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불법 판치는 27조원대 ‘어둠의 시장’ 성인오락실

하루 1000만원 버는 업주는‘면세 대상’, 고객은 전세금 날리고 가정 파탄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5-12-28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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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오락실의 고객은 대개 평범한 시민이다. 오락실 관련 업주가 이들을 상대로 법이 정한 대로 영업하고, 세금 꼬박꼬박 내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상당수 오락실에선 사행심을 자극하는 불법영업이 판을 친다. 어머어마한 이익을 내면서도 탈세는 당연시된다. 성인오락실은 많은 사람을 도박중독에 빠뜨리는 거대 암흑시장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이익은 극소수 업자만 누린다.
    불법 판치는 27조원대 ‘어둠의 시장’ 성인오락실
    2005년 9월22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제가 새벽 2시에 성인오락실 현장에 가봤습니다. 이게 영등포역 앞에서 성업 중인 오락실입니다. 이건 일본식 파친코 메달 게임기입니다. 연타가 터지는 장면인데 한 번 터지면 250만원까지 벌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250만원 따려면 1000만원은 넣어야 됩니다. 새벽 시간인데 여성이 상당히 많아요. 이 시간에 주부들이 여기 뭐하러 왔겠어요? 주로 돈 따러 온 것이지요. 이건 ‘바다이야기’라는 전자식 메달 게임입니다. 이 장면은 상품권 환전소입니다. 여기 ‘상품권 사고 팔고’라고 붙어 있습니다.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서 계속하게 되어 있죠. 이게 다른 데도 아니고 오락실 옆에 붙어 있습니다. 같은 주인이 하는 겁니다.”

    TV 현장고발 생중계를 방불케 한 이 장면은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성인오락실에서 찍은 ‘몰카 동영상’을 상영하며 설명하는 광경이었다. 국회까지 진출한 몰카는 화젯거리가 됐다.

    최근 1, 2년 사이 대형화, 도박장화, 체인화하며 급속히 팽창한 성인오락실은 이제 주택가 골목까지 파고들었다. 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전국에 1만4991개의 ‘일반게임장(성인오락실)’이 성업 중이다. 2003년 1만3821개에 비해 1170개가 증가했다.

    성인오락실에 날개 달아준 정부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내엔 4000여 개의 오락실이 있다. 이 가운데 2005년에 문을 연 업소가 537개에 달한다. 서울시 한 곳에서만 월 평균 67개의 오락실이 새로 생겨났는데, 이는 하루 두 개꼴로 신규 오락실이 문을 열었다는 얘기다.

    성인오락실 수가 증가하면서 게임물 등급분류 심의도 늘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통계에 따르면 오락실에서 사용되는 아케이드 게임물의 경우 등급분류 심사를 받은 건수가 2001년 1018건이었고 이 가운데 ‘18세 이용가(성인용)’는 457건이었다. 그런데 2002년엔 1611건 중 705건, 2003년 1399건 중 657건, 2004년 1754건 중 1085건, 2005년엔 10월까지 1494건 중 1091건으로 집계됐다. 2004년 이후 전체 등급분류 심사 건수와 성인용 건수가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등급분류 심사 건수는 전년도에 비해 60%가량 증가했다. 이는 이 무렵 오락실 경품으로 처음 상품권이 등장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오락실 경품용 상품권이 도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2월이다.

    문광부 게임산업과 관계자는 “과거엔 오락실에서 경품으로 곰인형, 라이터 같은 물건을 줬다. 오락실이 호황을 누리면서 인형, 라이터 등의 수요가 폭증하자 국내산은 밀려나고 중국산으로 대체됐다. 거기에다 냉장고, 텔레비전 같은 고가 경품까지 등장하면서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상품권으로 대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와 달리 상품권 도입은 사행성을 조장하는 성인오락실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지난 7월 성인오락실 불법영업 단속에 나섰던 김모 검사는 “오락실이 상품권 환전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엄청나다. 예를 들어 50~60대의 게임기를 갖춘 업소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상품권은 대략 1만장선이다. 상품권 1장당 환전 수수료로 500원을 떼니, 매일 5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제주 소재 모 오락실 업주는 상품권 환전 수익으로 1년 동안 122억원 상당의 돈을 벌다 경찰에 적발됐다. 비슷한 시기 인천 소재 오락실 업주는 게임기 160대를 갖추고 불법 개·변조를 통해 일일 평균매출 1000만원을 올리다 경찰에 단속됐다.

