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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호주이민 성공列傳

사흘 용접하고 나흘 골프치는 남자, 아이들이 행복해 더 행복한 여자

  • 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호주이민 성공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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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얘기지만, 사람의 한평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 순간 크고 작은 결단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하고, 한 번 선택한 길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한 사람의 생으로 고착된다.

절대로 수정될 수 없는 지난날의 선택들, 그 선택들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게 우리 모두의 생이 아닐까 싶다.

이민 초기의 시드니는 환상의 끝에서 어른거리던 신기루였다. 금방 구름 위로 차오를 것 같은 하버브리지와 두둥실 노 저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오페라하우스,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호주는 녹색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무지개였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쑥맥이었던가. 사람 사는 곳에, 밥 먹고 꿈을 꾸는 곳에, 어찌 바람 한 줄기나 구름 한 점이 없겠는가. 신기루의 끝자리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됐을 때, 나는 비로소 호주가 무지갯빛 환상 뒤에 숨어 있는 엄정한 현실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K후배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다. IT전문가이면서 시를 쓰는 사람답게 정갈한 성격의 후배가,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초반에 회사로부터 퇴직당한 상처에다 믿었던 선배로부터 받은 상처가 겹치면서 침몰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한국의 30~40대 직장인들 중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의 경우는 좀 특별했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 오직 이민밖에 없다는 요지부동의 결정을 이미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면서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이민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와 비슷한 또래의 전문가들이 호주로 이민 와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단한 공부’의 힘

김홍종(45)씨는 이민 10년차의 IT전문가다. 세계 150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오스트레일리아의 선임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유니레버 코리아에서 근무하다가 유니레버 오스트레일리아로 일터를 옮기며 취업이민을 한 사례다.

시드니 노스 록스에 위치한 그의 직장을 찾아갔다. 마침 그의 상관인 밸러리 화이트씨가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장군처럼 보이는 화이트씨는 “미스터 김은 유니레버 오스트레일리아의 보배다. 그의 성실한 업무자세는 모든 사원들의 귀감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업무는 비즈니스와 금융 분야 분석. 어느 특정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원료를 사들이고 생산·판매하여 투자금액이 회수되는 사이클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매부서와 영업부서는 물론이고 생산부서까지 지원해야 한다. 각 부서의 IT시스템 이용자들을 유저(user)라고 하는데 그는 늘 유저들과 온라인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오전 9시에서 오후5시까지인 근무시간 외에 발생하는 돌발사태는 휴대전화로 처리한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24시간 가동되는 생산부서에서는 새벽 2시에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유니레버 유저들에게 김씨는 그야말로 ‘캡’이다. 아무리 귀찮은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업무를 지원해주고 제반 문제들을 깔끔하게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게 경쟁이 심한 호주 IT업계에서 김씨가 호주사람들을 제치고 승승장구하는 비결이다. 아무리 실력으로 승부하는 IT업계라지만, 실력에다 성실성까지 겸비하면 백전백승인 법.

그렇다고 그에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비영어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지만 이민 초기에 겪었던 언어장벽과 문화차이는 그를 주저앉게 만들 뻔했다. 특히 1년이 멀다하고 발전하는 IT업계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힌 젊은 세대들과 경쟁하는 것은 이중 삼중의 고통이었다. 그는 이 모든 어려움을 ‘기도의 힘’과 ‘부단한 공부’로 극복했다고 한다.

한국의 팀워크, 호주의 개인기

김씨는 삼성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직속상관으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이 자랑하는 팀워크는 개인기를 중시하는 호주 기업에서도 직장인의 좋은 덕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의 시스템이 팀워크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개인에게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니레버 오스트레일리아는 개인에게 거의 모든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호주에선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보다는 강한 개성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직원을 높이 평가한다. 이런 추세는 젊은 세대일수록 더 심해서 직장인의 나이는 거의 의미가 없다.

이 말은 거꾸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항상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실력과 성실성만 갖추고 있으면 나이가 많은 IT전문가들도 얼마든지 젊은 세대와 경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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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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