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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인터뷰

화산 李씨 종친회 운영위원 이상준 브릿지증권 사장

“나는 베트남 ‘리’왕조 후손,제2의 조국에 ‘따뜻한 자본주의’전하고파”

  • 장옥경 자유기고가 writerjan@hanmail.net

화산 李씨 종친회 운영위원 이상준 브릿지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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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나 어디서 태어났어?’ 물으면 어른들이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하고 놀리잖아요. 처음엔 심각하게 반응하지만 자라면서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흘려듣는 것처럼, 저도 아버지의 말씀을 별 뜻 없이 받아들였어요. 이씨 하면 전주 이씨가 많아서 화산 이씨를 전주 이씨 방계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2001년인가, 한 방송사에서 ‘850년 만의 귀향’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했어요. 황해도 옹진반도의 화산리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화산 이씨가 고향인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것을 보고 ‘어! 진짜네’ 하게 됐습니다.”

이상준 사장이 초등학생이던 1960년대 한국은 베트남전에 사상 최초의 대규모 해외파병을 단행한다. 1964년 8월, 1개 의무중대 파견을 시작으로 이듬해에 맹호, 청룡의 2개 전투사단, 1966년에는 백마부대를 파견해 5만 병력을 베트남에 보냈다. 그런데 베트콩이 승리하면서 베트남은 베트콩과 같은 단어로 인식되었다.

남한에 1350명, 초미니 종친회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던 시절이라 이 사장은 부친이 “너는 베트콩이다” 했을 때 놀리는 말쯤으로 생각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말라서 학창 시절엔 가끔 친구들에게서도 “베트콩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면 “베트콩이 나만큼 생겼으면 정말 잘생긴 것”이라고 대꾸하곤 했다.



-화산 이씨에 대한 내력을 제대로 듣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TV를 본 후 종친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서 상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당시는 골든브릿지를 창업한 초창기여서 정신없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 조금 여유가 생겨 인터넷을 뒤지니 웹사이트도 없고, 신문기사를 찾아봐도 연락처가 없어서 종친회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2003년 가을 한 베트남 여행 관련 사이트 운영자와 비즈니스를 논의하다가 시삽에게서 화산 이씨 종친회 사무실이 인천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6·25전쟁이 나고 국토가 분단되면서 황해도 사람들이 인천으로 대거 건너와 ‘바다 건너 저쪽이 내 고향인데…’ 하며 살고 있는데, 화산 이씨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화산 이씨의 주류는 화산에 근거지를 뒀고, 한 선조가 안동부사를 지낸 것을 보면 할아버지 한 분이 안동 쪽으로 내려가 안동과 봉화 지역에 본가를 두게 된 것 같다. 여기서 일부는 충청도로 간 것으로 보인다.

화산에 살던 주류 집성촌은 북한 땅에 계속 남아 있거나, 일부가 전쟁 후 남하해 인천에 무리를 지어 살게 됐다고 한다. 이상준 사장은 “부친의 고향이 대구인 것으로 봐서 나는 봉화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남한에 있는 화산 이씨도 두 부류라고 합니다. 하나는 레드 콤플렉스가 있어서 ‘이 나라에서 베트남 왕족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해봤자 소외당할 뿐’이라며 밝히기를 꺼리는 파(派)이고, ‘혈통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고향도 방문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파가 있지요. 적극파는 1960년대 이후부터 베트남을 방문했고, 사이공이 함락되고 공산화 통일이 이뤄진 뒤부터는 방문이 끊겼다고 합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를 살펴보면 1950년에는 베트남이 북한과 단독으로 수교했고, 한국과는 1992년 12월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베트남에서 볼 때 한국은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에 이은 5위의 교역 상대국이다. 한국의 대(對)베트남 수출은 2002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며 20억달러 시대로 진입했고, 2003년에는 25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00년 경제기획원의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한에 살고 있는 화산 이씨는 1350명으로, 지금은 늘어봤자 1400여명일 것이라고 한다. 풍토가 맞지 않아서인지 화산 이씨는 자손이 귀한 편으로, 이상준 사장도 5대 독자다.

우리나라 인구 4829만명 중 1350명은 너무도 미미한 숫자다. 종친회를 찾아가보니, 규모도 작고 종친회 재산도 900만원에 불과했다. 초미니 종친회이지만, 족보를 잘 보존하고 대통을 지키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존경받는 리 왕조

-화산 이씨의 존재가 한국에서는 미미해도 베트남에서는 VIP 대접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1995년 화산 이씨 종친회 간부들이 선조가 한국으로 망명한 지 780년 만에 베트남을 찾았는데, 당시 도 무오이 당서기장 겸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했을 정도입니다. 요즘도 베트남대사관에서 주한교민 모임이 있을 때는 화산 이씨도 교민으로 간주하고 초대합니다. 화산 이씨가 베트남에서 살기를 희망할 경우 출입국관리, 세금, 사업권 등에서 베트남 사람과 똑같이 대우해주고요.

베트남 정부는 해마다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월15일이면 종친회장을 비롯한 종친회 간부들을 왕조 출범 기념식에 초청해 내 가족, 내 혈족으로 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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