    돈 끌어들이는 상품권 업체

    오락실 업주들이 불법 환전과 기기 개·변조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한편에선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업체들이 상품권 지정제가 실시되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있다. 문광부에 따르면 경품용 상품권 시장규모는 1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업계 사람들은 최소 7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대로 추산한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국감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일 상품권 발행한도는 1억5000만장으로,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7500억원에 달한다. 이를 근거로 경품용 상품권의 연간 유통량 규모를 추산하면 무려 27조원에 달한다.

    이재오 의원이 9개 발행사(2005년 9월 기준, 현재는 10개) 상품권 발행현황을 토대로 계산했더니 9개사 총 누적 발행매수가 한 달 반 동안 3억4000만장에 달했다. 상품권 장당 액면가가 5000원이므로 매출규모는 1조7000억원. 상품권 장당 순이익을 40원으로 볼 때 9개 발행사 순이익은 136억이다. 한 달 반 동안 업체당 15억의 순이익을 올렸다는 의미다.

    새로 문을 여는 오락실이 늘어나고 오락실 규모가 대형화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곳이 또 있다. 바로 오락기 제조업체와 게임물 개발자다.

    오락기에 들어가는 컴퓨터(본체)를 제작·납품하는 한 컴퓨터조립 업체 직원 정모씨는 “오락기 제조업체로부터 4000대를 주문받아 제작 중인데, 한 달 후에 같은 업체로부터 다시 3000대를 주문받았다. 물품대금은 선(先)지급에 현금으로 결제된다. 요즘은 오락실을 하려면 인테리어 공사부터 마치고 기다려야 한다. 오락기 주문량이 엄청나게 밀려 있기 때문이다. 4000대를 오락실에 푼다고 가정하면 대당 가격이 600만~900만원 하니까 적게 잡아도 240억원이다. 오락기 제작단가는 판매가의 50% 이하니까 순이익이 최소 120억원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성인오락실 단속업무를 담당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 생활질서계 김신 경장은 “상권이 괜찮은 길목에 제대로 된 기계를 갖추고 영업하려면 최소 30억~40억원이 필요하다. 10억~20억원 갖고 성인오락실 사업에 뛰어들었다간 쪽박 차기 십상이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오락기 대당 가격이 770만~860만원을 호가하는데, 이런 기계를 적어도 100대는 갖춰야 한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와 경기도 부천에는 오락기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김신 경장은 “오락기 만드는 업체가 영등포에 몰려 있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오락실을 대형으로 꾸며 기계를 전시한다. 그래야 기계를 많이 놓을 수 있으니까. 이런 오락실엔 게임을 즐기려는 손님보다 기계를 사려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오락실 관련 사업으로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을 능가하는 업자들이 나오자 ‘오락실 재벌’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처럼 오락실이 활황을 누리면서 운영방식도 변하고 있다.

    조폭 개입 다반사, ‘초짜’는 다친다

    인기 게임물을 내세워 오락실을 전국 체인화한 곳이 등장하는가 하면, 서너 명이 모여 각기 정해진 지분을 투자하고 배당금을 챙기는 업소도 생겨났다. 지분투자의 경우 오락실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을 끌어들여 운영을 일임하고 배당금만 챙기기도 한다.

    전직 오락실 업주 이모씨는 “이쪽 세계는 대부분 건달들과 연계되어 있다. 또 오락실 관련 업주끼리 이리저리 얽혀 있어 낯선 사람이 업계에 발 들이는 걸 꺼리는 폐쇄적인 분위기다. ‘초짜’가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간 얼마 못 가 망한다. 오락실끼리 카르텔을 형성해 신생 업소 죽이기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10월 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검사 신문식)는 조직폭력배가 직접 운영하거나 조폭의 비호 아래 성업 중인 대형 사행성 오락실을 단속해 ‘수원북문파’ 조직원 엄모씨를 비롯한 오락실 업주 15명을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을 담당한 정옥자 검사는 “오락실 기기 납품업자, 경품용 상품권 판매자, 오락실 업주 세 사람이 동업 관계를 형성하며 한 팀으로 움직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구속도 안 두려워해”

    성인오락실 주변에 기생하며 이권개입을 일삼는 기존의 폭력조직 외에 건설업 주변의 폭력조직도 발빠르게 오락실 쪽으로 몰리고 있다. 업계 사람들은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영업하는 오락실 뒤에는 십중팔구 조직폭력배가 있다”고 했다. 모 지방검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부 검사는 조폭들의 오락실 운영수법과 관련해 “일단 바지사장을 앞세워 오락실 사업자등록을 한다. 최근 1년 동안 검·경의 오락실 단속이 매우 강화됐기 때문에 실제 사장은 구속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이면합의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면합의에는 바지사장이 구속될 경우 실제 업주가 변호사 비용을 대는 등 뒤를 봐주고 위로금 조로 수천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속돼도 동일 전과 누범이 아닌 경우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게 대부분이고, 구속기간도 한두 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속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

    바지사장은 보통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받고 고용되는데, 오락실과 관련한 전과(前科)가 없어야 한다. 전과가 있으면 가중처벌되고 오락실에 대한 행정처분이 영업정지나 취소 등으로 무거워져 실제 업주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지사장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30대 전후 남자가 대부분이며 업주와 친분이 있는 경우가 많다.

