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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⑧

빨고 씻고 버무리다 보니 잊힌 내 반쪽이 꿈틀대네!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빨고 씻고 버무리다 보니 잊힌 내 반쪽이 꿈틀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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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50세는 인생의 반환점이자,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나이다. 농부 김광화씨는 자신의 잠자던 여성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다. 빨래하기 전엔 옷감을 살피고, 설거지가 지겨울 땐 노래를 부르며, 식구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다 보니어느새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됐다. 무뚝뚝한 남성에서 섬세한 여성으로 변화하는 살림법 大공개!
빨고 씻고 버무리다 보니 잊힌 내 반쪽이 꿈틀대네!

아이들과 김밥을만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살림을 익히지 않으면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큰아들’이다.

나는오래 살고 싶다. 시골에 살자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데 어째 나는 그 반대다. 해가 갈수록 욕심이 더 많아진다. 자유롭고 싶고, 평화롭고 싶다. 뭐든지 다 해보고 싶고, 원(願)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러자면 오래 살아야 하리라. 아니, 오래 살고 싶다. 아내는 사는 만큼 살고 싶단다. 어쩌면 내가 아내보다 오래 살지 모른다. 옛말에 ‘과부 삼년에 은이 서 말이요, 홀아비 삼 년에 이가 서 말’이라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이가 서 말이 되는 홀아비’가 되고 싶지 않다.

내년이면 내 나이가 오십이다. 평균수명이 부쩍 길어지고 있다. 1970년에는 63세였는데 2003년에는 76세란다. 70세에 죽으면 평균수명도 못 살았으니 억울하겠다. 현대의학과 자연의학을 잘만 소화한다면 평균 100세까지 사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나이 50이란 인생의 반환점으로서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여성이 오래 사는 비결, 꼼지락거리기

수명과 관련된 통계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오래 산다고 한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오래 살고 싶으니 그 비결(?)이 아주 궁금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그 까닭을 찾다가 언뜻 떠오르는 게 있다. 여성은 하루 종일 꼼지락꼼지락 무언가를 한다. 칠순을 넘기신 우리 어머니는 물론이요, 팔순이 넘으신 장모님도 늘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 그건 한마디로 살림살이다. 어쩌면 이게 오래 사는 비결의 하나일지 모른다. 나도 살림살이를 익히고 싶다. 나이 들어서도 살림을 잘 한다면 ‘이’는 사라지고 ‘은’이 저절로 굴러온다는 옛 사람들의 말씀을 믿고 싶다.



먼저 ‘이’가 안 생기게 하자면 빨래를 잘 해야겠다. 한동안 식구들 빨래를 아내가 다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내 옷만큼은 내 손으로 빤다. 계기는 가뭄이었다. 지독한 가뭄이 든 적이 있다. 집으로 끌어들여 먹던 옹달샘이 말라버렸다. 먹을 물조차 없으니 물이 잘 나오는 곳을 찾아다니며 물통으로 물을 길어다 먹었다. 씻고 걸레를 빠는 데 쓸 물은 냇물을 경운기로 실어날랐다. 빨래는 급하지 않으니 쌓여만 가고 아내 얼굴은 굳어만 갔다. 경운기로 물을 실어나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못할 짓이다. 기름 사서 걸레 빠는 꼴이 아닌가.

몸이 지쳐갈 무렵 답이 보였다. 집안에는 물이 없지만 냇가에는 그래도 물이 흐른다. 타는 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리 내며 흐른다. 그래, 냇가에서 빨래를 하자. 아내에게 흔들리는 내 모습을 가리고 싶었다.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해보니 할 만했다. 물소리가 너무나 정겹다. 이런 소리가 바로 생명의 소리구나 싶다. 가뭄에 물이 귀해서도 더 그랬을 것이다. 물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뭄에 대한 걱정도 삶에 대한 잡다한 고민도 잊었다.

흐르는 물에 빨래를 헹군다. 휘휘 헹군다. 딴 세상이다. 냇가에는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억압이 없다. 자유이고 해방이다. 빨래에서 나온 땟물이 흐르는 물에 섞이면서 금방 깨끗해진다. 물이란 참 놀라운 생명이다.

그날 이후 틈틈이 손으로 빨래를 하게 되었다. 다음 글은 어느 해 겨울, 적어둔 빨래 일기다.

옷 같은 삶, 옷 같은 사람

저녁에 가마솥 물을 떠와 목욕을 하고 난 뒤 그 물로 빨래를 한다. 속옷 먼저. 물이 따끈하니 때가 잘 빠진다.

가장 큰 빨래는 겨울 점퍼와 바지. 옷 무게만 해도 가볍지 않다. 물까지 먹으면 보통 무게가 아니다. 옛날 어머니는 장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온 식구 빨래를 당신 혼자 다 하셨으니. 겨울옷은 지나치게 두툼해서 여성이 손으로 빨래하는 건 정말 힘들다. 하지만 내게는 ‘몸 만들기’에 좋은 일거리다.

우선 ‘섬세한 몸놀림’이 필요하다. 빨기 전 옷감을 잘 살핀다. 어디에 얼룩이 있는지. 옷 구석구석을 다 손으로 주무를 수 없기에 물에 넣기 전에 잘 봐둔다. 그 부위를 비누질하여 솔로 살살 문지른다. 그 다음은 몸과 옷이 가장 자주 만나는 목, 손목, 발목 둘레도 빤다. 그런 다음 큰 그릇에 옷을 담고 발로 주무른다. 돌아가며 주섬주섬. 뒤집어 자작자작. 오른발, 왼발 교대로 찰싹찰싹 꾹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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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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