가 되는데 바람이 센 고산지대로 갈수록 땅바닥에 붙어 자란다. 8월에는 버찌만한 자주색 열매가 열린다. 백두산에서는 재배단지를 조성해 들쭉을 수확하기도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재배하기가 어려워 백두산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들쭉술이 남한에서 명성을 얻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만 자라는 나무의 열매라는 점이 남쪽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게다가 열매를 채취하기 어렵고 수확량도 많지 않다는 점이 희소가치를 높였다. 그 덕분에 한때 10여곳의 공장에서 10여종류의 들쭉술이 제조, 수입됐는데, 지금은 대부분 정리되어 3종류(‘백두산’ ‘두하나’ ‘일오일’)의 들쭉술이 수입되고 있다.

김일성, ‘들쭉술 전문화’ 현지 교시

1963년 김일성 주석이 백두산 인근 양강도의 혜산들쭉가공공장을 방문한 것도 들쭉술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현재 혜산들쭉가공공장에는 당시에 연설한 ‘김일성 동지의 현지 교시’가 돌판에 새겨져 있다. 그중 술에 관한 부분만 인용하면 이렇다.

“우리가 이 공장에 대해서 관심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발효통은 참나무나 피나무로 만들어야 좋습니다…들쭉을 가지고 술 만드는 것을 전문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술을 더 잘 만들어 탄부(광부)들에게도 공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두산 들쭉으로 흰술과 색깔 나는 술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술통도 좋은 나무로 만들고 랭실(冷室)도 만들어야 합니다. 술을 만들어 굴에 넣으면 좋습니다…술은 알코올을 넣지 말고…병도 좋은 것으로 하고 상표와 설명서도 붙여 잘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들쭉은 영양가가 높으므로 홍역이나 산후에 좋다고 합니다.”

소주(흰술)와 발효주(색깔 나는 술)를 주정(酒精)을 넣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참나무나 피나무 통에 넣어 발효시키라는 등 제조기법부터 상표와 술병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김 주석은 술 제조에 관련한 모든 과정을 언급했다.

이런 관심의 표명으로 들쭉술은 양강도의 특산물이 되었고,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장수불로주라며 자주 즐겼다는 전언이다. 또 북한에서 외국 손님을 접대할 때 곧잘 내놓는 술이어서 대외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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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품평가 soolstory@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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