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통문명’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창익·조성윤 옮김/모멘트
인류 역사 내내 사람을 괴롭혀온 고통을 문명사회가 박멸해야 할 최대의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일견 옳은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고통을 헌신짝처럼 버린 뒤 ‘안전, 쾌락, 안락함, 자극’을 얻었다. 하지만 무통문명을 지향하는 세계에서는 진정한 고통이나 진정한 기쁨이 없다. 진정한 고통을 대신해 애초부터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의 모험과 역경을 추구하고, 진정한 기쁨 대신에 쾌락과 자극을 추구한다.
고통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사회에서는 조건 없는 사랑과 근원적 안도감도 함께 사라진다. 무통문명을 지향하는 사상과 철학 그리고 고통을 없애는 갖가지 장치가 생명, 사회, 생활, 내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우리는 무통문명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무통문명이란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인류는 이미 무통문명의 안락함에 깊이 빠져 있다.
무통문명의 성장 동력
무통문명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모든 형태의 고통을 배제하는 문명이다. 자연 환경에서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나 고통이 배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통이 없고 쾌락과 쾌적함이 넘치는 환경을 최적화된 삶의 환경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을 배제하고 죽음을 관리할 수 있는 인공 환경을 만든다.
하지만 이 인공 환경 속에서 인간은 ‘자기가축화’라는 질병을 얻는다. 그 여덟 가지 징후를 보자.
첫째, 인공적인 환경. 사람은 일의 능률과 삶의 쾌적함을 높이기 위해 인공 환경을 만든다. 밤이 되어도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이 인공 환경은 닭의 산란을 위해 24시간 내내 불을 켜두는 닭장과 비슷하다. 둘째, 식료품의 자동공급.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품 재료나 제품을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셋째, 자연의 위협에 대한 안전한 대처. 넷째, 생식의 관리. 인공수정, 체외수정, 불임수술의 방법으로 생식 과정에 개입하고, 다섯째, 우생학 이론에 따라 생명의 질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선택적 중절이나 유전자 진단을 통해 질이 떨어지는 생명체를 솎아낸다. 여섯째, 신체 형태의 변화. 뼈의 수가 변화하고, 성형술로 얼굴 형태와 체형까지 바꾼다. 일곱째, 죽음에 대한 완벽한 관리. 의료기술의 발달로 예기치 않은 죽음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인간 스스로 결정한다. 여덟째, 안정과 쾌락을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속박당한다.
인류가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한정된 지구 자원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지금의 생활수준과 안락함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인간의 자기가축화를 증명하는 유력한 징표다.
무통문명의 성장 동력은 신체적 욕망이다. 신체적 욕망은 다섯 가지 측면으로 범주화된다. 첫째, 쾌락을 찾고 고통을 피한다. 둘째, 현상 유지와 안정을 추구한다. 셋째, 자신의 기득권을 확대 증식한다. 넷째,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다섯째, 인생·생명·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신체적 욕망은 무자각·무분별한 욕망이다. 개체의 편의와 안전, 쾌락을 우선 가치로 추구하며, 이를 획득하려는 욕망, 포식하려는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무한대로 자기증식하려는 이 신체적 욕망의 바탕 위에 세워졌다. 그 심층에 자본주의 체제가 내면화한 포식(捕食)의 연쇄는 ‘나의 즐거움과 생명을 위해서 너의 즐거움과 생명은 희생될 수도 있다’는 사고에 바탕을 둔다. 타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나’의 그것에 종속된 하위 가치의 범주에 두는 것이다. 무통화라는 형질을 추구하는 이 현대문명의 진화가 끝내 닿을 종착점은 과연 어디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없애는 이들 장치가 사회 구석구석에 온통 둘러쳐지고 개인 속으로 내면화함에 따라 사회 전체의 무통화가 진행되고,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은 고통에 의해 자기를 붕괴시키는 일 없이 쾌적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무통문명은 이 무통화 작업을 세포의 대사 작용처럼 자동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무통문명의 내부에서는 자기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진짜 고통은 제거되거나 내면화하며, 인간은 신체적 욕망의 함정에 빠져 생명을 서서히 마비시켜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