    오락실을 둘러싼 불법 실태는 다양하다. 도박사행(환전), 기기 개·변조, 등급미필, 경품취급위반, 무등록이 그것.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05년 1월부터 9월까지 불법행위로 경찰에 단속된 경우는 6260건에 달한다. 5402개 오락실이 행정처분을 받았고 73명이 구속됐다. 유형별 단속건수 중 ‘기타’ 항목을 제외한 5개 항목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경품취급기준위반(1759건)이다.

    경품취급위반은 문광부의 ‘경품취급기준’을 근거로 단속되는데 오락실의 사행성 문제가 심각해지자 문광부는 2005년 1월 경품취급기준을 개정해 규제를 강화했다. 그 내용은 사행성 간주 게임물의 경품제공 금지, 경품권 인증제 도입, 사행성을 조장하는 점수 보관행위 및 현금거래(보관 점수에 대한) 등.

    사행성 간주 게임물의 범위는 1회 게임시간이 4초 미만인 게임물, 1시간당 총 이용금액이 9만원을 초과하는 게임물, 잭폿 누적점수·최고당첨액·경품누적점수 등이 경품한도액(1게임당 2만원)을 초과하는 게임물이다. 이 경우 오락실에서 게임은 제공할 수 있지만 경품은 줄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가령 화투, 카드, 슬롯머신, 파친코 외에 ‘오락성은 거의 없고 도박에만 이용될 우려가 있는 릴식, 띠식, 짜맞추기식 등의 게임물을 지나치게 모사한 게임물’은 사행성 간주 게임물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업계 사람들은 “문광부 기준을 지키는 오락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실정을 전한다. 문광부가 지난 9월 작성한 ‘건전 게임문화조성 강화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불법 경품제공게임)에 따른 피해가 늘고 있고, 사행성이 높은 성인용 경품 게임류가 아케이드 게임의 약 80%를 차지한다. 또한 불법 개·변조와 경품취급기준위반 등 불법행위가 증가하면서 부당이득도 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경품취급기준이 강화되기 전에 등급분류를 받은 사행성 게임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국의 오락실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당수 오락실은 등급분류를 무시하고 과도한 베팅과 고배당이 가능하도록 기기를 불법 개·변조해 손님 몰이에 나서고 있다.

    불법영업의 현장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한 오락실에서 필자는 단 10분 만에 3만원을 잃었다. 시간 단위로 계산하면 1시간에 9만원이 아니라 18만원이 든다는 얘기다. ‘1게임당 4초, 1시간 9만원’ 규정을 적용해 계산하면 1게임당 100원이 돼야 적법하다. 규정상 사행성 간주 게임물의 게임당 이용금액은 실제로 100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게임당 250원이 소요됐다.

    오락실에 비치된 수십대의 오락기는 대부분이 사행성 문제로 지탄을 받아온 예시·연타 게임물이었다. 눈 깜박할 사이 3만원을 잃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몇 자리 건너에서 요란한 축하음악과 함께 잭폿이 터졌다. 종업원이 다가와 오락기를 열고 상품권 박스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 5000원권 상품권 24장을 뽑아 손님에게 줬다.

    등급분류를 받은 오락기를 열어 상품권을 임의로 배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심의를 통과한 오락기에 내장된 상품권 박스는 상품권 배출 버튼이 없어야 한다. 대신 1회에 5000원권 상품권 4장만이 자동 배출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시·연타 게임물은 특정 상징물이 나타나면 다음 게임부터 법정 최고 당첨금인 2만원이 연속해서 터지는 것을 말한다.

    수원지검 정옥자 검사는 “요즘 유행 중인 ‘황금성’ ‘바다이야기’ ‘오션파라다이스’ 같은 게임물은 1회마다 상품권 4장이 배출되면 화면이 초기화되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오락기 본체 속 컴퓨터에 메모리 기능이 내장돼 있기 때문에 사행성을 조장한다. 이 기능에 의해 당첨금이 200만~300만원에 이를 때까지 상품권이 4매씩 약 100~150회에 걸쳐 연속적으로 배출된다”고 했다.

