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과천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옆 미술관’. 산 능선을 따라 성벽과 봉수대로 ‘위장’하고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온전히 담아놓은 예술혼의 공간.
1986년 청계산을 배경으로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건축된 국립현대미술관. 산성(山城)과 봉수대를 연상시킨다. | 중앙 원형 천창과 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덕분에 실내가 밝고 아늑하다. |
이불(1964~ ) 사이보그 W5/1999.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의 고혹적인 미소가 있다면 이곳엔 박제가 된 천재시인 이상(李箱)의 날카로운 눈빛이 있다. 국내 야수파의 거장 서산(西山) 구본웅(1906~53)이 절친한 친구 이상을 그린 초상화 ‘우인상’(1935). 일제 강점기의 시대상황과 시인 이상의 내면을 절묘하게 표현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림 속 이상의 날카로운 눈매는 식민지 조선의 위선적 외양을 꿰뚫어보는 듯 핏발 선 예지로 빛나고, 창백한 얼굴빛과 삐딱하게 물고 있는 담배 파이프는 시인의 신경질적이고 반항적인 성격을 가감 없이 웅변하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선집’ 중에서).
국내 최초의 유화는 춘곡(春谷) 고희동(1886~1965)이 1915년에 그린 ‘자화상’이다.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인상파 화풍에 관심이 지대했던 그의 초기 작품으로 현존하는 3점의 자화상 중 하나다. 무더운 여름 방 안에서 부채로 더위를 쫓고 있는 망중한의 자신을 그린 이 그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고희동에 이어 인상주의 미학을 꽃피운 이가 오지호(1905~82)다. 그가 향토적 서정성만 강조되던 풍경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 바로 ‘남향집’(1939)이다. 좌우가 절단된 초가의 일부가 대담하게 클로즈업되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강렬한 태양광선이 물체표면에 부딪혀 그대로 반사된다. 박진감 넘치는 이 작품은 흡사 모네의 ‘루앙성당’을 연상케 한다.
한국 미술사는 1945년 광복을 전후로 근·현대로 나뉜다. 1950년대 후반 추상미술운동을 시작으로, 1970년대 기하학적 추상·개념미술, 1980~90년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2000년대 미디어아트까지 급속도로 발전한다.
이 같은 서양사적 발전의 이면에는 한국의 전통적 관념과 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이어가려는 노력도 공존한다. 장욱진(1918~90)의 ‘까치’(1958)는 지극히 제한된 상징 언어의 반복과 섬세하고 치밀한 색감 속에서 한국적 표현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현재. 텅 빈 공간의 높은 천장에 매달린 조각상 ‘사이보그 W5’는 이불(1964~)의 작품으로 이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이다. 신체의 완벽한 곡선미와 도발적인 여성의 성적 매력은 대중소비문화의 한 단면이고, 첨단 테크놀로지의 완결판인 사이보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의 결정체나 다름없다.
국내외 작가 3000명의 열정과 혼이 담긴 작품 5000여 점이 소장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렇게 근·현대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구본웅(1906~53) 우인상/1935. | 고희동(1886~1965) 자화상/1915. | 오지호(1905~82) 남향집/1939. | 장욱진(1918~90) 까치/1958. |