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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CEO’ 초대석 ⑨

‘기업회생 마술사’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

“친환경 석유수지로 오염 잡고 방출 가스 연료화로 비용 절감”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기업회생 마술사’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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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별명은 ‘마술사’다. 적자에 허덕이던 만년 기피 부서를 기업의 핵심 ‘캐시카우(cash cow)’로, 공해산업의 멍에를 쓴 석유화학업체를 친환경기업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은 친환경 석유수지 개발로 새로운 ‘마법’에 도전하고 있다.
‘기업회생 마술사’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
“업체의신뢰도를 평가하려면 공장의 화장실부터 살펴라.”

배영호(裵榮昊·61) 코오롱유화 사장이 다른 기업과 계약하기 전에 실행하는 남다른 경영 원칙이다. 화장실이 깨끗하다는 것은 곧 CEO가 기업의 세심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근무 환경이 쾌적해야 업무 능률도 극대화된다는 것이 배 사장의 지론. 화장실처럼 사소한 부분까지 살피는 그의 철저한 환경 마인드는 석유화학업체 코오롱유화를 친환경기업으로 거듭나게 한 원천이다.

1967년 국내 최초로 석유수지를 개발한 코오롱유화는 페놀수지, 고흡수성수지 등 450여 가지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종합화학회사. 고무, 도료에 주로 쓰이는 석유수지나 목재접착제로 쓰이는 페놀수지, 기저귀의 원료가 되는 고흡수성수지 등은 제조공정에서 불가피하게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제품들이다. ‘화학산업은 곧 공해산업’이란 이미지는 석유화학업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멍에였다.

그러나 1998년 배영호 사장의 취임으로 코오롱유화는 그런 이미지를 깨뜨려갔다. 1999년 한국 RC(Responsible Care·기업이 환경 보전, 안전 개선활동을 벌이는 운동)협의회에 가입해 국제 화학산업체들의 환경운동에 동참했고, 울산공장과 김천공장은 각각 2003년과 2004년에 환경인증인 ISO 14001을 취득했다. 특히 울산공장은 2002년 환경경영 모범기업으로 선정돼 공장 담당자가 국회 환경포럼 회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성과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 경영도 잘한다”는 배 사장의 소신이 숨어 있다.

10월6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코오롱타워 10층 사무실에서 배영호 사장을 만났다. 기업의 인상을 결정짓는 요인 중 하나가 사무실의 분위기다. 인터뷰에 동행한 환경재단 이미경 사무국장과 기자는 그의 집무실에 들어선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다. 사무실 전면의 유리창을 통해 과천정부종합청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길게 늘어선 가로수와 쪽빛 하늘은 그윽한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었다.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일해 행복하겠다”는 인사에, 배 사장은 “지방 공장들은 본사보다 더 훌륭한 환경을 갖췄다”고 했다.



“화장실로 기업 평가”

-코오롱유화에 여러 환경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사실 제가 입사한 1970년대만 해도, 기업이 환경 문제까지 챙기긴 어려웠죠. 세 끼 밥조차 먹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까요. 매출 신장에만 관심을 쏟던 제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1975년 뉴욕지사에 근무하면서부터죠. 당시 구미공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의 눈에 뉴욕의 풍광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도심에 자리잡은 센트럴파크의 아름다운 경관, 꼼꼼하게 분리수거를 실천하는 아파트 주민…. 치밀하고 엄격하게 환경을 보호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꼭 그대로 실천하겠노라 마음먹었어요.”

-CEO로선 특이하게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하셨던데….

“기업의 CEO들은 워낙 바쁜 탓에 공부 욕심을 부려봐야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도 과거 두 차례, 서울대 경영대와 경제연구소에서 그런 과정을 수료했고요. 그런데 기업을 경영하다 보니 환경에 대한 전문지식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2003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최고경영자 과정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에게서 들었습니다. 코오롱유화가 기저귀의 원료인 고흡수성수지를 유한킴벌리에 공급하다 보니 문 사장과 자연스레 친분이 이어졌거든요. ‘일단 시작하면 제대로 끝맺자’는 게 제 신조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해외 출장 갈 때를 제외하곤 환경대학원 수업에 결석한 적이 없어요. 해외 여러 기업의 환경경영 사례를 보면서, 환경에 대한 투자는 ‘코스트 센터(Cost Center)’가 아니라 ‘프로피트 센터(Profit Center)’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배 사장은 CEO가 된 이후 환경 개선에 관한 사원들의 제안을 단 한 차례도 흘려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수익 창출에만 몰두하는 사업본부장들에게 “눈앞의 이윤보다 환경 투자로 인해 몇 년 후 돌아올 더 큰 이익을 생각하라”고 독려했다. 사원들은 환경 투자에 적극적인 CEO를 보며 환경경영을 위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놓기 시작했다.

“기업이 대개 제품 제조 공정은 잘 가르쳐주지 않아도, 폐수처리 시설은 별 거리낌 없이 개방하잖아요. 많은 기업이 환경과 관련된 기술은 타사와 공유하려고 합니다. 환경 관련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는 회사라도 다른 기업의 기술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결국 직원과 사장이 환경 보호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환경경영의 성패가 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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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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