    종전의 슬롯머신처럼 1회 최고 당첨금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일시적으로 배출하면 사행행위로 단속이 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교묘한 수법을 쓴 것이다.

    불법 판치는 27조원대 ‘어둠의 시장’ 성인오락실

    강원도 정선 카지노. 성인오락실은 도박성에서 카지노에 못지않다.

    메모리 기능이 내장된 오락기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상품권이 배출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당 최소 3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에 비해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 시간은 대당 10분에 불과해 사행성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것.

    최근 대전검찰청 천안지청은 불법 성인오락실을 단속해 오락실 업주 2명 등 4명을 사법처리했다. 이들은 전원을 차단했다 다시 켜기만 하면 오락기가 등급분류를 받은 정상 상태로 돌아오도록 변조한 뒤 수사기관의 단속이 있을 때마다 이를 이용해 법망을 피하다 덜미가 잡혔다.

    또 다른 오락실 업주는 오락기 심사 때 경품에 당첨되어 상품권 4장이 배출되면 나머지 점수는 삭제되도록 등급분류를 받았다. 그러나 삭제된 점수가 여러 차례로 나뉘어 되살아나는 방식으로 기기를 변조했다.

    10% 떼고 환전, 세금도 안 내

    승률조작도 불법 개·변조를 통해 이뤄진다. 전직 오락실 업주 이씨에 따르면 승률조작의 이유가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에는 오락실 업주가 돈을 벌기 위해 승률을 낮게 조작했지만, 요즘은 업소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승률을 높이고 있다. 영등위 심의 때 오락기는 승률이 95%로 고정되어 있다. 오락기 대당 업주의 영업이익이 5%라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신규 업소가 늘면서 손님을 끌기 위해 승률을 105%까지 높게 조작하고 있다. 오락기를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가 커지지만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상품권 환전으로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빚어진다.”

    승률을 높여 ‘배당이 잘 터지는 집’으로 입소문이 나면 이후 승률을 90% 이하로 낮게 재조작한다. 인천 남구 소재 오락실 업주 이씨는 영등위 등급분류와 다르게 그림판(릴)의 배당 점수가 낮게 책정되도록 기계를 개·변조하여 1일 평균 약 1000만원의 부당 수익을 올리다 경찰에 적발됐다.

    상품권 환전을 통해 월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오락실이 적지 않다. 상품권 지정제를 통해 오락실에서만 유통되도록 한 경품용 상품권은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데도 오락실 이용자 대부분이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환전한다. 환전소는 상품권 액면가의 10%(500원)를 수수료로 뗀다

    수원지검 정옥자 검사는 “세금 탈루가 심각하다. 불법영업으로 엄청난 소득을 올리는 상품권 발행사나 오락실 업주에 대해 세금을 철저히 추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전 사업의 경우 부가가치세 ‘면세대상’에 해당되어 환전을 통해 엄청난 부당 수익을 올려도 사업자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환전 사업자에게 소득세는 부과할 수 있지만 속칭 바지사장인 이들은 세금납부 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검찰이 국세청에 실제 업주를 통보해주고 국세청이 이들에게서 세금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락실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인 환전소는 오락실과 별개로 사업자등록을 해야 한다. 업주는 이를 역이용해 제3자 명의로 환전소 사업자등록을 한 뒤 불법환전에 따른 단속기관의 처벌을 벗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환전소에도 바지사장이 등장했는데, 오락실 바지사장이 20~30대 젊은 층이라면 환전소는 50, 60대 중·노년층이 대부분이다. 월급은 100만~150만원. 주로 직장에서 밀려난 명예퇴직자, 노숙자, 신용불량자 등이다.

    구청에 등록하지 않고 불법으로 오락실을 운영하는 무등록 영업도 성행하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김신 경장은 “구식 오락기를 들여놓고 무등록으로 영업하는 오락실이 늘고 있다. 복고풍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옛날 오락기에 향수를 가진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 수백만원 탕진하는 공무원

    한국레저산업연구소는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갬블산업 및 복표발행업의 사행성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만 20~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행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게임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14%가 성인오락실(스크린경마 포함)을 1위로 꼽았다. ‘도박중독증 등 사회적 폐해를 야기할 가능성’에 대해 카지노 다음으로 성인오락실을 꼽은 응답자(49%)가 많았다.

    택시에서 만난 40대 기사는 성인오락실 얘기를 꺼내자 “모조리 폐업시켜야 한다”며 흥분했다.

    그는 “10년 넘게 함께 택시를 몬 동료가 성인오락실을 드나들다 불과 1년 만에 전세금 8000만원을 날리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개인택시마저 팔아치울까 걱정이다. 가끔 택시기사들끼리 모여 화투를 치는데 차라리 ‘멤버’가 필요한 화투가 나은 것 같다. 성인오락실은 혼자서도 도박에 빠질 수 있는데다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릴 수 있으니 브레이크 없는 차와 같다”고 혀를 찼다.

    검찰과 경찰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오락실에서 거액을 잃거나 피해 본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월급을 하룻밤에 오락실에 털어넣고 대출받고 카드에서 빼 썼다. 이젠 돈도 없고 빚만 남았다. 서민 돈 빨아먹는 오락실 다 없애야 한다’

    ‘소방공무원, 지하철직원, 은행간부 할 것 없이 오락실에서 만났다. 하루에 수백(만원)씩 탕진한다. 돈 없는 나도 4일에 200만원 날렸다. 빨리 단속해서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법령을 다시 만들고 강력한 단속으로 사행성을 없애야 한다. 게임장에 20만원 가지고 가면 손님 취급도 못 받는 걸 아는지. 공무원들 정신 좀 차리소!’….

    게시판에서 한 남성은 오락실에서 경품으로 탄 상품권 22장의 일련번호를 꼼꼼히 기록해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을 발견, 검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문광부가 지정하는 경품용 상품권은 1회에 한해 사용이 가능하며 재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상품권 발행사가 발행한 상품권은 총판 오락실, 환전소 오락실로 돌고 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을 탈루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일련번호 순으로 배출돼야 할 오락기 상품권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는 것이다.

    22장 일련번호가 뒤죽박죽

    상품권 불법유통이 사행성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낙인찍히자 2005년초 문광부는 상품권 인증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인증심사와 인증경위를 둘러싸고 또 다른 의혹이 불거져 인증을 통과한 22개 상품권이 모두 취소됐다. 이후 현재의 지정제로 바뀌어 현재까지 총 10개 상품권이 오락실 경품용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인증이 취소된 22개 상품권 중 9개가 새로운 제도에서 부활했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정동채 문광부 장관을 물고늘어졌다. 경품용 상품권 인증제 당시 관련 규정에는 ‘경품용 상품권 인증 후 제출된 자료가 허위로 확인될 경우 인증을 취소하고 향후 2년간 인증심사에서 제외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상호간에 법적 충돌이 없는 것으로 검토됐다. 인증제 규정은 새로운 제도에 적용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한편 인증제에 따라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 수를 200개 이상(전국 기준)으로 한 규정이 지정제 이후에는 100개 이상으로 축소됐다. 이에 대해 문광부 관계자는 “인증이 취소된 상품권발행자라도 지정제에 맞게 지정요건을 갖춰 신청해오면 지정해준다. 또 인증제 때는 가맹점 기준에 대한 제한 없이 무조건 200개 이상으로 했지만 지정제로 바뀌면서 서점, 영화관, 관광 숙박시설 등 문화·관광 산업 분야 가맹점으로 제한을 뒀다. 상품권 이용자가 상품권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품권 지정제 이후 가맹점을 통해 회수된 상품권은 0.4%에 불과하다.

    상품권 지정을 통해 문광부가 챙기는 수수료 수입도 쟁점이다. 발행 상품권 장당 수수료율과 발행 규모로 추산한 결과 연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상품권 지정을 관장하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비영리법인이라 수수료 징수에 따른 이익을 내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공방도 있었다.

    이에 대해 문광부 담당자는 “상품권 지정에 비용이 들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수수료 대신 기금 형식으로 바꿀 것인지를 협의 중에 있다”고 했다.

    흥사단은 2005년 5월 감사원에 상품권 인증과정에 대한 시민감사를 청구했다. 여야 의원 35명과 함께 박찬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제공업소의 경품제공용 상품권인증심사에 대한 감사청구안’도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흥사단과 박 의원의 안을 묶어 요약하면 경품용 상품권 지급허용이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하는가, 심사위원 선정이 객관적으로 마련됐는가, 인증 심사과정 전반 및 결과에 객관성·공정성이 있는가, 상품권 인증 심사과정에 정치권의 압력 및 이해당사자의 조직적인 로비가 있었는가 등이다.

    감사원 관계자에 따르면 흥사단의 감사청구건은 청구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감사가 착수되지 않았다. 정부, 정치권, 오락실 업계가 뒤엉킨 공방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 사이 빚더미에 올라 삶이 허물어지고 가정이 파탄에 빠진 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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